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흘러가는 호주의 시간
호주에 살면서 가장 적응하기 힘든 것 중하나는 천천히 흘러가는 그들의 시간이었다. '빨리빨리 나라'에서 태어나 성격 급한 인간으로 자란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답답한 일이었다. 그간 일어난 일들 중 단연코 답답했던 사건(?)은 50일 만에 인터넷이 설치된 일이다. 남편과 지금 살고 있는 신혼집으로 이사를 올 때 남편은 내게 경고 아닌 경고를 했다. "인터넷 설치되는데 꽤 걸려. 한 달 정도 걸릴걸." 나는 한 달이 걸린다는 말이 상상조차 안됐지만, 진짜 50일이 넘게 걸렸다. 한국이었다면 늦어도 며칠 내에 설치 기사님이 와주셨을 텐데.
아파서 병원에 가도, 바로 치료를 받을 수도 없다. GP라고 불리는 제너럴 닥터(일반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특별한 문제나 증상이 있을 때나 스페셜 닥터(전문의)를 만나 치료를 받을 수가 있다. 그것도 일주일은 지나야지 가능하다. 혹시라도 몸에 문제가 생겨 내시경이나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최소 6개월에서 12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호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한국에 가서 수술이나 치료를 받기도 한다. 해외 거주자라 한국의 의료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지만, 호주에서 순서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 그 편을 선택하는 것 같다. 나는 다행히 여태 까지 아프지 않았고, 긴 절차를 밟지 않아도 됐다. 만약 내가 아팠고, 저 위에 절차를 다 따라야 했다면, 생각만 해도 서럽다. "나 아파 죽는다고! 당장 치료해줘!"
내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아무 문제없는 것들이다. 내가 이방인이라서, 내가 한국인이라서, 이해 못할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별수 없다. 단지 그들의 속도를, 그들의 순서를, 그들의 시스템을 따르는 수밖에.
글 그림/ 에린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