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 D-20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비어있던 집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코 끝이 시렸다. 바깥보다 더 찬 공기가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탓이었다. "으 추워.." 외투를 벗어둘 새도 없이 꽁꽁 언 손으로 벽난로를 켰다. 작은 불씨가 나무를 감싸면서 조금씩 타오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퇴근한 남편도 집으로 돌아왔다. 운이 좋은 남편은 이제 막 따듯해지기 시작한 집으로 들어서더니 “와 따뜻해! 역시 집이 최고야!”라고 말했다. 여전히 외투를 입고 있는 나와 갓 들어와 외투를 벗어둘 새가 없던 남편은 밖에서 얼었던 손과 발을 벽난로 앞에서 데우고 있었다. 그때 ‘꼬르륵’하는 소리가 내 배에서 들렸다. 저녁 식사를 알리는 알람이었다. 그 소리를 듣던 남편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말했다. "저녁으로 냉동피자랑 파스타 해 먹을까? 내가 해줄게”
이렇게 추운 날에는 싱크대에서 물을 트는 것도 두렵다. 따뜻한 물이 바로 나오면 좋겠지만, 오래된 집답게 따뜻한 물이 나오려면 족히 30초는 걸린다. 물의 온도를 확인하려고 수도꼭지에 손을 가져다 대는 상상만으로도 손이 아려왔다. 이런 날엔 그냥 대충 냉동피자만 오븐에 구워서 먹으면 간편할 텐데 굳이 파스타까지 만들겠다는 남편이었다. 하지만 나는 말리지 않았다. 냉동피자와 파스타를 먹는 나를 상상해버려서 파스타가 없는 저녁식사는 서운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파스타와 피자는 완벽한 조화 아닌가.
옷을 갈아입고 씻고 나왔더니 키친에서 왜인지 타는 듯한 냄새가 났다. “자기야 타는 냄새 안 나?” “어??” 파스타를 만드는데 몰두하던 남편은 타는 냄새를 미처 맡지 못한 듯했다. “아이고 다 타버렸네. 온도를 너무 세게 해놨나 봐.” 피자 테두리 부분이 까맣게 타버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안쪽은 아주 맛있게 구워져서 새까맣게 탄 테두리 부분을 잘라버리고 남은 부분만 먹기로 했다. 식탁 위에 못생기게 잘린 피자와, 남편이 맛있게 만든 파스타를 올려두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향 좋은 와인 한잔이 머리를 스치고 갔다. 하지만 와인을 꺼내지 않았다. 한 잔이 두 잔 되고 한 병 되고 두 병 될게 뻔했기 때문이다. 잊지 마 내일도 출근이야.
추위도 잊었고, 배고픔도 사라졌다. 이제 거실에 널브러져 있는 작년에 썼던 장식과, 이번에 새로 산 장식 그리고 출신이 불분명한 장식들까지 한데 모아 트리를 꾸며야 했다. 튼튼하고 큰 트리 위로 장식을 하나씩 걸었다. 남편과 둘이서 부지런히 알록달록하고 예쁜 장식들로 트리를 꾸몄다. 마지막으로 내가 어젯밤 겨우 풀었던 크리스마스 조명까지 달았다. “이렇게 꾸미니까 진짜 뿌듯하다.” 고 말하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일 년 내내 크리스마스면 이렇게 즐겁지 않을 거야. 그렇지?”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크리스마스에 관심없던 남편도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시작한 것 같다.
12월 5일
글/그림 에린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