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된 실패의 일 년
예술적인 창작물로 세상에 던질 거창한 질문과 할 말이 많다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아니었다. 할 말이야 많았지만, 예술적인 것엔 영 깜깜했다. 명확히 주어진 일이 아닌 것엔 열성을 다하지 않았다. 어학증명을 위해 다니던 학원은 꾸준히 다니며 숙제도 복습도 열심히 했건만, 작업엔 손이 가질 않았다. 혼자선 도저히 진행되는 것이 없어 개인과외도 받아봤지만 헛수고였다. 텅 빈 캔버스와 작업 노트를 보며 무언갈 해야 한다는 강박에 그렇게나 시달리면서도 나는 점점 방 안으로, 침대 속으로, 스마트폰 화면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타국에 나와 혼자가 되어 입시를 준비하며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은, 나는 생각보다 더 게으르고 수동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거의 일 년을 공치고 강박과 나태 사이에서 내게 남은 건 진한 우울함과 텅 빈 슈페어콘토(Sperrkonto : 1년 치 생활비를 미리 넣어둔 계좌. 한 달에 일정 금액만 인출이 가능하다. 비자 발급 시 필요하다.)뿐이다. 나는 우울증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한국에 잠시 돌아가 지냈다. 도망쳐 나온 도피 유학에서 다시 한번 도망친 셈이다. 한국에선 낮엔 늦잠을 자고, 저녁엔 무작정 뛰러 나갔다. 약기운 덕분(?)인지,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두루뭉술한 모양새를 한 채로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 못했고, 생각이 깊어질 거 같은 밤에는 그 생각에서 벗어나려 달리고 또 달렸다. 그렇게 3주를 보내고, 다시 독일로 돌아왔다.
이젠 정말 어찌해야 하나 싶던 어느 날 애인이 물었다. '굳이 미술을 계속해야겠어? 이렇게 본인을 갉아먹으며 해야 하는 게 너의 직업, 생업이 된다는 걸 견딜 만큼 이걸 하고 싶은 게, 해야 하는 게 맞아?' 예술을 정말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해야 하는 일인지, 하고 싶은 일인지.
둘 중에 하나에 맞춘 일을 선택하던, 둘 다 충족하는 일을 찾던, 생업을 갖는 일이란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하지만 그보다도, 이런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흔히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처럼 다가오기도 한다는데, 나는 그냥 약간의 죄책감과 커다란 안도감을 느꼈던 거 같다. 혼자만의 집착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허락을 누군가 해주기를, 재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달려 있던 나의 아집을 꺾어주기를 기다렸던 걸까? 멀디 먼 타국에서, 돈도 시간도 펑펑 쓰고 난 뒤에?
사실, 이런 고민을 진지하게 하기 두려웠다. 그래서 피해왔다. 늦었다는 생각을 다른 핑계들로 무마하며, 예술밖에 없다는 듯, 원래 '예술'이 그렇다는 듯 나 자신과 주변까지 속여왔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나의 고집은 미래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에 대한 집착이었다. 공부는 특출나지 않았었고, 이것밖에 한 게, 할 줄 아는 게 없었으니.
그러고 난 뒤에 애인이 제안한 것은 바로 제빵이었다. 이유는 단순히, 내가 '빵을 좋아하니까'. 물론 이 나라가 빵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그 일을 정말 좋아하는지'였다.
그렇게 곧 만료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에, 뜬금없는 예체능 이력에, 일 경험이라곤 프랜차이즈 카페 알바 경력 밖에 없던 나였지만 운이 좋게도(이후 일어날 일들을 생각해보면 운이 나빴던 걸지도 모르지만) 금세 취업에 성공했다. B2 레벨까지 따놓았던 언어 자격증이 무색한 한인 빵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