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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alie Dec 08. 2024

|엄마 나도 다리가 아파요 2|

  " 배경 설명 이야기"

|마지막 생활비는 돼지 저금통, 핑키|


25년 전 뉴질랜드에서 가족과 함께 1년여간 살았었던  Torbay (토베이)는 오클랜드의 North Shore (북쪽)에 위치해 있는 바닷가에서 차로 20-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동네이고 , 그 주위는 다른 오클랜드 지역과는 다르게 가파른 언덕이 유난히나 많은 지역이다.


어린 세 아이의 아빠는 그날도 4일째 들어오지 않고 있었고, 내가 장을 보기 위해서 아기들과 타고 다니던 차는 연식이 바뀌면 뉴질랜드에서는 값이 폭락을 한다는  그의 말을 그 당시에 뉴질랜드 상황을 전혀 모르던 어렸었던 나는  믿고, 내가 아이들과 타던 차를 그에게 4일 전에  주어 버린 상태였었다.


 두 아기의 주식인  우유와 기저귀 그리고 식료품등이 필요했었는데, 남은 돈은 다 동이 나 버린 상태까지 갔었고 그와는 연락할 길이 없었다.


어릴적 혜지와 많이 닮은 소녀사진입니다


그래서 $1, $2 짜리 동전이 생길 때마다 어린 딸 혜지에게 저축하는 법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돼지 저금통을 사준 후, 반 정도 묵직하게 찬 핑크색 돼지, 이름은 핑키가 마지막 유일한 생활비가 되어 버린 것이다...


혜지는 평소 애지 중지하는 핑키를 꼭 끌어안고 나를 꼭 빼어 닮은 아주 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평소에 만화영화 주인공처럼 행동하기를 좋아했었던 4살 혜지는 그때도 만화영화 속 슬픈 아기 공주의 말투로 울면서 말했다.


"안 돼요 엄마, 핑키는 절대로 안 돼요, 엄마! 핑키를 제발 살려주세요, 흑흑흑 엉엉엉"


평소에는 나도 웃으며 만화 속 캐릭터의 혜지를 귀엽게 넘겼지만, 그때는 나도 혜지 이상 아니 그 몇 배 더 가슴이 찢어지듯이 아파서, 더 크게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엄마 나도 다리가 아파요|


 겨우 혜지를 달래서, 자른 핑키의 배는 예쁜 핑크색 만화영화 반창고로 붙여주었고, 곧 다시 핑키 배부르게 엄마가 동전을 많이 주겠다고 약속을 하고는, 아이들을 먹일 우유와 생필품을 사러 당시에는 걸어서 갈 수 있는 단 하나밖에 없었던 슈퍼마켓을 토베이에서부터 브라운스 베이 (어른 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의 거리)를 걸어서 다녀오기로 마음의 끈을 질끈 묶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아찔하고 가파른 그 난코스를 아이 셋을 데리고 장까지 봐서 왔던 나는,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삼손 저리 가는 힘을 그때에는 세 아이의 젊은 엄마이었기에 낼 수 있었나 보다.


갈 때는 엄청난 가파른 내리막 길이라서, 두 아기는 유모차에 싣고,  4살 베기 혜지는 걷게 하여서 어찌어찌 내려갔었는데, 다시 돌아올 때에는 무거운 우유 두 개와 식료품 그리고 두 아기를 실은 유모차를 거의 45도 각도이상 다시 그 산길같이 기울어진 오르막을 거의 나의 몸을 반으로 접듯이 밀면서 올라왔어야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고 비참했었던 시기였다. 대체 내가 뭘 얼마나 그렇게도 잘못하고 살았길래 나와 나의 아기들에게 그런 형벌 같은 일들이 생겨났었나 지금도 되묻고 싶다...


내려갈 때는 바닷가에 간다며 신나게 내려갔었던 혜지였지만, 혜지도 그땐 막 4살이 된 어린 아기였었는데, 유모차는 이미 두 어린 아기 동생들과 물건이 가득 차 있었기에, 태워달란 말은 차마 하지도 못한 채, 참고 참다가는 끝내는 울먹이며 아기 공주처럼 말했었다.


"엄마 나도 이젠 다리가 많이 많이 아파요 엉엉엉"





|그 길을 지날 때마다...|


지금도 예전에 살던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기에, 가끔 브라운스베이 쪽을 지나갈 때가 많이 있는데,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그 순간이 영화를 보듯 선명하게 떠오른다.


가파른 언덕을 만세 하듯이 두 손을 올리고 몸을 90도로 굽혀서 유모차를 밀던 나의 젊은 날과, 다리가 정말 많이 아픈데도, 제대로 생떼도 못 부리고 울어 버렸던 착하고 예쁘고 가여운 내 딸 4살 혜지의 모습이 떠오르고는 하면서 눈물이 가득 맺히고는 한다.




다행히 장성한 혜지는 그때 일의 기억을 전혀 하지 못했고, 더더욱이 두 명의 남자 아기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헤어져서 나의 존재조차 기억도 생각도 해본 적이 없이 잘 지냈다 하고 이젠 청년이 되어있다. 정말 다행이다.





|감사할 일들은 차고도 넘치기에|





그 많았던 사건, 사고,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을 다 거치고도, 다 같이 무사하게 건강하게 어디에서인가 잘들 버티고 살아왔다는 그 사실은 너무도 감사해야 할 일이다.


그런 비극적인 시간들로부터 모두가 무사한 것은 아니기에, 그때 가족을 잃은 분들은 얼마나 애통할지, 더더욱이 오랫동안 그리워하던 이 가 그런 일을 당하였다면, 평생의 달리기 같이 숨도 못 고르며 계속해왔던 그 길 끝에 있어야 할 결승점이 사라진 것보다 더더욱 절망과 비통함뿐이 아닐는지…



힘들고 고통스러운 기억들도 있었겠지만, 찾아보고 돌아보면은 또 얼마나 행운이고, 복 받았고, 감사한 일들이 많은지 열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지금의 자리에도 부끄럽지 않은 엄마의 모습으로 있으니...


같은 상황도 어떤 마음 그리고 시각에 따라서 행복일지 불행일지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현재는 희망의 미래를 꿈꾸며 그 길로 가기 위한 아이터너리를  가지고 하루하루 또다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희망을 가질 수 있음에 또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오늘은 행복의 감정이 깃든 날이다.






**오래전에 미리 써 놓았던 글이,  바로 전에 올렸던 "핑키를 살려주세요"와 같은 상황을 더 자세히 묘사했던 것이기에 추가로 올려봅니다.


***이미지: Pexel,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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