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

<너와 나>(2023), 조현철

by Yul

조현철 감독의 놀라운 데뷔작 <너와 나>엔 십 대 특유의 활력과 치기 어린 모습을 생생하게 체화해 낸 배우들의 역량이 시종 두드러져 보인다. 그동안 작고 단단하게 이어져 왔던 배우로서 조현철의 성취는 자신의 감독 데뷔작에서 역시 과감 없이 발휘되었다. 그러나 놀라울 정도로 빛나는 생의 활력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눈물 일렁이는 채로 바라본 세상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이건 결국 모두의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남기는 영화다.

세미(박혜수)는 같은 반 친구 하은(김시은)에 대한 불길한 꿈을 꾸고 난 후 불안감에 단숨에 달려간다. 자전거 사고로 다리를 다친 탓에 병원에 입원해 있던 하은에게 세미는 내일 있을 수학여행에 함께 가줄 것을 제안한다. 미처 수학여행 비용을 준비하지 못한 하은은 급하게 캠코더를 팔아 돈을 마련하기로 한다. 한편 세미는 하은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고백하려 한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정보가 가려지는 까닭은 미스터리를 이야기의 주요 동력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과 인물 간의 정보 격차다. 한쪽이 모르고 다른 한쪽이 아는 정보의 격차가 그려질 때, 모르는 자는 아는 자에게 필사적으로 의지한다. 그렇다면 결국 이런 질문이 강력하게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누가 알고 누가 모르는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가. 관객은 궁금하다. 세미가 꾸어 낸 그 꿈결의 이야기는 대체 무엇이었길래.

그러나 <너와 나>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직접 꿈을 꾸어 낸 화자인 세미 자신조차 그 꿈의 내용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세미는 그 꿈에 대해 하은에게 설명할 때 “내용은 잘 기억 안 나는데 너가 죽어 있었던 것 같아”라고 말한다. ‘~것 같다’라는 말은 ‘~이다’와 같은 말이 아니다. 후자는 자신이 본 것에 대해 확신을 가진 채 상에 뚜렷하게 맺히는 선명한 말인 반면에, 전자는 무엇을 봤는지도 잘 모르는 상태로 흐릿하게 걸리는 어렴풋한 말이다. 또한 모르는 것은 비단 인물뿐만이 아니다. <너와 나>는 그 꿈의 내용이 무엇인지 관객 역시 특정 지점까지 알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숨겨둔 채 진행된다. 이건 결국 그 꿈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할 때 비로소 매듭이 풀리는 종류의 영화일 것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동력은 단연 미스터리이지만, 보는 동안에도 영화 안의 그들과 영화 밖의 우리는 그것마저 정확히 정확히 무슨 종류의 것인지 특정하기 힘들다. 그건 이 영화 속 주요하게 작용하는 미스터리가 각각 다른 모양의 플롯에 녹아들어있기 때문이지만, 더 중요하게는 그 모든 미스터리들이 겹겹이 중첩되어 서로 떼어 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성장 영화에서 핵심적으로 작용하는 깨달음은 아마도 ‘나 자신을 아는 것’ 일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을 아는 것은 내가 아닌 타인을 먼저 이해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성장의 과정에서 나 자신에 대한 이해보다도 앞서 선취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타인에 대한 이해다. <너와 나>는 여러 단계의 복층적 플롯을 서로 적절히 배합하는 데 있어 구조 전체를 보는 넓은 시선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 속을 채우는 하나하나의 작은 사건들을 엮어나가는 데 있어 매우 섬세한 작법을 가진 작품이기도 하다. 이때 성장과 사랑을 다루는 이 영화의 여러 사건들은 서로 아스라이 겹치도록 설계되어 있다.

<너와 나>가 가지는 첫 번째 미스터리는 성장 영화적인 플롯에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처음에 이 영화는 전형적인 성장 영화의 외형을 한 학원물처럼 보인다. 두 또래 친구가 주인공이고 이 사이엔 정보의 격차가 있다. 두 인물은 서로 같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비껴가면서 안타까운 순간들을 자아내는데, 아직 ‘너와 나’의 관계에서 미숙한 인물들은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상처를 주고 돌아선다. 거기에 우정 관계에서의 가장 큰 라이벌인 다애(오우리)까지 합세한다면 더욱이 적절할 수 없을 것이다.

성장 영화로써 극 중 세미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미스터리는 수첩에서 발견한 ‘훔바바’의 존재와 계속해서 걸려오는 전화번호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다. 세미는 하은의 수첩 속 ‘훔바바한테 키스하고 싶다’라는 글귀와 하은의 휴대폰에 지속적으로 걸려오는 전화번호 2480을 본 뒤부터 그에 대해 강력한 의문을 갖는다. 그런데 그 질문의 핵심은 훔바바와 전화번호의 주인 각각이기도 하지만 결국 그 둘 간의 관계였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세미가 전화번호의 남자(박정민)를 직접 대면하고도 묻는 것은 의문 자체의 해결보다는 두 미스터리 간의 연관성에 관한 것이었다. (“아저씨가 훔바바예요?”) 그러니까 세미에게 중요한 것은 그 전화가 어디서 걸려오는 것인지에 대한 대답이 아니다. 세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수첩 속 훔바바가 누구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훔바바라는 닉네임이 더 중요한 이유는 이 영화의 두 번째 미스터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너와 나>의 두 번째 미스터리는 사랑 영화의 플롯에 있다. 영화의 특정 부분에 가면 명확히 알 수 있듯, 이건 결국 두 연인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두 인물이 끝내 하나가 되기 위해 안간힘 하는 사랑 영화에서는 상대의 마음을 아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사랑은 성장과 같이 결국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 미숙한 연인들은 그에 대해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이 핵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에 대해 절실하게 질문하고 또 질문한다.

그렇기에 세미의 결정적 질문은 익명의 존재인 훔바바에 자신이 이름이 병치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물음이 될 수밖에 없다. 세미의 사랑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세미의 마음속에 하은이 있듯 하은의 마음속 역시 세미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이에선 덜 사랑하는 사람이 권력자라지만, 세미에게 연인 관계만큼이나 동등하게 중요한 것은 상호적인 친구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은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미는 좀처럼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하는데, 아마 그 이유는 질문을 하는 자세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세미가 훔바바에 대해 유난히 집요하게 질문한다는 것은 하은의 마음을 헤아려보고 싶어한다는 감정을 내포하지만 동시에 하은이 고통을 느끼는 것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더구나 훔바바에 관련된 세미의 가장 큰 의문 속에선 그 익명의 이름 속에 자신이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하은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보다 더 커 보인다. 극 중 세미는 자신의 모습을 정면에서 다시 마주하기 전까진 이기적이라는 말로 정리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니 제대로 된 답을 얻기 위해선 먼저 그에 앞서 맞는 질문을 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의문을 가져야 할 것은 훔바바라는 닉네임이 아니라 휴대전화 전화번호 뒤 괄호 쳐진 누군가의 존재여야 한다. 정말로 궁금함을 갖고 다가가야 할 것은 자신이 아닌 상대의 마음 자체여야 한다. 이전까지 세미는 관계에서 항상 먼저 일어서서 떠나갔고, 하은은 그런 세미를 뒤쫓아가 잡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종반부 서로의 마음을 헤아린 후 걸어가는 밤길에서는 세미가 거꾸로 앞서 걸어가는 하은에게 그렇게 한다. 마침내 상대를 향하는 두 질문의 방향이 올바르게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서로의 마음을 똑바로 응시한다.

성장 영화와 사랑 영화의 측면에서 이 영화를 본다면 그 감정적 클라이맥스는 단연 종반부 밤길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장면일 것이다. 카메라는 걸어가는 두 인물을 멀리서 잡은 풀 샷에서 감정이 고조될수록 점점 좁혀 들어오는 클로즈업으로 바뀌면서 감정의 흐름을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플래시백의 연출적 효과를 통해 그 꿈의 내용을 하나하나 읊어갈 때 관객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긴 감정적 여파에 몸을 맡길지도 모른다.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알아챈 두 인물이 뜨겁게 포옹할 때, 그 사랑은 이제 봉우리에 올라서는 것만 같다. 그런데 왜인지 슬픈 감정이 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건 아직 이 영화의 세 번째 미스터리가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너와 나>를 보다 보면 관객은 어쩔 수 없이 불길한 예감에 처연해진다. 결국 시공간적 배경부터 인물의 설정까지, 아직 모두의 마음 속에 상흔이 되어 남아 있는 2014년 4월 어느 날의 기억이 자연스레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세미의 꿈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도 몰라볼 정도로 희미했던 그 아픈 기억은 기어이 또렷하게 눈에 맺힌다. 그 불길했던 꿈은 다가올 미래를 앞서 미리 바라본 일종의 예지몽이었던 셈이다.

그러니까 관객이 사랑의 봉우리에 오른 채 기뻐하는 연인의 모습을 보면서도 슬픈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바로 그때 가장 낮은 골짜기의 모습까지 동시에 마주하게 되기 때문인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그 순간 두 사람의 사랑을 이루기 위한 전제 조건이 꿈의 내용을 아는 것임을 또한 깨닫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 이 영화의 한글 제목이 ‘너와 나’인 것에 비해 영어 제목은 ‘The Dream Songs’(꿈의 노래)인 것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일반적으로 수출될 때 사용되는 영어 제목에 작품의 핵심을 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생각 해 보면,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그 이유가 타당해 보인다. 그건 이 영화 속 감정적으로 가장 밀도가 높은 두 장면이 모두 꿈(Dream)과 노래(Song)에 연관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글 제목은 대체 왜 ‘너와 나’인 것일까.

그건 아마도 주인공 세미와 하은만을 나타내기보다는, 이 영화 속 모든 이분법 관계를 드러내는 제목이기 때문이 아닐까. <너와 나> 속엔 서로 섞일 수 없어 보이는 많은 대립항들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 영화 속엔 주인을 잃어버린 개 진식이를 포함해 총 세 종류의 반려동물이 나오는데, 그들은 모두 주인이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극 중 세미와 하은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과 우정이라는 두 가치로 보이는데, 그건 사회적인 기준에서 일반적으로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가치이다. (영화 속 두 인물의 사랑이 동성애인 이유는 이러한 설정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미가 꾼 꿈은 그 내용을 안 후에도 현실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혹은 그렇게 암시된다는) 점에서 꿈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확실히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때 성립되는 것은 반려동물과 주인과의 관계, 사랑과 우정의 관계, 꿈과 현실의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전자와 후자가 같은 것이 아니듯, 둘은 서로 섞일 수 없고 겹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너와 나>는 그 문턱을 문질러 없애면서 그 사이의 가능성을 지켜보는 영화다. 세미와 하은은 길 잃은 개 진식이를 찾아 주인에게 되돌려주고 나서 그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에게는 반려동물이 사람과도 같은 가치를 갖는다는 것. 둘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에 상관없이 동등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었다.

그건 물론 세미와 하은의 관계를 내포하기도 하지만 그때 겹쳐지는 것은 그들이 각각 기르고 있는(혹은 길렀던) 반려동물과의 관계이기도 하다. 하은은 제리라는 이름의 반려견을 길렀던 적이 있는데, 최근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경험을 통해 그 슬픔을 잘 알고 있기에 금세 이입한다. 세미 역시 반려 앵무새와 자신, 또는 자신과 하은의 관계를 그에 어렵지 않게 겹쳐낸다. 그러니까 이때 하나가 되는 것은 서로 섞일 수 없어 보이는 나와 타인과 동물의 관계, 다시 말해 ‘너와 나’의 이분법이다. (애초에 진식이라는 이름도 이를 발견한 하은이 임의로 지어준 이름일 뿐 원래 이름은 ‘똘똘이’었다. 이 이름은 이 영화 속 반려견을 기르는 또 다른 인물 똘이아범(박정민)의 반려견 ‘똘이’를 연상시키기게 하기도 한다.)

결국 이 영화 속 ‘너와 나’의 관계는 ‘But’의 역접이 아니라 ‘And’의 순접인 셈이다. <너와 나>에선 모든 두 가지 관계가, 반려동물과 주인이, 사랑과 우정이, 세미와 하은이, 꿈과 현실이, 기쁨과 슬픔이, 앞서가는 자와 뒤따라가는 자가, 그리고 애도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마치 한 가지를 말하면 두 가지 이상으로 다가오는 동음의의어처럼 작동한다. 이 영화의 넘치는 광량은 마치 그 자체로 모든 ‘너와 나’의 관계를 ‘우리’로서 축복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미는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반려 앵무새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가르친다. 그러나 영화는 앵무새가 세미에게 다시 사랑한다는 말을 전달하는 모습을 끝내 보여주지 않는 채 구두점을 찍는다. 말하자면 그때 관객은 바로 그 앵무새의 자리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너와 나>가 마지막으로 겹쳐 보이는 것은 영화와 관객의 사이의 관계다. 그렇게 세미의 바람대로 그 간절한 한 마디를 속삭이게 될 때, 당신은 어쩌면 화면 밖으로부터 메아리쳐 되돌아온 간절한 염원에 죽은 자가 다시 눈뜨게 되는 기적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