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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alie Nov 06. 2024

생각지 못한 만찬

 "한 지붕 이방인 동거인들 “

|이방인들과 장보기|


다음날 정오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흐느끼시듯 웅얼거리시는 신음을 내시며 누워계시는 내 맞은편 방의 인도 할머니께 착한 홍은 따뜻한 물과 수프를 드렸다고 하였다.


밤새 무사히 버텨주신 할머니가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인도 여성들이 나에게 샴푸와 린스를 사줄 수 없겠냐며 아침에 다시 내 방문을 두드렸다. 착한 홍도 나와 이야기를 나눈 후 조금은 친해진 듯 같이 와서, 그들의 뒤에서 수줍은 듯 미소를 짓으며 서 있었다.



어젯밤에 태어나서 처음 본 우리 여성 피난소 동거인 4명은 근처의 작은 인도 식료품 가게로 향했다.

뉴질랜드에 온 지 거의 2~3년이나 되었지만, 주로 집과 장 보는 곳, 또 그전까지 일했었던 식당과, 가족들을 마중하러 다녔었던 공항 외에는 다녀본 적이 없었기에, 그 지역은 살면서 난생처음 보는 생소하고 낯설고 실로 이상한 곳이었다.


대부분의 상점들과 주택들, 그리고 길을 걷거나 차를 운전하는 이들도 인도인들이 대부분이어서, 오클랜드의 인도인들이 다 그 지역에 모여사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였고,  어느 한순간에는 내가 갑자기 거의 인도 현지에 와있는 듯한 착각도 들 정도였었다.





|전재산의 1/4|


나에게 마지막 전재산이 되어버린 비상금 $200을 다 오픈할 수는 없었기에, 같이 식료품가게에 간 동거인들에겐 내가 가지고 또 장을 볼 수 있는 여유 돈은 $50 (당시 한화로 3~4 만원경)이 전부라고 이야기하였다.


 홍은 당근 큰 한 자루에 3불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들고는 손짓으로 사줄 수 없냐고 물어보아서, 나는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려서 오케이라고 웃어주었다.



 어린 인도 여자애들에겐 요청하였던 샴푸와 린스를 사주었고, 또 다 같이 먹을 빵, 잼, 밀가루와 야채들까지  $50이란 적은 돈으로 꽤나 많은 것들을 살 수 있을 정도로, 그곳은 모든 것이 내가 다니던 뉴질랜드의 슈퍼마켓이나 한국 슈퍼들보다 현저하게 저렴해서 또 한 번 놀랬었다.


 특히 인도 애들은 마지막 남은 몇 센트까지 계산해 가면서, 무슨 과자부스러기가 넛츠 종류와 같이 카레가루에 버무려져 있는 인도 간식까지도 알뜰하게 $50을 소비하였다.





|염치는 사치|


 다음날 자신들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또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확신도 보장도 전혀 없는 어린 그녀들에게는 염치와 민망함 혹은 얼굴 세움이란 그저 사치에 불과했었던 것 같아서 더욱 그녀들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들이 처음에 보았을 때 느꼈었던, 쌀쌀맞고 못되었다는 생각보다는, 이젠 그저 그 어린 여성들에 대한 연민과 딱하다는 안쓰러운 마음뿐이 남아있지 않았다.


착하고 순한 홍은 당근 한 자루를 받아 들고는 연신 감사의 표시를 고개를 숙이며 하여서, 그 선하고 여린 여성을 그렇게나 학대하다니 또 어린 아기는 얼마나 보고 싶을까 하는 생각에 또 더더욱 가슴이 더 아팠다. 저리 가녀리고 순한 아기엄마를... 때릴 곳이 어디가 있다고.... 나쁜 작자...


너무 착하기만 하면서 또 너무 자기 자신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채, 남들만을 위해서 희생하며 살아온듯한 홍은 어딘가 모르게 말은 잘 통하지 않았어도, 전혀 낯설지 않았기에 더욱 나와 서로 통하는 내면의 무언가가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이방인들과의 생각지 못한 만찬|


나는 여성 피난소의 내 방으로 오자마자, 금요일 퇴근 전에 한국인 직원분이 주었던 통조림 토마토 통 두통과 라면 세 개를 홍에게 주었고, 그녀는 감사함을 두 손 모아 머리를 숙이며 표현했고,  본인이 나의 저녁을 준비하겠다고 하였다. 나도 돕겠다며 누워계신 할머니를 제외한 우리 동거인 4명은 또 다 같이 피난소의 부엌으로 향했다.




인도 여자 애들은 내가 사준 밀가루로 넓적한 빵 같은 것을 만들어서 프라이팬에 기름 없이 구워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유명한 Nann (낸)이라는 빵이었고, 나는 난생처음 먹어보는 낸 이라는 빵을 인도여성이 직접 그것도 여성 피난소에서 만든 홈메이드 낸이 되었다. 요즘도 가끔 인도 식당에 가서 낸을 주문하지만,  그때마다 그때가 떠오르며 눈물이 핑돌기도 하곤 하지만, 그때만큼 맛있는 낸은 또 없었던 것 같다.


홍은 당근을 아주 얇게 채를 쳐서 식초와 소금 설탕에 살짝 절인 후 땅콩을 빻아서 베트남식 당근 피클과 내가 준 라면으로 서양식 치킨 인스턴트 면을 모두가 먹을 만큼을 가득 내놓았다.


우리는 낸을  내가 홍에게 내어준 토마토 콩 통조림과  다 같이 나누어서 애피타이저처럼 먹었고, 그리고는 홍이 만든 라면과 당근 샐러드를 먹는 풀 코스 만찬을 생각지도 못한 여성 피난소입소 두쨋날에  먹게 되었다.





|죽고 싶다더니..|


아이러니하게도 지난밤 울며 불며 죽고 싶다며 한숨도 못 잤었던 나는,  또 만난 지 고작 하루밖에 안 되는 아직 서로를 잘  모르는 이방인 여성들과 같이, 또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보는 이방인들의 나라 음식들을 나누어 먹는 또 한 명의 한 지붕아래 동거인이 되어있었다.


게다가 그 음식들은 맛까지도 아주 좋아서, 우리 넷은 잠시 아주 행복한 만찬을 나누어 먹으며, 난생처음 눈을 맞추고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또 갑자기 다들 집이, 또 우리들의 엄마들이 그리워져 버려서 다 같이 또 울먹거리면서도 훌륭한 만찬을 끝마쳤고, 풀 코스니만큼 다 같이 차를 나누어 마시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 누구도 찾지 않고, 기댈 사람도 없고, 머물 곳도 없었던 그야말로 피난민이었던 우리 네 명은 다시 돌아온 각자의 방에서, 갑자기 고요가 또 어둠이 찾아오면 어느 순간 자신의 고국, 가족 그리고 지금의 처지와 불투명한 미래를 또 인생을 슬퍼하며 베갯잇을 적시며 잠들고는, 그 정겨운 고향집에 뛰어가서 따스한 엄마 품에 안기는 행복한 꿈에서 환하게 웃을 수 있겠지....


여성피난소에서의 두 번째 밤이 빨리 지나가기를......


**이미지: Pexel,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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