산과 바다

<헤어질 결심>(2022), 박찬욱

by Yul

기이한 사건들이 이어진다. 여기엔 산에서 떨어져 낙사한 남자(기도수)와 목에 가위를 대고 자살한 남자(홍산오)와 수영장에서 죽은 채 발견된 남자(임호신)가 있다. 스스로 자살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도적으로 피살된 사람도 있다. 결국 끝에 다다르면 <헤어질 결심>은 마지막 서래의 죽음까지 포함해 모두 8명이 죽는 핏빛 이야기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기엔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서래(탕웨이)를 사랑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의 이야기가 있다.

만약 형사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만들고자 했다면 그건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이나 데이비드 핀처의 <세븐>, 혹은 <다이 하드>나 <범죄도시> 시리즈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은 형사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고도 이른바 ‘형사 영화’ 장르의 구심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다. 말하자면 이건 형사들 사이에서의 케미보다는 용의자와 관찰자 사이의 관계가 더 중요하고, 범죄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는 수사 자체보다는 수사를 빙자한 사랑의 관계가 더 중요한 영화다.

장르의 관습부터 이야기 형태까지, 기존의 줄기를 비틀거나 서로 접목시키며 이야기를 뻗어나갔던 기존 박찬욱의 작업 방식은 <헤어질 결심>에서 조금 다르게 변주된 것으로 보인다. 이전작인 <박쥐>와 <아가씨>와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이 제각각의 원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떠올린다면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이 오랜만에 선보이는 오리지널 각본 기반의 작품이기도 하다. (2013년 <스토커>의 각본이 박찬욱의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006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이후 16년 만의 오리지널 각본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말하자면 장르적 선택에서부터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일본식 적산가옥의 형태까지, 불균질함이 작품의 주 특성이라고 할 수 있었던 <박쥐>와 다르게 <헤어질 결심>은 영화의 요소요소들을 두 갈래로 나누어 놓은 채 비틀고 뒤집으면서 관객에게 어떻게 볼 것인지 되묻는 영화인 셈이다.

하지만 동시에 <헤어질 결심>은 그 누구보다도 박찬욱의 영화이기도 하다. 그의 영화 제작사 이름이 ‘모호 필름’이라는 것에서 드러나듯 박찬욱 영화의 특징은 언제나 모호함이었다. 서래는 중국인으로, 한국어에 능통하지 못한 까닭에 한국인인 해준과의 소통에서 번번이 미끄러진다. 번역 앱을 이용한다 해도 ‘마음’이 ‘심장’으로 잘못 전달되는 것처럼 그 소통은 온전하지 않기 때문에 의미가 가려져 결국 모호하다. 수많은 등장인물 사이에서 ‘우리’라는 말이 번번이 다른 뜻으로 전달되는 것처럼 비단 한국인 사이에서의 소통도 온전치 않다. 애초에 이 영화의 핵심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것은 정훈희의 ‘안개’라는 노래 때문이었으니 <헤어질 결심>은 모호함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서래의 대사 전달이 원할하지 못한 것은 정확히 의도된 바인 것이다.)

<헤어질 결심>의 무대는 현실의 도시 부산에서 펼쳐지는 1부와 가상의 도시 이포에서 벌어지는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3개월이라는 시간의 텀을 두고 러닝타임의 정확히 절반 지점에서 갈라지는 이 두 도시는 각각 산과 바다로 형상화된다. (영화 속에서 나타나 있진 않지만 기획 단계에선 ‘산’과 ‘바다’로 부제까지 정해져 있었다.) 부산에서 해준이 해결해야 할 사건은 산(구소산)에서 낙사한 중년 남성 기도수(유승목)의 살인사건이지만 이포에서 그것은 바다(수영장)에서 죽은 또 다른 남자 임호신(박용우)의 사건이다. 부산에서는 산과 관련된 사건의 진실이 파헤쳐져야 할 중요한 목적이지만 이포에서는 바다와 관련된 모종의 진실이 더 중요하다.

그럴 때 이 영화 1부와 2부의 구성은 그러한 전복과 역전의 모티브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준은 부산과 이포에서 모두 비슷한 사건을 겹쳐 두 번 겪는다.

부산과 이포에서 해준은 각각 수완(고경표)과 연수(김신영)라는 동료 형사와 함께 2인 1조로 팀을 이루어 활동한다. 두 사람은 모두 진중한 분위기의 영화 속에서 유머를 담당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해준이 담당하는 두 사건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극 중 역할이 겹친다. (“넌 왜 나한테만 그렇게 의문문을 남발하냐?”) 가장 가까운 사이인 남편이 죽었음에도 좀처럼 슬퍼하지 않는 서래가 이상하다며 내쏠 때 이에 같은 말로 그녀를 변호한다는 점에서 드러나듯이 해준은 사실상 같은 일을 두 번 겪는 셈인 것이다. (“슬픔이 파도처럼 덮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는 거야.”) 1부의 마지막 부분에서 해준은 서래가 자신과 같은 소파에 앉자 바로 자리를 떠 다른 의자로 몸을 옮기는데, 이는 2부 중 정안과의 관계에서 역할이 역전된 채 고스란히 반복되는 대목과 동일하고, 또 그녀는 이내 해준이 서래와의 관계에서 은밀히 바라왔듯 이 주임(유태오)과 함께 그를 떠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해준은 이포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서래와 그의 남편 임호신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곤 곧바로 13개월 전 부산에서의 일을 떠올린다. 그는 이미 한 번 남편이 죽은 여인의 사건을 맡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다시 비슷한 사건의 용의자가 된 서래와 마주한 해준은 또다시 부산에서의 그때처럼 그녀를 취조한다.

가만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의 사랑 관계는 수사 관계와 밀접히 연관을 맺고 있었다. 두 사람이 부산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순간만 해도 그렇다. 남자는 여자를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생각했기에 직접 경찰서로 불러내어 취조했다. 그곳에서 남자는 여자에게 음식을 주고 사진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듣는다. 그런데 이건 사실상 부산에서의 데이트 장면과 그대로 겹친다. 해준은 서래에게 중화 볶음밥을 만들어 주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데, 이 영화 속 음성 녹음 파일들은 사건의 모습들을 포착해 내는 방법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사진과 같다. (기도수의 시체를 처음 발견했을 때 수완은 사진을 찍지만 해준은 음성 녹음을 한다.)

그리고 사랑이 끝나는 순간은 항상 사건이 해결되는 순간과 마주 보고 있다. <헤어질 결심>은 1부와 2부에서 주요하게 두 가지 사건이 해결되는데, 이때 서래와 해준의 사랑 역시 두 번 와해된다. 부산에서 해준이 서래와의 사랑을 끝내기로 결심한 순간은 그가 구소산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 후 기도수 낙사 사건을 해결했을 때였다. 흔적을 좇으며 그 산을 오른 끝에 서래가 사건의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해준이 서래와의 ‘헤어질 결심’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포에서 역시 임호산 살인사건의 진범이 사철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수사를 빙자한 그 사랑의 관계는 다시 끝이 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헤어질 결심>에서 사랑의 전제 조건은 사건의 지속성이다. 사건이 해결되는 순간 사랑 역시 풀리고, 사건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사랑 역시 온전하다. 부산에서 그랬듯 이포에서 역시 그렇다.

그런데 여기엔 사건이 하나 더 있었다. 그건 바로 질곡동 사건이다. 해준은 사건의 용의자를 둘로 확신하고 그중 하나인 이지구는 부산에서 체포하기까지 하지만 진짜 범인 홍산오에 대해선 좀처럼 진전이 없다. 이때 사건의 범인을 확신하고도 해결하지 못하는 형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단서를 연거푸 보아 내는 일뿐이기에 해준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미결 사건들의 사진을 내내 뚫어져라 쳐다본다. 틈만 나면 사진을 들여다보는 탓에 해준은 이제 홍산오의 전 여자친구 10명을 모두 인터뷰하고 나니 그와 꽤 친해진 기분이 든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해준은 분명 산오가 아니다.

몇 달 뒤 해준은 산오를 추격하다 막다른 길에 다다르자 서로 대면한다. 이때 해준은 산오를 안전하게 체포하기 위해 서로를 견주어 동일시하면서 그를 진정시킨다. 그러고 보니 둘은 서로 닮은 점이 꽤나 있어 보였다. 홍산오가 질곡동 사건의 피해자 범이를 살해한 이유는 그가 자신이 감옥에 가있는 동안 여자친구인 오가인에게 접근해 동거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해준도 “사실 나도 좋아하는 여자가 있거든. 근데 남편이 여자를 때려. 나 그 남편 새끼 죽이고 싶어 미치겠다.”라며 서래의 남편 기도수를 해하고 싶은 마음을 거칠게 드러낸다.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공감대를 형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은 끝내 범인의 체포로 마무리 지어지지 못한다. 그는 해준이 제압하려 다리에 총을 쏜 순간 목에 가위를 대어 자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산오는 서래에 더 가까워 보인다. 해준의 집에서 질곡동 사건의 사진을 본 서래는 홍산오의 과거 이력을 보고 난 뒤 이렇게 말한다. “한국에서는 좋아하는 사람이 결혼했다고 좋아하기를 중단합니까?”. 홍산오는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남자와 동거를 시작했음에도 그 마음을 접지 않았기 때문에 범이를 살해했다. 서래 또한 사랑하는 사람(해준)이 중학생 아들까지 있는 유부남임을 알았음에도 결코 사랑하는 마음을 중단하지 않았다. 또 두 사람은 각각 목에 가위를 대고, 이포의 깊은 바닷속에 몸을 던져 아무도 못 찾게 함으로써 자살로 사건을 마무리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산오의 자살로 온전히 종결된 듯 보이는 그 사건은 사실상 미결로 끝나는 셈이다. 해준은 산오를 범인으로 확신한 후 그 옥상에서 맞대면하기까지 하지만 결국 용의자가 자살로 목숨을 끊는 그 순간을 무력하게 보아 내야만 했다. (이지구를 추격한 후 똑같이 부산의 어느 건물 옥상에서 마주했을 때 해준은 어떻게 그 상황을 종결시켰는지 생각해 보라.)

서래와 해준의 모습을 각각 가지고 있는 산오는 그 자체로 두 인물 모두를 겹쳐 놓은 채 보게 하는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해준이 수사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똑바로 보는 것"이다. 그는 똑바로 보기 위해 눈에 안약을 넣고, 음성으로 녹음하며 미결 사건들의 사진을 본다. 그런데 이는 서래도 같다. 죽은 남편의 배우자이자 유력 용의자이기도 한 서래에게 남편 기도수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리기 위해 사진과 말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할 때, 서래는 처음엔 '말씀'이라고 말하다가 이내 선택을 바꾸어 '사진'을 택한다. ("서래 씨가 나하고 같은 종족이란 거, 진작에 알았어요.") 산이 아니라 바다의 사람이라며 공자의 말을 인용하며 말할 때 해준은 그에 공감하며 은밀히 속삭이기도 한다.

서래는 심각한 불면증으로 잠을 못 이루는 해준을 재우기 위해 직접 미국 해군에서 사용하는 방식을 변형하여 해준을 재운다. 그때 서래는 “내 숨에 당신 숨을 맞춰요”라고 한다. 왜 당신 숨에 나의 숨을 맞추는 대신 내 숨에 당신의 숨을 맞추는 것일까. 그건 서래가 해준만큼이나 주도적인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헤어질 결심>에선 서래에게 해준이 필요하듯 해준에게도 서래가 필요하다. 해준은 극심한 불면증을 앓고 있는데, 그걸 해결해 줄 단일한 사람은 서래이다. 서래 역시 기도수 살인사건의 용의를 손쉽게 벗고 사랑을 이어가려면 어쩔 수 없이 해준을 이용해야 하니 결국 그녀도 그가 필요한 셈이다. 그리고 그 사랑 관계 또한 상호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헤어질 결심>에선 사랑의 주체와 객체가 나누어져 있지 않다. 둘 모두 동등하게 사랑하고 아파하는 것이다. 자부심을 건 사람이 목숨을 건 사람보다 덜 사랑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가 그녀를 바라보면 그녀 역시 그를 본다.

서래는 이포에 왜 왔냐는 해준의 질문에 "당신을 만날 방법이 오로지 이것밖에 없는데 어떡해요"라면서 답한다. 사실 <헤어질 결심>은 극의 많은 요소들이 안갯 속에 감춰진 듯 모호해 진심을 짚기 어렵지만 동시에 극의 맥을 찌르는 여러 요소 또한 풍부하게 내포되어 있는 영화다. (서래의 옷 색깔에서 소통의 단절, 안개의 모티브까지 모두 그렇다.) 그중 두드러지는 것은 극중극 드라마의 사용이다. 서래는 한국 드라마를 보는 습관이 있다. 주로 아이스크림으로 저녁을 먹은 후 TV를 켜놓은 채 그 앞에서 불편하게 자는 그녀는 부산에서 사극 '흰 꽃'과 이포에서 현대 재난극 '적색비상'을 본다. 또한 한국말이 서투른 서래는 드라마 속 대사를 보며 그대로 따라 하기도 하는데, 그건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거짓 증언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부산에서 서래는 사망한 기도수 손톱 속에서 발견된 자신의 DNA에 대해 산에 가자고 하는 남편에게 강한 거부 의사를 드러내기 위해 자해를 하던 중 이를 말리려는 기도수와 몸싸움을 한 끝에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게 됐다고 답하면서 "독한 것"이라 폭언했다는 사실까지 증언한다. 그 증언은 부분적으로는 맞다. 서래가 기도수와 결혼하게 된 것은 그녀가 불법 밀입국자로 한국에 들어온 혐의에 대한 재판 끝에 패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녀는 공자 말씀처럼 '지혜로운 사람'으로 본질적으로 산보다 바다를 더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결국 거짓 증언이다. 기도수 손톱 속 서래의 DNA는 지독한 가정폭력의 결과가 아니라 결정적으로 그를 구소산에서 밀어트려 살해할 당시의 몸싸움 도중 긁힌 흔적이었다. "독한 것"이라는 말 또한 '흰 꽃'에서 주인공이 내뱉은 대사를 그대로 옮겨 말한 것으로 사실이 아니다.

사실 애초에 그녀는 바다의 사람 자체도 아니었다. 서래가 하필 다른 나라도 아닌 한국으로 밀입국해 오게 된 것은 시한부로 고통스러워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펜타닐 캡슐 4알을 이용해 조용히 살해한 후 중국 정부로부터 쫓기게 된 그녀의 상황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죽기 전 외조부인 조선 만주 독립군의 계봉석의 산인 호미산을 찾아 한국에 가라고 말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근본적으로 서래는 인자한 대신 지혜로운 사람일지는 몰라도 족보를 타고 올라가면 결국 산과 맞닿아 있는 산의 사람에 더 가까운 것이다.

이포에서 증언할 때도 서래는 "그 남편은 자살이고 이 남편은 타살"이라고 딱 잘라 말하지만 그 역시 사실이 아니다. 임호신 사망의 배후엔 사철성이 있지만 사철성의 뒤엔 서래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건 동시에 부분적으로 사실이기도 하다. 서래가 판을 짰을 뿐 실질적으로 임호신을 살해한 것 철성이 맞다. 그러니까 진실과 거짓이 혼재되어 섞여있는 두 번의 증언은 결과적으로 사실을 내포하고 있지만 결코 진실이 될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이 경찰서에서 이루어진 증언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서래에겐 해준과의 사랑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살인 용의를 두 차례 벗어나는 것도 중요했을 것이다. 만약 서래 자신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되어 다시 중국으로 반환되거나 하게 된다면 사형에 처해 영영 해준을 다시 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증언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해준을 사랑하는 마음 자체가 거짓된 것은 아니다. 그 거짓말이 드라마 속의 대사를 빌려온 방식이었다고 해도 여전히 그렇다.

그러나 거짓 증언으로 살인 용의를 벗어났을 때는 이미 사랑이 와해되고 난 후였다. 서래가 혐의를 벗기 위해 (마음이 어쨌든) 자신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해준이 자신이 붕괴됐다는 사실을 알리고 그녀를 떠나갔기 때문이다. 붕괴되고 남겨진 감정의 폐허 속에서 서래는 홀로 남겨진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녀의 손엔 아직 사건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증거인 핸드폰이 들려 있다. 그렇게 서래는 사랑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사건을 다시 시작한다.

이포에서 다시 마주친 후 해준은 "왜 이곳에 왔느냐"라는 문제를 집요하게 묻지만 사실 그것은 핵심과 멀찍이 떨어져 있는 질문이다. 때문에 이포에 왔다는 사실보다는 그 속에 담긴 마음의 심리적인 진실이 더 중요한 서래는 자꾸 잘못된 질문으로 엇나가려 하는 남자에게 계속해서 되묻는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이때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하는 대사 또한 드라마의 것이지만, 바뀐 게 있다면 서래와 해준을 제외한 모든 것일 테다. 우선 2부의 무대가 되는 도시는 이포로 부산과 다르다. 해준은 이포에 와서 살인사건과 같은 흉악범죄가 일어나지 않기에 운동화와 스마트워치 대신에 구두와 고전적인 시계를 차는데, 서래의 남편 또한 이제 기도수가 아니라 임호신이며 죽은 사람 역시 그렇다. 그리고 두 차례 살인 사건의 전말과 해결되는 양상 또한 전혀 달라 보인다.

또한 부산에서와 다르게 이포에서 두 사람은 모두 시들어 가고 있었다. 애초에 해준이 부산을 떠나 정안이 있는 이포에 정착한 것은 구소산과 질곡동 사건을 연달아 겪은 후에 우울증이 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서래를 잊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 과정은 좀처럼 진전이 없다. 우울증과 함께 불면증이 심하게 도진 탓에 해준은 수면 클리닉에 가서 상담을 받은 끝에 일광욕을 하라는 결론을 받지만, 이포는 안개가 자주 끼어 해가 잘 드러나지 않는 곳이기 때문에 일광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안은 부부 사이 행복에 관한 질문을 연거푸 하고 해준은 이에 그렇다고 답하지만 사실 그는 행복하지 않다. 정안의 말에 의하면 해준은 “당신은 살인이랑 폭력도 함께 있어야 행복”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서래가 시들어 가고 있는 까닭은 해준과의 사랑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래는 기도수와의 관계와 전혀 달라 보이는 임호신과의 관계를 이포에서 이어가고 있지만 사실 그 내용은 재판에서 패배한 까닭에 한국에 남아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던 전자의 상황과 비슷하다. 더구나 이 영화 속 남자들은 해준을 제외하면 모두 여자에게 폭력을 저지르거나 친절하게 대하지 않는다. 기도수나 임호신, 사철성은 말할 필요도 없고, 수완 역시 “나랑 같이 일하려면 폭력 쓰면 안 된다고 했지?”라는 대사 말마따나 폭력 경찰로 묘사된다. 그러니까 서래가 “친절하고 예의 바르며 품위 있는” 형사 해준을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준은 부산에서 서래와의 일 이후 완전히 ‘붕괴’ 되었다. 경찰로서의 그의 자부심이 구소산 사건 속에서 완전히 짓밟혀 망가졌기 때문이다. 품위는 곧 자부심에서 나온다고 믿는 해준은 여자에 미쳐 수사를 망친 자신을 질책하며 떠나가지만 그러면서도 끝내 자신과 비슷하게 몸이 꼿꼿해서 위엄이 있는 서래의 품위는 지켜주기 위해 증거를 인멸하라고 지시한다. 그로 인해 서래는 구소산 사건을 자살로 마무리지을 수 있었지만 좀처럼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서래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자부심이 무너져 붕괴되어 버린 그 남자의 품위를 다시 살리기 위해서라면 품위를 무너트리려 하는 적들을 제거해야 할 것이다. 서래가 임호신을 죽인 이유 또한 그것이다. 임호신은 서래와 해준의 대화가 담긴 녹음 파일을 가진 채 유포하겠다며 협박을 한 상태에서 정안에게 전화로 연락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이제 서래에겐 더 이상 돌아갈 길이 없다. 부산에서의 일을 반복하지 않고 해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손에 피를 묻혀야 한다. 설사 그것이 아무 죄 없는 철성의 어머니를 독살하는 방식일지라도.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래는 이포에서 이루어야 할 과업이 있다. 외조부인 조선 만주 해방군 소속 계봉석의 유골을 호미산에서 뿌리는 것이 그것이다. 두 사람은 402일 만에 그 산에서 다시 만난다. 이때 관객은 비슷한 장면을 이미 본 적이 있다. 1부의 종반부에서 다뤄졌던 구소산과 관련한 일련의 사건들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구소산에서 서래가 기도수를 밀어트려 자살로 위장하여 살해한 것과 다르게 호미산에서 서래는 해준을 감싸 안는다. 또 거칠었던 그 손은 어느샌가 다시 부드러워져 있다. 곧 서래는 익숙한 듯 해준의 코트에서 립밤을 꺼내어 입술에 바르고 키스한다. 마치 부산에서의 모습이 다시 반복 리플레이 되듯이, 그 마음만은 끝내 변치 않았다.

그 사랑 역시 아직 끝나지 않았다. 만약 이포에서의 사건이 이대로 마무리된다면 그 사건의 끝은 부산에서의 그것과 동일하게 사랑의 마지막 순간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서래는 이미 사랑의 실패를 한 번 겪은 적 있기에 이번 사건을 이대로 종결짓게 놔두어서는 안 된다. 영원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선 사건이 계속 이어져야 하고, 해준의 방에 자신의 사진을 걸어둔 채 “오로지 내 생각만 하게” 하기 위해선 사건이 미결로 남아야 한다.

이제 서래는 결심을 하고 이포의 바닷속에 웅덩이를 파고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부산에서도 서래는 파란색으로도 보였다가 초록색으로도 보이는 그 청록색 바구니를 한 번 사용한 적 있었다. 바로 주기적으로 밥을 주는 고양이가 보답의 의미로 까마귀를 잡아오자 죽은 까마귀를 묻어주기 위해 아파트 정원에서 땅을 팔 때 사용하는데, 그 까마귀의 깃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해준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그땐 까마귀를 묻으며 동시에 해준을 묻는 셈이다. 하지만 이제 서래는 깊은 바닷속에 해준 대신 자신을 묻는다.) 뒤늦게 도착한 해준은 위치 추적 앱으로 서래의 위치를 파악하고 이름을 애타게 불러보고, 부산에서의 그때처럼 명확히 보기 위해 안약을 넣어 보지만 이제 그것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서래는 이미 그곳에 없다.

대신 해준은 사건 현장에서 했던 행동처럼 서래의 흔적을 찾고 단서를 본다. 1부에서 수완에게 “우리는 형사이니 범인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라고 말했던 해준은 2부에 이르러서 서래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는다. 그러나 이포는 부산과 다르기에 이곳에선 그러한 행동 또한 아무런 효과가 없다. 오랜 세월 파도에 부딪혀 풍파 된 돌 절벽의 모습과 서래가 뒤로 쌓아둔 모래더미의 모습이 마치 산의 형상을 이루는 동시에 바다 파도의 힘이 그것을 짓누르고 무너트리는 인서트가 연속으로 삽입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헤어질 결심>의 엔딩에 이르러서 2부는 1부를 잡아먹고 이포는 부산을 전복시키며 서래의 사랑은 해준의 사랑을 마침내 압도한다. 그러니 이제 해준은 자신의 미결 사건을 찾아 그 바다를 한참 동안 헤맬 것이다. 점차 날이 어두워지고 있으니 좀처럼 쉽진 않을 것이다. 이포는 부산과 달리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이니 더욱 그럴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