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몬순

제14장 Sisterfuckers

by 만달

2010년 2월

인도, 고아(Goa), 고아(Goa)



“Excuse me, but I found the change came short.”(실례합니다. 잔돈이 모자라네요.) Laxmi(락스미) 슈퍼마켓은 Vagator beach(바가토)에서 가장 큰 규모일 뿐 아니라 내가 머물던 마루티 아저씨의 집과도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자주 이용하던 곳이었다. 거지였던 나는 배고파서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을 테고 그 이유로, 여느 때와는 달리, 슈퍼마켓 주인이 내게 건넨 부족한 잔돈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불쾌한 그 감정을 누군가 자격지심이라고 치부해도 난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배고픈 사람을 건드린 건 그날 그놈의 운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비슷한 그의 그러한 습관은 단순한 실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빈번했었고 그날의 나는 그런 그놈이 그냥 싫었다. 그가 나에게 건넨 잔돈에는 약 140원이 부족했다.


“No problem. It’s only 8 rupees.”(괜찮아. 겨우 8루피 가지고..) 심술로 가득한 얼굴은 기름으로 번들거렸고 너무 작은 카운터 테이블 위에는 그의 무거운 배가 살짝 얹혀 있었다. 그리고 축 처진 엉덩이는 그 아래에 깔고 있을 것으로 추정만 되는 의자를 완전히 덮어서 감춘 채였다. “So you already knew what you’re handling over me and that was short.”(그렇다면 사장님은, 알면서도 일부러 그러셨다는 건가요?) 그의 의도하지 않은 범죄 고백과 뻔뻔한 표정의 조합은 나를 조금 더 흥분시켰다. “What’s so big a deal? That eight rupees ain’t make you rich. So stop crying like a Japanese pussy. Can’t you see how busy I am here?”(뭐가 그렇게 심각해? 그 8루피가 널 부자로 만들어줄 것 같아? 그러니까 조그만 일본 계집애처럼 징징대지 좀 마. 나 바쁜 거, 여기 안 보이니?) 그의 앞에 서서 빼앗긴 140원을 요구하는 내가 가소롭다는 듯 그는 나에게서 고개를 돌렸고 대신 내 바로 뒤에 서 있던 고객을 향해 자동적이고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속닥속닥’ 그 고객도 목격했을 그와 나의 갈등에서 정의로운 승자는 당연히 자기라고 선언하는 것이 분명했다. “You! 가소로운 돼지새끼 extorting eight rupees from a customer and it could feed your fat-ass wife another piece of butter fucking chapati!”(야! 가소로운 돼지새끼, 네 고객한테서 8루피 사기치고 네 엉덩이 튼실한 와이프한테 씨발 버터차파티 한 장 더 먹이려는 것 아냐?) 하지만 흥분상태를 더 뜨겁게 지속적으로 태울 몸속의 에너지가 소진되자 의기소침해진 나는 그렇게 힘없이 말끝을 흐리고 슈퍼마켓을 막 나오려던 참이었다. 내가 고집부리고 그 싸움에서 이겨봤자 얻을 수 있는 최대의 보상은 140원이라는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해지자 그 모든 것이 부끄러워졌다. 그날 더 가난했던 난 분명히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건 나 말고 다른 누구의 탓도 아니었다.


“Chalo! Behen chaud. Such a mean poor fucking Japs!”(꺼져. 베헨초드. 뭐 저런 밥맛없는 일본 거지가 다 있어?) 하지만 이미 많은 것을 소유한 듯한 그 부자는 나와는 다른 이유로 그날의 나만큼, 어쩌면 오히려 더 행복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나 보다. 그렇게 그냥 가려는, 보잘것없는 거지 같은 나를 너그럽게 보내주지 않는 두 번째 실수를 저지른다. “Japanese? I am fucking not. And second, I'm having no sister to fuck... Have one for me at home?! Sorry, I like fat pussy, not fat ass of your own.”(일본? 씨발 나 아니고. 두 번째 나 여동생이 없다. 너 혹시 집에 하나 있어? 그리고 유감이지만 난 네 와이프의 뚱뚱한 똥꼬는 싫다. 말고, 통통한 보지. 있어?) 행복하지 못했던 그 두 명의 서로에게 날 선 남자들은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충혈된 그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경멸과 증오의 감정은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나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었고 “Teri~ maa ki! mada chau~d!”(떼리마끼! 마다초~드!) 두꺼운 얼굴가죽까지 검붉어진 그는 모든 어두운 진심을 담아 사악한 악을 질러댔다.


일반적으로 인도에서 이와 같은 갈등이 있는 경우 상대방에게 내뱉는 behen chaud(베헨초드) 즉 sisterfucker(자기 여동생 또는 누나와 자는 남자)는 여전히 서로 견제하는 수준 정도로만 받아들여지고 아직은 최악의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그 능욕의 대상이 sister에서 mada(mother)로 발전되면 그 말을 던진 대상은 결국 ‘끝’을 볼 각오가 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 공격을 받은 대상은 어쩔 수 없이 그의 도발에 적극적으로 응수해야만 할 것이다. 안 그러면 엄마의 아들인 것을 포기한다는 모습이 될 테니까.


“What ya say? You shouldn’t bring up my mother through that ass stinky mouth of yours. You fucking piece of dog shit.”(방금 뭐라 그랬냐? 너, (네 와이프의) 똥꼬향 풀풀 풍기는 그 입으로 우리 엄마를 감히 언급한 거? 이런 개새끼 똥조각 같은 새끼가!) 동시에 난 한 손에 들고 있던 식료품이 가득 담긴 플라스틱 쇼핑백을 그가 앉아있는 작은 카운터 데스크 위에 한 번에 쏟아부었다. 물론 그 안에는 여러 개의 달걀이 들어있었고 싸구려 유리병에 든 식초 한병도 있었다. 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Returning all this garbage! boss. Now, refund please.”(사장님, 이 쓰레기들 전부 반품이요. 환불 부탁드려요.) 그러자 잔뜩 열받은 그가 ‘꽥’ 소리 질렀고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몸집에 비해 너무 작은 카운터 데스크는 앞으로 넘어졌고 예상보다 훨씬 민첩하게 그는 내 앞으로 뛰어들어 멱살을 잡았다. 내가 당황한 것은 그의 민첩성뿐만이 아니다. 나를 잡은 그 손아귀의 힘은 과히 초인적이다. 몸부림치다가 찬 것이 운 좋게 그의 사타구니 었고 내 오른발 끝은 용케 그의 두꺼운 두 허벅지 사이를 뚫고 급소를 찾았다. ‘꽥’ 그는 또 다른 비명과 함께 힘을 잃었고 난 가까스로 슈퍼마켓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엄마를 능욕한 그놈은 더 벌을 받아야 마땅했지만, 여전히 발끝에 남아있던 타격감이 은근히 만족스러웠던 나는 절대로 다시 돌아오지 않기로 하고 그곳을 막 벗어나려던 순간이었다.


“Mada chaud. tum kahaan ja rahe ho?!!”(마다초드! 가긴 어딜 가?)

어느덧 내 앞을 가로막고 선 두 명의 거대한 인도인들에게 목과 양팔을 붙잡혔고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내가 끌려들어 간 그곳은 슈퍼마켓과 이웃한 건물 사이의 좁고 어두운 통로다. 입고 있던 검은색 셔츠의 단추가 하나둘셋 투드득 뜯겨 나가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들어왔던 방향과 반대로 통로를 빠져나오자 슈퍼마켓의 뒤뜰이고 ‘Laxmi Hardwear’(락스미 건축자재)라고 쓰인 간판이 있는 그곳은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 수백여 장의 합판들 그리고 수천여 장의 벽돌 등이 높게 쌓여있는 목공소인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사내들의 손에는 망치, 각목, 쇠막대기, 벽돌, 칼과 낫 등이 들려있었다. 여전히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했지만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얼굴과 머리로 날아드는 공격을 막고 피하는 동안 팔과 다리는 각목과 쇠막대기 그리고 여러 가지 날카로운 흉기에 무참히 찍히고 까지고 뚫렸다. 사방을 둘러봤지만 화난 채 나를 둘러싼 그 사내들을 헤치고 도망갈 수 있는 길은 전혀 없어 보였다.


“Brothers!!! finish him!”(형제들!! 그 자식 끝장 내!)

익숙한 그 목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내가 본 것은 방금 끌려들어 온 건물 사이의 어두운 통로였다. 슈퍼마켓 사장의 것인 듯한 커다란 그림자는 나를 정면으로 노려보며 느릿느릿 하지만 부지런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잡히면 그게 나의 마지막일 것이었다. “Kill him!”(죽이라고!) 또다시 들려온 그의 고함에 사내들은 잠시 멈칫했고, 그들은 정말로 나를 죽여도 되는 건지 빠르게 판단했을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그들의 보스를 향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비좁은 통로에 꽉 낀 그의 몸뚱이를 향해서 전력 질주를 했고 마침 그의 곁에 쌓인 벽돌더미를, 이어서 그것들 보다 더 높지만 불안정하게 쌓인 대형 합판들을 밟고 있는 힘껏 날아올랐다. 원투쓰리 그리고 결국 내 발아래에 놓인 그의 어깨를 밟고 그의 머리 위로 지나치려고 했지만, 발아래 합판들이 무너지며 균형을 잃고, 찰나였지만 온 힘을 다해 허공에서 허둥댄다. 결국 나의 무릎에 찍힌 건 그의 두꺼운 얼굴이다. 그 더러운 입, 그리고 내 무릎은 순식간에 그의 피로 뒤범벅되어 어느새 신발 속을 적시고 있다. ‘뻑' 소리가 났고 뭔가가 심하게 부서졌다는 것을 알았다. ‘꽤애액~’ 그가 울면서 쓰러졌고 나는 일단 달렸다. 아무도 그런 나의 뒤를 제때 밟지 못했던 건 그들 보스의 거대한 몸뚱이가 건물 사이의 유일한 통로 위에 빈틈없이 꼭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꽤애액~’ 패배자의 분노가 포근한 저녁의 공기를 가득 채웠다.


달렸다.


어느새 눈높이에서 아래로 빠르게 추락하고 있는 까만 태양을 바라보며 계속 달렸다. 심장은 요동쳤고 코끝에 전해진 피비린내는 바닷가의 비린내와 조화롭게 희석이 되어 향기롭기까지 하다. 까만 해가 지던 그 방향은 내 방으로 가는 방향이 아니다. 그래도

‘오늘 저녁, 하, 씨발 뭐 먹지?’

생각하면서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