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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alie Oct 03. 2024

|Bullying (왕따, 괴롭힘)에 맞서기|

   “발 뻗을만한 공간을 없애자"

어른이 된 왕따범들


Bullying의  사전의 뜻은 "구박", "집단 따돌림, 혹은 "괴롭힘"이고, 집단 내에서 다수가 특정인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신체적, 언어적, 정서적인 협박, 무시 혹은 심리적 압박을 반복적으로 괴롭히거나 힘을 사용해서 억압을 하는 행위를 일컬으며, 이것은 범죄행위라고 나와있다. 불행하게도 이것은 어느 시대에도 있었고, 아이들의 사회에서만 이슈화되어 알려진 단어이지만, 이제는 직장 내 혹은 어른들의 사회에까지 널리 퍼져있다.


학교에서 왕따를 시전 하던 아이들도 나이를 먹게 되고, 성인이 되어버린 그들은 사회의 다양한 곳으로 침투되어, 다시 괴롭힘을 시전 할 수 있는 환경과 직급이 되기를 기다리는 잠재형 왕따의 가해자가 되어버린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직장 내 따돌림 그리고 어른들 사회에서 괴롭힘과 왕따의 선구자가 되어 비슷한 이들을 이끄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된다.


워낙 낙천적이고 적극적이며 밝고 쾌활한 성격으로 보이는 나는 실제로는 남모르게 많이 소심한 아이였었지만, 어린 시절에는 단 한 번도 누군가가 나를 괴롭힌다거나 왕따를 당한다거나 하는 것은 경험해보지 못했고, 드라마나 뉴스에서 볼 때에는, 저렇게나 나쁜 학생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도대체 어떤 괴물이 되려고 저러나 하면서 혀를 끌끌 찼었던 적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나이 먹고, 그것도 다민족이 다 같이 어우러져 사는 평화로운 이미지의 나라인 뉴질랜드에서 인턴 약사가 된 나에게도 벌어질 줄은 전혀 상상조차도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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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약사로 취업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 내가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고시를 위한 필수 코스인 1 년의 인턴 과정을 위해서, 오클랜드 서쪽에 위치한 큰 약국에 인턴 약사로 취업이 되었을 때의 일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70대가 넘으신 나이 지긋하신 뉴질랜드(키위: 뉴질랜드 인을 키위라고 부른다) 약사분과 또 50 대경의 키위 약사, 두 분 다 남성이신 이 약사분들이 동업으로 운영했었던 그 약국은 아주 바쁜 메디컬 센터 바로 옆에 위치해 있었기에, 늘 조제실에는 4~5 명의 약사, 2명의 인턴 약사 그리고 2명의 약국 테크니션까지 7~9 명의 직원이 바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만 실시간으로 밀려드는 수많은 처방전을 제때 조제해 낼 수 있었다.



                                                            

두 곳의 약대 그리고 다른 기회



뉴질랜드의 남섬에 위치한 오타고 지역의 더니든에 위치해 있었던 오타고 대학교를  졸업한 나와 같은 인턴약사들은 워낙 작은 도시인 데다가, 일을 하고자 하는 대학생들이 넘쳐나는 도시이다 보니, 약국에서 일할 기회가 많지 않았었다. 따라서 뉴질랜드에서는 가장 대도시인 오클랜드에 위치해 있던, 오클랜드 대학교를 졸업한 인턴 약사들에 비해서, 약국 경험면에서는 대부분 마이너스의 상태에서 인턴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나는 다행스럽게도 더니든에 위치한 단 하나의 쇼핑몰인 Meridian mall (메리디언 쇼핑몰) 안에 위치했었던 큰 약국에서 약대를 다니는 동안 3년간 일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렇지만 그 약국의 조제실은 많이 한가하였었던 반면 화장품과 향수 등의 리테일이 훨씬 바쁜, 한국으로 치면, 작은 백화점 내의 화장품과 향수 코너와 비슷한 구조로, 랑콤, 클리닉, 디올 그리고 샤넬등의 유명화장품과 향수코너가 입점해 있는 약국이었고 많은 학생들이 일하고 싶어 하던 약국이었다.




 세일즈의 왕을 뽑은 약국 주인


약사이자 약국 주인인 싱가포르 출신인 리앤은, 약대에 공부하러 오기 전에 오클랜드의 면세점에서 랑콤의 카운터 매니저로 일을 했었고, 또한 대한항공 일등석 승무원이었던 나의 이력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 많은 약대생들의 지원서 중에서 나를 뽑았다고 말을 하였었다.



자연스레 나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한가해서 약사 한 명 외에 다른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던 조제실이 아닌,  나의 전문 분야이자 아주 바빴던 랑콤 카운터와 향수코너를 전담으로 하였었고, 엄청난 세일즈의 증가로 리앤은 별도의 세일즈 커미션으로 방학 2달 동안 (이곳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여름이다) 10병의 고가의 향수를 팔 때마다, 나에게 한 병씩을 보너스로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으나, 그녀는 내가 단 두 달 동안 고가의 향수를 160병이나 팔아치우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결국 나는 16병의 200불 상당의 향수를 보너스로 받게 되었고, 리앤은 큰 세일을 낸 나에게 고마워하였었다.

그녀는 내가 전에 다녔었던  DFS Galleria (갤러리아 면세점)에서 탑세일즈직원으로 여러 번 상을 받은 사실이 적힌 나의 이력서를 간과하였던 것 같다.


세일즈의 왕인 나를 채용했었던 자신이 대견하다고 하였었고, 어떻게 그렇게 세일즈를 잘하냐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세일즈를 하려는 게 아니고, 손님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것에 가장 적합한 것들을 권해주는 겁니다라고 말을 하였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약대 학생으로서 다행이었던 것은 처방전이 없이도, 약국에서만 살 수 있는 의약품들을 구매하시는 손님분들께 약대에서 배우고 있는 지식을 이용하여 상담하며 도와드리며, 설명 시에는 각 약 패키지 뒤의 중요한 정보를 읽어드리며, 주의사항과 복용방법 등을 복습처럼  한번 더 배울 수 있었던 점이다.




인턴 약사를 두 명 뽑은 이유



내가 약대 과정을 마치고 마지막 관문인 인턴 약사로 지원한 오클랜드의 서쪽의 약국은 리테일도 바빴었지만, 조제실이 하루에도 500개가 넘는 처방전을 조제하였었던 약국이라, 많은 약대 학생들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그 약국에서 3년간 일을 하던 약대생이 졸업과 동시에 인턴 약사로 일하기로 내정이 되어있었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첸은 오래전 중국에서 이민을 오셨지만, 영어는 잘하지 못하는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었는데, 나와 일하는 첫날, 자신을 소개하면서 본인은 중국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고 하였고, 다른 약사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오클랜드 약대에서 몇몇 과목들을 수석을 할 만큼 실력이 뛰어난 학생이었었다고 하였다.


당연히 영어는 뉴질랜드인과 같은 원어민 수준으로 하고 있었고, 이미 3년간 그 약국의 바쁜 조제실에서 일을 해왔었기에,  내가 인턴으로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였을 때, 내 눈에는 그는 이미 약사이상으로 모든 조제실과 의약품 그리고 처방전을 조제하는 법도 능숙하게 할 줄 아는, 인턴 같지 않은 인턴 약사였기에, 상대적으로 약국 조제실 경험이 전혀 없는 그야말로 진짜 초짜 인턴 같은 인턴약사였던 나와는 상대적으로 더욱 비교대상이 되었던 것 같다.


주인 약사 할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그 약국은 10년 넘게 인턴약사를 교육해 왔었고, 늘 인턴약사를 한 명만 뽑아 왔었지만, 나의 자기소개서와 다양한 직업군을 경험했던 이력서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 해에만 인턴 약사를 두 명을 채용하기로 하였다고 하셨다.




Preceptor (인턴약사 지도자)


Preceptor  (교육자, 지도자)라고 해서, 한 명의 약사가 실습 중인 인턴 약사를 각각 담당하여 지도하여야 하는 교육 약사를 뜻하고, 나와 첸에게도 프리셉터가 한 명씩 정해지게 되었다.


첸은 원래 그곳에서 일하고 있던 학생이었기에, 조제실의 매니저인 성격이 쿨하고 착한  렉스가 프리셉터로 이미 정해져 있었고, 나는 갑자기 엑스트라로 인턴을 한 명 더 뽑게 된 터라, 갑자기 불가리아 출신의 50대 여성약사인 벨라가 프리셉터로 정해졌던 것이었다고 한다.


투박하고 강한 불가리아 식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는 벨라는  20년 이상의 약사경력이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프리셉터 일을 해보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당초 계획에 없던 두 번째의 인턴 약사로 들어온 나 때문에,  또 약국주인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인턴 지도자 교육을 하여야 되어서, 나의 채용이 전혀 달갑지 않은 티를 감출 성의조차 없었던 퉁명스러운 여성으로 기억된다.


두 명의 인턴 약사가 동시에 일을 시작하는데, 오클랜드 약대에서 수석을 한 적도 있으며, 뉴질랜드에서 태어나서, 영어는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며,  그 약국에서 이미 3년간 일을 했었던 첸과 막 약대를 졸업하고, 그전에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약국에서는 조제실이 아닌, 랑콤과 리테일파트에서 일을 했으며,  20대 후반이 돼서야  뉴질랜드에 와서, 그녀와 같이 투박한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고, 조제실 일을 처음부터 다 배워야 하는 그야말로 생 초짜인턴 약사였었던, 나에게 그녀는 짜증 섞이고 퉁명스럽게 그녀의 아주 투박하고 센 영어 엑센트로 말했다.


"첸은 진정으로 인턴 약사로 일할 준비가 완벽하게 돼있군. 렉스는 정말 좋겠네, 첸을 맡게 된 프리셉터라서"


첸은 인턴 약사로 일할 준비가 돼있는 정도뿐이 아니라, 프리셉터였던 그녀보다 훨씬 일도 빠릿빠릿하게 잘 해내며, 영어는 그녀와는 비교가 안 되는 원어민 수준에, 막 새로 배운 약학 지식도 20여 년 전에 배운 본인보다 훨씬 업데이트되어 있는, 약사로서도 손색이 없었고, 그런 그와 진짜 찐 인턴인 그녀의 첫 번째 인턴 약사로 배워나가야 할 나를 비교하며, 무시하듯 또 비아냥 거리듯 썩소를 짓는 그녀가 바로 나의 인턴쉽 지도 약사라는 것이 일단 나의 불행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무례함은 보이고 느껴진다



나의 프리셉터 벨라는 심지어 3일만 일하는 파트타임 약사였기에, 그녀가 일하지 않는 날에는 조제실 매니저인 렉스와 다른 한 명의 파트타임 약사 그리고 주말 약사들로부터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수는 있었다.


그렇지만 다들 엄청나게 이미 바쁜 업무들로 예민해져 있었기에, 인턴들이 자주 하곤 하는 실수로 조제가 늦어지면, 일이 밀리고 더욱 힘들어질 수 있기에, 질문들과 실무적인 일들은 주로  테크니션으로부터 배우고는 했었다.


30대가량의 키위 테크니션 여성은 그곳에서 9년 정도 일을 했었다는데, 동양인에 비해서 대부분의 키위들이 느리고 게으르다고 하는 오랜 통념을 깨뜨린, 그녀는 정말 영리하고 똑 부러지게 일을 잘하였고, 또 부지런하기까지 하여서 많은 조제실 일들을 그녀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 은근한 심술이라 할까, 질투라 할만한 감정들인지, 종종 그녀는 심한 감정 기복을 보이고는 했었는데, 그녀는 마치 내가 너보다 훨씬 똑똑하고 일도 많이 알고 있으며, 심지어 너를 가르치는데, 동양인이라서  영어도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너는 나중에 약사가 되고, 왜 나는 그때도 테크니션으로 너보다 훨씬 낮은 연봉을 받아야 하는 거지?라는 묵언의 불평이 그녀의 심드렁하고 냉소적인 눈빛과 꾹 다물고 있는 삐뚤어진 입모양에서 그대로 표현되는 것을, 서비스업에 20년 이상 종사해 왔었던, 내 눈에 들어오지 않을 리가 없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을까?




인종에 상관없는 Bully (왕따가해자)



지금 일하고 있는 큰 프랜차이즈 약국이 아닌, 개인 약국에서 매니저로 8년간 근무할 당시, 주말은 내가 쉬어야 했었기에, 토요일에 일할 파트타임으로 일할  50대 후반 키위 약사, 케이트를 고용하였었는데, 어느 날 케이트가 나에게 말해주었던 일화가 있다.


그녀가 다른 바쁜 약국에서 일했을 당시에도, 내가 만났었던 테크니션과 같은 태도의 역시 테크니션 여성이,

"나는 여기 조제실에 있는 그 누구보다 많이 알고 똑똑한 사람이야, 근데 내가 테크니션이라는 게 짜증 날 때는 나보다 실력 없는 약사를 만났을 때야"

 라고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그녀가 실수를 막 했을 때 무례한 어조로 말을 하였다고 한다.


케이트는 키위(뉴질랜드) 여성이지만, 온순하고 의기 소침한 성격의 착한 사람이라서 같은 키위인 테크니션조차도 그녀를 만만하게 보고, 면전에다 대놓고 그런 망발을 내뱉은 것 같았다.


그때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을 꾹 참느라고 힘들었다고 한말, 그 말은 케이트처럼  나도 나의 인턴시절의 그 냉소적이고 오만한 키위 테크니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 그렇게 실력이 좋고 많이 알고 있다면, 도대체, 왜 그러고 있죠?

 당장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일 년 동안 Health Science (건강 과학)에서 전 과목을 좋은 점수를 받고 약대에 합격하고,

그 후 3년간 약대에서 모든 과목과 실습들을 합격한 후, 인턴 약사로 1년간 근무하면서,

동시에 과제와 시험들을  합격한 후, 약사 국가고시를 보세요.

한 번에 합격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달랑 5~6년이면 당신도 약사가 될 수 있을 테니"




 심장에 흉터 있는 그녀 (남 탓)



어느 날 투박한 영어 발음으로 환자에게 약을 건네주며 복용법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던 나의 프리셉터, 벨라는 키위 환자가 그녀의 영어를 여러 번 말해도 못 알아듣자, 그 환자가 간 후 갑자기 나에게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했다. 한 명이 영어를 못하니까, 자기도 저절로 영어가 안된다는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는 그녀를 조제실 매니저를 포함한 5명의 직원 중 그 누구도 말리는 이는 없었다.


그녀는 한날 자신의 심장에는 아주 큰 흉터가 남아 있고, 가끔은 그곳이 결린다며 자신의 오래전 이야기를 한탄하듯이 늘어놓았다.


자신이 20여 년 전 뉴질랜드에 처음으로 이민을 왔을 때에는 너무 가난하였고, 아이들도 어려서 달랑 짐가방 두 개만을 들고 왔었는데, 본인의 나라에서 약사였었기에, 이곳에서 인턴처럼 실습을 하고 그 후 약사 면허를 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 그녀를 채용한 사람이 내가 인턴 약사로 일했던 약국의 주인중 70대의 약사분, 데이비드였었다.


그녀는 많은 같은 실수를 쉬지 않고 연발하였었고, 매번 데이비드가 자신을 모멸하고, 무시하며, 자존심을

삼하게 상할 정도로 야단을 쳤었기 때문에,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었었지만, 자신이 일을 하여야 돌볼 수 있는 어린 두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꾹 참았기 때문에 자신의 심장에 큰 흉터가 깊이 박혀 있는 것이라고 말을 했다.


그렇지만 내가 겪어본 데이비드 약사 할아버지는, 가끔 말투는 퉁명스러우셨어도, 정이 많고 직원들을

아끼며 본인은 엄청 절약하시면서도, 크리스마스 때나 직원들의 생일 때마다 후하게 선물과 대접을 해주며, 그렇게 실수를 연발한 그녀를 내치지 않고 영주권까지 따게 해 주셨던 따뜻한 분이셨고, 그렇기에 그녀가 20년째 아직도 그의 약국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원치 않았던 고해성사


어른들 옛 말씀에 매 맞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남들을 때린다는 말이 저 여성에게도 적용되는 것인지,

그녀는 자신의 인턴 시절과 심장의 흉터를 운운하면서도, 나에게는 더한 트라우마를 안겨주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으로 최선을 다 했던 것 같았다.


그녀는 나의 인턴 실습 마지막에 인턴 지도자가 승인을 해주어야만 치를 수 있는 약사고시에, 결코 승인을 해주고 싶어 하지 않아 했었는데, 주인 약사가 무조건 나를 승인해 주라고 지시하여서, 본인이 부릴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지도자 승인의 마지막 날, 마감 시간에 어쩔 수 없이 승인을 해주고, 그전까지는 나에게 일언반구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녀는 자신의 자존심을 자키고 나를 괴롭히며, 또한 마지막 순간까지 불안감을 선사한 것이라 생각한, 선함과는 거리가 먼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하였다.


그래놓고서는, 벨라는 나에게 하지 않아도 될 고해성사를 토해놓았다.


'나의 착한 남편이 왜 나탈리가 불안하게 빨리 승인을 해줄 것이라는 말을 해주지 않냐고 물어봐서, 내가

그에게 어차피 시간이 지나서 때가 되면 알게 될 것을 왜 내가 미리 이야기해 주어야 되냐고 말했어".




새로운 빌런 등장 (왕따계의 리더)




인턴 지도 약사였던 그녀와 오만한 실력자 테크니션 외에 인턴 기간이 한참 지난 지금 생각해 봐도,  저혈압인 나의 혈압도 오르게 만드는 가장 엄청난 복병은 이제야 출현하려 한다.


주말엔 조제실 매니저와 다른 약사들이 쉬기에, 토요일 약사 그리고 일요일 약사를 일주일에 하루만 일하는 파트타임으로 계약하여 일하는 두 약사 중, 내가 일하는 토요일의 약사인 30대의 인도 여성, 샤메인은 퉁퉁하고 심술궂어 보이는 사나운 인상과 인도인 특유의 아주 센 억양의 영어를 구사하는 오만하고, 역시나 윗사람에게는 간까지 빼줄 것처럼 혹은 입안의 혀처럼 굴지만 , 자신보다 아래라고 생각되는 사람이나 직원에게는 마치 무슨 여왕이라도 되는 듯이 군림하며 남을 깔보는  무례한 태도와 인격을 지닌 여성이었다.


그녀는 내게 처음으로 인도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심어준 사람이었고, 인턴을 마친 후로는 다시는 그녀와, 벨라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테크니션을 볼 일이 전혀 없었다. 물론 보고 싶은 마음은 더더욱 없었지만......




발 뻗을 공간 탐색


그녀는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일단 "간 보기"를 시행한다. 자신이 막 해도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


당연히 나를 처음 만났을 때에도, 첫날은 아무런 문제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아주 친절한 약사인 것 마냥 이것저것을 추가적으로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약삭빠른 그녀는 내가 순하고 남과 다투기를 싫어하며 심지어 당시엔 인턴약사라는 그녀보다 낮은 직급이었었기에, 바로 그다음 주부터, 그녀의 지루한 일상 때우기 혹 취미 생활인, 한 명을 타깃으로해서 왕따 시키기를 나에게 시전 하기를 시작했다.


내가 약사가 되어서 그만둔 후로는, 그녀에 동조하여 나를 같이 괴롭혔었던 중국 테크니션에게 왕따놀이를 옮겨서 해서, 그도 그 후로 곧 일을 그만두었다고 들었다.


그 많은 여러 가지 중,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시전 하는 왕따의 첫걸음은 "생트집 잡기"이다.


예를 들면 같은 조제된 약의 상자에 붙일 라벨에 타이프를 쳐도, 물론 기본적으로 의사의 처방내용을 똑같이 넣지만, 각각의 약사에 따라 추가문구와 구조 그리고 순서는 다를 수 있고,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나는 토요일 하루만 일하는 그녀뿐이 아닌 다른 3~4명의 약사로부터도 일을 배우고 있었기에, 본인이 생각한 라벨과는 상이한, 다른 약사로부터 배운 라벨을 만들었을 때, 그녀는 내가 무슨 심각한 실수라도 한 것처럼 방방 뛰며, 옆의 중국인 남성 테크니션까지 동원하여, 나를 코너로 몰며 생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그녀의 억지스러운 성격아래 같이 몇 개월 일을 했었던 중국인 남성은 여성스러운 화장법과 헤어 그리고 엄청난 유연성으로 어디에 붙어야 본인의 삶이 편해질지에 아주 빤한 여우 같은 남자였다.


그는 그녀가 맞다며 맞장구를 쳤고, 나는 그녀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고맙지만, 다른 약사에게 배운 것을 주중에 사용하고, 주말에는 그녀가 하라는 식으로 하는 것은 인턴인 내가 배우는데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대답하였고, 그것을 내가 그녀에게 하는 도전이라고 받아들였던 모양이다.




그 엄마와 그녀의 그 딸



그날 오후에 조제실의 전화가 울렸고, 그때 샤메인은 약사 상담실에서 환자와 상담 중이었다.


그래서 지금 약사가 환자와 상담 중이니, 연락처와 이름을 알려주면 곧 전화를 드린다 했더니, 아주 퉁명스럽고 무례한 샤메인과 똑같은 인도 억양의 그녀, 자신은 샤메인의 엄마이고 샤메인이 상담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우리 조제실은 굉장히 바쁜 곳이었고, 여러 의사와 메디컬 센터 그리고 다른 환자들의 문의전화도 다 그 전화로 받아야 했었기에, 나는 샤메인의 엄마라는 무례한 여성에게 이 전화는 약국 전화이니, 샤메인의 개인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는 게 어떠냐고 말을 하였다 그러자,


"니 까짓게 뭔데,!! 약사도 아닌 것이 약사인 내 딸과 내가 전화를 하겠다고 또 기다린다는데,

비싼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라는 거지? 네 이름이 뭐니, 나 바로 약국 주인한테 신고할 테니"


그야말로 막무가내 모녀임을 직감하고, 아 저런 엄마니까 저런 딸이 생겨났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내 약국도 아니고 , 담당 약사가 그날그날 일어나는 일의 책임이 있으니, 그녀의 엄마가 전화기를 오래 들고 있어서 생겨나는 고객들의 불평도 그녀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바쁜 조제실 일을 하는 사이, 샤메인이 상담실에서 나오더니, 밀려있는 조제를 대충 사인하고는, 다시 상담실 방으로 들어가서는 2시간 이상, 인도어로 자신의 엄마와 굉장히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통화를 하고 나왔다




첫 번째 반격


그러고는 나에게 내가 자신의 엄마에게 무례하게 굴어서, 약국의 매니저와 주인에게 보고를 한다고 하였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건 결국 그녀와 그녀의 엄마가 약국 전화를 2시간 이상 불통을 만든 일을 자연스레 알릴 수도 있는 찬스이었기 때문이었다.


약사고시가 2~3주 밖에 남지 않은 어느 토요일, 점심을 직원 휴게실에서 먹고 내려오니, 나와 친하게

지내는 약국의 점원인 스테파니가 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샤메인이 조제실의 직원들을 불러 놓고, 나는 그해 약사시험을 붙을 리가 전혀 없기에, 앞으로도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인턴일을 더 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을 모든 직원들이 들었다고 하였다.




그 당시의 나는 인턴약사였고,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공부와 1년 동안의 인턴 기간을 무사히 끝마치고, 약사고시에 합격만 하면 저런 어이없고, 상식 없는 이들을 다시 보지 않아도 되고, 그저 그것도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끝까지 참으려 했었는데, 내가 드디어 폭발을 했다.


나는 샤메인에게, 나에게 할 말 있으면 직접 면전에서 하지, 시험 2주 정도밖에 안 남은 나를 뒤에서 약사라는 사람이 뒷말과 저주를 하냐며 논리적으로 따져 물었다. 예상하지도 못했던 나의 반응과 할 말이 아예

없는 그녀의 변명은,


"아 나는 네가 약사 시험을 잘 보라는 뜻에서, 걱정이 되어서..."


"걱정해 줄 필요 없고, 걱정을 해주는 사람이 내가 약사시험 떨어질게 확실하다고 말을 하나요?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바쁜 듯, 이미 체크가 끝난 처방전 정리를 다시 하기시작했다.


초라한 그녀의 뒷모습......




암묵적인 왕따 동참자


그 지옥 같은 주말이 끝나고, 당시 나의 휴일이었었던 월요일, 나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조제실의 매니저인 렉스에게 면담신청을 하였고, 그동안의 그녀의 괴롭힘과 생트집, 일하는 시간 본인의 엄마와 약국 전화통화 2시간 이상, 그리고 다른 직원에게 한 나에 대한 뒷말과 반복되는 무례함 등에 대해서 말을 하였다.


그런데 그의 반응은 나의 예상을 뒤엎었다.


그는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고, 그녀의 집안에 안 좋은 일들이 최근에 많이 생겨서 아마도 그랬을 수 있다는 말을 하며, 그녀의 변호사 역할을 자처하는 그였다.


그때 다시 한번 나는 나 자신을 자각시켰다.


"맞아! 내가 성격 좋고 쿨하다고 생각했었던 렉스도, 벨라와 테크니션이 나를 타당하지 않은 이유들로,

괴롭히고 무시할 때 동조를 적극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침묵하고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지.

암묵적인 동참자….. “


나는 그녀와 더 이상 같이 일하는 것은 무리이니, 내 스케줄을 바꾸어 달라고 요청하였고, 그 후로 내가 그녀를 다시 본 것은 크리스마스 파티 때 멀찍이 떨어져 앉아서 내 눈치를 보는 그녀가 마지막이었다.




아직도 어디에나 존재하는 왕따




Bullying (왕따, 괴롭힘, 구박)이 지금 10년 차 약사가 된 나에게 끝마침이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다.


때로는 약국주인, 동료, 환자 그리고 다른 의료계 종사자 (의사, 간호사 등), 그 범위는 무한대이고, 괴롭힘과 무시의 형태도 아주 다양하고 때로는 그 행동과 말이 모호하여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하다가, 반복됨으로 인해 깨닫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어른이 되어 또 외국에서 살면서 내가 느끼고 깨달으며 자각하기 시작했던, 나의 여린 성격과 본성이

그런 이들에게는 쉽게 타깃이 된다는 것을 그렇게나 오래 지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공정치 않고, 무례하며, 무시하는 태도로 대할 때 가만히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며,

오래전 한국 어른들의 말씀처럼 "좋은 게 좋은 거지" 혹은 "먼저 용서하고 베풀면, 다 순리대로 돌아오지"

라는 순박하고 착한 태도는 우리 자신을 더더욱 왕따와 따돌림의 상대의 안성맞춤형으로 다가가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다시 매니저로 일하고 싶은 이유



8년 이상 약국의 매니저로 일해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역시 "사람"이었다,


그 사람에는 역시 약국 주인, 의료진들 그리고 동료와의 사람관계도 있겠지만, 내가 말했던 의미에서의

사람은 내가 아플 때, 혹은 다른 직원이 아플 때, 내가 휴가를 갈 때 구해야 하는 로컴 약사 (일시적으로 일해주는 약사)를 의미한다.


휴가 계획을 짜게 되면, 휴가의 기쁨보다는, 휴가동안 나 대신 일할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훨씬

크기에 걱정이 앞서왔었던, 그 8년간의 매니저 일을 떠나면서, 나는 그냥 평약사로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일한 나에게 사람 구할 부담감 없는 찐 휴가를 선물해 주기로 하였었다.


그래서 1년여 전쯤 나는 평약사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인도 주말 약사

샤메인 같은 복병이 또다시 출현하었기에, 조만간 다시 매니저 약사자리로 옮길 계획이다.





발 뻗을 틈을 없애세요, 맞서세요!



누군가가 나를 타깃 삼아 혹은 이유 없이 생트집을 잡고 괴롭힌다면,


1. 자신의 감정을 돌보기: 불안과 슬픔을 정리하며 불공평한 것임을 먼저 인식한다.


2. 증거 모음: 상황을 분석하며 최대한 구체적인 증거를 모으는 게 중요하다.


3. 지지자 구하기: 믿을 수 있는 동료와 친구에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며 조언을 구한다.


4. 매니저에게 상담 요청: 사태가 심각하다면 상사 그리고 인사부서에 정식으로 요청한다.


5. 나의 권리 파악하기:  회사 내에서 직원으로서의 권리, 의무 그리고 왕따와 차별에 대한 법적 사항을

체크한다.


6. 상담받기: 스트레스와 불안을 푸는 게 중요하다.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착하고 선하고 유한 성격의 소유자 들이기에, 그런 일이 생겨나면 제일

먼저 자기 자신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과거의 나와 지금도  Bullying(괴롭힘)을 당하는 현재의 나, 그리고 나와 같은 여린 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저들에게 발 뻗을 틈을 주지 마세요.

 단호하게 대처하면 됩니다.


 불공평하고, 무례하고, 오만하며 자신이 우리보다 위에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 휘둘리지 마세요.


 맞서세요. 더 이상 침묵하지 마세요. 침묵이 암묵적인 동의로 받아들여지니까요.


우리는 왕따에 절대 동의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가장 든든한 자신의 지지자가 되어야 하니까요"


  **이미지: Pexel, Pixa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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