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이 귀찮아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신혼집은 작았지만, 다행히도 침실에 붙박이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가로 2m에, 높이는 천장에 닿는 커다란 옷장이었다. 옷장은 남편과 나의 옷은 물론이고, 빈 전자제품 케이스, 정체 모를 물건들이 담긴 상자까지 전부 들어갈 만큼 컸다. 하지만 옷장은 빈틈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꽉 차 있었고, 덕분에 슬라이딩 도어인 옷장 문은 언제나 열려 있는 상태였다.
이렇게 옷이 많으면 패셔니스타는 아니더라도 멋쟁이 소리는들어야 하는데, 남편과 나는 어째 단벌 신사가 따로 없었다. 맨날 입는 몇 벌만 돌려 입으면서 옷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외출할 때면 남편과 나는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며 옷장을 한 바탕 헤집어야 했다. 어디에 어떤 옷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고, 안다고 해도 안쪽에 있는 옷을 입으려면 결국 앞에 있는 옷들을 전부 꺼내야 했다. 빨래한 옷을 정리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곱게 개서 넣어봤자 옷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구겨졌으니, 그냥 아무렇게나 쑤셔 박았다. 차라리 거실의 빨래 건조대에 널어놓은 것을 다음 날 다시 입는 편이 더 편하고 쾌적했다. 대체 문제가 뭘까. 붙박이장
의 수납 시스템이 별로인 것도 한몫했지만 입지 않는 옷이 입는 옷보다 몇 배는 많은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제 나는 어엿한 미니멀리스트가 됐기 때문에 엉망인 옷장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옷장을 멀쩡한 상태로 돌려놔야 했다!
독한 마음을 먹고 옷을 전부 침대 위로 꺼냈다. 흐릿했던 존재들을 눈으로 확인하자, 험난한 갈 길이 예상됐다. 심지어는 한국에서부터 힘겹게 따라왔지만 영영 선택되지 못한 옷도 있었다. 옷장에 들어간 후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옷장에 처박혀 있던 옷들을 보니 마음이 아프면서도 화가 났다. “이럴 거면 고생스럽게 가져오지 말걸! 그럼 다른 옷을 샀을텐데(?).”
방치했던 시간만큼 옷에는 먼지가 가득했다. 앞으로 이 옷을 입을지 말지는 우리의 손에 달려 있었다. 먼저 앞으로도 확실히 입을 옷만 골라 다시 옷장에 걸어두거나 잘 접어서 차곡차곡 정리했다. 절대 안 입을 것 같은 옷은 과감하게 침대 밑 봉투에 내려두었고, 비우기가 살짝 아쉬운 옷은 침대 머리맡에 쌓았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쉽게 옷을 구분해낸 것 같지만 반나절이 꼬박 걸렸다. 옷을 입어봤다가, 거울에 몸을 비춰봤다가, 다른 옷이랑 매치도 해보면서 고민했다. 그렇게 고생한 끝에 정리한, 입지 않는 옷은 커다란 봉투로 세 개나 됐다. 그저 옷장 채워놓기용에 불과하던 옷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긴 시간 옷을 비우며, 지금껏 옷장을 채우고 있던 게 단순히 옷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옷장은 욕심, 허영심, 물건에 대한 집착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물론 추억이라는 아련한 감정도 꽤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그 감정을 옷과 함께 비워낼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안 그랬다면 나는 새로운 옷과 함께 부정적인 감정을 계속 더하기만 했을 것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옷장을 둘러봤다. 한결 깔끔해진 모습을 기대했는데… 웬걸, 놀랍게도 옷장은 여전히 옷으로 빽빽했다.
“이럴 수가! 그럼 여기 봉투 속 옷들은 다 어디서 나온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