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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alie Sep 02. 2024

"말해! 그러지 말고....!"

      제대로 속의 말을 못 하는 어른

어른이 되면 나는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었다.

 나이 많이 차이나는 형제자매와 어린 시절을 보냈었기 때문이었을까,

나에게는 언니 오빠와 다툰 기억은 전혀 없고,

때론 칭찬 혹은 꾸지람을 들은 일들만이  있었다.



언제 부터였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가식적인 밝은 성격을 가진 아주 소심한 아이가 되어있었고,

늘 인사 잘하고 성격이 발랄하다는 칭찬을 들으면서 자라났고,

이제는 또 늘 친절하고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 어른이 되어있다.  


그리고 현재는  다들 예상할 수 있듯이 또 착하고 친절한 약사가 되어,

한국 손님들의 외국살이의 하소연과 불평을 다 받아내는 창고역할을 하고 있다.


나에게는 소위 착한 사람 신드롬이 몇십 년 동안 쌓인 만성 중증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착하고 친절하다는  나는 가슴에

말로 표현 못할 꽉 막힌 답답함이라 할까,

아님 옛 어른들의 표현처럼 화병이라 할까 하는,

큰 돌멩이들을 넣어놓고 살고 있었고,


가식적인 친절하고 착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에

어느새 '그냥 다 그렇게들 사는 거지' 하며 안이하게 타협하며,

나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차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채

수십 년이 물 흐르듯이  지나가버렸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나는"나의 제대로 말 못 함"으로 인해서

많은 관계가 나 자신에겐 피해자역할을 떠 안기고,

또 상대방은 결국은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전혀 모르는 채 끝나버린 거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게 되었다.




나의 소심한 말 못 함,  

제대로 자기 생각을 또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이 습관은

그저 일상생활 혹은 대인관계뿐이 아닌 나의 커리어 측면에서도

많은 걸림돌이 되어 또 다른 돌멩이가 내 가슴속에 쌓이곤 한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늘 하시던 "좋은 게 좋은 거지" 식으로,

 대충 내가 참고 견디면 다 좋게 되는 것이 절대 아니었었다.


오히려 그런 나의 사고방식과 태도는,

상대로 하여금 함부로 대해도 되는 편한 상대,

다른 이를 먼저 챙겨도 나는 다 이해해 줄 수 있는 착하고 만만한 상대,

화가 나면 무엇이든 다 풀어내어 쌓아 둘 수 있는

감정의 창고 같은 이가 되어버렸다.



"창고"....

우린 지금 당장 쓸모없고,

왠지 버리기는 주고 산 돈 생각에 주춤될 때,

일단 창고에 보관해 놓곤 하지만,

결국 몇 년이 지난 후 먼지만 수북이 쌓이고

유행도 다 지난 그 물건들을 또다시 쓰레기통에 넣고 하는

그 "감정들의 창고"가 돼버린 나였다.




하루의 반인 12시간의 업무가 끝난 밤 8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나는

약국 앞에 세워둔 차 안에서

가만히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며 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기다리고 있는 일상을 위한 노동 그리고,

또 다른 이들의 감정 창고로서의 역할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나의 이 의기소침한 성격은 상대로 하여

무슨 대화를 하여도

자신이 나의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자존감 그리고 자기주장에 관한 글들을 읽고

배운 데로 이야기를 하려 하면,

상대방은 평소와 다른 나의 말하기에

"사람이 좋게 봤더니 많이 변했네" 라며 되려 더 큰 화를 내버려

결국은 대화가 아닌 다툼으로 끝나 버리게 되곤 한다.


 다툼이라 하면 보통 쌍방이지만

대부분의 나의 경우는  다툼이라기 보단 상대의 화냄,

혹은 일방 그리고 나의  당함 혹은 참음이 대부분인 경우고 어제도 그랬다.

내가 또다시 그냥 말하기를 멈추어 버렸으니까...




특히나 업무가 많이 바빴던 어제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다음날 런치를 준비하고는

좋아하는 일본어 공부를 하면서 최소 한 시간 정도를 쉬는 게

내가 열심히 일한 나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호사였었는데,

  나의 지인은 며칠 째 전화통화가 언제 되느냐 해서

몇 번을 미루다가 결국 어제는 같이 이야기를 하기로 하였었다.




내내 자기 자신의 자괴감, 회의감, 자포자기 같은 반복되는,

 또 이해 안 되는 괴변들을 늘어놓으며,

그런 생각은 잊고 미래를 계획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나에게,

너는 워낙 긍정적인 안 좋은 것도 금방 잊는 천성이라

그런 말을 하고 자신을 이해를 못 한다며 버럭 화를 내고 전화를 끊어버리고는,

 또 얼마 후 혼자 감정 정리가 되면 또 기분 좋게 다시 전화를 해서  

아무렇지도 않게 안부를 묻거나 도움이 필요한 일에 대해서 묻겠지...


이게 과연 건강한 그리고 필요한 관계일까?




상대를 원망하기보단, 이제와서는 이 모든 것의 시작이 "나"라는 생각이 든다.


힘든 일도 금방 잊는 긍정적인 천성! 

그게 바로 밖으로 비치는 나의 가식

실제로는 안으로 끙끙 앓고, 속 터지고, 욕하고, 실망하는 나인데,

나는 한 번도 그 속을 남에게 표현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턴 약사 시절 나를 왕따 시키고 무시하며 괴롭히던 인도 여성 약사의 경우도,

정당하지 않을 때 상대가 무례할 때 바로바로 논리적으로 따져 묻고,

말조심하라고 하였다면,

그 "짓"이 몇 달을 지속됐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오랬만에 다시 만났던  친했었던 옛 동료가

 이렇듯 자신의 힘든 과거, 이혼 그리고 사기 등등의 시시콜콜한 감정들을

속속들이 내게  털어놓았을 때에도,

적정선에서 대화의 바운더리를  정해놓지 못하고,

  모조리 들어준  나의 의도와는 다른,

그러나 습관과도 같은 가식적인 호의 때문에

어젯밤과 같은 스트레스 극기훈련 같은 사태도 만들어 냈던 것이며,




 전 직장에서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

무리한 요구나 부탁까지도 "아니요"라는 말하기조차도 터득하지 못한

나이기에 나는 결국 이렇게 까지 지치고

나 자신에게서도 또 창고에 감정들을 맡긴 이들에게서도

감사받지 못하는 삶 안에서 "최선" 이란 허울아래 허덕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모든 일들은 내가 말하기를 제대로 못함에서 시작이 된 것이다.


어른이어도 아직도 내 의견을 권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나는

이제야 제대로 말하는 법

그리고 자신의 타당한 입장을 고수하는 법,

더불어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지키는 법을 공부하고 배우려고 한다.




다른 많은 "말하기"를 제대로 못 하는 나와 같은 이들에게도

내가 말하기 단 하나의 학습만으로도  어떻게 변화되고 성장하는지 또 ,

그 말하기가 일, 공부, 인간관계

그리고 나 자신의 인생에 얼마만큼의 긍정력을  실어줄 수 있을지

실질적인 일터 그리고 삶터에서의 상황 예시와  나아진 대화방법 등을

 글편지로 나누어 주며 용기와 응원을 주고 싶다.


"욕먹을 준비가 우선이다"에서 계속....


**사진: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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