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몬순

제15장 Vagator(바가토)

by 만달

2010년 3월

인도, 고아(Goa), 고아(Goa)



매주 수요일 일주일에 한 번 서는 플리마켓에서의 수익은 방세만을 감당하기에도 버거웠다. 장이 서지 않는 6일간의 공백은 더티론드리의 아이디어에 동의하고 기부할 물건들과 함께 재방문을 약속했던 여행객들의 의지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주로 의류, 액세서리, 생필품, 기념품, 특산물 등을 판매하는 로컬상인들과 고아의 시즌특수를 기대하고 전국에서 모여든 수백여 Nomad(노마드; 장기여행자)들의 음식, 예술, 문화, 음악, 공연 등의 다양하고 강한 개성을 지닌 수백여 상점들은 해변 위 거대한 공간에서 대나무와 합판 그리고 바나나잎으로 지어진 서로 비슷한 모습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최초 방문했던 특정 상점의 위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재방문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한 이유 등은 더티론드리만의 특수이자 매력인 ‘상품의 신속한 연속 재공급’을 제한하였고, 플리마켓 내에서 더티론드리의 운영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여행객 중 많은 수가 아이디어에 진실한 적극성을 보였기에 그곳에 서 있는 시간이 언제나 즐거웠던 난 매주 수요일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지키기를 원했다. 그들의 응원과 긍정의 에너지는 나의 허기진 배를 밥보다도 빨리 채워주곤 했던 것이다. “You should find a better spot most of all. And I will find you with tons of articles for Dirty Laundry. By the way, what a name for a shop? it goes well with the shop though with a pinch of twist. Hoho,”(무엇보다도 넌 더 나은 장소를 찾아야 해. 그러면 내가 정말 많은 것들을 가져다줄 수 있겠지. 그런데 가게이름 마음에 드는 걸. 약간의 반전과 함께 잘 어울리네. 호호, ) 군복무 중인 내 또래의 아들을 그리워하는 영국인 할머니 Lorraine(로레인). “I have lived in Goa about 10 years and have been waiting for an op. shop just like this since. My space is overflowing with useful stuff.”(내가 고아에서 10년째네. 그리고 그동안 이런 기부형 가게를 찾고 있었지. 우리 집에는 지금 안 쓰는 물건들로 가득하다네.) 한때는 블론드였을 테지만 지금은 희끗희끗 새어버린 머리를 한 그녀가 두 볼에 진한 홍조를 띠고 흥분해서 말했다.


그러한 고객들을 만날 때마다 플리마켓 이외 아이디어를 노출할 수 있는 다른 기회의 개발은 더티론드리의 생존에 최우선 과제임을 반복해서 확인하였고 지상 위 천국, 고아에서 끼니때마다 현실적인 문제로 남몰래 고민해야 했던 나는 그 지독한 가난에 이미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더티론드리가 살아야만 했고 더티론드리가 살기 위해서는 난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했다. 고객의 재방문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면 내가 그들을 찾아가기로 한다. 'Travellers Donate Unwanted Items and We Recycle and Sell.'(우리는 여행객들의 기부 상품들을 재활용하며 판매합니다.) 장이 서지 않는 날에는 내가 이동하는 모든 곳에 전단지를 돌렸고 손이 닿는 모든 곳에 포스터를 부착했다. “Where would I find you?”(널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해?) 여느 수요일 플리마켓에서 나를 발견한 또 다른 로레인이 묻는다면 “Don’t I have six too many days of time to spare? Let me find you at your convenience.”(저 내일부터 시간 많습니다. 좋으신 시간에 제가 찾아갈게요.)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나를 부른 그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Please visit the room #102 at Baba guest house in Vagator before 12, check out. We are going to leave the room due to an early flight. And every items found in it will go for your project. Thank you good luck!”(12시 퇴실시간 전, 바가토, 바바 GH 102호. ‘우리는 비행스케줄로 이른 퇴실 예정. 방에 남아있는 모든 상품들을 기부합니다. 감사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그들의 방에서 찾아낸 두 개의 슬리핑백, 나이키 운동화, 구찌 선글라스, 포장도 뜯지 않은 비키니 set, 백팩, 다섯 개의 스팸 묶음, 와인, 프리즈비와 부메랑, 캠핑용 버너 등은 그것들만으로도 다음 플리마켓에서의 더티론드리를 가득 채우기에 충분했다.


‘And those are specially for you only. But with a condition ;) do NOT sell them off!!’(그리고 여기 이것들은 특별히 당신을 위한 겁니다.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 ‘판매금지!’) 그들이 남긴 배낭의 여러 주머니 중 하나에서 발견한 쪽지에는 그렇게 쓰여있었고 그 안은 또 다른 물품들로 채워져 있다. 작고 투명한 지퍼백을 채운 투명한 크리스털 MDMA, 파란색 LONDON DRUGS(런던드럭스; 캐나다 슈퍼마켓 브랜드) 플라스틱 약통 속 두 정의 흰색 엑스타시, 옅은 갈색 냅킨으로 꼼꼼히 포장된 하시시 조각 그리고 또 다른 지퍼백 속 하얗고 고운 가루는 정제된 케타민이다. 그중 지퍼백 속에 흐트러져 있던 MDMA의 흰 가루를 검지 끝에 아주 조금만 묻혔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혀끝에 올렸다.


‘Keep up the good work and you will be rich one day.’(계속 열심히 해봐. 언젠가는 부자가 되어 있을 거야.) 그러자 며칠 전 그렇게 말씀하시던 로레인 할머니의 상기된 얼굴이 보이고 그런 그녀의 뜬금없는 과찬에 쑥스러워 소리 내 웃던 나의 모습도 보았다. ‘내게 필요한 것, 내가 기대한 것, 그 이상을 어쩌다 한 번에 가져보는 경험은 희귀하고 대단히 소중하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일단 가진 모든 것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경험이 선행되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이러한 작은 깨달음들은 내 안에서 꺼지지 않는 분수처럼 솟아오른다. 물론 순식간에 뇌로 녹아든 MDMA덕분이었겠지만 순도 높은 마약은 이성적인 판단을 방해하지 않는다. 또는 나같이 그딴 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용자로 하여금 그렇다고 믿게 해 준다. ‘Perhaps she wasn’t wrong.’(어쩌면 로레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했던 사실은 그날의 나는 그 전날의 나보다는 훨씬 부자였다는 것이었다.


두껍고 무거운 대나무로 튼튼하게 기둥을 세우고 그보다 가늘고 가벼운 대나무로는 벽과 지붕의 뼈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선과 전구를 이어서 스톨(stall)을 환하게 밝혔고 한낮의 뜨거운 태양광으로부터 상품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서핑보드만 한 바나나 잎들을 엮어 벽과 지붕을 촘촘하게 덮었다. 지붕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전기에 감전도 되어봤다. 그렇게 만든 작은 스톨의 지붕 위에는 Dirty Laundry라고 쓰인 깃발을 꽂았고 그 안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나는 햇볕에 그을려 피부색만으로는 원주민들과의 분간이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난 고아에서 스톨을 3개씩이나 보유한 어엿한 한국인 ‘월드클라스’ 상인이 되었고 그런 나와 내가 하는 일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늘었다.


3월이 되자 시원하고 상쾌했던 바닷물은 미지근하게 변해서 오후만 되면 해수욕객들 대신 해파리들로 가득했고 각자 자부심 가득한 그들만의 플레이리스트로 해변 위를 서성이는 여행객들을 유혹하던 카페와 레스토랑들은 어느새 꺼져 버린 음악들과 함께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Flea Market, Saturday Night Market, Hilltop Friday Market. 역시 시즌의 마지막 하루를 미리 공표하곤 했고 그들이 약속했던 그날 이후가 되면 한때 활기로 가득했던 그 장소들은 아무것도 없던 원래의 그 황량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채 쓸쓸한 모래바람만 날렸다. 난 모두가 떠나버린 그곳에 더 남아있기로 했다. 하지만 1년 전 푸시카에서의 상황과 달랐던 점은 더 남기로 한 것과 동시에 떠날 것 역시 벌써 계획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더는 참여할 수 있는 오픈마켓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신 작은 창고를 계약했고 바가토 해변과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은 그 작은 창고는 그렇게 더티론드리 최초의 진짜 지붕과 벽과 단단한 문이 있는 어엿한 가게가 되어 주었다. 유효한 비자 없이 나만의 가게를 오픈하고 그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었던 그 경험은 이후 스스로를 더 대범하게 단련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더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대범함은 불법체류자인 내게 가장 절실한 자질이었던 것이다. 5월이 되어서 고아를 떠나올 때는 7개의 대형 가방과 함께였다. 약 반년 전과 달라진 것은 늘어난 가방의 개수와 그 안의 내용물들뿐만이 아니었다. 더티론드리로 가득한 대형 가방을 쥔 나의 양손은 더욱 단단했고, 양어깨는 높고 넓다. 마드가온 역에서 기차를 타면 이틀 후 올드델리에 도착한다. 그리고 여전히 운이 좋다면 그곳에서 호텔에 체크인할 필요 없이 바로 다람살라로 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