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너'를 찾아서
토요일 아침, 오늘의 스케줄은 꽤 촘촘했다. 주말이라 북적일 내과에서 3개월 치 약을 처방받고, 치과에 들러 임플란트 마무리 작업까지 마쳐야 했다. 조금 서둘러 길을 나섰는데, 신기하게도 오늘은 모든 일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매끄럽게 흘러갔다.
내과에 도착해 혈압을 재고 있는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내 이름이 불렸다. 원래 예약되었던 검사들이 있었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처방전을 받아 약국을 거쳐 치과로 향했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려던 찰나, 예약 취소들이 생겼다며 곧장 진료실로 안내받았다.
10시 30분 예약이었는데 일을 다 마치고 나오니 겨우 10시 10분. 예상치 못한 '선물 같은 시간' 덕분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 기분 좋은 여유를 안고 오랜만에 반가운 동료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 영어 학원을 접고 전공을 살려 새로운 시작을 앞둔 분인데, 조만간 포항으로 내려가신다는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갔다. 평소에도 지독할 정도로 공부하고 책을 가까이하던 그 선생님은, 오늘도 내게 '회복탄력성'이라는 책 한 권을 건넸다. 좋은 책을 선물 받을 때마다 고마움과 함께, 더 많이 읽지 못하는 내 게으름이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함께 샤브샤브를 먹으며 나눈 대화는 풍성하고 따뜻했다. 큰딸의 고대 국제학부 합격과 작은딸의 경기예술고 합격 소식, 그리고 선생님의 취업 소식까지. 마치 내 일처럼 기쁜 뉴스들이 가득해 마음껏 축하를 나누었다. 세계사와 과학, 명상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배움의 끈을 놓지 않는 그분의 열정을 보며 나는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써보길 권유하기도 했다. 비록 몸이 좋지 않아 함께하지 못한 또 다른 선생님의 쾌차를 빌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서로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기분 좋은 수다를 뒤로하고, 다음으로 만난 이는 존경하는 해룡이 형이었다. 등단 이후 삶의 깊이가 묻어나는 동시를 써오신 작가이기도 하다. 14살 어린 나이에 상경해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도 독학으로 길을 개척해온 형의 삶은 언제 보아도 경이롭다. 지금은 오피스텔 관리소장으로 있으면서 수많은 전문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열정' 그 자체인 분이다.
오랜만에 만난 형은 여전히 확고한 자신만의 시론을 지키고 있었다. 오는 3월, 삶의 통찰이 담긴 새 시집을 낸다는 소식에 내 마음도 함께 설렜다. 예전처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인사불성이 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내가 술을 따르고 형의 깊은 이야기를 경청하는 이 시간이 참 평온하고 좋다. 다음 주 토요일 계절문학상 수상식에 꼭 참석해서 또 얼굴 보잔다.
되돌아보니 참 운이 좋은 하루였다. 병원 일도 일사천리로 해결되었고, 무엇보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값진 결실을 맺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고, 서로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는 인연이 곁에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꽉 차오르는, 참 따뜻한 토요일이었다.
참 형의 하나뿐인 딸이 최근 큰 수술을 받았고 방사선 치료까지 받았다. 이쁜 딸이 최대한 몸과 마음을 잘 추스리고 향후에라도 재발하지 않도록 기도해본다.
형의 최근 시(동시)와 예전 시(동시)를 올려본다.
고등어
곽해룡
등 푸른 생선 고등어는
하나의 작은 세상
동그란 두 눈은 해 그리고 달
가슴지느러미와 꼬리를 잇는 길고 반듯한 줄은
수평선
위로는 갈매기 날고 흰 구름 떠가는 푸른 하늘
아래로는 햇살 받아 눈부신 은빛 물결
그 물결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다른 고등어들이 별처럼 무리를 이루어 살고
그 별 하나 하나가 이끄는 또 다른 무수한 별들
하늘과 바다가 다 있는
고등어 한 마리는
수천 수만 개의 별을 거느린
작은, 아니
끝이 없는 우주
- 2025 가을 동시문학상 수상 작품
- 곽해룡
2007년 제15회 대교 ‘눈높이아동문학대전’을 통해 등단, 동시집 『맛의 거리』,
『축구공 속에는 호랑이가 산다』 등을 펴냄. 연필시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