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비싸고, 약사는 무료다"
|비싼 진료비|
뉴질랜드에서 의사를 보기는 쉽지 않다.
일단 진료비가 굉장히 비싸고, 의사 부족군이라서, 예약을 하고도 길게는 3~4 주를 기다려야 되는 경우도 많다.
내가 일하고 있는 약국 바로 맞은편에 최근에 새로 오픈한 메디컬 센터에서 주중에 의사를 보기 위해서는,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어른의 경우에는 20분 이하의 진료는 $135 ( 11만 원 정도)이고 20분 이상이면 $194 (16만 원)이고, 주말의 경우에는 20분 이하진료가 $190 (15만 7천 원경) 그리고 20분 이상은 $245
(20 만원경)이나 한다.
물론 다른 곳의 의사들은 이곳보다는 저렴한 (6~7만 원) 곳들도 있지만, 위의 메디컬 센터는 이 지역에서 예약을 안 하고도 갈 수 있는 유일한 클리닉이라, 당장 아픈 이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뉴질랜드의 법, 신호체계|
뉴질랜드에서는 의사가 처방전에 최대 3개월 이상의 약을 줄 수 없게 되어 있다. (피임약은 예외이다. 최고 6개월까지 가능하다.)
환자의 건강 상태와 치료의 과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의사가 3개월마다 다시 체크를 한 후, 같은 약을 주어야 할지 아니면 용량을 낮추거나 높일지, 아니면 다른 약이나 치료방법으로 바꾸어야 할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저렇게나 고가의 진료비를 내놓고, 달랑 3개월의 약을 받게 되니, 많이 억울하리라고 생각하고 나도 그 점은 십분 이해는 된다.
그렇지만, 의료법에 일반약을 뉴질랜드 의사가 한 처방전에 3개월 이상 처방할 수 없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고, 우리가 빨간불에 길을 건널 수 없듯이, 그저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므로,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 법을 지켜야 한다는 그저 단순한 원리일 뿐이다.
|빨간불에 건너는 의사|
아랍계의 가족들이 처방전을 가지고 왔다.
의사의 이름을 보니, 같은 아랍계의 의사이고, 환자들이 부탁을 하여, 자신은 그 앞에서 가장 친절한 의사의 역할을 하고 싶었었는지는 모르겠다.
의사가 빨간불에 건너듯이, 법에 위배되는 처방전을 그들에게 써 주었다.
왜냐하면 의사들에게는, "약사"라는 필터가 있어서, 우리가 체크한 후 그들의 빨간불을 파란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어서였을까...
그 의사는 13 가지의 약들의 양을 처방전에 모두 12개월이라고 써 놓았다.
우리는 의사가 얼마만큼을 주라고 써놓던지, 의사의 처방전의 용법을 확인한 후, 3개월치를 정확히 계산해서 주어야 하는 게 또 약사로서의 역할의 파란불이다. 당연히, 나는 13가지의 약의 용량을 계산하여 3개월치씩을 처방하였다
|문화차이이해|
각 각의 문화마다 또 가족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아랍계의 가족들이 약을 받으러 올 경우에는, 보통 남편이나 아버지인 남자 어른이 가족의 대표로 약에 대해서 의논하는 경우가 많다.
다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뉴질랜드에서 의료진으로 일하고 있기에, 나는 각 환자분들의 문화를 공부하고 이해하고 또 그들의 전통, 믿음 그리고 풍습을 존중하려 늘 노력한다.
남편으로 보이는 남성에게 약을 일일이 설명할 동안, 정작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인 부인은 뒤쪽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는 경우나 아니면 아예 같이 오지 않고 남편이나 아버지만 오는 경우도 많다.
약을 설명하며 건네어 주려하였는데, 약봉지를 세차게 낚아채더니, 자신의 나라에서 여자를 아래로 보고 대하는 지 아니면, 내가 아시안 여자약사였기 때문인지 영문을 모르겠고 나 알바는 아니지만, 굉장히 무례한 태도와 어조로 내게 따져 물었다.
"의사가 1년 치를 써주었는데, 왜 3개월만 주는 거지? 의사가 분명히 12개월이라고 써놓았는데??"
나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또 한 명의 하드코어 환자이시구만이라 생각하고, 심호흡을 가다듬고, 최대한 천천히 (영어가 많이 서투른 사람이라) 그리고 또박또박 설명하였다.
"의사가 처방전에 양을 얼마를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뉴질랜드 법에 의사는 한 처방전에 3개월 이상의 약을 줄 수 없고, 우리는 그 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더욱 큰소리로 화를 내며 이제는 삿대질까지 하면서 나에게 고함치듯이 말했다. 주위의 모든 손님들이 놀라고 그의 무례한 태도에 얼굴을 찌푸렸다.
"너는 약사일 뿐이야. 의사가 하라면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게 너의 역할이야. 의사가 맞지 네가 맞겠어?"
뒤에 있는 그의 부인은 소리를 지르며 매우 무례한 그녀의 남편의 뒤에서 당혹함을 감출 수 없듯이 눈빛이 흔들리며 내게 미안한 듯이는 보였었지만, 말로는 그녀의 막무가내 남편을 도울 수밖에 없었는지,
"우리는 고국에 가야 해서, 의사 선생님이 1년 치를 보증해 주신다고 했으니, 1년 치 약을 주세요"
라고 말을 하였다
|가로막힌 벽|
그야말로 막무가내 가족들과 말씨름을 더 하느니, 차라리 의사에게 연락을 해보고 싶었지만, 클리닉은 5시에
끝나버렸고 (뉴질랜드는 대부분 4~5시면 닫는다), 우리는 8시까지라 그 가족 들은 7시에나 약국에 와서, 나와 의미 없는 언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말하였다.
"빨간불에 길을 못 건너듯이, 그저 뉴질랜드 법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법을 따라야 합니다,
원한다면, 처방전을 취소하고 돌려드릴 테니, 의사와 다시 이야기를 하세요"
그러자 그는 들고 있는 약들을 내동댕이 치며, 당장 처방전을 돌려 달라고 하였다.
약사협회에 나를 고발한다는 협박도 잊지 않은 아랍 남편은 다시 한번 소리치며 강조하였다.
자신의 의사가 맞고, 고작 약사인 나는 의사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많이 놀라셨겠지만, 여기서 약사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그저 평소와 같은 또 늘 일어나는 일상일 뿐인 에피소드 중의 하나이다.
위의 환자분은 뉴질랜드의 의료법을 잘 모르셨을 테고, 의사에 대한 신뢰가 크다 보니, 의사의 말이 맞다고 믿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설명해 주는 뉴질랜드의 법이 자신이 원했던 결과가 아니다 보니, 기분이 상해서 위와 같은 대화와 행동이 나왔을 것이라고도 이해해보려 한다.
의사가 실수를 하였는데, 약사가 발견을 못한 채 약을 조제하면 그것은 약사의 실수도 된다.
의사가 기본 중의 기본인 뉴질랜드 법조항조차도 지키지 않은 채, 환자에게 친절한 의사가 되어버리면,
약사는 뉴질랜드 법이 아닌 , 의사가 만든 존재하지
않는 "법"을 따라야 한다고 환자들은 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왜냐하면 의사는 맞고, 실수도 하지 않으며, 약사는 그저 쓰여 있는 대로 알약 개수나 세면 되는 역할이라고 생각하는지, 약국에 와서 빨리빨리를 외치는 모든 게 느려터진 뉴질랜드에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나 많기 때문이다.
"의사는 맞고, 의사의 진료비는 비싸고,
약사는 틀리고, 약사의 무한대의 시간과 스트레스는 그분들께는 무료”
진하고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이면 충전 완료이니
다 괜찮습니다! 언제든지 도와 드릴 준비 완료입니다.
**Image: Pexel,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