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m 5시... 노곤한 오후. 전화벨이 울립니다. 번호를 살짝 보니 익숙한 숫자인 걸로 보아 최근 종결된 사건과 관계된 민원인이었습니다. 예상한 대로 거친 말을 쏟아냈고, 직무유기로 고소하겠다며 서문을 열었고 최소 30분의 통화시간이 예상되었습니다. 사실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수사관들에게 악성민원인은 떨쳐낼 수 없는 불가분적 관계입니다.
어떤 민원인은 '종말단계'까지 악성을 장착한 채 나타납니다. 비가 오면 전화하고, 기분이 좋아서 전화하고, 화가 나서 전화하고, 그냥 심심해서 전화합니다. 만에 하나 심기가 불편해지면 이때다 하고 청문, 청장과의 대화방, 언론 등에 신고를 합니다. 그들의 고소와 민원이 두려워 지나치게 감정을 맞추다 보면 결국 지쳐버리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악성 민원인이 생겨나는 이유는 오직 민원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원이 악질로 변질되는 근본적 이유를 민원인 탓으로 비난하고 더 나아가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찍는 '악성 민원인 제조공장'이 우리 사회에 존재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악성 민원은 내면에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익을 보기 위함일 수도 있고 벼랑 끝에 몰려있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공격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 민원인은 경찰서에 오기 전부터 이미 수십 번 할 말을 반복하여 시뮬레이션을 거치기 때문에 상황을 파악하는 눈치가 일반인과는 다릅니다.
그런 셈법을 가진 그들은 담당 수사관의 스타일에 따라 민원강도를 상승시키기도 하므로, 민원인을 악성화시키는 것 또한 수사관의 유형에 의해 결정되기도 합니다. 그 수사관의 '유형'은 이렇습니다.
첫째는 과대포장형입니다. 자신의 목구멍 속까지 한껏 드러내면서 민원인을 대하는 수사관이 있습니다. 그렇게 자랑질을 하다 종국엔 자신을 수사의 신으로 도달시킵니다. 절차상의 한계와 개인 능력치를 뛰어넘어 민원인에게 과한 기대감을 심어주게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절차와 상황이 한계에 이르면 부풀어진 온갖 기대감이 떨어지면서 그만큼 불신의 싹이 틉니다.
두 번째는 극소심형입니다. 수사관은 사건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끊임없이 결정을 해야 하고 그 결정은 책임을 수반합니다. 그 책임에 과하게 예민한 수사관이 있습니다. 자신의 판단이 들어간 행동에는 책임의 저편에 서고 싶고, 그런 생각이 확장되면 무책임성을 감추기 위해 타인의 미세한 약점에도 과도하게 부풀린 공격을 합니다.
세 번째는 무관심형입니다. 무관심하다는 거... 민원인들의 입장에선 답이 없는 스타일입니다. 사건 해결에 대한 의지나 책임감이 없고, 자기 일에 대한 애착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습니다. 무관심은 상대방을 불안하게 하는 건 당연하고 미숙한 수사 결과 또한 정당한 추측이기에 이런 유형으로 생긴 민원은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넷째는 고집불통형입니다. 고집이 세다는 건 부정적인 어감이 많은 단어입니다. 과거의 경험이 독이 되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파악을 느슨하게 하고, 오직 본인이 가진 생각만이 기준이 된다고 생각하는 수사관은 항상 시끄럽고 사소한 다툼이 많습니다. 결국 우월적인 지위에서 사건을 본인 마음대로 끌고 가겠다는 자기 편익적 생각입니다.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끊임없는 자기 자랑, 아무런 결정도 못하는 소심함, 남일에 신경 쓰지 않겠다는 무관심, 세상 모든 기준을 자신이 세운다는 꽉 막힌 고집... 마음속에 이런 이기심이 작동되는 수사관이라면 그도 악성민원인을 만들어내는 공장장이 아닌지...
타고난 악성은 편향이 심해 화려해 보이지만 빈약란 논리와 비루한 설득력으로 가히 치명적이진 않습니다. 이는 시스템으로 충분히 처리 가능합니다. 그러나 타인으로부터 학습되어 만들어진 악성은 힘이 셉니다. 결국은 우리에게 원죄가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원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우리 사회에선 당연히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수사관과 민원인 사이에 해야 할 일들이 생기고 그 안에서 건강한 신뢰가 생겨나고, 강한 신뢰를 위한 민원은 치우침이 없습니다. 서로의 이익을 도모하는 합리적인 주장들이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면 아무리 지나쳐도 선순환적일 것입니다.
수사를 해 오다 상황 파악이 어려우면 그 결과가 누구의 이익으로 귀결되는지를 보라고 합니다.
결국 이익이 누구 품에 있는지를 보고 그에게 책임을 물으라는 것이지요.
만약 그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면 우린 어떻게 수사를 했어야 할까요.
수사관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국민이 부여한 신성한 권한을 본인이 아니라 피해자의 마음을 진심으로 어루만지는 곳에 과감하고 따뜻하게 써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