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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린남 May 31. 2020

어쩌면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은 그놈의 ‘언젠가’일지도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남편과 내가 함께 살던 첫 번째 신혼집은 침실 하나와 화장실, 부엌, 그리고 거실이 있는 작은 집이었다. 방은 하나뿐 이었지만 둘이 살기에 딱 좋아서 가끔씩은 넓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2년을 살다 보니 어느새 집 안에 빈 곳이 없을 정도로 물건이 가득 찼다. 물건이 어찌나 많은지, 방 안을 슬쩍 둘러보기만 해도 그 수가 백 개는 거뜬히 넘어 보였다. 작은 연필 하나부터 몸집 큰 가전제품까지, 물건으로 가득한 집 구석구석을 보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괜히 숨도 안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이 많은 물건은 언제부터 여기에 놓여 있었을까.


처음 이사를 오고 나서 신혼의 설렘을 가득 안고, 필요한 것들을 채워나간 기억은 제법 선명하다. 각각의 위치와 필요에 따라 나름의 인테리어까지 신경 써서 구입한 가전 가구는 언제 어디에서, 얼마에 샀는지까지 세세하게떠올랐다. 그러나 그 이후에 마련한 것들은 달랐다. “이건 언제 샀더라? 왜 샀지? ” 언제 이 집에 왔는지조차 가물가물한 물건들이 우리 집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껏 내 공간을 애정도, 쓸모도 없는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이 분했지만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었다. 그저 구석구석의 물건들을 하나씩 들쳐보고 비우면서 원인을 파악해볼 뿐이었다. 일종의 오답노트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밝혀낸 원인 중 하나는 ‘주변의 온정과 손길’이었다. 호주 한인 문화가 그런 건지, 아니면 원래 신혼부부에게는 주변 사람들의 따듯한 손길이 잘 닿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결혼 후 여기저기에서 우리에게 살림살이를 건넸다. “이런 거 필요할 거야. 줄까? ” 초보 주부인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덥석 물었다.필요하다고 하니까, 정말 필요할 것 같았다. 공짜로 물건을 준다고 하면 괜히 돈이 굳은 것 같아서 거절하지 않고 집으로 들였다. 그것도 완전 냉큼. 신이 나서 가지고 온 물건들은 깨끗하게 닦은 후 우선 주방 상부 장과 구석진 곳에 잘 넣어뒀다. 언젠가는 쓰일 일이 생길 거라 믿고 기다렸지만, 안타깝게도 물건 중 대부분은 방치됐다.



짝이 맞지 않는 유리그릇 세트를 얻어왔을 때, 여기에 아이스크림을 담아 먹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럴싸한 디저트를 담아 손님들에게 내놓는 기대도 품었다. 하지만 상부 장 맨 꼭대기에 올려놓은 유리그릇을, 특히나 조심성 없는 내가 쓰기란 무리였다. 게다가 그릇을 받아오던 날 설거지하다가 하나를 깨뜨렸고, 유리그릇은 건드리기도 어려운 존재가 됐다. 플라스틱 양념통을 받아왔을 때는 단지 새것이라는 이유만으로 ‘득템’한 기분이었다. 서랍장 형태의 통에 설탕과 소금, 고춧가루를 넣으면 되겠다고 구체적인 계획도 짜놓았지만, 슬프게도 플라스틱 양념통 역시 상부 장에 넣어둔 후 한 번도 꺼내지않았다. 사실 우리 집에는 새로운 양념통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민트색과 초록색으로 뒤덮인 플라스틱 양념통은 밖으로 꺼내두고 사용할 만큼 예쁘지도, 딱히 내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그런데 대체 왜 얻어왔지?). 그 외에도 좋아하지 않는 향의 향초, 발이 불편한 슬리퍼, 우중충한 그림이 그려진 컵 받침 같은 사소한 물건들을 얻어왔고, 그것들은 하나둘씩 모여 우리 집을 혼란스러운 상태로 만들고 있었다.


자신의 쓰임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얻어온 물건들은 대부분 버려졌다. 아까운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단지 내가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나보다 더 필요한 누군가에게로 가서 유용하게 쓰였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물건을 쉽게 얻어온 나의 지난날을 반성했다. 심지어 2년이 넘어가도록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물건도 있는 걸 보면, 그것들은 분명 나에게 쓸모없는 존재였다. 그런데도 ‘언젠가’라는 막연한 미래를 위해 놔두었으니, 어쩌면 이 모든 문제의 시작은 그놈의 ‘언젠가’일지도 모른다.



글 그림. 에린남



*이번에 출간한 저의 첫 에세이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를 총 4회에 걸쳐서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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