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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talie Oct 27. 2024

소문난 이발관 2

 " 이발받아서 너무 행복했던 소녀“


|과제같은 위문편지|


산으로 들로 나의 단짝 재롱이와 행복하게 뛰어다니던 초등학교 6년을 그래도 개근상 하나는 받고 때가 되어 졸업을 한 후, 추첨으로 정해진 평창동 (부촌이지만 초등학교만 사립)에 위치한 당시의 상명사대부속 여자 중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요즘의 학생들도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그 당시에는 늘 무작위로 국군 장병 아저씨께 학생들이 위문편지를 보내고는 하였었고, 나도 최선을 다하고 진심을 다해서, 위문편지를 써 내려갔다.


물론 그때는 선생님께서 하라고 하셔서 한, 마치 과제와도 같은 위문편지였었지만…





|국군 장병 아저씨께|


안녕하세요, 용감하시고 고마우신 국군 장병 아저씨


저는 상명사대 부속 여자 중학교 1 학년 8반에 다니고 있는, 정선영이라고 합니다.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날에도 해가 쨍쨍 내려쬐는 무더운 여름날에도 일 년 내내, 우리가 편안하게 잠잘 수 있고, 평화롭게 살 수 있게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이 위문편지에 같이 넣어서 보내 드린 사진은, 제 남동생이 아니고,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닐 때의 바로 저랍니다. 저는 막내라서 동생은 없고 언니랑 오빠만 있어요.



저희 옥탑집 아래 일층에는 소문난 이발소가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이발하실 동안 엄마께서 저녁식사하시라고 말씀드리라 하셔서 내려갔었는데, 이발소 언니가 제가 아들인지 알고, 아버지께서 면도받으시느라 눈 감고 계실 때에,  그 언니가 제 머리를 남자애 머리로 자르고 면도기로 머리도 다 밀어버렸답니다.


제가 울음을 터뜨리자 그제야 눈을 뜨신 아버지께서는 제가 아들이 아니라 딸이라고 말씀하셨었지만, 이미 제 머리는 뒤통수가 군인아저씨들처럼 다 훤하게 면도가 된 상태였지요.


제가 너무 갖고 싶어서, 엄마께서 추석 때 저 입으라고 사주셨던 색동저고리를, 머리 때문에 시장에 도로 가져다주시고 지금 사진에서 보시는 청 멜빵바지로 바꿔 오셨어요.

저는 정말 색동저고리가 많이 입고 싶었었는데, 결국 못 입어서 너무 속상해서 많이 울었답니다.


그런데 몇 주 뒤에 가을 소풍 갔을 때에는 청 멜빵바지도 정이 들었는지 많이 좋았어요. 언니가 귀엽다며 그 소풍날 찍어준 사진이 제가 편지에 넣어서 보내드린 바로 그 사진이랍니다.


힘드실 거라서 제가 저 사진 보시고 웃으시라고 못생기게 나왔지만 사진도 보내 드렸어요.


국군 장병 아저씨께서 나라를 잘 지켜주시는 동안, 저도 공부 열심히 하는 착한 학생이 될게요.


안녕히 계세요


선영이




|박상혁 군인아저씨|


선생님께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국군 장병 아저씨께 보내는 편지를 써오라 하셨어서, 나름 정성껏 편지를 써왔었고 학교에 숙제처럼 낸 그날 이후로 나는 그때의 위문편지를 보냈었던 사실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 착하신 국군 장병 아저씨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답장이 올 때까지는...

지금 생각해 봐도 정말 따뜻하고 순수한 어린 청년이다.





박상혁 군인 아저씨께서는 내게 정성껏 친절한 감사의 답장 편지를 보내주셨고, 내 편지 덕분에 온 부대 군인 아저씨들이 다 같이 유쾌하게 웃고 너무 재미있는 감동의 위문편지라고 하셨다. 


나는 정말 뛸뜻이 기뻤었다.

내가 보내드린 위문편지로 인해서 온 부대의 국군 아저씨들께서 재미나게 웃으시며 즐거우셨다니…


그 후로도 몇 번 박상혁 군인 아저씨와 위문편지 그리고 답장을 주고받았었다




|군인 아저씨, 꼬마 군인|



지금 중년이 된 내게는 국군 장병분들은 꼬마 군인, 어린 군인 청년들, 군인이 된 소년들이 되어 버렸네…


그렇지만 중학교 1학년의 그 당시의 나에게는  정말 늠름하고 멋지고 믿음직스러운  군인 아저씨였었다.


그런 멋지고 훌륭한 국군 아저씨와 위문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것 자체가 13살의 나는 너무 기쁘고 신기했었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자랑을 하며, 아저씨와의 편지는 책상 서랍에 고이 간직하고 여러 번 읽어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상혁 군인 아저씨께서 위문편지 공모전에서 내가 맨 처음 보내드렸던 위문편지 사연이 1등으로 뽑혀서  포상휴가를 나올 수 있다고 하셨다.


지금처럼 이메일도 핸드폰도 없던 그 시절, 나는 박상혁 군인 아저씨를 만나기로 한 날, 시간과 장소를 손 편지로 약속하고는, 떨리고 긴장되어서 아저씨를 만날 수 있는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문난 이발관 3에서 계속-


**이미지: Pexel,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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