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talie Oct 25. 2024

소문난 이발관 1

 " 색동저고리와 청멜빵 "

|주상복합 팬트하우스|


내가 7살 때부터 우리 가족이 살았었던 집은 요즘의 용어로 치자면 주상 복합건물 3 층짜리의 펜트하우스, 옥상집이었다.  


해가 아주 잘 들고, 동네 사람들이 뭐 하는 지도 잘 보여서 재미나고, 일층 유리집 딸, 내 친구 현주한테는 소락대기 큰 나는 담 밑을 보며 대화도 가능한 그 팬트 하우스에서 정말 무지하게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바로 밑의 이층에는 주인집 뚱땡이 아줌마 (동네사람들이 붙여준 별명) 그리고 같은 층에 세 들어 사시는 김풍자 아주머니네 가족들 그리고 일층엔 내 친구 현주네 유리집과 그 바로 옆에는 "소문난 이발관"이 있었다.




|병아리와 소문난 이발사 아저씨|


내가 초등학교 앞에서 너무 귀여워서 사가지고 온 노란 병아리는 세 마리나 옥탑집 마당에서 잘 자라나서 닭이 되었고, 우리 닭들은 무슨 일인지 배변활동을 위해서는 꼭 옥상의 담 위로 올라가서 엉덩이를 바깥쪽으로 향해서 발사를 하곤 하였었다. 자기네 마당을 깔끔하게 유지하려던 것이었을까나?…


소문난 이발관 아저씨들이 아침에 기지개를 피시는 그 타이밍에 절묘하게도,  그 닭들의 엉덩이는  아저씨의 대머리를 공략했고 대부분 명중이었다.

화가 난 아저씨가 옥상으로 뛰어 올라오시면 닭들은 닭장에 있었고, 집 안의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저씨의 이마를 보고 나서야 알게 되곤 하였었다.

그 닭들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지... 닭들은 뭐 별반 생각이 없었겠지?...


그 후에 엄마께선 이웃에게 폐가 된다며, 닭 세마리 모두 마당이 큰 외삼촌네 댁으로 보내버리셨다.


아버지와 두 명의 오빠들은 주기적으로 그곳에서 이발을 하고는 하였고, 동네 아버지 친구분들도 모두 소문난 이발관의 단골손님이셨다.


당시는 이발관에서 이발을 하시면, 서비스였는지 추가 옵션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면도와 손톱정리까지 해주었기에 시간에 꽤나 걸리는 듯했다.




|사건의 서막|


어느 날 저녁, 엄마께서 나를 부르시더니, 저녁이 다 되어가니 이발을 받고 계신 아버지께 내려가서 빨리 저녁 식사드시라고 말씀드리라고 하셨다. 나는 우리 옥상집 3층에서 일층까지 한걸음에 우당탕탕 뛰어 내려가서, 소문난 이발관의 가게 문을 활짝 열고는 우렁찬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아버지~~~ 엄마께서 저녁 다 되었으니 올라 오시래요~~"


아버지께서는 그때 면도를 받으시는지 하얀 면도 거품이 턱에 가득 올려진 채로 뒤로 기대어 눈을 감고 계셨다.





|새로 온 예쁜 이발사 언니|


새로 온 예쁘고 젊은 이발소 언니가, 갑자기 나를 번쩍 안더니, 이발 의자에 앉혔다.


영문도 모르고 무얼 하려는 지는 몰랐지만, 일단 나는 잠자코 뭘 해주는지 보기로 했었던 건지, 아님 어린아이였고 모르는 언니라서 부끄러워서 아무 말도 못 했었는지 아무튼 나는 그대로 의자 위로 옮겨졌었던 같다.


언니는 내 머리를 가위로 조금씩 다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면도기를 들이대고 옆머리와 뒷머리를 전체를 다 아주 시원하게 밀고 있었고,  점점 군인 아저씨같이 사내화 되어가는 천상 소녀인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크게 울음을 터뜨려버리고 말았다.




|이발사 언니! 아뿔싸..|


놀란 아버지께서 그제야 눈을 뜨시더니, 이발소 언니를 한번 쳐다보시고 다시 나를 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얘는 우리 집 막내딸이야, 둘째 아들이 아니고, 아들내미 머리가 너무 길어서 잘라준다길래 나는

우리 둘째인 줄 알았지."


그렇다!!. 그 언니는 나를 아버지의 아들로 착각했던 것이다.


우렁찬 내 목소리와 몇 달 전 커트머리를 한 후 엄마께서 추석에 한복을 입히시려고, 머리를 기르도록 방치한 내 머리를 언니는 소년이 오랫동안 이발을 안 한 걸로 완전히 착각을 한 것이었다.


결국 못 입어본 색동저고리



|엄마의 순한 공격|


꺼이꺼이 서럽게 울면서 올라온 나를 보신 엄마는 너무 화가 나셔서, 저녁을 지으시다 마시고는 곧바로 나를 다시 데리고 소문난 이발관으로 내려가셨다.


"아니, 남의 집 딸 머리를 이렇게나 밀어 놓으시면 어쩝니까? 당장 내일모레 추석이라 애 색동저고리까지  사 왔는데, 에고 이걸 어째, 언제 또 머리 길러 여자애처럼,  속상해서..."


소문난 이발관 사장님과 새로 온 언니는 연신 정중하게 죄송하다고 사과하셨고, 착하신 엄마는 이웃끼리 어쩔 수 없죠라고 말씀하시고는 바로 아주 쉽게 철수하셨다.




|내 색동저고리..|


다음날 엄마는 나와 언니를 데리고 다시 색동저고리를 구입하셨던 홍제동 인왕 시장으로 가셨다. 아주머니들도 평소에  인사성이 바른 나를 잘 알고들 계시는데, 다들


"에고 아 머리가 와 이라노, 뭐 하려고 딸아이를 저래 밀어 놨는고, 예쁜 남자아이를 만들어 놨네, 쯧쯧"

라 하시며, 결국 그 예쁜 색동저고리는 입어보지도 못한 채, 청 멜빵바지로 교환을 해주셨다.


|나만 슬픈 이유|


추석이 끝나고, 초등학교 2학년 교실을 들어가야 하는데, 뒷문에서 몇 번을 망설이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 갔지만, 아니나 다를까 다들 손가락으로 가르치며, 손뼉을 치고 여자아이들은 입을 가리고, 교실이 난리 법석, 웃음 북새통이 되어버렸다.


 반 전체에서 슬픈 아이는 나 하나뿐이었다...




|까불이 가을소풍|


그로부터 2주 정도 뒤, 우리 학교는 가을 소풍을 갔다.


당연히 나는 엄마께서 새로 사주신, 유일한 신상 청 멜빵바지를 입고 갔었고, 언니가 나를 사진을 찍어 준다고 나무에 서라 했어서, 찍은 흑백사진이 아직도 있다니.... 그나마 머리가 살짝 자라난 것 같다.


-그해 가을 소풍-색동저고리와 교환한  청 멜빵



몇 주 전에 집 창고를 정리하다 , 우연히 찾은 청 멜빵바지를 입고 까불이처럼 서서 웃고 있는 8살, 나의 사진을 보고는  소문관 이발관 해프닝이 생각나서 혼자서 빙그레 웃었고, 잊고 지내던 아주 오래전 그때의 추억들이 생각이 났다.


이 청멜빵 가을 소풍 사진을 내가 절대 잊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로부터 몇 년이나 지난 후의 일 때문이다.


-소문난 이발관 2에서 계속-


**이미지: Pexel, Pixab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