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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린남 Dec 06. 2020

언제까지 따라갈 수 있을까

공인인증서 갱신하다가 성질나서 쓴 글

일 년에 세 번. 공인인증서 갱신의 날을 맞이한다. 어쩌다 보니 공인인증서를 세 개나 가지고 있던 나는 원활한 은행업무를 위해서는 일 년에 총 세 번, 공인인증서를 갱신하고 스마트폰으로 옮겨 닮는다. (나는 개인용, 사업자용, 세금계산서용 총 세 개를 가지고 있다... 아휴 귀찮아.)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내가 가진 인증서 중 두 개를 갱신해야 하는 날. 계좌이체를 하려다가 오늘이 공인인증서를 갱신해야하는 마지막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허겁지겁 은행 어플로 갱신을 시도하지만 오류가 난다. 이유는 모른다. 급한 대로 은행 웹사이트로 들어가서 공인인증서를 갱신한다. 몇 번의 알림 창이 뜬다. 내가 뭔가를 잘 못했다는 뜻이다. 그럼 그렇지. 나는 단 한 번도 공인인증서를 한 번에 나이스 하게 갱신한 적이 없다. 몇 번이고 헤맨다. '여기였나.' '이거였나.'여기저기 눌러보다가 화가 치밀어 오를 즈음, 공인인증서 갱신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즈음, 갱신에 성공한다. 이왕 시작한 김에, 다른 은행의 공인인증서도 받는다. 다른 은행인만큼 또 비슷한 시간이 걸렸다.


짜증을 내며 USB를 맥북에서 추출하고 은행 웹사이트가 열려있던 브라우저를 닫았다. 그러다 문득, 언제까지 공인인증서 갱신을 해야 하나 생각했다. 내가 언제까지 공인인증서 갱신을 스스로 해내며, 발전하는 디지털 문명의 시스템을 무리 없이 좇아갈 수 있을지 생각했다. 나름 디지털 세상에서 무리 없이 순응하며 뒤처지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지만 겁이 났고 두려웠다. 가까운 미래에 나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발전의 속도를 좇아갈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 은행에서 마주한 풍경을 떠올려본다. 은행원은 또박또박 큰소리로 건너편에 앉아있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설명한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단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설명한다. 듣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말하는 은행원도 답답해한다. 간단한 업무도 시간이 배로 걸린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긴 한 숨소리가 새어 나온다. 언젠가 나도 저렇게 큰 소리로 반복해서 설명을 들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때가 오겠지. 무사히 따라가던 변화의 속도를 언젠가는 놓쳐버릴 때가 오겠지.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은행을 빠져나왔다. 마음 한쪽 구석에 안도감과 두려움을 새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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