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살과 사실 사이
2020년 기준 성인 30대 이상 6명 중의 1명 꼴로 당뇨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이 이야기는 나와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주 코 앞에 다가와 서있다. 너무 가까운 거 아닌가요.. 저는 준비되지 않았습니다만..
인터넷에 검색해 본 증상과 나의 증상을 대조해 가며 수많은 병명들을 차기 후보로 선정하다가, 그냥 병원을 가보기로 했다. 진작 그러면 되지 않았나 싶겠지만, 여기는 독일이다. 병원 가는 일부터 내가 원하는 치료를 받는 것까지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려운 일인 나라다. 일론 머스크 덕분에 차라리 별 따는 게 쉬워질지도 모르겠다. 과장을 꽤 보태기는 했지만, 병원 가는 일이 쉽지 않은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마음먹은 날, 아픈 당일 날 병원에 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나는 며칠 동안 구글 지도와 검색을 통해 이 병원 저 병원 알아보다 겨우겨우 집 근처에 있는 하우스아츠트(Hausarzt : 독일의 주치의 개념. 기본적인 검진을 이곳에서 주로 한다.)를 선정해 예약을 잡았고, 그렇게 또 몇 주를 기다린 끝에 병원에 방문할 수 있었다.
일을 마친 뒤 오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가서 내 증상들을 얘기했다. 자세한 얘기를 더 하기 위해선 피검사와 소변검사가 필수였는데, 그 검사들은 오전에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오전에는 일을 해야 해서 예약을 잡기 어렵다고 말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딱해 보였는지, 오후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피검사와 소변검사를 진행해 주었다.
일주일을 또 기다린 뒤 병원에서 검사결과를 받아보았다. 혈중 크레아티닌 수치, 콜레스테롤 수치, 당화혈색소 수치, 단백뇨 수치 그리고 알부민 수치가 정상 수치를 약간 웃돌고 있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직 당뇨가 아니라 당뇨 전단계라는 사실이고, 다행 중 다시 불행인 것은, 나는 당뇨 전단계임에도 불구하고, 당뇨병이 오래 지속되었을 때 나타나는 증상 중 하나인 당뇨병성 신증 증상들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의사는 혈당과 혈압을 꾸준히 조심하고 관리하면 당뇨로 더 진행되지 않을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높은 단백뇨 수치가 원인불명이라며 신장 전문병원에 예약을 잡을 수 있게 위버바이 중(Überweisung : 진료 의뢰, 추천서 개념)을 써주었다.
신장전문병원에 예약을 잡고 기다리는 몇 주 동안, 열심히 독일어와 영어와 한국어를 비교해 가며 검사결과지를 수능 공부 때보다 더 열심히 파헤쳐보았다. 그렇지만 계속 궁금증 하나가 사라지지 않았다. 신장과 당뇨, 대체 어디에 더 집중해야 하는 거지? 흔히 당뇨 관리를 위한 식습관이라고 하면, 흰쌀밥, 떡, 빵, 케이크,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의 단순당 음식, 즉 혈당이 급격하게 올라갈만한 것들을 피하고, 대신 단백질 섭취를 늘리면서 열량을 채울 수 있게 하라고 한다. 그러나 신장관리로 가면 오히려 단순당 음식을 통해 열량을 채우고, 잡곡밥 대신 쌀밥을 먹으라고 한다. 이외에도 칼륨과 인의 섭취를 제한하라고 하는데, 이 칼륨과 인이란 게 참, 별의별 곳에 다 들어있다는 게 문제다.
주의식품 (칼륨함량이 높은 식품)
채소류 : 아욱, 근대, 쑥갓, 시금치, 미나리, 양송이버섯, 늙은 호박, 죽순, 머위, 부추 등
과일류 : 토마토, 바나나, 참외, 멜론, 건과일(건포도, 곶감 등), 천도복숭아, 키위
기 타 : 잡곡류, 두류(콩류, 동부, 녹두, 팥 등), 감자, 고구마, 토란, 밤, 초콜릿, 캐러멜, 로열제리
주의식품(인함량이 높은 식품)
유제품 : 우유, 치즈, 요거트, 아이스크림, 커스터드크림
어육류 : 멸치·뱅어포등의 건어물, 명란/대구알, 육류의 간, 햄
기 타 : 콩· 팥등의 잡곡류, 땅콩·호두·아몬드등의 견과류, 콜라, 초콜릿
먹을 게 너무 없어졌다. 원래도 이 독일이란 나라가 먹을 게 많지가 않아서 이래저래 고통받으며 지내왔건만, 저 위에 나와 있는 음식들까지 피해 가며 먹자니 막막함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평생을 빵과 가까이 지내며 살아야 하는 내가 빵도 맘 놓고 먹질 못하고(원래도 맘 놓고 막 먹을만한 건 아니긴 하다), 독일 유학생활 중 나와 가까워진 바나나도, 토마토도, 감자도, 소시지도, 치즈도, 요거트도, 견과류들도 전부 조절해야 한다니!
이젠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