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몬순

제12장 라자스탄 낙타가죽

by 만달

2009년 9월

인도, 라자스탄주(Rajasthan), 푸시카(Pushkar)



일 년 중 가장 뜨거운 계절인 4월과 5월, 그리고 6월부터 9월까지 이어지는 몬순이 지나면 남부 인도에 비로소 또 다른 성수기가 찾아온다. 그 해 9월의 마지막 주, 반년의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푸시카의 비수기는 어쨌든 지나갔건만 나는 변함없이 혼자였고 여전히 매일같이 자이푸르 호수 앞,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푸시카에서 가장 오래된 낙타 가죽 공예점의 주인인 늙은 나라얀 아저씨는 또다시 혼자만 흥분한 채 가죽냄새 짙게 밴 가게 안을 분주하게 어슬렁 거린다. “Everything is under control.”(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어간다.) 그리고 정확히 매 30초마다 강한 라자스타니 억양으로 연발한다. “Everything is under control.”(여기는 이상 무!) 가게 한쪽 구석에 숨은 나무계단에 앉아 조인트를 말고 있는 나에게 그는 이미 여섯 번째 그렇게 말하고 있다. 손님도 없는 가게에 나라얀 아저씨와 나만 있는 경우, 우리 둘은 어김없이 하시시를 태운다는 사실은 이 동네 사람들이라면 오래전부터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푸시카에서 태어나서 증조할아버지와 고조할아버지 그리고 그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낙타 가죽 공예점을 평생 운영 중인 나라얀 아저씨가 100년이 훨씬 넘은 자신의 가게 안에서 무슨 짓을 하든지 신경 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날도 아저씨는 마치 자신이 국가차원의 1급 비밀임무를 띤 첩보원이라도 된 양 아무도 보이지 않는 한산한 거리에 목을 길게 뺀 채 커다란 엉덩이 뒤로 숨긴 한 손을 염소 꼬리처럼 펄럭대며 나에게 또다시 낮게 속삭인다. “Everything is under control.”(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이상 무!)


“Yes sir. It’s good and ready. So come when my secured signal.”(넵! 사령관님, 그것이 무사히 준비되었습니다. 제 신호를 기다렸다가 이쪽으로 접근하십시오!) 나 역시, 그를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낮고 조용하게 그렇게 답했다. 내가 앉아있는 나무계단 옆으로 나있는 작은 창문 바깥의 공간은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시장의 뒷골목일 뿐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말하는 나의 시선은 분명히 창밖을 감시하고 있다. “Very nice!”(아주 좋아!) 여섯 개의 손가락이 한 덩어리로 붙은 왼손 덕분에 혼자서는 조인트를 만들 수 없는 나라얀 아저씨는 점심시간만 지나면 항상 나를 기다리기 시작한다. 오후 두 시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도착하면 그는 가게 어디엔가 그만의 비밀장소에 숨겨둔 코코넛 껍질을 깎아 만든 작은 접시와 롤링페이퍼 그리고 냄새가 지독한 푸시카 최고의 하시시 덩어리를 나에게 건넨다. 나라얀 아저씨는 믿지 않겠지만 동네 사람 모두가 다 아는 우리만의 비밀스럽고 성스러운 ritual(의식)은 그렇게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었다. 하시시를 구매할 돈 한 푼 없었던 나였지만 더티론드리를 지키고 있는 시간만큼은 항상 high일 수 있었던 것은 다 나라얀 아저씨 덕분이었다.


계절이 바뀌자 어느새 오랫동안 땅이 머금고 있던 축축한 물기가 말라버렸고 그래서 지상의 열기로 피 오르던 수증기도 사라진 푸시카의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맑고 투명했다. 더 높고 더 짙은 파란 하늘은 가을이 왔음을 의미한다. 마치 어제 몬순이 막 끝난 듯한 그날 오후에 올려다본 하늘은 공교롭게도 내가 기억하는 300개가 넘는 푸시카의 하늘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에 남는다. 만족스럽게, 두꺼운 조인트를 모두 태운 나라얀 아저씨와 나는 뜨거운 짜이가 든 붉은색 토기 잔을 손에 든 채 어느새 조금 분주해진 토요일 오후의 시장 거리를 바라보며 가게 앞에 앉아있었다. 그 거리를 지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 보였던 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내가 그 순간 행복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두둥두둥~ 둥둥~ 두두둥’ Bullet(불렛; 오토바이 브랜드) 특유의 요란하지만 묵직한 엔진 소리를 내며 우리에게 다가온 그는 자기의 오토바이 색보다 더 짙은 검은색 바이저가 내려진 헬멧을 쓰고 있다. “Hello? Is your name Choi?”(이봐요. 혹시 이름이 '최'입니까?) 낯선 목소리의 그가 다짜고짜 물었다. “Right. What’s up? Do I know you?”(맞는데 뭐죠? 저를 아세요?) 작은 마을 푸시카에서 유일한 한국인인 나를 모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헬멧 속에 가려진 채였던 그 낯선 이가 나의 이름을 아는 것이 특별히 이상할 이유가 없었다. ‘둥. 둥. 둥. 둥.’ 잠시 텅 빈 공회전 소리만 내고 있던 불렛은 그가 한쪽 핸들의 레버를 무자비하게 뒤틀자 ‘부릉부릉 두그둥둥둥둥둥’ 포효했고 “Please come with me.”(함께 가시죠.) 라며 그가 비어있는 뒷좌석을 턱으로 가리켰다. 그때까지도 그는 그가 경찰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았고 나 역시 그가 누구인지 묻지 않고 있었지만 난 어쨌든 그의 요구를 따르기로 했다. 그곳, 그 시간의 공기가 사실 나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가리켰다. 미처 다 비우지 못한 짜이를 거리에 부어 버리고 잔을 쥐고 있던 손가락에 힘을 빼자 흙길에 떨어진 잔이 퍽 하고 깨졌다. “Where are we going?”(우리 어디로 가는 거죠?) 요란한 불렛에 올라타고 그의 등을 향해 외쳤다. “Not that far.”(금방 도착합니다.) 앞만 응시한 채 그가 헬멧 속에서 외쳤고 우리가 탄 오토바이는 총알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의 말대로 5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우리가 도착한 곳은 마을 입구 어디 즈음, 6면 어디에도 창문이 없는 작은 방이었다. 항상 지나치곤 했던 낯설지 않은 그 장소에 그러한 방이 숨어 있었던 사실을 전에는 알 수 없었다. 3개의 의자와 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3개의 의자와 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 그리고 세 명의 남자가 들어서면 꽉 차 버리는 작은 공간에 놓여 있었다. 그 위에는 실링팬이 게으르게 돌아가고 있다.

“Please sit.”(이쪽에 앉아주시죠.) 우리가 도착하는 것을 예상하고 미리 방 입구 반대쪽 벽에 있는 의자에 앉아있던 중년 남자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했다. 내가 먼저 앉자 검정 불렛의 주인은 방 입구와 가까운 의자를 당겨 앉으며 그의 검정 헬멧을 벗었다. 그의 얼굴을 처음 본 나는 건너편에 앉아있는 자가 그보다 나이 많은 상사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내 옆에 앉은 그와 나는 아무 말 없이 서로 무뚝뚝하게 눈빛만 교환했을 뿐이다.


완전히 닫히지 않은 두꺼운 방문의 벌어진 틈 사이로, 여전히 햇빛이 가득한 거리 위의 사람들, 오토릭샤들, 자전거 릭샤들, 늙은 부부소 둘이서 끄는 달구지 그 소들을 향해서 이유 없이 짖어대는 야윈 개들이 보였지만 문밖의 그 누구도 우리가 앉아있는 이 방을 들여다볼 수는 없는 구조였다. “Show me your passport.”(여권 좀 줘봐요.) 밖에 있는 야윈 개들처럼 볼이 쏙 들어간 나이 많은 상사가 요구했다. 거칠고 검고 얇은 피부를 가진 그의 양쪽 눈가는 잔주름으로 가득하다. 그 아래 그의 피부색보다 더 어두운 다크서클은 입꼬리까지 내려와 있다. 물론 본 적도 없지만 웃는 게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 얼굴이다. “And who are you guys supposed to be?”(그런데 당신들 누구세요?) 나는 어쩌면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그들에게 물었고 내 옆에 앉은 불렛의 주인은 자신들을 언더커버 임무를 수행 중인 CID라고 소개했다. “Where is your valid visa?”(유효한 비자가 안 보이는데?) 나에게 건네받은 여권을 잠시 살핀 그 늙은 경찰은 따졌다. “What you are seeing is all in there. I don’t have a valid visa which is very unfortunate.”(거기 있는 게 다예요. 아쉽지만 유효한 비자는 없네요.)

불법체류 6개월째였던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나 자신에 대해 별다른 죄책감이 없었던 난 그렇게 사실대로 말했다. 혹시라도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살짝 웃기라도 했다면 그 이유는 단지 낯선 이들에게 나의 비밀을 들켜버리고 만 그 상황이 아주 조금 뻘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복경찰 임무를 수행 중인 늙은 CID 요원은 그런 나의 모습이 어쩌면 불쾌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의자 아래로 주섬주섬 손을 넣는 듯하더니 재빨리 나의 머리채를 자기 방향으로 낚아챘고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나의 목 뒤를 가격했다.

‘뻑! 뻑! 뻑! 뻑!’ 경쾌한 소리와 함께 예상치 못한 부위를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가격 당하고 말았지만 요란한 소리에 비해서 내가 느낀 통증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에 그가 사용한 둔기가 다름 아닌 그가 신고 있던 더러운 가죽 슬리퍼였던 것을 미리 알 수만 있었더라면 나는 그보다도 훨씬 빨리 그의 공격을 결사적으로 막거나 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오른 얼굴은 굳이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었다.


“You will pack up all your things and leave now and will never come back again to Pushkar nor any other places in Rajasthan. Do you understand?”(당장 짐을 싸고 이곳을 떠납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푸시카는 물론 라자스탄주 어디에도 얼씬거리지 않습니다. 이해하셨습니까?) 한 손에 꽉 쥐고 있던 가죽 샌들을 자신의 의자 밑으로 떨어뜨린 늙고 못생긴 그 인도 경찰은 꼼지락꼼지락 그 안에 작년 Diwali(디발리; 인도의 축제, 인도의 설날) 이후 단 한 번도 다듬지 않았을 발톱이 길게 자란 더러운 발가락을 힘겹게 쑤셔 넣으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그렇게 무례하게 명령과 협박을 했다.


무거운 나무 문틈 사이로 사막의 빛이 낮게 새어든다. 건너편 건물의 발코니 난간 위에서 반쯤 뜯겨나간 코를 가진 원숭이가 방금 훔친 바나나의 껍질을 벗긴다. 원숭이를 향해 매섭게 짖어대는 개 한 마리, 털이 다 빠져버려서 뼈만 앙상한 꼬리 아래는 멍멍 짖을 때마다 울렁이는 똥구멍. 멀지 않은 힌두템플의 확성기에서 들려오는 목이 쉬어버린 노인의 만트라는 오늘도 역시 형편없다.


문밖의 그 누구도 우리가 앉아있는 방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