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몬순

제18장 자유낙하

by 만달

2007년 8월

대한민국, 서울



“The ladies and gentlemen and everyone in between. How you doing? Having a good time? There is no good word to describe how happy we are with you tonight. Thank you! For such positive vibes you are showing to us, for everyone that makes this happen. Once again, every yous are absolutely lovely. Thank you!”(신사, 숙녀 여러분 그리고 그 사이 (속한) 모든 분들. 어때요? 좋은 시간 보내고 계십니까? 어떤 말로도 오늘 밤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지 표현할 길이 없군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렇게나 긍정적인 기운을 보여 주시는 모든 청중분들께 그리고 오늘 밤을 가능하게 해 준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이곳의 당신들 모두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Placebo(플라시보)의 보컬리스트 Brian Molko(브라이언 몰코)는 그들의 네 번째 노래인 ‘Every You, Every Me’를 열창한 직후 이미 숨을 고른 그와는 달리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는 수천 명의 청중을 향해 그렇게 외쳤다. “나! 너! 사. 랑. 해!” 그의 고백과 동시에 시작된 청중들의 환호는 한참 동안 잦아들지 않았다. “We love you too!!”(우리도 너 사랑해!) “So very sexy!”(쏘베리섹시!) “사랑해 브라이언! 사랑해 스테판!” “오빠 사랑해! 사랑해!”


검은색 블레이저 주머니에서 말*로를 꺼내든 브라이언은 그중 한 가치를 빼 익숙하게 입에 물었다. ‘팅~’ 금색 지포 라이터의 뚜껑이 열리며 울린 경쾌한 그 소리는 스탠드 마이크를 통해 증폭되어 청중들에게 전달되었고 ‘훅~’ 그가 첫 모금을 깊게 들이마시자 그제야 모두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잠잠해졌다. ‘후~’ 그리고 그 잠깐의 적막 속으로 내뱉어진 그의 하얀 담배 연기는 초록색 레이저 줄기들 사이에서 뱀이 되어 자유롭게 춤을 추었다. 스탠딩 플로어를 가득 메운 청중들의 머릿수보다 정확히 두 배 많은 그들의 눈들은 마치 동시에 최면이라도 걸린 듯 다 같이 취한 모습으로 하얀 뱀의 조용한 움직임을 추적했다. ‘찰칵’ 청중들 사이에서도 누군가가 가장 먼저 브라이언과 정확히 같은 빨간색 말*로를 꺼내 들었고 그의 말*로에도 작고 빨간 불이 붙었다. 곧 여기저기 수백수천의 라이터 빛이 반짝거리는 듯싶더니 어두운 줄로만 알았던 해변의 스탠딩 플로어는 어느새 레이저빛으로 발광하는 신비스러운 모습의 하얀 뱀들로 가득 뒤덮였다.


‘SPONSORSHIP’(후원사)이라고 쓰인 플라스틱 태그를 달고 무대 뒤에 있던 나는 그 모두를 관찰했고 분주하게 그들의 모습을 한 손에 들고 있던 은색 디지털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나흘간의 페스티벌이 끝나면 제출해야 할 보고서에 첨부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수고한다. 저들 중 최소 수백 명은 우리 상품으로 Switch(전환) 하게 될 확률이 높아 앞으로 남아있는 페스티벌 기간을 고려하면 이번 스폰서십은 분명히 성공적일 테니 열심히 좀 해보자.” 어느새 내 옆에 다가온 신 부장은 그런 나를 다독거리고는 자신의 입에 물린 말*로에 불을 올렸다.


담배 또는 주류 상품의 광고나 홍보는 국민건강증진법 등에 의해 엄격하게 제한된다. 예를 들어 담배 회사가 마케팅 부서를 운영하거나 그들의 상품 또는 브랜드에 대한 마케팅, 광고, 홍보 등에 관련된 활동을 직접적으로 집행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된다. 따라서 그러한 회사들은 광고기획사 또는 전문 마케팅 에이전시에 관련한 업무들을 위임하여 그들을 통하여 홍보, 마케팅 활동을 간접적으로 집행하는 것이 통상적인 관례이다.


인도로 떠나기 전 근무하던 마케팅 에이전시는 유명 수입 담배 회사 및 국내외 주류회사의 마케팅 부서 역할을 담당했다. 성인 그중에서도 특히 남성만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등, 제한적이지만 클라이언트의 브랜드 또는 상품의 광고 및 홍보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이 회사와 내가 속한 팀의 주된 업무였다. 우리는 마케팅, 광고, 홍보라는 단어의 사용을 공식, 비공식적으로 금기시하고 대신 사회, 음악, 문화, 체육의 후원이라는, 법으로 허가된 명목 아래 개발한 기회 등을 통해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브랜드 또는 상품 등을 역시 엄격히 법이 허용하는 고객층에 제한하여 노출한다.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또는 ‘트렌디하고 젊은’ 등의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우리 팀은 각 브랜드 또는 상품에 맞는 장소와 이벤트를 모색, 선택하고 개발한다. 카페, 레스토랑, 호텔, 나이트클럽, 뮤직 페스티벌, DJ 파티, 라이브 공연, 패션브랜드 마케팅, 시즌별 프로모션 개발 등에 주어진 예산 내에서 현금이나 현물 등으로 후원을 하게 되면 계약된 장소와 이벤트 등에 제시된 목표 브랜드 및 상품을 전시, 판매, 광고, 홍보하는 형태이다. 예를 들어 서울 청담동에 새로 오픈하는 최신 클럽의 주체에 타 경쟁사들보다 신속하고 영리하게 접근하고 그들보다 더 나은 조건 등을 제시한 후 기간 또는 건 단위로 장소 또는 이벤트를 계약하면 시설 내 담배 판매에 대한 독점권뿐 아니라 클럽의 인테리어 디자인, 구조, 음악의 장르, 레지던트 아티스트의 결정 등 그들의 전반적인 브랜드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사항들마저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문화, 음악 분야에 관한 이러한 기업들의 자본은 결과적으로 예술가들의 활동을 제약한다. 기업의 자본에 의존한 예술가들은 그들의 활동을 비로소 경제적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그런 기업들의 눈치를 봐야 할 것이고 그러한 기업들은 그들의 투자에 대해서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한 자본 회수율에 대해 염두하지 않을 수 없다. 보장된 대중성과 흥행성 덕분에 투자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은, 그래서 그러한 기업들이 투자하기로 최종 선택한 콘텐츠만을 편협하게 접하게 될 대중들은 그러한 관습의 직접적인 피해자이며 국가적으로는 문화의 발전을 더디게 한다. 창조와 자유, 실험정신 등이 필수여야 할 공연, 음악, 예술 등의 사업은 이윤과 상업성을 추구해야만 하는 기업들과는 구조적으로 상생할 수 없는 모순의 관계인 것이다. 그런 문화 독버섯의 역할을 하는 기업들의 종 역할을 하던 나는 굳이 나 개인에 대한 사회의 비판은 피할 수 있었을지라도 남몰래 회의했고 나를 고용한 이들의 거대 자본과 그것을 원하는 문화 예술인들과의 사이에서 갈등했다. 그러한 나의 위치는 여느 독버섯이 그러하듯 왜곡되어 그 겉모습은 자칫 화려해 보이겠지만 진실하지 않은 화려함은 절대로 오래가지 못하고 쉽게 질리는 법이다.


일에 대한 회의와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곧 나를 고용한 회사에 대한 증오로까지 발전했다. 엄격하게 성인 남성만을 대상으로 하기로 한 담배와 주류 광고의 노출은 교묘히 청소년과 여성을 겨냥하고 있었고 그 사실을 눈치챌 정도의 업무 경험이 쌓인 어느 날 내가 깨달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사실은 그런 업무를 직접 취급, 담당하는 우리들 마저도 직접적으로는 고용주의 초지능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또는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회피할 수 없는 기본 논리에 의해 간접적으로 세뇌당한 채 이용당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담배라는, 그 어떤 다른 마약보다도 중독성이 강한 마약은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젊은 잠재고객에게 그 경험의 기회를 일찌감치 제공했을 때 더 대단한 이윤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며 이미 상대적으로 포화상태인 남성 고객 시장을 치열하게 공략하기보다는 여전히 개발에 여유가 있는 여성 고객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기업의 입장에서는 더욱 효율적이다. 여성과 청소년 등을 포함한 더 많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천천히 그들을 죽이는 담배를 아름답고 세련되게 포장하여 소개하는 조건으로 받는 연봉, 그런 돈이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쉽게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막강한 시스템, 나는 그 함정에 갇힌 채 뭔가 만족하지 못하는 날들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다.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 현실과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가식적인 인간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나는 아마 매일매일 더욱더 더럽고 치사하고 비겁하게 변해야 했을 것이다. 불공평하게 너무 쉽게 그리고 너무 많이 벌어들이는 듯한 클라이언트의 돈을 낭비할 방법을 연구했고 익숙해질수록 그러한 행동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자연스럽게 무뎌져 갔다. 즉각적으로 내 위치를 대체할만한 다른 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을 이해했을 때의 나는 갖은 영악한 방법으로 업무태만을 일삼았다. 지각과 결근을 하는 날들이 정상적인 출근일보다 많아졌고 회사 차원에서는 결국 부서 자체의 출근 시간마저 공식적으로 늦춰야만 했다. 클라이언트의 특정 담당자와 나 사이의 인간적인 신뢰 관계를 악용하여 불필요한 출장을 기획했고 그렇게 승인받은 출장을 위해 과도한 지출 결제를 확보한 나는 한 달에도 최소한 수일씩 업무와 상관도 없는 고급 호텔에 머물기도 했다. 지방마다 다양한 억양으로 사랑한다고 말하는 여자친구들이 있었으며 그녀들은 내가 제공하는 사치와 나를 원했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아직 할부가 채 끝나지 않은 내 차에는 법인카드로 주유한 연료로 가득했고 배가 고파지면 접대비로 가장해 안동 1등급 한우로, 경상북도 안동의 계곡가에서 홀로 점심을 먹었다.


젊고 건강하고 겁도 철도 별 진지함도 없던 나는 그런 나를 응원하고 좋아해 주는 친구들과 함께했고 우리 사이에서는 유지해야 할 신분과 경제적인 수준이 존재했다. 그에 필요한 비용 모두를 법인 카드로 채우는 데는 분명히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빚은 점점 불어만 갔다. 나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 카드회사들, 대부업체 등은 어느 순간부터 마치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나의 월급을 나눠 갖기 위해 급여일의 1초를 다투었다. 그들 중 조금이라도 늦은 자는 해당 월 그들이 나에게 빌려 준 돈에 대한 이자마저 가져갈 수 없는 것이다. “개 같은 세상의 개 좆같은 자본주의” 월급이 입금되자마자 텅 비어버린 계좌를 확인하면 나는 그렇게 투덜거리곤 했다.

퇴사와 함께 화려하고 처참했던 지난 2년을 가까스로 마무리한 나에게 남은 것은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빚과 빚쟁이들이 가져가기 전에 운 좋게 낚아챌 수 있었던 퇴직금, Gucci 지갑 그리고 인도행 편도티켓이었다.


최초 예정되어 있던 45일을 초과하게 된 나의 인도에서의 여정은 가족들과 친척들 그리고 친구들과 지인들 모두의 걱정을 사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순수했던 걱정과 나에 관한 관심은 내가 돌아가지 않는 시간이 계속 연장되면서 실망감, 배신감 그리고 결국 불신으로까지 발전했다. 나의 무소식 등 무책임한 태도는 결국 엄마마저도 아들의 본 여행 목적에 대해 의심을 품게 했다. 카드회사, 은행, 대부업체들뿐 아니라 가족, 친척, 친구 그리고 심지어는 인생 최초의 직장이었던 광고부틱의 존경하는 대표님으로부터도 빚을 지고 있던 나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고 그저 침묵하는 나에 대해 그들이 어떤 오해를 하든지 5,000Km의 거리를 사이에 둔 채 완전히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던 나는 어떠한 변명이나 양해를 구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의 사상이나 견해와는 상관도 없이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미 결정되어 있던 엄격한 사회의 관습과 규칙에 애초부터 적응이 불가능한 병을 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인도에 첫발을 내딛던 순간 느낀 공기의 묵직함이 좋았다. 그러자 곧 그들의 무질서와 사랑에 빠졌다. 같은 이유로 인도의 몰상식과 사랑에 빠졌다. 인도의 뻔뻔함과 사랑에 빠졌다. 스스로의 몰상식과 뻔뻔함에 무한히 너그러운 인도와 다시 사랑에 빠졌다. 그런 인도에 조금 더 남아 있을 수만 있다면 이미 적응에 실패한 한국 사회에서의 엄격한 규칙을 굳이 따르지 않고도 인생을 살아낼 수 있을 그 어떤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나의 믿음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었지만 어차피 모든 믿음에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실패를 원했다.

실패를 통하여 당시에는 미리 알 수 없었던 그 막연한 무언가를 얻고자 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방법을 깨우치기 위해서 스스로 벼랑 밑으로 추락하는 새끼 독수리처럼 바닥이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에 나 자신을 내던지고자 했다. 그렇게 믿고 나 자신을 내던지기 위해 도약을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과연 나의 그런 생각이 옳은지 아닌지 같이 판단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지의 세계로 스스로 던져지기로 한 자에게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란 있을 리 없었다. 설령 그 누군가가 귀와 마음을 열고 나를 들으려 했더라도 내가 그에게 들려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오늘로써 나는 12년 2개월째 추락 중이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던 벼랑 아래로 자신을 내던질 당시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은 그 깊이에 대한 영원함이었다. 그 당시 시작된 나의 추락이 이토록 영원할 줄 알았더라면 어쩌면 애초에 생각을 달리했을지도 모른다. 일단 지면에서 발이 떨어지고 아래로 자유롭게 추락하기 시작하자 그런 나의 결정을 되돌릴 방법은 없었다. 그냥 계속 떨어질 수밖에... 자연의 법칙에 내 모든 것을 맡기는 수밖에... 그리고 혹시라도 살아남게 된다면,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경험과 그와 함께 깨달은 지혜를 갖추고서 마침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런 나를 오해하고 의심해야 했던 사랑하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던져질 당시에는 너무나 깊고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벼랑의 맨 아래 바닥에 결국 내 몸이 닿았을 때, 그때에도 내가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았다면 꼭 그렇게 말하고 싶다. 하지만 당장은 그냥 이 허공에 모든 것을 맡긴 채 계속 추락하는 수밖에...


대기의 저항을 받지 않는 '자유낙하'(Free Fall) 중에는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결국 착륙하는 지점을 바꿀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