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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alie Sep 01. 2024

|바둑이 이모|

   "푹신하고 정말 따뜻했던 바둑이 품"

내가 세 살이 되었을 때, 우리 엄마는 아모레 아줌마로 일을 시작하셨어야 해서 동네의 이웃 할머니께 나를 돌봐달라 맡기시고 일을 가셨었다.  


나를 돌봐주시던 할머니께서는 나를 할머니네 집으로 안고 가셔서 큰 고무 대야에 넣어서 씻어 주시고, 머리도 빗겨주시고, 고구마나 옥수수 같은 맛있는 간식도 주셨었지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었던 간식은 단연코 카스텔라였었다.  정말 맛있고 입에서 사르륵 녹는 너무 행복한 느낌을 주는 그 달콤한 카스텔라 덕분에 아침에 나 때문에 거의 매일 울면서 출근하셨었던 엄마를 더 이상 가슴 아프시지 않게, "고래고래 울기"를 그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나를 봐주시던 할머니께서는 연세가 있으셔서 그러셨는지,  매일 같은 시간에 나보고 놀고 있으라 하시고는 , 평상 마루에서 쉬시곤 하셨었는데, 어떨 때는 낮잠을 너무 오래 주무셔서, 혼자서 무료하고 너무도 심심했던 나는 아장아장 계단을 기고 또 걸어서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던 우리 집으로 혼자 돌아오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대학교 때 교양 과목을 공부할 때, "First Memory",  가장 어렸을 때를 기억하는 우리의 각각 다른 뇌와 심리에 대해 배운 적이 있어서, 몇 가지를 집에 와서 엄마와 언니에게 물어보면, 깜짝 놀라실 정도로 나는 아주 어릴 적의 일들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고 하셨다.


예를 들면,  엄마가 내가 아기 때  엎고 있으셨던 보라색에 음표가 그려져 있던 포대기, 나중에 뒷집에 주셨다는데,  나는 그것이  내 것이라며 더 어린 아기를 내리라고 울고 떼썼던 기억, 또 엄마가 나를 뒷집 아는 엄마에게 맡기시고 장을 보러 시장에 가셨 을 때, 잠에서 깬 내가 벽에 있는 벽시계가 우리 집의 것과 달라서 집이 아닌 것을 알고 울어버렸던 일 그리고, 하루는 자고 깼는데 머리가 너무 추워서 큰 거울 앞에 가서 대성통곡을 하였는데, 이유 인즉은 내가 머리숱이 너무 없다고, 옛날 사람들이 전해 듣고 또 믿었던 대로 내 머리 전체를 면도를 하셔서 머리가 하나도 없었던 것 등등이다. 내가 기억하는 위의 일들이 다 2살에서 3살 사이의 기억들이라 하셔서 나도 많이 놀랐었다.  왜냐 하면 "유아기억 상실증"이라 해서 보통은 우리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이 3세에서 4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나의 3살 때의 상황들이 이렇게 내 나이가 되어서 글을 쓸 정도로 기억이 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일수도 있다고, 그래서  더더욱 감사하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나는 그때의 세 살짜리의 기억에서 젊고 너무 아름다우셨던 우리 엄마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 바둑이까지, 나의 기억들을 최대한 3살 아기가 보고 느꼈었던 그대로를 아기 미소와 함께 한 자 한 자  써 내려가려 하고 있다.


해가 쨍쨍했었던 봄날의 한 낮, 엄마와  아버지께선 일을 하시러 가셨었고,  오빠들과 언니는 다들 학교에 간 그 시간,  우리 집에는 아무도 없고 정적감이 흐르고 있었지만,  내 기억 속에는 정말 집 채만큼 컸었던 또 마음씨  좋은 우리 집  바둑이가 풍성한 꼬리와 온몸을 흔들면서 또 활짝 웃으면서  펄쩍펄쩍  뛰면서 나를  반겨주었었다.




나는  혼자서 집에 올라오는 내내 작은 손에 꼭 쥐고 있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눅눅해진 카스텔라를 바둑이와 반반씩 나누어 먹고, 우리는 함께 뜀박질, 노래 부르기, 춤추기 그리고  또 술래잡기도 하며 신나게 놀고는  했었다. 


 꽤나 따뜻했던 봄  날씨 탓이었을까,  아님 잠이 많은 어린 나와 바둑이어서였을까, 우리는 너무 피곤하고 졸려져 버렸다.

우린 같이 바둑이 집 앞으로 가서는 볕 잘 드는 마당에  둘이서 딱 붙어서 기대앉아 있다가는 그대로   잠이 스르르 들어 버리고 말았다.


바둑이는 정말 따뜻했고, 푹신했고, 다정하게 꼭 안아주듯이 작은 나를 품어 주어서 둘이 푹 단잠을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겐 천사가 소리를 낸다면 바로 그 소리일,  또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우리 엄마가 내 이름을 부르시는 그 목소리가 들렸다. 


어 이거 꿈인가?  아니다.   꿈이 아니었다. 진짜! 진짜로 우리 엄마 셨었다!. 


일을 하시던 도중에 세 살 베기 막내가 걱정이 된 엄마께서  그 근처에서 화장품을 판매하시고는, 잠시 집으로 내가 잘 있나 보시러 오신 거였었다.  할머니 집에 들렀는데 내가 없었기에 너무 놀란 나머지 그 가파른 언덕을 단숨에 막 뛰어 오셔서 숨이 가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 엄마는 우리 둘을 보시고 나서야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쉬셨다.


엄마는 활짝 웃으시며 나와 바둑이에게 말씀하셨었다.


"에고 둘이 자고 있었네!  우리 아기를 바둑이가 이렇게 착하게 잘 봐주고 있었네?" 


바둑이도 나도, 우린 너무 좋아서 신나서  펄쩍 뛰면서 엄마에게 달려갔고 엄마는 우리 둘을 꼭 안아주셨다.


마음씨 좋고,  푹신하고, 따듯하고 다정하게 웃고 있던 우리 바둑이는 내겐 진정 너무 좋은 내 이모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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