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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팀장 Aug 06. 2024

검사의 '통닭 취식' 처분

검찰청 회의에 끼고 싶었던 경찰관


#. 한 번만 끼워주세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어디서나 한 해 동안 풍성했던 결과를 확인하고 이를 포상하거나 반성하는 계기로 삼는 회의들이 열린다. 서울 어느 지검에서도 12월 말에 수도권 검찰청 특수부 등 직원들을 상대로 그해에 최고의 사건을 했던 기업범죄 사건에 대한 발표와 소회를 갖는 시간이 있었다.


20년 전, 당시 나는 그 회의에서 다루는 기업범죄 수사 방식에 대해 절실하도록 관심이 많은 수사관이었다. 그때만 해도 경찰에서 기업범죄를 수사한 사례가 흔치 않았고, 그래서 더욱 검찰의 수사를 배우고 싶었다. 단지 경찰도 그런 정교한 수사를 할 수 있다는 열정 하나만으로 지검 총무과에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저는 00서 수사관입니다 기업범죄 수사를 좀 배우고 싶은데 특수부 회의가 공개된 것이라면  저도 좀 들어갈 수 있을까요? 정말 다른 뜻은 없습니다~". 간곡한 부탁이었다. 그러나 총무과 직원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며 가차 없이 거절했다. 예견되긴 했지만 막상 거절당하니 뭘 그리 대단한 내용이라고 단번에 거절할 일인가 하는 서운함과 그래도 반드시 듣겠다는 오기가 같이 올라왔다.     


그때부터 하루종일 그 생각만 했다. '회의장에 어떻게 들어가지..!?!?!?. 빈약한 관계지만 아는 검사들한테 부탁해 볼까, 아니면 남자답게 주최 측 부장검사에게 찾아가 수사 좀 가리켜 달라고 솔직히 말해볼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지만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묘안이 없었다. 그땐 다른 조직의 영업비밀을 쉽게 들으려는 욕심에 생각은 미숙했고 계획도 매력적이지 못했다.     


회의날이 밝았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방법이 없으니 이대로 그냥 아쉬워만 할 것인가? 아님 신분을 숨긴 채 몰래 들어가 핵심내용만 듣고 나올 것인가? 그런데 이런 각오가 앞서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후회할 거면 차라리 시도라도 해보자'. 그런 상투적인 생각이 나를 검찰청으로 가는 전철 안에 있게 하였다.               




# 의지를 강화시키는 마음


검찰청 1층에 도착하자 예상하지 못한 이상한 상황에서 힘을 얻게 되었다. 복도를 지나는 직원들이 하나같이 인사를 하고 아는 체를 하는 것이다 그들에겐 내가 검찰청 직원으로 보이고 그렇게 봄에 이상함이 없었다. 기분이 묘했다. 그간 수사 과정에 상의를 한다는 빌미로 검사들을 뻔질나게 찾아다녔던 그땐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아는 체'가 이번엔 나의 의지를 강화시키는 빌미로 작동하였다    


그렇게 회의실이 있는 층 복도에 이르러 참석자들 동태를 살폈다. 회의실은 50석 정도의 의자가 있었으나 지정석이 아닌 걸로 봐선 참석자들 관리가 느슨한 것 같았고, 참석도 검사뿐만 아니라 지검 수사관들도 다수가 포함되는 것 같았다. 출입은 회의장 뒷문만 사용하다 보니 사람들이 입구에 모여 안부와 농담을 주고받느라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을 틈타 입구를 태연히 지난 뒤 너무나도 당당하게 단상에서 3번째 줄 가운데 책상에 앉았다. 그런데 그 줄에 앉은 사람들이 대부분 나이가 있어 보였고 그들이 모두 나를 의식한 채 뭔가 갸웃했지만 이내 회의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관심이 흩어졌다.    

 

회의는 1, 2, 3부에 걸쳐 매우 알찼고 그렇게 알고 싶어 하던 것들을 쏙쏙 알려주었다. 정말이지 기업범죄 수사에 대한 희망이 보였고 뭔가 자신감도 마구마구 솟았다. 그렇게 회의가 막바지에 이르렀고 몰래 나갈 시간이 되었다.               




# 그런데 역시 검사들이었다. 들켰다!     


어느 한 여직원이 다가오더니 매우 정중하고 단호하게 묻는다. "저 어떻게 되시는지요? 누구신지요?" 몰래 들어온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그렇게 그녀를 따라 복도를 걸어가는 순간이 너무 길었고 온갖 죄명이 떠올랐다. '건조물 침입,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경범죄 처벌법....'  충분히 혐의가 인정될 수 있는 것들이다. 큰일 났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말이라도 해보자는 용기로 부장검사와 마주 앉았다.     


그는 나를 지긋히 내려다보며 내가 누구인지, 회의에 참석하게 된 동기와 목적, 종국의 의도를 차분하게 묻고, 되물었다. "부장님 먼저 혼란을 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실례를 하게 된 이유는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기업범죄 수사를 검찰이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수사의 경험과 성과에 대해 발표까지 한다고 하니, 같은 일(수사)을 하는 식구라고 강렬하게 믿고서 배우고 싶은 간절함 하나로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공개된 회의라면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     


답을 들은 부장검사는 한참 생각하더니, 끝내 어떻게 처벌할지 결정했다. 그러곤 회의장에 남아 있던 치킨 닭다리 하나를 내밀며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먹고 가세요".


그는 나에게 통닭 취식 처분을 내렸고, 처분을 받은 나는 그의 맘이 변하기 전에 손과 입을 바쁘게 놀려 재빠르게 닭다리를 해체한 뒤 검찰청을 뛰어나왔다.               




# 그날이 내게 준 선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격언이 있다. 나는 그날 스스로 최선을 다했음에 만족하고 동기의 정의로움이 나와 타인을 동시에 설득시켜 이내 주위를 밝게 할 수 있다는 있다는 걸 가슴 절절히 배울 수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평생 수사관의 길은 걷고 있는 나의 삶에 전반에 영향을 주어 자긍심과 자존감이 식지 않도록 열감을 내는 따뜻한 재료가 되었고, 이후 20년 동안 지금까지 기업범죄 수사를 매진하고 있다.




ps. ‘부장’이라는 직책,

알고 보니 그날 회의장 3번째 줄은 부장검사들 자리였고,

경찰 수사관중 경사 또한 직책을 부장이라 불렀으니

사실 나도 같은 줄에 앉을 자격이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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