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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린남 Jun 08. 2020

물건을 비울 때 스스로 해보면 좋은 질문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 되기로 했다

집에 물건이 넘칠 때는 별다른 고민 없이 물건을 비워냈다. 여기저기 당장 비워도 아쉽지 않은 물건이 넘쳤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물건의 양이 줄어들면 들수록 점점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내 손에 들린 이 물건을 비워도 될지 도저히 판단할 수가 없었다. 쉽게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끊임없이 물건을 비우다 보니 과부하가 걸린 건지,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았다. 이럴 때 누군가 나타나서 정답을 말해주면 좋겠지만, 내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정확한 답을 아는 것도 나뿐이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자 스스로 질문하기 시작했다.


“이거, 비워도 될까? ” , “이거, 나에게 필요한 걸까? ”


꽤 유용했다. 질문을 통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물건 비우는 시간은 조금 더뎌졌지만 적어도 후회는 하지 않을 수 있었다.



1.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 아직도 많다고 느끼는가?

내가 가진 물건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비어 있는 공간은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게 했고, 물건에 대한 결핍이 있을 때는 빈곤함과 공허함까지 느꼈다.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채우고 싶은 욕구는 당연히 소비로 이어졌다. 주방용품에 관심이 없고, 우리 집에는 굳이 없어도 될 걸 알면서도 멋스러운 그릇이나 고급스러운 티폿 세트를 볼 때마다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꽉 찬 옷장을 보고 한숨을 내쉬다가도 예쁜 옷을 보면 꼭 사야 할 것만 같았다. 둘이 살기에 충분한 집이었지만 여분의 방이 없어서 아쉬워했다. 집에서 여백을 발견하면 화분이나 가구 등으로 자꾸만 채우고 싶어 졌다. 가진 것들이 충분한데도,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건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이제는 물건이 없으면 없을수록 좋다.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더 적극적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려면 내 생활 패턴을 잘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평소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식생활은 어떤지, 집에서는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에 대해서. 내 생활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자 나에게 어떤 물건이 필요한지도 잘 알게 됐다. 물건이 전보다 줄었는데도 생활은 불편함 없이 유지됐다. 나는 이미 필요한 만큼의, 아니 그보다 더 많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가지고 있던 물건을 비워낸 지금, 이제 이렇게 대답할 수 있게 됐다. ‘나에게 필요한 물건은 충분하게 가지고 있다’고.


2. 단지 미련이 남아서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7살쯤, 만화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내가 그린 그림이 저렇게 움직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커가면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서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꿈은 커져서 ‘월트 디즈니’를 꿈꾸기도 했다. 집 여기저기에는 꿈을 위해 사들였던 물건들이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남겨져 있었다. 선명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미련 때문에 비우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미 내 꿈은 달라진 상태였다. 나의 성향과 잘 맞는 방향으로 목표도 수정했다. 그래서 관련된 모든 물건을 비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누구보다 나를 위해서 비워내야 했다.


영화 연출법, 애니메이션 제작 기법 등 애니메이션 관련 서적과 물건이 생각보다 더 많다는 걸 알고 씁쓸함과 함께 슬퍼지기까지 했다. 이것들을 살 때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기도 했고,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그만두기로 마음먹은 내가 안쓰럽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점점 홀가분해졌다. 미련이 묻은 물건을 과감하게 시야에서 치우자 마음속에 남겨둔 미련도 자연스럽게 비워졌다. 거짓말 살짝 보태서, 나는 미련 가득한 물건들을 비우며 새롭게 태어나는 것 같았다. 이루지 못한 꿈에 얽매여 있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마음속 빈자리에 또 다른 희망을 채울 수 있게 됐다. 대단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아니더라도, 나만의 이야기를 하며 살아가게 될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언젠가 못다 이룬 그 꿈이 다시 나를 찾아올 수도 있다. 그때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미련을 걷어낸 바로 그 자리에 반갑게 맞아줄 것이다. 비워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3. 같은 아이템을 다시 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해?

나에게는 니트 가운이 하나 있다. 일상생활에서는 거추장스러워서 자주 찾지 않는 옷이지만, 여름철 바닷가나 따뜻한 곳으로 여행 갈 때엔 꼭 필요한 아이템이다. 당장 입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 옷을 비우려다가 나에게 질문하게 됐다. 


“같은 아이템을 다시 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해? ”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여름이 찾아오면 비슷한 옷을 찾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뜨거운 여름 햇볕을 차단해 피부가 달아오르는 것을 방지해주고, 에어컨 때문에 쌀쌀한 내부에서는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아이템이 분명하니까. 비워낸다면 다음 여름, 비슷한 아이템 앞에서 서성일 것 같았다. 그래서 옷장에 다시 넣어두기로 했다.물건을 비우는 데 집중하다 보면 당장 쓰는 물건이 아니라면 무조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커지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물건을 비우고 후회한 적은 없다. 아마도 이 질문 때문이 아닐까? 앞으로도 물건을 비울 때, 혹은 비울까 말까 고민될 때, 스스로 질문할 것이다. 함부로 물건을 비워낸 나를 탓하거나 미니멀리즘 생활을 후회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서.


4. 나를 위한 물건인가, 남을 위한 물건인가?

물건을 비우다 보면 ‘이거 왜 샀지? ’ 하고 의아해지는 물건들이 나온다. 나의 취향도 아니고, 내 생활에 딱히 쓸모도 없지만 집 안 어딘가에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건. 애써 모르는척해보려 하지만 사실 그 물건들이 존재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마음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나를 포장하는 물건. 평소에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시선에서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없었던 나는 남들 앞에서 조금이라도 ‘있어’ 보였으면 했나 보다. 예를 들어, 선물 받은 고급 브랜드의 디퓨저를 다 썼는데도 여전히 화장실에 ‘전시’해두었고, 유행하는 신발은 더 이상 신지 않음에도 신발장에 남겨두었다. ‘나도 이런 거 사봤고 써봤어’라고 말하고 싶은 듯이. 하지만 놀랍도록 아무도 그 물건들에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군다나 실제로 살다 보니 나에게는 그 관심이 정말 1원어치만큼도 필요하지 않았다. ‘있어 보이는 것’은 또 뭔지!


고작 얼마 전의 내 모습인데도 창피했다. 어쨌든 그런 물건들을 싹 비워냈다. 이제 우리 집에는 나에게 정말 필요한 물건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를 위한 물건인지, 남을 위한 물건인지를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물으며 물건을 비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화장품의 종류와 개수가 줄고, 옷의 양이 줄고,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물건이 줄고, 장식품이 줄어들었다. 내 공간에는 나를 위한 물건만이 남게 됐고, 덕분에 내 일상은 한층 편안해졌다.


5. 이 물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한가?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해지는 물건이 있다. 그런 물건들은 값비싸지만 잘 사용하지 않고, 처분하기도 번거 로워 그냥 가지고 있게 된다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액세서리를 많이 하지 않는 내게는 많게 느껴지는 목걸이나 귀걸이, 비싼 돈을 주고 구입했지만 발이 아파서 신지 못하는 구두, 오랫동안 차고에 방치되고 있는 남편의 서핑 보드, 사용하기 까다로운 카메라 짐벌 같은 것이었다. 물론 자주 사용하면서 필요를 충족할 수만

있다면 가지고 있어도 절대 손해는 아니었지만, 그 반대인 상황에서는 물건을 볼 때마다 마음만 불편해졌다.


가지고 있으면 기분 좋은 물건들도 넘치는데, 굳이 마음이 불편한 물건들을 남길 필요는 없다. 몇 번 써보지도 못한 카메라 짐벌은 반값에 판매했고, 서핑 보드는 시누이에게 줬고, 구두는 기부했다. 아까운 마음도 잠시, 비우고 나니 마음과 공간이 개운해졌다. 대만족이다!


글 그림. 에린남


�Instagram @erinnaam 

✉️e-mail erinnaa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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