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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린남 Feb 05. 2023

미니멀 라이프마저 비교를 하다니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가끔씩 찾아온다는 ‘미니멀 라이프 권태기’를 한 번도 겪지 않고 물건 비우기를 즐겼다. 매일매일 집 안을 돌아다니며 더 비울 것이 없는지 물건들을 살폈고, 어느덧 습관이 되서 하루일과를 비우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덕분에 물건은 확실히 줄어들었고, 약간의 부지런만 떨어주면 집도 금세 정돈됐다. 변화가 즐거웠고, 나의 목표였던 집안일 줄이기가 이뤄져가는 것 같아서 뿌듯했다.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자주 칭찬해줬다. 계속

이렇게 나아가면 언젠가는 내가 정말 원하는 집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잘 지내고 있던 나에게 갑자기 위기가 찾아왔다. 내 삶을 위해 시작했던 미니멀 라이프를 누군가와 비교하게 되면서부터였다. 문득 다른 사람들의 미니멀 라이프가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기쁨을 누리고 있는지, 개운하게 살고 있는지, 어떤 변화를 맞이했는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요즘은 얼마나 좋은 세상인지,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기도 쉬웠다. ‘#미니멀 라이프’ 태 그 하나면 궁금증이 해소됐다.


다른 사람들의 집을 둘러보는 일은 또 다른 재미였다. 각자의 생활 방식에 맞춰 꾸민 깔끔한 공간을 보니 마음이 개운해졌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집도 있었고, 아기자기한 아이템이 적절하게 배치되어서 인테리어적으로 아름다운 집도 있었다. 남의 집을 구경하다 보니 자극받아 한 번 더 필요 없는 물건을 찾게 됐고, 평소에는 신경 쓰지 않는 부분까지 깨끗이 청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나는 점점 우리 집과 다른 사람의 집을 비교하게 됐다. 그리고 타인과 나의 미니멀 라이프까지도 비교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아직 우리 집은 이만큼 깨끗하지는 않은데, 아직 나는 이 정도는 아닌데! ”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집 구석구석을 둘러봤다. 뭔가 더 비우고 싶어졌다. 만만한 거실부터 다시 살피자, 갑자기 소파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다. 저 소파를 비우면 거실이 훨씬 더 넓고 깔끔해 보일 것 같았다. 혹은 방에 있는 서랍장을 더 비워보면 어떨까. 서랍장 두 개를 하나로 줄일 수는 없을까. 주방도 더 깨끗하게! 더 완벽했으면 좋겠다면서 스스로를 재촉했다. 뭐라도 더 해보라면서.



별 소득 없이 방 안을 뒤적이다가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소파위에 몸을 내려놓았다. 소파에 몸을 기대고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는데 문득, 소파에 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아졌다. 누웠다가 앉았다가를 반복하면서 소파가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졌다. 거실에서 편하게 쉴 공간이 사실상 소파 위 밖에 없다는걸 깨닫자 정신이 번뜩 들었다.

“소파를 이렇게나 편하고 행복하게 사용하고 있으면서 비우겠다고 생각했다니! ”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달 동안, 나는 함께 사는 남편과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에 대해서 수많은 대화를 해왔다. 남겨진 물건에는 남겨져야만 했던 타당한 이유가 있었고, 비워진 물건에도 마찬가지로 떠나는 이유가 정확히 있었다. 우리의 생활에 맞게 집을 잘 정돈해가고 있었으면서, 나는 얼굴도 모르고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는 다른 사람들의 사진 몇 장에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있었다. 단지 우리 집이 다른 사람들의 집보다 덜 ‘미니멀 라이프’스럽다는 게 이유였다.


대체 나는 왜 우리 집이 미니멀 라이프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을까? 그에 앞서 미니멀 라이프스럽다는 기준은 뭘까? 사실은 미니멀 라이프를 대단히 잘하고 싶었던 걸까?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데도 정답이 있는 걸까? 아니, 도대체 미니멀 라이프를 잘하는 건 또 뭐냐고! 결국 나는 남들에게 미니멀 라이프마저도 인정받고 싶었던 것일까?


새로운 삶과 생활이 안정기에 접어드는 과정을 즐기며 조금씩 더 나아가기를 바랐는데, 괜히 다른 사람들의 삶 주변을 기웃거렸다. 내 생활을 스스로 꾸려나가면서 내 삶을 하찮게 바라보는 시선도 걷어낸 줄 알았는데, 습관처럼 또 남들과 비교해버렸다. 쓸데없는 비교로 생긴 고통은 고스란히 나에게 향했다. 스트레스를 받고 조바심을 내며 불안해했다. 이게 아닌데!


확실히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미니멀리스트로서뿐 아니라, 가벼우면서도 단단한 삶을 살려면. 어쩌면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은 생활이나 주변 환경보다 나 자체가 달라져야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스스로에게 관심을 더 가지면 내 삶이 더 나아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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