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제주도에 여행 가실 때 주로 어디서 묵으시나요? 화려한 리조트와 호텔도 좋은 선택지일테지만, 요즘은 한적한 해변도로 가운데 독채 숙소들이 인기죠. 그 독채 돌담집들 중 몇몇은 사실 버려지고 방치된 옛날 빈집들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 빈집들을 아름다운 고급 독채 한옥 펜션으로 변신시켜주는 것이 바로 빈집 재생 스타트업 ‘다자요’가 하는 일입니다.
다자요의 사업 모델은 다음과 같아요. 집주인에게 빈집을 무상으로 빌려서 실내 인테리어 공사를 무료로 해주고, 다자요가 10년 동안 숙박업소로 영업을 하며 수익을 창출한 뒤 집을 돌려주는 방식입니다. 다자요를 창업한 남성준 대표는 빈집이 늘어나면 점점 죽은 마을이 된다며, “빈집은 보통 철거의 대상으로 보지만, 다자요는 ‘자원’으로 봤습니다.”라고 다자요의 취지를 밝히기도 했어요.
다자요의 빈집 재생 사업은 일반인 투자자들 뿐만 아니라, 기관투자자들로부터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답니다. 한국벤처투자,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로부터 공사대금을 투자 받았을 뿐만 아니라 빈집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던 여러 지방자치단체들도 협력 문의로 줄을 서고 있어요. 이에 더해 한국관광공사의 관광벤처사업 공모전에서도 수상하고, 삼성 C-lab, IBK 창공 등 민간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에서 선정되면서 다자요는 그렇게 빈집 문제 해결의 선두주자로 달려나가는듯 했어요. 그런데…
다자요의 두 번째 숙소인 봉성리 돌담집을 오픈하려던 2019년 6월, 다자요가 현행법을 어겼다는 민원이 접수되면서 모든 영업이 중단됐어요. 빈집 재생 스타트업이 현행법을 어겼다니, 이게 무슨 말이죠?
우선 관련 법령부터 살펴볼게요.
농어촌정비법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라. 농어촌민박사업: 농어촌지역 또는 준농어촌지역의 주민이 소유 및 거주하고 있는 주택을 이용하여 농어촌 소득을 늘릴 목적으로 투숙객에게 숙박ㆍ취사시설ㆍ조식 등을 제공하는 사업
제86조(농어촌민박사업자의 신고) ② 농어촌민박사업을 경영하려는 자는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신설 2020. 2. 11.>
1. 농어촌지역 또는 준농어촌지역의 주민일 것
2. 농어촌지역 또는 준농어촌지역의 관할 시ㆍ군ㆍ구에 6개월 이상 계속하여 거주하고 있을 것(농어촌민박사업에 이용되고 있는 주택을 상속받은 자는 제외한다)
3. 신고자가 거주하는 「건축법」 제2조제2항제1호에 따른 단독주택(같은 법 시행령 별표 1에 따른 단독주택과 다가구주택을 말한다. 이하 같다)
4. 신고자가 직접 소유하고 있는 단독주택
농어촌 지역에서의 민박업을 규정하고 있는 ‘농어촌정비법’이 바로 다자요의 사업을 가로막은 법령인데요. 농어촌정비법 제2조에 따르면 농어촌민박사업은 지역 주민이 직접 소유 및 거주하고 있는 집이어야 사업이 가능해요. 제86조에서도 농어촌민박사업의 신고 요건을 규정하면서 실거주자만 농어촌민박사업을 할 수 있다는 제한을 걸어두고 있죠. 하지만 다자요는 ‘소유자는 있지만 실거주자는 없는’ 빈집을 고쳐서 민박업을 운영하는 사업모델이기 때문에, 현행 농어촌정비법을 위반하게 돼요.
농어촌정비법을 포함한 현행 법령 및 지침 중에는 ‘법인’이 빈집을 활용해 농어촌 지역에서 숙박업을 할 수 있도록 한 법령 자체가 없는 상황이에요. 이런 법적 공백에 대응하여, 빈집의 소유주가 농어촌민박업을 등록하고 다자요가 이를 중개위탁하는 형태로 사업을 진행해 왔지만 농어촌민박업을 하기 위해서는 ‘소유주’뿐만 아니라 ‘거주자’도 필요하다는 또다른 벽에 부딪힌 거죠.
다자요와 동일한 사업모델이지만, 승승장구하고 있는 국내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바로 일본에 진출해 2019년 1·4분기 매출 10억원을 기록한 ‘H2O호스피탈리티’인데요. H2O 역시 빈집의 관리, 운영을 소유주로부터 위탁받은 뒤 이를 리모델링해 관광객에게 숙박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그렇다면 다자요와 H2O는 무엇이 달랐길래 이렇게 극명한 차이가 났을까요?
H2O 성공의 열쇠는 바로 일본에서 2018년에 제정된 ‘신민박법’이었다고 하네요. 일본에서는 빈집 문제가 정말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어서 관련 법들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신민박법은 집주인이 거주하지 않는 빈집 역시도 민박 운영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 전문 기업들이 나와서 전문적으로 운영을 대행해주는 것도 허용하고 있어 앞서 살펴본 우리나라의 농어촌정비법과는 사뭇 달라보이죠?
하지만 다자요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2020년 9월, 규제샌드박스의 일종인 기획재정부의 ‘한걸음모델’의 첫 사례로 선정되면서 사업을 제한적으로나마 재개할 수 있게 됐어요! 규제로 인해 사업을 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사업영역을 한시적으로 허용한 뒤, 결과를 살펴보자는 거죠.
현재 다자요는 1년에 300일, 다섯 개의 지자체에서, 최대 50채의 집으로 사업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것마저도 현행 법령이 개정되지 않으면 2년에 한 번씩 재연장해야 하지만, 농어촌 빈집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뿌듯해 마지않아요.
기획재정부의 ‘한걸음모델’은 선정된 스타트업이, 갈등을 맺고 있던 기존 사업자들과 ‘한걸음씩’ 양보하면서 갈등을 봉합하겠다는 취지를 갖고 있는 만큼, 다자요도 다양한 지역 연계 사업을 통해 지역 민박업자들과의 원활한 상생을 꿈꾸고 있습니다.
다자요를 힘들게 했던 농어촌정비법에서, 민박업에 실거주자가 필요하다는 조건은 왜 붙은 걸까요?
농어촌정비법에 규정되어 있는 농어촌 민박의 시작은 우루과이라운드 때였어요. 국제무역에 관한 협상을 할 때 농어민들의 반대가 심해서, 농어민들에게 본업 외에도 부수적인 수입원을 창출해주자는 것이 첫 목적이었죠. 그래서 실제로 살고 있는 농어민이 아니면 민박을 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게 된 거랍니다.
하지만 이 농어촌민박업 규정은 만들어진 지 20년도 더 되었다고 해요. 농어민들이 많이 떠나면서 빈집이 넘쳐나게 된 현재 농어촌 현실과는 괴리가 너무 큰 거죠.
‘규제’는 스타트업의 ‘적’이 아닙니다. 신산업이 등장하고, 새로운 사업 모델의 스타트업들이 잘 자리잡고 성장하려면 올바른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해요. 하지만 그 가이드라인이 너무 낡았거나,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게 되면 건강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없어요. 우리나라도 규제가 사회의 발전에 발 맞추어 변화할 수 있게, 그리고 규제의 부재로 신사업이 가로막히는 법적 공백이 생기지 않게 늘 살펴보는 ‘규제 민감성’이 필요한 것 같네요. “아니 이런 것도 못하게 해?”와 “이런 것까지 풀어줘야 해?”의 대립 구도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보아요.
SHERPA in Yonsei
김영주(5기)
sherpa@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