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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alie Sep 14. 2024

|한겨울, 하히힐에 짧은 치마라니|

     - 김포공항 새벽 3시 30 분 -


치열했던 고3 시절의 전투를 나름 무사히 마치고,

대학생이 되어서 가장 좋았었던 것은,

 새벽에 자율학습을 안 가도 되는 것이었다.


"자율"학습이란 명칭과는 다르게,

실제로 그것은 "반자율" 학습이었었다.


 지각을 하거나 빼먹으면 선생님께 엄하게 혼쭐이 나던,

 80년대 중반의 고교생의 슬펐던 운명이랄까...!








대학생이 되어서는  필수 전공과목이 아닌

교양과목이 오전에 있을 때에는 가끔 빼먹거나,  

친구들의 대리출석에도 큰 문제가 없었던

 80년대 말에서 90년대의 대학생 시절,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가 너무 행복하고 좋았었다.


무엇보다도 아침에 늦게까지 푸욱~ 잘 수가 있었기에....






그래서 나에게 있어 그 당시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졸업 후에 일반 기업에 취업이 되어서 매일 또 새벽 6시에

규칙적으로 어떻게  일어나나 하는 것이었다.


오래전이지만, 내가 대학생이었던 그 시절도

지금보다는 덜 하겠지만 여전히 취업은 전쟁이어서,

대학교 3 학년 때부터 취업을 준비하였었는데,

나는 운이 좋게도 대기업 사무직과 또

 대한항공 승무원 이렇게 두 군데에 합격이 되었다.






당연히 조신하게 대기업 사무직으로 가라고

 할 부모님과 오빠들일임을 알았었기에,

사무직에 합격된 것은  비밀에 부친채,

(흠 이 글을 보게 되면 오빠들이 알겠지만, 이미 수십 년 전이니...),

 나는 대한항공만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대한항공 승무원이 되기 전에는,

 나는 국내선조차도 타본 적이 없어서,

승무원 교육 과정 중에 처음 타본 국내선이

내 인생의 첫 번째 비행기 탑승이었다.



하늘 높은 창공, 난생처음 비행기로부터 본

그날의 하늘은  정말 예쁘고 경이로웠다.


푸르른 코발트 하늘이 사이사이 보이는  

새 하얀 구름 위에 떠있는 그야말로 손오공이 된 듯

마냥 신나고 신기로왔었다.  


물론 지금은 여행 갈 때 긴 비행시간을 피곤해하는 중년이지만...






해외로 부모님과 오빠들 허락 없이 몇 박 며칠 여행을

공식적으로 갈 수 있는 것도 너무 좋았었지만,

매일 새벽에 출근을 하지 않는

비행 스케줄이라고 확신했기에,

아침잠을 충분히 잘 수 있을 것이라는

무모한 자신감에  더더욱 대한항공 취업을 고수하였고,

결국 나는 22살에 아직 대학교 4학년일 때에,

대한항공 승무원이 되었다.







그런데..........


그전날  뉴스에서도 미리 경고를 할 정도의

엄동설한의 한 겨울에 짧은 치마에 하히힐을 신고,

 새벽 3시 30분에 당시에는 인천이 아닌,

김포 공항이었던, 나의 일터에 새벽 비행을 위해서

 막 도착하여서는 정신줄 놓을 정도로 떨며 걷던 나.....




꽁꽁 하얗게 언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

 버스도 아직 다니지 않는 그저 자정이 몇 시간 지난 한밤중이라서,

당시 30대 초반 회사원이었던 큰오빠가

 자신의 인생 첫차 포니 2로 나를

공항에 데려다주었을 때,  나는 속으로 포효했다.





"게으른 베짱이가 겨울을 헐벗고 난다더니,

늦게 일어나고 싶어서 잔머리 써서 들어온 첫 번째 직장을....

 

이 춥고 캄캄한 새벽에 짧은 치마에  하이힐까지 신고,

내가 지금 여기서 왜.... 아~ 추워...

이건 벌이다.... 벌....!!"





그렇다.


진심 늦잠꾸러기에 응석받이 막내였던 내가

대학졸업 후 난생처음으로 취업해서,

서대문구 홍은동에서부터 김포공항에 있는 대한항공까지,

 새벽 3:30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또 당시 22세의 나라서 화장과 머리단장도 꽤나 오래 걸리기에,

1시 반에 일어나느니 아예 나는 전날 잠을 포기하고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는 그곳에 제시간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무려 12시간의 국제선 장거리 비행이

이미 지쳐있는 나를 담담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긍정적인 면은, 그 후로도 일찍 일어나야 하는

 직업들에 도전하는 것에는 전혀 겁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곳 뉴질랜드에서 8년간 일했었던,

 시내에 위치했던 약국 문을 8시에 열기 위해서,

나는 매일 5시에 일어나는 것도 별일이 아니게 되었으니,

호된 내 인생의 첫 직장 신고식이 나름 해피앤딩으로 끝난 게 아닐까?






고로 인생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혹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그 반대 방향으로도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상황에서도 우리는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다는,

시트콤 같은 나의 20대의 한 조각이었다.



**이미지: Pixa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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