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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린남 Aug 27. 2020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물건이 아니었다.

물건들에게 신경을 빼앗기고 있던 나

두 명의 어린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는 언니와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하는 중에, 언니는 나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거실 바닥을 채우고 있던 뽀로로 매트를 치우고, 회색 톤의 차분한 매트로 바꾸었더니 아이들이 전보다 차분해졌다는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가 나에게 인상적이었는지, 나는 그 이후에도 몇 번이나 뽀로로 매트와 회색 매트를 떠올렸다.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기분이 들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차분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마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이 말에 동의할 거다. 나는 어릴 때부터 주의가 산만하고 집중을 잘 못했다. 아주 가끔 집중해야 할 순간에는 온 신경을 다해 집중했지만, 아주 잠깐이었다. 내 신경은 금방 다른 곳을 향했다. 특히나 집 안에서 유독 심했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물건들을 좋아해서, 마음에 들면 샀고, 집안 여기저기에 쌓아뒀다.  


물건을 좋아하고 쌓아두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그 물건들에 신경을 쓰느라 할 일을 제대로 못했다는 거다. 책상에 앉으면 해야 할 일 보다, 책상 위를 가득 채운 물건들과 벽에 붙어있는 사진이나 엽서에 시선을 빼앗겼다. 정돈되지 않은 채 방 한구석에 쌓여있는 옷 무덤이 신경이 팔리기도 했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의미 없이 낭비되기 일쑤였다. 


원래 주의가 산만하니까, 원래 정리를 못하니까 그러려니 살아왔던 나였다. 그러다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비우고, 좋아했지만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 물건들을 비우고, 벽에 붙여 놓은 예쁜 그림들과 책상 위에 올려둔 물건들을 하나둘씩 비워내는 사이,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정리할 물건이 밖으로 나와있지 않은 공간과 비어있는 벽은 나를 차분하게 만들었다. 집중하는데 도움을 줘서 전보다 일의 능률이 올랐다. 


주의 산만하고 차분하지 못했던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내 시간과 신경을 빼앗을 물건들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뽀로로 매트처럼, 내가 가진 물건과 그 물건으로 정돈되지 못했던 내 공간들이 나를 차분하지 않은 어른으로 만들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내가 조금 차분한 사람이 된 것이 순전히 공간의 변화 때문만은 아닐 거다. 그동안 나는 나를 둘러싼 크고 작은 것들을 조금씩 바꿔나갔고, 그 과정을 통해 지금의 내가 되었으니까. 다만, 달라진 공간이 나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 것은 확실하다. 새로운 물건이 주는 설렘도 좋지만, 이미 가진 물건들이 주는 익숙함과 안정감도 좋다는 것, 완벽하지 않지만 충분함을 아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것, 취향으로 가득 채운 집도 좋지만, 나에게 집중할 시간을 주는 집도 좋다는 것. 나에게는 이런 깨달음이 필요했다.  


글/그림 에린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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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에 마음의 안식을 주는 힐링 스폿을 만들었다. 작게나마 나의 취향을 모아두었다. 일을 하다가 부정적인 마음이 피어오를 때! 스탠드 아래에 있는 안식처를 내려다본다.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손바닥 만한 작은 공간만으로도 나는 행복을 느끼고 있다. 


유튜브로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KxbS_Okvp98&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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