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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alie Oct 22. 2024

향수

  "캐서린 아씨"


오늘도 피 터진 입술과 보랏빛 멍든 눈

거센 파도 풍파 맞은 듯 흐트러진 머리채와

뜯겨 나간 앞단추를 한 영혼을 잃은 듯한 눈

희미한 스탠드 빛을 뒤로한 채

몇 가지의 싸구려 화장품이

흩뜨려져 있는 화장대로 쓰는

책상 위의  금이 간 거울 안에서

자신을 닮은 낯선 여인을 보고 있다


날 닮은 낯선 여인



한차례 다시 훑고 지나간 괴물이 되어버린

그는 결국은 다시 그녀를 찾아내서

그녀가 일주일을 일한 품삯과

어머니의 마지막 반지와

그리고 어린 사람들의 식량을

 살 돈까지 싹 긁어갔다



그녀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더할 나위 없이 쉬운데도

나로 인해 이 험난한 세상에 발을 딛게 된

남겨질 어린 사람들이 어른 사람들이

될 때까지는 그 쉬운 길도 포기할 수밖에…



지금 이대로의 마음과 슬픔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나의 어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찬란하게 빛이 나던 나를 그

힘과 용기를 빨리 되찾아야지…



그녀는 책상 세 번째 서랍에 종이에 쌓아 고이

감추어 두었던, 지금의 빈곤한 생활에서는

상상도 못 할, 귀족의 그녀가 쓰던

작고 화려한 향수병을 꺼내든다



한 스프레이는 그녀의 부어오른 오른쪽 귀뒤에

하아~그녀는 다시 가장 행복했던,

캐서린 아씨시절로 돌아간다.

젊으셨던 부모님과 아직 어린 시절의  형제자매들이

대 저택의 식탁에서 저녁 후 차와 다과를

즐기며 행복하게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 스프레이는 파랗게 멍들고 발갛게 부은

오른쪽 손목 안, 그리고는 두 손목을 몇 번 두드리곤

하아~그 푸르르고 아름다운 나의 화사한 시간으로의

향내를 들이마셔본다




파도소리가 들리는  피크닉


그녀는 사랑하는 이와 나들이를 나와서

해맑은 태양과 푸르른 바다가 보이는

큰 나무밑 잔디에 앉아

피크닉 바스켓에 있는, 와인잔 그리고

치즈와 과일은 담요 위에,

따뜻하고 든든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있다

파도소리가 아름답다 바람이 잔머리를 넘겨준다

꿈이 아닐까 두려울 정도로 행복했었던 그녀



마지막 한 스프레이는 잘 돌아가지 않는

목을 돌려, 왼쪽 귀뒤에 뿌려본다

하아~지금 그녀는 첫사랑 그 와의 유럽으로

항해하는 유람선에 앉아 있다

그때 그로부터 선물 받았었던

향수 세트 중, 지금 가지고 있는 작은 병,

마지막 몇 방울만의 추억이 남아있다.


 


자 이제 힘, 에너지, 자신감 충만해졌으니,

깨진 그릇들과 유리잔들을 치우고,

집을 정돈한 후, 머플러로 얼굴을 감싸고는,

어린 사람들을 잠시 맡겼던 착한

이웃할머니에게 가리라.



여느 때처럼 그녀의 큰 집을 정갈하게 치워주고,

정성껏 요리를 준비해 주면,

우리 작은 사람들이 오늘밤은 배고프지 않게

잘 수 있는 충분한 음식을 늘 나눠주시는 착하신 분



내일은 다시 남은 몇 방울의 향수를 뿌리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곳과,

그곳에서의 새로운 일감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난 그럴 수 있을 거야


늘 빛나고 찬란한 캐서린



왜냐하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바로

그 언덕 위의 대저택에 살던,

 고귀한 아씨 캐서린!

 오늘도 난 그때처럼

 빛나고 찬란하니까!



**이미지: Pexel,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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