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꾼은 사람의 마음을 살해한다.
#. 사기를 당한다는 건 돈을 잃고 마음을 자살시키는 것과 같다.
항상 분주하고 무거운 사실들에 가벼운 한숨과 깊은 생각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녀의 눈빛은 매우 거칠고 황망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놓을 수 없기에 간절함도 가득하다. 사기를 당한 것이다.
사무실에 들어온 그녀는 이런 느낌이다. 짙은 밤색 밍크를 걸치고 향수는 세지만 얼굴엔 핏기가 없어 거칠고 푸석푸석하며 두껍게 입힌 화장은 소나무 껍질에 뿌려놓은 밀가루처럼 들떠있어 집중해서 쳐다보기에도 민망하고 머리를 감을 집중력도 없어 그저 떡져 있다.
그러나 그녀의 의지는 그간의 자책으로 혼탁하지만 매우 강렬하다. 어떻게 하던 돈을 찾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당한 무시와 멸시감으로부터 명예도 한 번에 되찾고 싶은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말은 두서가 없고 오직 ‘도와달라’ ‘돈을 찾아달라’ ‘나는 진짜 선하게 살았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느냐’라는 말들을 다른 표현으로 반복한다.
그렇다. 사기를 당한다는 것은 그냥 빼앗기거나 잃어버리거나 어쩔 수 없이 돈을 주는 것과는 당하는 마음의 강도와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바보같이 속아서 “잘 부탁합니다, 돈 좀 꼭 불려주세요" 이런 류의 간절함을 담아 내 손으로 직접 준 것, 이 포인트가 사람을 미치게 하고 이내 자다가도 먹다가도 웃다가도 걷다가도 특히 화장실 거울을 마주 할 때도 울화통이 확 치밀어 올라 신물이 넘어 올 지경이다 화병이 난 것이다.
스스로 내린 순간의 결정이 나의 전 재산을 날렸다는 자책감과 현실적인 빈곤감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결국에는 마음을 자살시킨다.
#. 수사관은 어떤 마음일까.
재산과 마음을 잃은 사기 피해자를 만나는 수사관은 본능적으로 반응을 하기 시작하고 그의 동태를 살펴 피해 정도와 과정을 스캔한다. 수사는 사기당할 당시의 상황 재현이 우선이다. 일단은 불안이 가득한 시선과 말투를 품어대는 피해자들을 잠재우기 위해 말투를 최대한 드라이하게 하고, 시선은 그의 눈빛의 변화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그러나 서두르지 않는다.
사실 수사관들은 이미 알고 있다. 제출한 고소장과 각종 증거물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성향과 감정이 상당 부분 파악되고, 감정보다는 당시의 상황을 맥락에 맞게 듣고 육하원칙에 맞게 정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집중력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수사관들은 항상 피해자들의 서두를 최대한 줄이는 작업을 시도한다. 아주 정교한 심리전의 서막이다. 첫 만남의 순간에서 스치는 눈빛, 어투, 분위기에서 일단 기선을 잡아야 최대한 빨리 본론에 들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기선을 놓친다면 피해자의 눈물 콧물로 믹싱 된 전 인생사를 모두 들어야 하고 가진 화장지 한통을 다 쓴다. 이런 서두를 마주하는 수사관은 바빠진다. 고소내용을 듣기는커녕 그간의 설움 섞인 하소연을 마구마구 쏟아내고 있어 사건의 쟁점이 흐려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사관들은 상당히 노련하다. 사무실 분위기와 물, 커피류를 재료 삼아 나는 당신의 아픔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음을 은연중에 알려주고 표현한다. 기선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 그렇게 피해자는 경찰서의 공기와 습도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수사관과의 첫 교감을 시작한다.
사실 사기를 당한 그녀의 목적은 돈 회수가 우선이고 무시당한 마음도 단번에 회복하고 싶은 것이다. 처벌은 그다음이다. 그러나 수사관은 완전히 역 상황이다. 처벌이 우선이다. 그렇게 다른 목적이 충돌하지만 속마음을 서로의 면전에 직접 띄워 놓치는 않는다.
수사가 시작되면서 관련된 사람들을 불러 묻고 추궁하며 재판을 할지 말지를 확인하고, 이내 사건의 진실과 마주한 수사관은 최종 결정을 한다. ‘혐의가 인정되어 송치’라는 결정, 죄가 있다는 말이다. 피해자들의 숙원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되면 가해자는 검사와 판사를 만나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죄를 스스로 재판하고 형량까지 정하기를 반복하면서 결국 피해자가 느꼈던 불안과 절망, 패배감을 고스란히 되찾아 온다. 그리고 나면 대부분은 행동을 한다 ”돈을 갚겠습니다, 시간을 좀 주세요”.... 회복의 시간이다.
매번 수사가 이러하면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사기 고소사건의 결말은 항상 희망차진 않다. 불송치인 경우가 그러하다. 재판을 받아야 할 정도의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 사기라고 보기 어려운 경우를 말한다. 이런 통보를 받은 그녀는 마음에 쌓인 고름을 짜고, 이젠 가해자를 넘어 수사관에게도 적개심을 드러낸다. 각종 이의신청과 진정을 통해 절규 같은 항변을 토해내고 다시 한번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피아 구분조차 희미해진다.
세상의 모든 분명해진 이익들은 내가 우선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잠시라도 외면한 대가치곤, 사기를 당한다는 것은 그 상처가 너무도 크고 깊다. 결국 마음을 자살시킬 정도이다.
우린 그런 상처를 듣고 어루만져 회복하게 해 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스스로 반문하며 또 다른 아픔을 듣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