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린남 Feb 05. 2023

물건과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했다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대화 한 번 나눴을 뿐인데 상대방과 결혼해서 아이까지 갖는 상상을 했다’는 SNS 유머글을 본 적 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아니, 많다. 새로운 물건을 만났을 때마다 그랬다. 첫눈에 마음을 뺏긴 물건과의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이 옷을 입으면 내가 여느 때보다 예뻐질 것이라고 착각하고, 이 시계를 가지면 부내 나는 사람으로 보이리라 꿈꿨다. 그렇게 물건과의 만남은 성사됐고, 나와 물건은 영원히 행복할 거라고 믿었다.


굳건했던 믿음은 생각보다 빨리 깨졌고, 물건과의 행복은 허무할 정도로 짧았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결제한 후 택배를 기다리는 며칠, 외출할 때 입거나 들고나가는 몇 번이 지나면 더 이상 관심이 가지 않았다. 이미 내 것이 되어버린 물건들은 어장 속 ‘잡힌 물고기’가 되었다. 게다가 그새를 참지 못하고 나는 또 다른 물고기를 찾아 나서곤 했다. 


값을 지불한 만큼의 만족도 얻지 못할 때가 많았다. 사이즈가 맞지 않거나 사진과 실물이 다른 옷, 기대에 못 미치는 성능의 가구 같은 것이 그랬다. 귀찮다는 이유로 교환이나 환불 보증 기간을 놓친 뒤에는 후회와 함께 그냥 어딘가에 방치됐다. 가진 물건이 많은 것도 문제였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물건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10개, 아니 100개, 아니 1,000개도 넘는 물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해서 물건을 집으로 들였고, 방치하기를 반복했다.


비우기를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물건과 작별했다. 가장 먼저 비운 물건을 떠올려보면 전부터 걸리적거렸거나 빨리 치워버리고 싶었던, 아니 쳐다보기도 싫었던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그 물건들을 누가 억지로 떠맡긴 것도 아니었다. 분명히 집으로 데려올 때만 해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한때는 나에게 중요했고, 필요했고, 가져야 했던 것들이 어느새 치우고 싶은 물건으로 전락해 있었다. 그 사물들이 나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


더 많은 물건을 비운 뒤에야 비로소 이유를 알게 됐다. 소비할 때의 나는 굉장히 감정적이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생기면 당장 사서 갖고 싶다는 소유 욕구에 사로잡히곤 했다. 모든 신경 세포의 초점이 그 물건과 그 물건을 사는 것에만 맞춰졌. 하루 종일 물건 생각을 하다가, 살 수 있다면 결국 샀다. 갖고 싶었던 물건을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신나는지, 아는 사람은 다 알거다.


소유욕과 감정으로 이뤄진 소비는 그 순간 분명한 행복을 가져다줬다. 실제로는 빈털터리일지라도 부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행복이라고 믿었던 물건은 집 안구석에서 마음만 불편하게 하는 존재로 전락하거나 곧 잊혀졌다. 그런 물건을 꺼내보며 앞으로는 조금 더 현명해지기로 다짐했다.


이제는 물건을 집으로 들일 때, 내가 물건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까지 생각해본다. 방법은 간단하다. 충동적으로 가지고 싶은 물건이든, 첫눈에 마음이 뺏겨버린 물건이든 간에 우선 이성을 앞세워 이 물건과의 마지막 순간이 어떨지 예상해보는 것이다. 유용하고 기쁘게, 그리고 오랫동안 사용하다 헤어질 수 있을지, 아니면 버리지도, 가지기도 싫은 애물단지가 되어서 골치만 썩힐지, 그것도 아니면 적당히 잘 쓰다가 중고로 되팔거나 누군가에게 기쁜 마음으로 물려줄 수 있는지.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살아가는 미니멀 라이프를 위해서이기

도 하고, 앞으로의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미래의 내가 고생

스럽게 물건을 비워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두 번 쓰고 방치해두다가 아까워서 비우지도 못할 물건 대

신 사용할 때마다 기분이 좋고, 오래 사용한 뒤에 마음 편히 보

내줄 수 있는 물건을 사기로 한다. 집에 새 물건을 들이는 일은

입국 심사 급으로 어려워졌지만 생활의 만족도는 비교할 수 없

게 높아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