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몬순

제13장 레모나나(Lemonana)

by 만달

2009년 9월~2010년 3월

인도, Goa(고아), Goa(고아)



“Turn here! Cut through the field!”(여기서 꺾어서 밭으로 가로질러!) 암살자에게서 쫓기던 중 제이슨이 다급하게 외친다. “Hang on!”(꽉 잡아!) 그렇게 말하며 그의 여자친구, 마리는 급하게 핸들을 돌렸고 그들이 탄 지프는 길을 벗어나 밭으로 뛰어든다. “What if it’s not who you think?”(만약에 저 자가 네가 생각한 그 사람이 아니라면?) 그날 갑자기 그들의 평화로운 일상이 깨져버린 것,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은 제이슨의 파라노이아 덕분이다. 그렇게 믿는 마리가 따진다. “Jason, Don’t do it. I don’t want you to..”(제이슨, 그러지 말아. 난 네가.. 원치 않아.) “It will never be over like this. I don’t want..”(그일은 절대 이런식으로 끝나지 않을거야. 난 싫어, ) 마리의 표정이 안 좋다. “We don’t have a choice.”(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런 그녀가 답답하다는 듯 운전석의 제이슨이 받아친다. “..Yes you do,”(아니, 그렇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빛을 한 마리가 그렇게 말한 순간 창문을 깨고 날아든 총알은 그녀의 머리를 관통한다. ‘푸우~ 슉!‘ 그녀가 정신을 잃었고 “Mari?”(마리?) 제이슨은 계속되는 총격을 피해 마침 지나던 다리의 난간을 부수고 지프를 돌진한다. 죽은 마리를 싫은 그들의 지프는 물결이 거센 강물 아래로 추락한다.

영화 본슈프리머시의 한 장면이다. 남부 인도의 고아(Goa)는 전 편에서 도망친 제이슨이 그의 여자친구 마리와 함께 평범한 여행객으로 위장하여 숨어살던 곳이다.

‘인도로 가자'

그 영화를 보면서 난 비로소 결정했었다.

자전거 대여점을 하며 소박하게 살지라도 살고싶은 곳에서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은 분명 멋진 삶이다.

나에게 고아는 인도에 대한 첫인상이다. 비록 그것이 환상이었을지라도

그렇다.


푸시카에서 추방 당하고 갈 곳을 찾아야 했던 나는 즉시 고아로 향했다. 그곳에 가면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는 Flea market(플리마켓; 벼룩시장)도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푸시카를 떠나기 전 총 네 개의 대형 가방에 더티론드리의 거의 모든 상품을 채워 넣을 수 있었다. 그 상품들을 씨앗 삼아 플리마켓을 밭 삼아 더티론드리의 아이디어를 심을 계획이었다. 더티론드리만 있다면 어디에서건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다. 궁지에 몰린 나는 더 이상 고양이를 겁내지 않기로 한 쥐처럼 감춰져 있던 초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그때 느끼는 흥분감이 좋았다. 미쳐버린 쥐처럼 눈빛마저 뜨겁게 변해버린 나는 그 무엇이든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있었다.


푸시카 인근의 교통허브인 아즈머(Azmer)의 버스정류장까지 날 에스코트한 젊은 CID 경찰의 감시 하에 강제로 델리행 버스에 올랐다. “Fingers crossed!”(행운을 빈다!) 그러자 그때까지 묵묵하기만 했던 그 젊은 경찰이 쿨한 작별인사를 던졌다. 동시에 발밑으로 길게 삐져나온 레버를 두어 번 힘 있게 찬다. ‘두구둥 둥둥둥둥’ 불렛의 시동이 걸렸고 그 진동은 사람들로 가득 찬 버스 안까지 전달되었다. 유효한 비자도 돈도 없던 나에게 없었던 또 다른 한 가지는 시간이었다. 재빠르게 생각하고 신속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끝장이라고 믿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만으로 살아남기 위해 뭐든 해야만 했다. 아즈머에서 뉴델리까지 10시간이 소요되었고 그 시간은 즉석에서 고아행 계획을 결정하고 완성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배와 등 그리고 두 어깨, 대형 가방들을 둘러매고 올드델리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뭄바이행 열차에 올랐다. 고아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뭄바이에서 갈아타야 한다.


만 이틀이 지난 이른 아침이다. 고아행 열차는 마침내 북부 고아의 Thivim(띠빔)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Boom Shankar! It was really nice to meet you my Korean friend. We wish your good times in India.”(붐 샹카! 만나서 좋았다 내 한국친구야. 우리 모두 너 인도에서 좋은 시간 되기를 바란다!) 고아행 열차에서 만난 10여 명의 필드하키 전공 대학생들은 2주 간의 일정으로 남부 고아로 전지훈련을 하러 가는 중이라고 했다. 열차에서의 9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조인트와 위스키가 오갔다. 파티는 고아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푸시카를 떠나야 했지만 이미 10여 명이나 나에게 행운을 빌었고 그 덕분인지 난 무사히 고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푸시카에서부터 가지고 탄 모든 가방들 역시 나와 함께 무사히 열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 쪽에 있는 원주민들의 마을에서 홈스테이를 찾거나 월세 기준의 방을 구할 수만 있다면 고아의 상대적으로 비싼 물가와 체류비를 감당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진다. 게다가 약간의 노력과 운만 따른다면 같은 가족으로부터 스쿠터도 동시에 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방문한 고아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확히 난 그렇게 해야만 했고 그런 난 항상 운이 좋았다. Vagator(바가토) 해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내륙에 있는 울창한 정글 속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커다란 두 눈이 마치 두꺼비를 닮은 Maruti(마루티) 아저씨의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두꺼운 팔과 뭉툭한 다리, 배도 탱탱한 두꺼비의 그것을 닮은 아저씨와는 달리 키가 훤칠한 그의 고등학생 막내아들, 새까맣고 길고 두꺼운 곱슬머리를 가진 아저씨의 아내, 그리고 자신들의 엄마와 정확히 같은 머리 모양을 한 두 딸이 사는 그 집의 거실을 키 큰 합판을 세워 이등분했고 나를 위해 마련된 그 공간에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심하게 삐걱거리는 철제 침대를 놓았다. 나에게는 없는 비자의 확인을 요구당하지 않고도 머물 수 있는 곳을 마련하게 되었으니 모든 일은 순조로운 듯 했다.


하지만 고아에 도착하기만 하면 당장 일을 시작하고 필요한 수익을 만들 수 있을 거라 믿었던 나의 기대는 어긋나고 만다. 9월은 플리마켓이 시작되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고아의 성수기는 크리스마스 즈음부터 비로소 시작될 것이었고 플리마켓은 새해가 지난 후에나 개장할 예정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렌트 또는 당장의 끼니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만 그 시간까지 겨우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 나의 고민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절대로 돈을 요구하지 않는 바다는 주저없이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해변 위에 설치된 형형색색의 비치파라솔들은 대낮의 뜨거운 직사광선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었고 그 아래 놓인 선베드들은 과열된 모래사장 위에 직접 맨살을 대지 않고도 누워서 쉴 수 있게 해 주었다. 선베드에 붙은 작고 하얀 테이블 위에는 물기 가득 머금은 파인애플, 수박, 스위트 멜론, 청포도, 오렌지 등이 쌓여있고 그와 함께 세워져 있는 것들은 너무 차가워서 표면에 맺힌 물방울들이 이슬이 되어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하이네켄과 브리저 그리고 피나콜라다와 모히토이다.


그 모든 것들은 끈질기게 수평선만을 바라보고 헤엄친 후 그들에게서 충분히 멀어진 내가 저 멀리서 바라보는 해변 위의 모습들이다. 물방울 터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깊은 바닷속을 탐험하다가 폐에 부족해진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잠시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면 유유히 구름 떠다니는 파란 하늘 또는 저 멀리 아른하게 보이는 고기잡이배들을 바라볼 것이고 그러다가 따분해져서 다시 뒤돌면 보이는,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는 수영 트렁크가 전부였던 나와는 상관없던 다른 이들의 세상이었다.


그날도 태양은 어김없이 수평선을 향하여 추락하고 있었고 그것을 확인한 나는 물속에서 나와 스쿠터를 세워둔 해변 공터를 향해서 천천히 걷는 중이었다. 일단 태양이 뜨고 날이 밝았다면 예외 없이 발생하는 일몰이겠지만 그 모습이 항상 같은 것은 아니다. 수평선 끝까지 시야가 확보될 만큼 맑은 날에는 시뻘건 불덩어리처럼 보이는 완벽하게 동그란 태양이 바닷속으로 풍덩 빨려 들어가는 것까지 볼 수 있지만 너무나 뜨거웠던 대낮의 열기에 가열되어 공기 중에 섞여버린 작은 물방울들 덕분에 그 먼 곳의 모습이 선명하지 않은 날의 태양은 그것이 수면에 채 닿기도 전에 공중에서 서서히 증발하여 버리는 것이다. 그날 내가 걸으며 바라보았던 그 태양은 완벽하게 동그랗고 시뻘건 불덩어리였으며 그 시간의 그것은 이미 반쯤 물에 잠긴 상태였다. 그런 맑은 일몰이 있는 날이면 언제나 그렇듯 난 그 태양이 물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길 기대하며 천천히 걷고 있었다.


새하얀 헝겊 조각을 물에 떨어뜨리기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물들어버리기라도 할 만큼 진한 오렌지빛의 모래사장과 가까운 해변에는 그때까지도 여전히 물놀이를 즐기는 이들의 그림자들이 까마득히 어른거린다. 그리고 그들이 지르는 즐거운 비명들은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에 묻힌 채였다. 그 모든 순간이 참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Shalom!”(샬롬; 안녕) 나의 한쪽 어깨를 잡은 손은 가볍고 부드러웠지만 어쨌든 어느새 깊어진 명상에서 나를 깨우고 만다. 한 손에는 커다란 후프를 든 채 침착하게 내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난 단번에 알아보지 못했다. “Boo! Michal! if you are having trouble recalling my name. hmm.. Already?”(미할! 치~ 내 이름 생각하기가 그렇게 어려워? 흠.. 그런거야? 벌써?) 꺼지기 직전의 촛불과 같이 순간 달아올랐던 밝은 오렌지빛의 대기는 어느새 옅은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고 그러자 비로소 그녀의 커다란 입과 그것보다도 더 커다란 미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Look at you! What a sweet dream am I in now? It’s just too good to be true. I mean.. hey~! what’s up? come right to me.”(응? 뭐야 너? 나 이거 지금 꿈이야? 뭐가 이렇게 달콤해? 이런게 현실일리가 없잖아! 내 말은… 야! 뭐야! 일로 와.) 이미 수개월 이상 그녀를 잊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언젠가 그녀를 그처럼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꿈속에서라도 미리 알 수 있었더라면 결코 그런 어리석은 실례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My bad not to shout aloud your name immediately. Please forgive me.” (네 이름 즉각 부르지 못한거 미안해. 용서해 줘.) 한참을 늦은 나의 사과는 하지만 진심이었다. 그리고 하마터면 그녀의 장밋빛 비키니에 대해 언급할 뻔했지만 대신 그녀의 장밋빛 입술을 바라보며 말했다. “Not a fast enough apology but accepted. I am very happy to find you too.”(좀 늦긴했지만 좋아! 사과접수. 나 너 찾아서 너무 행복해 정말로.)


북부 인도의 마날리(Manali), 그녀를 같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최초로 만나고 서로에게 단순한 호감 이상을 갖게된 건 약 1년전 일이었다. 하지만 여러 다른 이스라엘 친구들과 한 무리에 섞여 있었던 그녀 그리고 그들의 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던 우리는 서로에게 더 솔직하고 대범하지 못했고 그러한 감정은 그녀가 떠나야만 했던 그 시간까지도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채였다. “It’s dark already. Are you with anyone?”(벌써 어두워졌어. 너 혼자야?) 작고 입체적이고 검은 이마 위로 뿜어낸 금보다 반짝이는 긴 곱슬머리, 깨끗하고 맑은 눈동자, 두껍고 빨간 아랫입술, 완전히 다물어지지 못한 입술 사이로 보이는 하얗고 가지런한 앞니 커다란 금색 링 덕분에 야하게 늘어진 통통한 양 귓불. 그녀에 대한 기분좋은 감정이 지나버린 세월이 무색하게도, 빠르게 그리고 매우 거칠게 핏속 깊은 곳에서부터 다시 끓어 올랐다. “Probably It’s going to be my last trip to India for a long while. And this time I wanted to come alone.”(아마도 이번 인도여행이 한참동안 나의 마지막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 여행은 나 혼자이고 싶었어.) 그녀가 혼자라는 말에 절제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는 들었을 것이다. 당황한 나는 약간 서둘렀다. “Eh... how awesome. No I... I... mean you look gorgeous in that rosy.. eh.. rosy fiery red.. suit. Super hot.”(음, 진짜 잘됐다. 아니 내말은 너의 그 장미빛 불타는 빨간 수영복. 너무 예쁘다.) 어렸을 적 검정 바탕 위에 빨간 두 줄이 장식된 Dodge Viper(스포츠카)를 우연히 본 적이 있었고 그와 동시에 그 두 가지 색의 조합은 이 세상에 알려진 수많은 색의 조합 중에서 가장 관능적인 것이라고 저절로 믿게 되었다. 내 기억 속의 드림카를 연상케 하는 그녀의 매끈하고 윤기 흐르는 검은색 피부는 그녀의 장미빛 빨간 원피스 비키니 아래에서 훨씬 가치있어 보였다. “And I mean it. You are truly... eh.. a beauty!”(다시 한번 진심이다. 너 진짜 예뻐!) 1년 전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아름다운 그녀에게 그렇다고 말했고 안고 싶은 그녀에게 안고 싶다고 말했다.


마법처럼, 우리는 그녀의 5스타 호텔에서 모든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그 이후 내가 사랑에 빠지고 정들어버렸던 건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항상 기분 좋게 바삭거리는 흰색 이불과 푹신한 흰색 베개가 있는 킹사이즈 침대, 안주나의 평화로운 아침 해변이 보이는 대형 창이 달린 욕실과 자쿠지, 갓 내려져서 룸서비스로 배달되는 Lavazza(커피브랜드) 카푸치노가 놓여있는 티테이블과 해목이 있는 발코니, 지난밤 미처 다 태우지 못한 조인트가 놓여있는 검은색 도자기로 만들어진 재떨이 등. 그녀가 좋았고 그런 그녀와 나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모든 것들이 좋았다. 그녀와 함께 밟을 수 있었던 안주나 해변의 모든 모래 알갱이마저 사랑할 수 있을 정도로..


그 모든 시간은 빛의 속도로 역사가 된 채 자꾸만 뒤로 흘러 사라져만 갔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갔고 어느새 2009년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미할이 떠나야 할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But I have to,”(근데 진짜 안돼,) 가지 말라고 애원하는 나에게 그녀가 말했다. “Why can’t we just live together? I’m ready to do whatever is needed to keep us along. I am!”(왜 우리 그냥 같이 살 수 없는건데? 너랑 같이 있을 수만 있다면 내가 뭐든지 할께!) 오랫동안 같이 함께하고 싶은 사람에게 그렇게 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옳다. 그 제안에 내가 실제로 책임을 질 수 있는지의 여부는 상대방의 동의 이후에나 증명이 가능할 것이었다. 곧 있을 안주나 플리마켓의 개장을 염두하고 있었다. “Choi, I truly love you and I always feel safe with you. But I have to go back where I belong. You have to let me go. You have to brace for reality ASAP. I don't want you to get hurt in any form. Remember and never forget.”(최, 나 너 정말 사랑해. 너랑 있을 때면 언제나 편안하고. 하지만 난 내가 속한 그곳으로 돌아가야만 해. 넌 날 보내줘야만 해. 너 빨리 현실을 받아들여야 돼! 난 네가 어떤 형태로든 아프길 원하지 않아. 기억해! 절대 잊지마!)


12월 30일, 2009년의 끝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나 보다.’ 파티 플로어에서 쏘는 강한 레이저조차 도달하지 못할 만큼 먼 곳에 떨어진 채 평화롭고 조용한 해변 위에 홀로 앉아있기로 한 우리는 마이크를 든 MC의 목소리도 아닌 DJ가 터뜨리는 깊은 바다를 연상케 하는 묵직한 베이스를 울리는 트랜스 음악도 아닌 드넓은 해변에 넘쳐나는 청중들의 합창과 환호성만으로 가장 먼저 그렇다고 짐작할 수 있었다. “...four, three, two, one! Everybody happy! fucking! new! yeeee~arrrr~!!”(4, 3, 2, 1! 해피씨발뉴이어!) 그러자 조금 전까지는 들리지 않았던 MC의 흥분된 목소리가 우리가 앉아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Hey happy new year.”(야, 해피뉴이어.) 2010년 새해 0시, 정확한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에 만족한 난 그녀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그리고 희망을 완전히 버리지 않은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In this new year, I am going to get married. Forgive me Choi. In fact, I am engaged.”(새해가 되면, 나 결혼해. 최, 용서해줘. 사실 나 약혼했어.)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은 그렇게 말한 그녀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그것을 감췄기 때문이다. “To someone I don’t love.”(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라고 친절하게 묻지도 않은 설명까지 한 그녀는 텔아비브에서 즉석으로 인도행을 결정했고 고아에 도착하기까지 1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푸시카에서 델리를 거쳐 고아까지 이동한 시간의 반도 안 걸린 셈이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나의 위치를 알 수 있었던 그녀는 그녀만의 비밀스러운 Bridal Shower(브라이덜샤워)를 위해서 일부러 그리고 홀로 나를 찾은 것이었다. “Why me?”(하필이면 왜 난데?) 별로 어렵지도 않은 수학 문제를 혼자서만 이해하지 못한, 사실은 그다지 영특하지도 않은 모범생의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천사처럼 너그러운 그녀가 대답했다. “I wanted to commit a sin against God for hand me to a person I don’t love and I needed to feel guilty for my fiance before the marriage, to serve him better. Maybe you don't understand.”(내가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를 나 대신 간택한 신에게 반항하고 싶었어. 게다가 난 결혼 전에 내 약혼자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싶었어. 그래서 그에게 내가 더 잘할 수 있길 바랬어. 아마도 넌 무슨말인지 이해할 수 없을 지도 몰라.) 그렇다. 난 그런 그녀의 설명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I don’t get it. Will! you give it another try?”(무슨 얘기야? 다시 한번 설명해봐.) 사실 내가 알아야 할 것은 이미 다 안다. 그녀의 약혼자나 그들의 결혼에 대해 더 알고 싶은 것도 없다. 서로 사랑한다고 말하고는 했기 때문에 실제로 그럴 거라고 믿고 있었던 상대방이 내가 가졌던 기대만큼 나에게 진실하지는 않았었다는 것을 알게 된 느낌은 특히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을 때 반가울 리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잃은 것은 곧 또다시 치유될 이미 부서진 마음뿐이라고 믿으면 침착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I wanted to protest against God about that I had to belong to a helplessly orthodoxy family and I needed to feel guilty to my fiance to be able to love him at last before making the oath. And you were there within my reach when I was looking for a perfect opportunity in time. The chemy between you and me has been sincere, or so I remembered, and I desired it to be released while possible.”(난 내가 어쩔 수 없이 구제불능 정통유대교 가족의 일원인 것을 신에게 항의하고 싶었어 그리고 난 내 약혼자를 사랑하기 위해서 혼인서약 전에 내 마음속에 그에 대한 죄책감을 지고 싶었어. 그리고 시간내에 그러기 위한 완벽한 기회를 찾던 중 내 사정거리에 네가 있었던거야. 너하고 나 사이에 분명히 진실된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 같아. 어쨌든 난 그렇게 기억하고 있어. 그리고 난 여전히 가능할 때 그것을 분출하고 싶었던거야.) 너무나 복잡해서 어차피 내가 가진 지능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그녀의 변명 자체를 굳이 논리적으로 따지려고 하기보다 여전히 사랑하는 그녀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 이미 열린 상처를 더 깊게 파헤치지 않고 오히려 빨리 아물게 하는 지혜라고 믿었다.


아이러니는 그런 그녀의 이해 불가능한 복잡함이 아니었더라면 애초부터 그녀에게 그토록 빠지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복잡하고 난해한 상대방일수록 매력적이었고 그런 상대에게 일단 빠지면 그 자극적이고 달콤한 복잡한 감정 안에서 오랫동안 머무르는 것이 가능했다. 난 그 검은 피부의 유대인 예비 신부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우리에게 정해진 시간이 다 되었음을 인정해야만 했고 그래서 그녀를 잊어야 한다면 가능한 천천히 그리고 후회없이 잊을 수 있기를 원했다. “I wish your forever happiness. And you have been always right to me. For that, I thank you.”(난 그냥 네가 영원히 행복했으면 좋겠다. 넌 항상 나하고 잘 맞았어. 그래서 고맙다.)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리고 그녀를 만지자 어느새 젖은 그녀의 냄새가 따뜻한 바닷바람을 타고 나에게 전달되었다. “Happy new year Choi.” 내 귀에 입술을 놓은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거칠게 숨쉬며 따뜻하게 속삭였다.


1년 후,
안주나 해변 위 로보스 카페 내 더티론드리는 고아에서의 두 번째 시즌이 한창이었다. “Choi, my hubby Noah. Noah, my good old friend Choi.”(최, 내 남편 노아. 노아, 내 오랜친구 최.) 그녀가 내 앞에 다시 한번 나타났고 그녀 말대로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다. “She said she knows the best Shakshuka on the beach. And I know she’s always right.”(미할이 여기 샥슈카가 해변에서 최고라고 했어요. 난 그녀가 항상 옳다는 것도 알죠.) 자신을 목사라고 소개한 노아는 머리 위에 얹은 하얗고 깨끗한 스컬캡이 행여나 이른 아침 바닷바람에 날아가 버릴까 한 손으로 꼭 누른 채였고 잔뜩 배가 부른 미할은 그렇게 말하는 남편의 다른 한쪽 팔을 사랑스럽게 부여잡고 있었다. “The two of you. No I mean the three of you, look fabulous. What a perfect family portrait one can imagine? Awesome!”(너네 둘. 아니 셋. 보기에 진짜 멋지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가족사진인데? 최고!). “What about some Lemonana? It’s going to be a hot day today, isn’t it? My treat.”(레모나나 어때? 오늘 좀 뜨거울 것 같은데? 내가 살께.) 태양이 작렬하는 안주나 해변 위에서조차 검은색 정장 바지와 모래때 묻은 흰색 셔츠를 벗지 못하는, 세상 모든일은 신의 뜻이라 굳게 믿는 노아를 향해 내가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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