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 라이프 이후 얻게 된 뜻밖의 자유
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몇 달 동안 쉼 없이 물건들을 비우면서, 오랫동안 쓸모없는 물건을 ‘굳이’ 짊어지고 지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깊은 서랍장 안쪽에 있던 선글라스와 손목시계가 그랬고, 이사 온 뒤로 한 번도 꺼내본 적 없는 옷이 그랬고, 먼지만 소복이 쌓여 있는 전자제품 상자가 그랬다. 자연스럽게 짐이 된 그 물건들은 알게 모르게 내 삶과 생활을 무겁고,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다. 할 일 은 끝이 없고, 삶은 고단하게 느껴졌다. 내 공간에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물건들은 문득 시선이 마주칠 때마다 들리지 않는 잔소리를 해댔다.
“나 빨리 치워야 할걸? 너 지금 쉴 때가 아니야. 얼른 청소하고 설거지해! ”
필요 없던 물건들이 천천히 사라지자 생각 이상으로 삶이 쾌적해졌다. 우선 집안일의 압박감이 줄었다. 또 쌓여 있던 물건처럼 묵은 감정 역시 사라졌다. 짐이었던 물건을 비운 것뿐인데 이유 없이 복잡하던 마음까지 해결된 것이다.
'소비를 위한 소비’에서 자유로워지다
오랫동안 소비하는 삶을 살아왔다. 어릴 때는 용돈 날이나 명절이 되면 어른들께 돈을 받는다는 사실보다 돈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머릿속에는 항상 ‘가지고 싶은 물건 리스트’가 있었다. 물건 사는 일로 기쁨을 얻었고, 갖지 못하면 고통스러워했다. 왜 그토록 물건을 사고 싶어 했을까. 우선 나는 각종 매체를 통해 수많은 광고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다. 의도치 않게 관심이 쏠렸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고 싶은 것이 점점 늘어났다. 모든 것을 가지지 못하는 게 당연한 건데도,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면 초라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원치 않게 접하게 되는 SNS 콘텐츠도 한몫했다. ‘해외여행 가면 꼭 사야 하는 아이템’이라던가 ‘면세점에서 꼭 사야 할 것’ 같은 카드 뉴스를 읽다 보면, 그 물건들을 사와야만 손해를 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다. 물건을 사기 위해 여행을 가는 게 아닌데도, 면세점에 갈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딱히 살 게 없는데도 매장을 괜히 둘러보다가 립스틱 하나라도 산 뒤에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기도 했지만, 그 감정이 정확히 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건 내가 뭔가를 ‘샀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소비라는 굴레 안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부지런히 돈을 쓰기만 하던 사람이었다. 원하는 것을 사지 못했을 때 고통스러웠던 이유도 그게 꼭 필요해서였다기보다는 물건을 살 능력이 없다는 패배감이었는지도 모른다.
소비는 말 그대로 소비일 뿐이다. 소비하지 못한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질 일도, 내가 하찮게 느껴질 이유도 없다. 그런데도 내 삶은 그저 돈을 벌고 돈을 쓰는 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구입했던 물건들이 쉽게 버려지고 비워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소비 욕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제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내가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고 싶다. 소비를 조장하는 각종 콘텐츠 속에서 덤덤한 마음을 유지하려 한다. 어차피 비
워내야 할 물건이니까. 여전히 수많은 유혹 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아가는 중인 미약한 나지만, 조금은 단단해졌음을 느낀다.
무조건적으로 핫한 것을 좇는 삶에서 멀어지다
모든 유행을 따라가며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시대의 흐름 속
에서 핫하다는 것들을 모른 체하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핫한 장소는 가보고 음식은 먹어봐야 속이 후련했다. 무엇보다도 궁금했다. 얼마나 좋길래, 얼마나 맛있길래! 하지만 미니멀 라이프를 시작하고부터는 유행을 따르기보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하는지에 더 집중하게 됐다. 더 이상 급급하게 뭔가를 좇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이제는 안다.
유행을 좇는 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경계하는 것은 자신의 취향이나 삶의 방식, 또는 좋아하는 마음을 외면한 채 무조건적으로 남들을 따라 하는 삶이다. 앞으로도 계속 나만의 라이프 스타일을 찾고,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며 살아가고 싶다.
핫하지는 않더라도 편하고 즐거운 삶을 기대하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