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이틀 만에 죽음에서"
|한겨울 무허가 집에서 홀로 출산|
영하 20도 경의 엄동설한이 몰아치던 1월 6일 아침 7시경에, 나의 자그마한 30대의 엄마는 서대문구 홍은동 달동네라 부르던 아주 높은 지대의 무허가 판잣집에서 혼자서 나를 출산하셨다.
요즘 세대에는 30대 중후반이면 출산을 하기에 괜찮은 나이라고 여겨지지만, 20살에 결혼을 하신 그 옛날 엄마 세대에는 36세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굉장히 늦은 나이라 받아들여졌었고, 이미 세 아이를 궁핍한 환경에서 키우시던 엄마는 계획에 없으셨던 임신이었지만, 그래도 천륜으로 맺어진 새 생명이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낳기로 결심하셨다고 한다.
집도 무허가 꼭대기 동네에 대충 아버지와 친구분들에 의해 지어진 탓에 바닥은 울퉁불퉁하고 또 기울어져 있었고, 아궁이위만 난방이 되는 방에서 혼자 의료처치도 없이 출산을 하신 직후 기절하였다고 한다.
|태어나자마자 재채기|
몇 분 후 바로 의식을 찾으신 엄마는 탯줄도 못 자른 아기가 떠다 놓은 물 위에 살얼음이 얼정도의 냉골인 아랫목 쪽으로 굴러가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시면서 잽싸게 담요로 핏덩이인 아기 선영이를 감싸셨고, 아기는 바로 재채기를 하였다고 한다.
엄마께서는 작디작은 핏덩이 아기의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웃으시면서 신기해하셨는데, 그 오후부터 아기의 작은 몸과 얼굴이 파랗게 되면서 숨을 안 쉬었다고 한다. 엄마는 아기가 숨을 안 쉬는 것을 보고 놀라서 바늘로 콧잔등을 찌르신 후 입으로 피를 빨아내자 아기가 숨을 다시 쉬게 되었다고 한다.
방금 출산을 한 상태이고 다른 아이들도 아직 어려서 혼자서는 아기를 데리고 병원을 가실 수 없었던 엄마는 초저녁부터 술을 흥건하게 드신 풍류가로 행복하게 사시던 40살 아버지를 앞세워 동네의 작은 의원을 찾아가실 수 있었다고 한다.
|몇 시간 전에 낳은 아이를 직접 안고 온 산모|
불과 몇 시간 전에 출산을 하셨기에 온몸이 퉁퉁 붓고, 죽어가는 아기로 인해 흘린 눈물로 빨갛게 된 눈, 코 그리고 한눈에 보아도 빈곤해 보이는 차림의 30대의 산모가 바로 나의 가여우시고 착하신 엄마이셨다.
막 태어난 신생아를 안고 머리와 옷매무새도 제대로 하지 못한 젊은 엄마와 아직 날이 밝은데 술에 이미 취해 비틀거리며 엄마 옆에 서있던 아버지를 한탄스럽게 바라보시던 40대~50대 정도의 훈남이었던 (엄마의 기억에) 의사 선생님은 너무 놀라시면서 급히 위중한 아기의 상태를 살폈고, 바로 큰 종합병원에 입원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다고 한다.
|선생님 아기를 살려 주세요|
그러나 철거촌에서 무허가로 사시던 우리 부모님에겐 큰 병원에 늦게 낳은 넷째 아기를 데리고 갈 돈이 없으셨었기에, 엄마는 우시면서 의사 선생님께 제발 아기를 살려달라고 애원하셨다 한다. 의사 선생님도 한눈에 어려웠던 형편을 알아보시고는, 입원실이 없는 작은 동네 의원이었기에 매일 통원치료라도 꼭 오라고 하시면서, 그렇지만 그날 밤을 넘기긴 힘들 거라고 덧붙이셨다고 한다.
엄마는 뜬눈으로 내가 혹 숨을 멈출까 봐 지켜보시고 다음날 아침 날이 밝은 후 바로, 기적적으로 아직도 숨을 쉬고 있는 아기를 다시 안고 동네 의원이 열자마자 가셨고,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직도 안심하긴 이르지만, 최선을 다해보시겠노라고 하셨다 한다.
그 후로 15일간 출산직후부터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엄마는 나를 안고 꼭대기집에서 홍제동 (지금은 홍제 전철역 근처)까지 한 시간씩 통원치료를 다니셨고, 그 후 15일째 (1월 21일)에 의사 선생님이 이건 기적이라며 이제 애기 살았어요 하시면서 춤을 추셨다 한다.
|그로부터 25년 후|
그 후로부터 25년 후, 태어난 지 2일 만에 바로 죽을뻔했었지만, 그 선하시고 최선을 다해 주신 의사 선생님과 희생적이시고 헌신적이신 엄마 덕에 목숨을 건진 나는 사랑스러운 첫째 딸 혜리를 1994 년에 출산해서, 이젠 나이가 70대가 되신 의사 선생님께 나의 아기를 진료를 받으러 갔었다. 그리고 엄마께서 말씀하셨다.
“선생님께서 25년 전에 가망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보시겠다며 돌봐주신 후, 기적이라고 춤을 추셨던, 그 2일 만에 죽다 살아난 아기가 새로 태어난 아기의 엄마가 되어서 인사드리러 왔어요”
니는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을 위해 미리 준비했던 따뜻한 내복과 과일 세트 선물을 전해 드렸다.
인상 선하신 할아버지가 되신 의사 선생님은 정성껏 우리 아기, 혜리를 진찰해 주셨고, 자신은 그냥 의사로서 최선을 다한 거고, 아기와 엄마의 의지가 기적을 만든 거 같다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다 같이 눈이 촉촉해졌다.
" 더 이상 겁내고 무서울 게 없는, 하루하루가 보너스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살아갈 날들이다. 보너스로 받은 이 귀한 날들 동안 불평과 실망 그리고 할 수 없는 것들을 한탄하지 말고, 매일 맞는 기적 같은 하루를 새로운 기회와 감사로 살아야 할 무수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쓰면서도 믿기지 않는 그 "기적의 아기"이야기이고 더욱이 그 주인공이 "나"이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올렸던 글을 다시 메가진에 다른 시각으로 써보았습니다.
***이미지: Pexel,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