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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린남 May 22. 2020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한 이유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는다. 갓 지은 따뜻한 밥, 제육볶음, 달걀 세 개, 김 그리고 김치가 오늘의 저녁 식사 메뉴다. 단출해보여도, 초보 주부에게 이 정도면 진수성찬이다. 남편은 연신 맛있다고 칭찬했고, 나도 직접 만든 음식에 감탄한다.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식사를 준비한 노력과 시간도, 끝나고 찾아올 집안일도 떠 올리지 않는다. 그저 짧은 저녁 식사를 즐길 뿐이다. 


식사가 끝나자마자 깨끗하게 비워진 식기들을 싱크대로 옮겼다. 나는 기분 좋게 콧노래를 부르며 고무장갑을 꼈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라는 남편의 말을 산뜻하게 거절한 뒤였다. 수세미에 세제를 듬뿍 묻힌 뒤, 기름이 잔뜩 묻은 그릇을 벅벅 문지르기 시작했다. 두 번째 그릇까지도 분명 괜찮았다. 그런데 세 번째 그릇을 잡아드는순간부터 어느새 콧노래가 짜증 섞인 한숨 소리로 변해 있었다. 좁은 싱크대에 가득 찬 설거짓거리 때문인지, 아니면 밥을 먹자마자 설거지를 시작한 것이 후회되는지, 나도 정확히 내 마음을 알지 못했지만 확실한 것은 기분이 안 좋다는 사실이었다. 못 이기는 척 남편에게 설거지할 수 있는 기회를 줬어야 했다. 당장이라도 고무장갑을 내던지고 싶었지만 한 번 시작한 설거지는 계속되어야 했기에 애써 참아냈다.


싱크대 주변의 물기를 닦은 행주까지 빨아 널어두니 어느새 40분이 지나 있었다. 설거지는 끝났지만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더니, 나는 부엌으로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달랐다. 게다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남편이 괜히 괘씸하고 얄미워져서 이런저런 불만을 토해냈다. 분명 설거지한다는 것을 말린 사람은 나였는데, 까맣게 잊고 남편에게 못되게 굴었다. 화기애애한 저녁 시간을 보내다가 설거지 하나로 부부싸움이 시작됐다. 문제는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거였다. 돌이켜보니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집안일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한 남편과 나는 먹고 살아가기 위해 집안일을 해야 했다. 공평하게 살림을 분담하기로 했지만 남편은 출근을 했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던 내가 집안일 대부분을 도맡아서 했다. 결혼 초기에는 우리가 가진 물건의 양이 적었던 터라 집안일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만큼 금세 불어났고, 동시에 할 일도 그만큼 늘어났다. 소꿉장난처럼 여겨졌던 집안일은 점점 현실이 됐고, 나는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집안일’이라는 친구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어디 하나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었다. 사람을 어찌나 곤란하고 귀찮게 하는지! 집안일은 하지 않으면 안 한 티가 났지만, 열심히 해봤자 티가 나지 않았다. 밥을 먹기 위해서는 장을 봐야 했고, 밥을 다 먹은 뒤에는 사용한 그릇들을 설거지해야 했다. 설거지를 안 하면 다음 날 밥을 먹을때 곤란했다. 깨끗한 옷을 입기 위해서는 빨래를 해야 했고, 세탁물을 건조대에 넌 다음 바싹 말랐다면 개서 옷장에 다시 넣어야 했다. 빨래를 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입을 옷이 마땅치 않아졌다. 냉장고나 생필품이 보관된 서랍장을 살펴보며 유통기한과 확인하고, 시시때때로 수량이 충분한지 헤아렸다. 그러지 않으면 여러모로 불편했다. 나는 곤란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집안일을 했고, 자연스럽게 집안 일을 점점 더 싫어하게 됐다.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결국 나는 진지한 태도로 ‘집안일하지 않을 방법’을 찾았고, 오랜 고민 끝에 결론을 냈다. ‘집안일을 안 하면 된다! ’ 너무도 간단명료하고 확실했지만,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집안일을 대신해줄 누군가를 고용하는 일도,집안일을 모른 체하고 지내는 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했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집안일을 싫어하지 않을사실을 너무도 잘 알지만, 밑져야 본전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찮게 미니멀리스트 사사키 후미오 씨가 나오는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됐다. 텅 빈 방 안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보고, 홀린 듯이 클릭할 수밖에 없었다.


필요한 물건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미니멀리스트 사사키 후미오 씨의 집은 아무리 정리해도 어수선한 우리 집과는 확연히 달라서, 구경하는 것만으로 개운해졌다. 식기의 수도 적어서, 모든 식기를 꺼내서 설거지한다 해도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집도 똑같이 물건을 줄이면 해야 할 집안일도 줄어들지 않을까?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다른 선택권은 없었다. 나는 당장!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 했다.


그러니까 나는 집안일이 하기 싫어서, 너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한 것이다.


글 그림. 에린남




*이번에 출간한 저의 첫 에세이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를 총 4회에 걸쳐서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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