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인생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아주 구체적으로 미래 계획을 세워봤자 다른 길로 빠지기 일쑤다.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한그날처럼 말이다. 나는 어떤 계획이나 준비도 없이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 브라우저에 쇼핑몰 탭을 여러 개 열어두고 어떤 옷을 살지 고민하던 내가, 사지 못한 물건에 아쉬워하며 신세한탄을 하던 내가! 최소한의 물건만 소유한 채 살아가는 미니멀리스트라니!
처음에는 미니멀리스트라는 단어가 낯설기도 했지만 이내 그 표현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괜히 내가 멋져 보이는 기분도 들었다. 남편과의 결혼으로 호주에 이민을 온 지 벌써 2년 반. 이 기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집안일을 하거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거나,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들인 노력에 비해 제대로 된 성과는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으나 나는 꽤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때때로 작가라고 불렸고, 아주 가끔 애니메이션 감독이라 불렸으며, 가뭄에 콩 나듯 디자이너라고 불렸다. 나를 부르는 호칭이 한두 가지가 아님에도, 때로 나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난감했다.의뢰받은 그림을 그리거나 디자인을 해서 돈을 벌었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작가나 디자이너라고 말하기에는 민망했다. 그렇다고 “집안일해요”라며 주부라고 칭하기에는 너무도 불성실했다. 그런 나에게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멋진 단어가 생긴 것이다.
‘미니멀리스트’. 일반적으로 미니멀리스트는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을 가진 채 삶을 가볍고 단순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많은 물건을 소유하고 있었고, 가득 쌓인 물건 사이에서도 더 가지지 못해 아쉬운 소리를 하며 살아가는 물욕 가득한 사람이었다.그런 내게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을 갖다 붙여도 되는 걸까? 설렘이 잦아드는 찰나, 자주 나타나지 않는 내 안의 낙천적인 마음이 튀어나와 이렇게 말했다.
“처음부터 미니멀리스트인 사람이 어디 있겠어. 정 찔리면 초보 미니멀리스트로 하자! ”
그렇게 나는 초보 미니멀리스트가 됐다. 우선 ‘초보 미니멀리스트’라는 이름에 어울리도록 집 안의 필요 없는 물건들을 비워 내기로 했다. 이전까지의 나는 평화롭고 안일하게 물건을 모아두는 사람이었다. 대학생 시절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다가 본가로 다시 들어왔을 때도, 퇴사하며 회사의 짐을 정리해야 했을 때도 나는 작은 종이 하나까지 버리지 않고 챙겨 나왔다. 그 물건들은 고스란히 집 어딘가에 잘 처박아두었는데, 같은 습성은 결혼을 하고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하루가 다르게 신혼집이 좁아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물건이 빠르게 늘어났지만 문제 의식을 갖지는 않았다. 시간이 흐른 만큼 물건이 쌓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하루 이틀, 길어봐야 일주일이면 내가 원하는 집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건을 ‘당장’ 비워서 우리 집을 다른 미니멀리스트의 집처럼 텅빈 상태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물건을 비워본 적도, 비워야겠다고 마음먹은 적도 없던 나는 살림살이가 가득 찬 거실 한가운데서 집 안을 둘러보기만 할 뿐,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막막했다. 물건 비우는 방법을 알려주는 미니멀 라이프 실용서라도 읽어봤다면 조금이나마 쉽게 시작할 수 있었겠지만, 당시의 나는 호주에 살고 있었고, 한국 서점 사이트에서 책을 구입해 국제택 배를 받을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했냐고?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한순간에 다짐한 것처럼, 물건을 비우기에도 막무가내로 덤벼들었다. 물건을 비우는 일이 얼마나 험난한 여정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글 그림. 에린남
*이번에 출간한 저의 첫 에세이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를 총 4회에 걸쳐서 연재할 예정입니다:)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0885250
�예스24: http://www.yes24.com/Product/Goods/90322271?Acode=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