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그냥 주어진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았던 시간이 많다. 누군가를 추월하기 위해 무작정 쫓아가는 삶을 살기도 하고, 군중 틈에서 휩쓸려가다 원치 않는 곳에 서 있게 된 적도 있었다. 물론 대부분 당시에는 최선의 결정이었다. 그 이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왔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결과로 나는 어쩐지 흐릿한 삶을 살게 됐다. 익숙하고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게 됐다. 바로 미니멀 라이프였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한 후, 더는 소비를 즐기지 않게 되어서 조금은 재미없고, 조금은 손이 많이 가고, 번거롭게 됐지만 전에는 몰랐던 가벼운 하루하루를 살게 됐다. 정말 값진 삶이다. 미니멀리스트로서 살기 전까지만 해도 ‘삶의 방식’이라는 단어가 거창하기도 하고,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나는 살아가는 데 어떤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을 만큼 ‘오늘의 나’에만 집중하며 살았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그리고 갑자기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막막했지만, 무작정 비우기부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미니멀 라이프는 내 삶에 필요한 것을 채우고, 필요 없는 것을 비우는 과정이었다.
여행 짐을 싸는 것처럼
여행하는 동안에는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캐리어에 챙기고, 물건이 넘치면 줄인다. 삶의 방식을 꾸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물건을 한정된 공간에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게 채워야 했다. 그 전에 내가 가지고 갈 캐리어의 사이즈도 스스로 가늠해보고, 결정해야 했다. 처음에는 욕심을 내서 큰 캐리어를 선택해볼까도 생각했다. 작은 캐리어에는 필요한 물건이 다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아서 그랬고, 크면 클수록 훨씬 나은 삶이 될 것 같아서 그랬다. 하지만내가 가진 물건들이 턱없이 적어서 그 안을 제대로 채우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을 써야 할 것 같았다. 또 캐리어가 크면 클수록 더 무겁고, 힘든 여행이 될지도 몰랐다. 그래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캐리어를 선택했다.
내가 선택한 캐리어는 이미 물건들로 가득 차 뚜껑이 닫히지 않을 정도였다. 적당히 덜어내고 닫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샅샅이 뒤져가며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과감하게 비워냈고, 그 자리에 다시 필요한 것을 하나씩 채워야 했다. 캐리어를 채우는 일은 아직도 진행 중이지만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짐 싸는 일은 신중해야 후회가 남지 않는 법이니까.
내가 선택한 번거로운 삶
내가 선택한 것들로 주변을 채우는 인생을 살아가게 됐다. 변하고 있는 삶이 만족스럽지만 가끔은 그런 생활이 번거롭기도 했다. 쓰레기를 줄이고자 익숙한 것들 대신 대안제품을 찾아 사용하는 것도 낯설었고, 비닐 사용을 줄이기 위해 장보러 갈 때마다 이것저것 챙겨가는 것 역시 불편했다. 물때가 자주 끼고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식기건조기 대신 티타월을, 키친타월 사용을 줄이기 위해 행주를 주로 사용하면서 평소보다 빨랫거리가 많아졌다.
뭔가를 살 때도 지나치게 신중해져서 스스로 까다로운 손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 불편들이 조금씩 쌓이자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분명 달라진 것이 있었다. 바로 내 삶이다. 불편함은 어느새 익숙함이 됐고, 과거보다는 쓰레기를 적게 만들어내고 있었다. 조금 번거로워졌지만 전보다 편리하지 않을 뿐, 살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가벼워진 삶 덕분에 번거로움도, 불편함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나의 삶을 위해서!
미니멀 라이프는 내 삶에 스며들어서 어느새 나를 변화시켰다. 다행히 조금씩 달라지는 나의 인생이 마음에 들고, 변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 지금 나는 “미니멀리스트예요! "라고 말하고 있지만, 다른 많은 미니멀리스트와는 조금 다른 모습일 수도, 많이 부족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교할 필요는 없다. 미니
멀 라이프든 아니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으니까.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나의 삶은 미니멀 라이프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다른 형태를 띠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때쯤이면 이미 나만의 단단한 삶의 방식에 맞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 어떤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그 어떤 비교 대상도 없는, 그 어떤 미래도 정해지지 않은 ‘온전한 나’인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