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제대 후 폭풍 같은 1년이었다. 나는 다들 그렇게 뜯어말리는 과CC 출신(?)이었고, 복학했을 땐 역시나 혼자였다. 그나마 같은 학년에 나와 같은 처지의 복학생이 한 명 더 있어서, 어찌어찌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갈 수는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현실에서 약간 어긋난 채로 표류하고 있는 듯했다. 그 해에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와 절교했고, 날 아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내가 모르는 사람들마저 전애인 얘기를 꺼내는 데다, 심지어 그 전애인과 끝나지 않았던 문제로 다시 만난 뒤 애매한 사이로 남아있게 되었고, 한 술 더 떠 전애인이 복학 후 친해졌던 그 친구과 만나게 되면서, 나의 현실감각은 지구를 벗어나 우주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미술도, 사람도, 일과 사랑도 무엇 하나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나는 미술을 하기엔 촌스럽고 과하게 진지했으며, 사람들과 가까워 지기엔 너무 소극적이고 생각이 많았으며, 일에는 일머리가 안 붙고, 사랑은 진창 속에 떨어트린 솜사탕이었다.
밤에 어두운 시골길을 달리는 차 안 뒷좌석에서, 하염없이 모호해지는 캄캄한 풍경을 바라본다. 그러다 결국 시선이 닿게 되는 곳은 그 모호하고 까만 풍경이 아니라, 창문에 비친 밖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다.
도피 유학이라고들 한다. 목적의식 없이 한국을 떠나 외국의 대학에 진학하면 무언가 달라질 거라 믿는. 그곳에선 내 작업이 통할지도 모른다고, 대학에 붙고 나면 많은 게 달라질 거라고 근거 없는 낙관 속에 흐물거리던 나의 모습을 서둘러 포장했다. 나는 그렇게 모아둔 돈도, 뚜렷한 목표도, 무엇보다 참 겁도 없이 '도피'유학을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