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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줄 알았다.

by 사사개미

빵냄새와 기름냄새에 지친 토요일. 일을 마치고 난 뒤 내가 찾게 되는 건 늘 '뜨겁고 빨간 것'이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토요일까지 요리를 해 먹어야 한다는 건 꽤나 힘든 일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본다. 그렇게 퇴근길에 가게 근처에 있는 아시아마트에 들러 라면을 사 와 끓여 먹고 낮잠을 푹 자는 것이 토요일의 루틴이 되었다. 이런 루틴에서 내가 걱정하던 건 겨우 역류성 식도염뿐이었다.


하루가 아쉬워 늘 수면 시간은 6시간을 넘기지 않았고, 출근날엔 아침잠이 아쉬워 늘 아침 식사를 걸렀고, 출근 뒤엔 배가 고프니 늘 빵을 집어 먹곤 했고, 퇴근 후엔 피곤하니 하루에 한 끼, 그것도 원팟요리 위주로 먹었다. 저녁에 배가 좀 고픈 거 같은 날에 내가 주로 먹던 건 뮤즐리와 시리얼이었다. 적어놓고 나니 참, 아주 고사를 지낸 셈이다.

이런 나날이 그저 피곤하다는 핑계 하나로 몇 년이 되도록 쌓여만 갔다. 몸이 좀 안 좋아졌다고 느끼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소변을 보고 난 뒤 떠있는 거품은 원래 있는 건 줄 알았다. 일이 끝나고 용변을 볼 땐 늘 피곤한 상태였으니까. 그래서 색도 항상 좀 진했으니까.

손은 자주 틀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겨울이 되면 손 발이 차고 건조해서 종종 트곤 했으니까. 일이 일이다 보니 물도 밀가루도 자주 만지기도 했고, 독일은 꽤나 건조한 나라니까.

입에 구내염이 자꾸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늘 피곤하고, 운동은 그다지 안 하고, 먹는 것도 한국과 비교해선 조금 부실하게 먹게 되니까. 햇빛도 비타민도 조금조금씩 모자랄 테니까.


그렇게 몇 년을 보낸 뒤 2024년 어느 날, 애인이 나 다음으로 화장실을 쓰고 나오며 말했다.

"변기에 왜 자꾸 거품이 남아있지?"


피곤해서 땅만 보며 걷듯 지내온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내 앞에 갑작스레, 아니 이제야 모습을 드러내 내 삶에 그늘을 드리운 건 '당뇨'와 '신부전'이었다.


모든 건 당연한 게 아니었다. 소변 위의 거품도, 자꾸만 덧나는 입 안도, 건조한 손과 몸도, 정상이 아니었다. 어딘가 망가져가는 몸의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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