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몬순

제17장 점

by 만달

2020년 5월 10일

인도, 히마찰프라데시주(Himachal Pradesh), 다람살라(Daramshala)



내가 이 방의 크기를 한 평 반이라고 판단하는 데는 나름 근거가 있다. 일단 천장의 높이는 3미터 정도이다. 183센티 나의 신장을 기준으로 그렇게 추측이 가능했다. 직사각형 모양의 공간, 짧은 축 한쪽 면에는 높이가 약 2미터 되는 66개의 쇠창살로 만들어진,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일 발등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평생불구가 보장될 톤단위 무게의 철장문이 있다. 여느 영화 또는 마술쇼에서와 같이 그 두꺼운 쇠창살을 맨손으로 휘거나 부러뜨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만약에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했다면 그것은 그 수감자의 슈퍼파워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철장문의 디자인에 물리적 오류가 있었기 때문이라 짐작해 본다. 두껍고 키가 큰 쇠창살들은 중간중간 그보다는 덜 두꺼운 또 다른 쇠창살들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가로 방향으로 엮여있다. 그 간격은 쇠창살의 실제 길이에 제한을 두어 단순히 힘으로 휘어지거나 부러질 수 있는 공간의 여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한 보조? 쇠창살들 없이 세로로만 엮인 키 큰 쇠창살들로만 만들어진 문이었더라면, 그리고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어쩌면 나도 그것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천천히 휘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철장문 위로 약 30센티 부분에는 24시간 꺼지지 않는 눈부시게 밝은 LED 전등이 있으며 반대편, 또 다른 짧은 축 벽에는 약 2.5미터 높이에 가로와 세로 모두 50센티 정도 되는 정사각형 모양의 창문이 있다. 그 창은 유리가 없이 역시 두꺼운 쇠창살들과 반쯤 찢어진, 찢어졌으니 이미 쓸모없어진 모기망이 너덜너덜 매달려 있을 뿐이다. 까치발을 세워 시선을 최대한 높이거나 또는 이 방 안에서 창과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가장 작은 각도로 시도해 봤자 그 창을 통해서 밖을 내다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창밖에서는 원한다면 방 안쪽을 내려다볼 수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어젯밤이었다. 늦은 시간 철장문 밖에서 순찰하던 교도관과 방을 통과해서 반대편에 있는 창밖의 교도관들이 잠 못 들어 뒤척이던 나의 존재는 완전히 무시한 채 굳이 내 방을 사이에 두고 자기네 언어로 한참을 시시덕거리며 대화를 나누었다. ‘내가 자고 있는지 아니면 잠 못 들어 뒤척이고 있지만 자는 척을 하고 있는지 과연 저들은 알고 있을까?’ ‘아님 혹시, 수감자의 인권도 대범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찌질한 내가 이 모포 속에 꼭꼭 숨어서 실제로 자고 있는지 아님 자는 척을 하고 있는지 서로 맞추기 내기라도 하는 건 아닐까?‘는 그 시간 내내 머릿속에 가득한 채 날 잠 못 이루게 방해했던 수많은 잡생각들 중 일부였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격자무늬의 철제프레임들이 있고 정사각형 모양 격자의 한 축은 약 50센티이다. 모두 같은 크기의 흰색합판들은 각 하나씩 한 격자의 면을 채워 세로로 5개의 격자, 가로로 약 3.8개의 격자들이 있다. 이는 내가 한 평 반으로 짐작되는 이 방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던 편리한 단위가 되었다. 모기들과 파리들 그리고 말벌들을 막아주지 못하는 창문이 있는 벽의 오른쪽 코너는 화장실 겸 욕실의 역할을 하는 공간이 차지한다. 쭈그리고 앉아서 큰 용변을 볼 때는 창문 왼쪽의 세로축 벽을 바라보게 되고, 서서 소변을 볼 때 바라보는 방향은 그 반대편, 즉 오른쪽의 세로축 벽을 바라보게 된다. 그 오른쪽 벽에 붙어있는 변기의 물통은 심하게 파손되어 간신히 그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이 독방을 사용하는 온갖 종의 범죄자들 또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 용의자가 물통 정면에 붙어있는 작은 플라스틱 레버를 젠틀하게 아래로 당기면 물이 흘러나와 용변으로 오염된 세라믹 변기를 편리하게 세척해 줄 것이다. 이곳을 설계한 그 누군가는 애초에 그렇게 기대했었나 보다.


어쩌면 한 번도 청소를 한 적이 없기에 그곳에 엉겨 붙어버린 검갈색 묵은똥과는 다른 주황색 얼룩들은 인도사람들이 즐겨 씹는 빤(Pan)을 뱉어 생긴 흔적들이다. 이미 수년 전부터 교도소 내 담배 및 빤의 휴대가 전면 금지되었다고 하니 그 얼룩도 최소한 그 수년 전만큼 오래된 것이다. 물파이프가 연결된 시멘트벽의 구멍이 마모되어서 꼭지가 없어진 수도꼭지가 벽 밖으로 튀어 나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어렵게 잡아당겨서 다시 안으로 뽑아내곤 했지만 마지막에는 벽 밖의 누군가가 파이프째 밀어 넣어 줘야만 했다. 그 이후로 바닥 한 귀퉁이에서 뒹굴고 있던 아주 오래된 듯한 싸리빗자루를 헐거워진 그 구멍에 쑤셔 넣어 메꾸고, 자꾸 그 사이로 혼자 탈출을 시도하는 수도꼭지를 고정할 수 있었다. 그제야 한동안 쓸모없다고만 생각하던 그 낡은 빗자루의 실제 용도를 찾게 된 것이다. 이 모든 시설은 허리높이의 시멘트벽으로 방 바깥의 시선에서 자유롭기에 아무리 죄질이 안 좋은 범죄자 일지라도 꼭 그 정도, 허리 아래의 프라이버시는 존중되는 셈이다.


입소와 동시에 받은 총 6장의 먼지 냄새 짙고 거칠거칠한 모포들은 철장문의 오른쪽 세로축 벽을 따라서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화장실과 잠잘 때의 머리 위치를 최대한 멀리 유지하기 위한 계산이었다. 세 장은 바닥에 깔았고 두 장은 이불처럼 덮고 잔다. 나머지 한 장은 잘 접어서 베개로 사용한다. 천장의 정 중앙에는 속도 조절이 불가능한 채 최고속도에만 고정된 실링 팬이 있다. 실링 팬의 작동은 문 앞을 지나다니는 교도관에게 부탁해야만 한다. 모든 전기 스위치들은 내 손이 닿지 않는 문밖에 있기 때문이다. 벽 색깔은 아주 엷은 하늘색이다. 원래는 훨씬 더 선명했었을 페인트의 파란색이 오랜 세월에 조금씩 잡아먹혀 정신병원에 꼭 어울릴만한 지금의 생기 없는 하늘색이 된 것이다. 성인의 평균 앉은 키에 해당하는 벽의 아랫부분은 다른 부분에 비해 더 심한 세월의 흔적이 있다. 색만 바랜 것이 아니라 시멘트까지 조각이 되어 떨어져 나간 채 파여있다. 사람의 신체, 특히 머리 뒤통수와 반복된 접촉으로 발생하였을 그러한 훼손이 모든 벽면에 예외 없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이곳이 언제나 반드시 한 번에 한 명의 수감자만을 수용했던 것은 아닌 듯하다. 하나, 둘, 셋... 일곱, 여덟… 그들은 어떻게 저 하나의 화장실을 다 같이 나누어 쓸 수 있었을까? 화장실을 정면으로 마주 봐야만 하는 저 위치에 앉아있었을 수감자는 왜 그랬어야 하는 걸까? 서로 다닥다닥 붙어 그들의 기름 잔뜩 낀 머리를 벽에 기댄 채 시멘트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오랜 시간 버텨야 했을 우울한 12명의 범죄자들에 대해 상상을 하니 덜컥 겁이 난다. 만약에 그들이 내 방에 새로운 수감자, 수감자들을 더 넣으려 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비록 잠 못 들게 방해하지만 지금처럼 적막한 밤에도 절대 꺼지지 않는 LED의 환한 불빛이 고맙게 느껴졌다. 조금만 더 살펴보면 그러한 시멘트의 훼손이 가장 심한 벽면은 지금 나의 머리가 닿는 바로 이 부분이다. 인도인 죄수들과 한국인 죄수, 더럽고 냄새나는 화장실로부터 그들의 머리를 최대한 멀리 두고자 하는 노력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이 방에 첫발을 내딛기 전부터 화장실 주변에서 상주하고 있던 14마리의 구더기들은 항상 일정하게 그 수를 유지한다. 만약 그들의 수가 감소했다면 그들 중 사라진 멤버의 위치를 추적하여 나와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며, 혹시라도 증가했다면 즉, ‘내 방에서 번식을 한다?’의 의심만으로도 충분히 심각한 사안이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도 14마리의 그들은 항상 일정하게 그 수를 유지한다.


이 방 벽 전체 면적의 약 20 퍼 센트는 1년 전 발행된 2019년 5월과 6월의 흑백과 컬러의 빛바랜 신문지들이 아무런 질서나 규칙 없이 덮고 있다. 그것들은 며칠만 더 지내게 된다면 꼭 정신병이 생길 것만 같은 이 방의 좆같은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한 스마트 인테리어가 아니다. 다음 달인 6월부터 약 4개월간의 몬순이 시작된다. 신문지들은 몬순에 발생하는 실내 습기를 흡수, 제거하기 위한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 발행날짜들이 작년의 이맘때이다. 올해의 몬순이 도착하기까지는 나에게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다. 내가 그때까지 이곳에 머무르게 될 일은 분명히 없을 것이었다. 중범죄자가 아닌 단순 불법체류자일 뿐인 나는 이곳에 몬순이 도착할 그즈음에는 대신, 장마가 한창인 대한민국 영토에 당당히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