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몬순

제20장 InshAllah(인샬라)

by 만달

2008년 9월 18일

파키스탄, 카이버 빡툰쿠와주(Khyber Pakhtunkhwa), 페샤와르(Peshawar)



페샤와르(Peshawar),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그곳은 마약류, 무기류, 주류, 위조지폐 그리고 사람의 매매까지 가능한 블랙마켓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블랙마켓으로의 접근이 특별히 허가된 릭샤를 고용한 후 먼지와 흙으로만 지어진 듯한 사막 한가운데의 황토색 마을로 들어섰다. 우리는 이미 블랙마켓으로 진입했으며 멀지 않은 곳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이 있다고 릭샤꾼은 안내했지만 온갖 불법 행위가 발생하고 묵인되는 곳이라는 생각에 즐겁게 긴장마저 하고 있었던 나에게 그곳에 대한 첫인상은 실망스러웠다. 세계 최고라는 아프가니스탄 하시시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Zion(자이언)한테서 받은 달러 뭉치로 채워진 구찌 지갑을 손에 쥐고 있었다. 희귀성이 높은 상품을 낮은 가격에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고 언제든지 이윤을 얹힌 가격으로의 재판매만 가능하다면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부족한 자금을 불려야만 했던 나에게 신속한 보상의 회수가 가능하다는 점 역시 매력적이었다. 아프가니스탄 하시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희귀한 상품이 될 것이었고 동시에 그에 대한 가치 역시 커질 것이었다. 하지만 ‘Don’t get high on your own supply.’(너의 '상품'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지 말아라.) 8년 전, 내 인생의 첫 딜러가 습관처럼 읊던 말이다. 그 과정 동안 나 자신을 잘 제어했을 때만 실현 가능한 일이었다.


어디를 가나 같은 모습과 같은 색을 가진 듯, 복잡하고 거대한 미로와 같은 그 시장에서 가장 흔하게 눈에 띄었던 상품은 각종 수입 주류들이었다. 음주가 엄격하게 금지된 무슬림 국가인 파키스탄에서 그처럼 전 세계의 주류를 공개적으로 전시하고 판매하는 것은 페샤와르의 블랙마켓과 철저히 외국인에게만 허가된 4성급 이상의 호텔과 바(Bars)들 뿐이라며 아무런 감흥 없이 지루해하는 나에게 릭샤꾼은 굳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Those boring alcoholics. Can we just go straight to the place?”(술구경 이제 좀 지겨운데. 바로 제가 말한 그곳으로 가죠.) 가게 하나하나 지나칠 때마다 릭샤의 속도는 반으로 줄고는 했다. “Right away sir. We are not so far. Hang on.”(네, 알겠습니다. 거의 다 왔으니 꽉 잡으세요!) 차량이 다니는 폭넓은 도로를 벗어나 좁은 골목과 시장 사이를 한참 동안 꺾고 돌아서 도착한 그곳은 그곳의 다른 집들과 별다른 특징이 없는 모습이었다. “Here, watch your head.”(여기 머리 조심하세요.) 낮고 좁은 문을 통과하여 들어간 널찍한 지하공간은 순간적으로 몸이 바르르 떨릴 만큼 서늘했다. 한쪽 어깨에는 AK47(소총의 종류)을, 머리에는 검은색 터번을 두른 건장하고 근엄한 표정의 두 사내가 우리를 맞이한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회색의 무슬림 드레스를 입은 그들의 거인발은 그만큼 크고 못생긴 가죽 샌들로 감싸져 있다. 팔뚝만 한 크기의 대검이 꽂혀 있고 탄창 주머니의 기능도 하는 그들의 허리띠는 게임 속 테러리스트팀의 필수 아이템과 닮아있다. 그들 중 금색 렌즈의 에비에이터(Aviator)를 쓴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손가락 신호만으로 나를 안내해 온 릭샤꾼을 밖으로 내보낸다. “I will be waiting for you outside.”(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릭샤꾼의 얌전한 퇴장과 거의 동시에 방으로 입장하는 사람은 적포도주색 실크 드레스와 검은색 실크 바지를 입고 AK47과 대검 대신 금목걸이와 금팔찌로 무장한, 피부가 검고 수염이 새하얀 할아버지다. “아살람 알레꿈” 내가 상대해야 할 장사꾼이었다. “알레꿈 아살람”. 그리고 이미 네 명의 사내로 가득 찬 방에 또 한 남자가 들어온다. 눈부시게 하얀 드레스에 하얀 스컬캡을 쓰고 있는 그는 커다랗고 맑은 파란 눈의 10대 초반의 나이로 보이는 어린 소년이다. 다소곳하게 들고 있던 짜이컵과 주전자를 담긴 쟁반을 내려놓고는 아무 말 없이 뒷걸음으로 종종거리며 퇴장한다. 그 어린아이의 모습은 마치 성별이 없는 천사 같았다. 잠깐이었지만 그 신비스러움에 정신을 놓았다. 성스러운 기운까지 느껴지는 낯선 공간 그리고 그보다도 더 낯선 모습을 한 사람들 덕분에 적잖이 혼란스러웠다.


자신을 Mr. Marlik(말릭 씨)이라고 소개한 금과 비단으로 무장한 할아버지는 총기류부터 소개하기 시작했다. 머리에 검은색 터번을 두른 두 명의 사내 중 금색 렌즈 에비에이터를 쓰지 않은 자를 부르더니 그의 어깨에서 AK47을 벗겨내었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들린 그것을 쳐다보는 대신 나에게 시선을, 불필요하게 고정한 채, 장전 손잡이를 당겼다가 다시 밀어 넣었다. ‘찰칵!’ 경쾌한 소리와 함께 실탄이 튕겨져 나온다.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AK47의 주인이 고개를 숙이지도 않은 채 그의 커다란 눈으로만 떨어진 실탄의 행방을 쫓을 때 실크 드레스의 할아버지는 어느새 탄창을 빼내어 든다. 그의 모든 동작은 경쾌한 소리와 함께 거침이 없다. 그의 눈빛만 제외한다면 분명 멋진 퍼포먼스이다. 한 손에 탄창을 쥐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감지 않은 다른 눈으로 총구 안을 들여다보며 사뭇 진지하게 “Clear!”(클리어!) 혼잣말을 하고는 접혀 있던 가늠쇠를 펼쳐 세운 후 자신에게만 보이는 듯한 무엇인가를 조준하더니 ‘찰칵’ 방아쇠를 당긴다. 나는 볼 수 없었던 그 무엇인가를 명중시킨 그는 만족한 듯 나를 향해 웃음을 짓고 시선을, 여전히 나에게, 단단히 고정한 채 AK47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말릭이 품에서 꺼내어 든 다른 총은 Glock(글락)이다. 안전핀을 풀었다가 잠그고 탄창을 꺼내었다가 다시 밀어 넣고 권총이 비어있음을 확인한 후 슬라이드를 당기자 ‘찰칵’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자 ‘틱’ 소리가 났다. 잘생긴 글락에 더 큰 흥미를 보이는 나를 발견한 그가 권유한다. “Do you like to feel the grip of my gun?”(내 권총, 어디 한번 잡아보시겠나?) 이미 인도에서부터 이와 비슷한 코드의 은밀하고 더럽고 일상적인 농담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그의 느끼한 미소에도 화내거나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다. “The satisfaction of touching recycled plastics like an old man’s nostalgia.”(재활용 플라스틱을 만질 때 느끼는 그 만족감이란 마치 노신사의 향수와도 같겠죠.) 약 3초의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천천히 하지만 마침내 이해한 듯한 그가 갑자기 정신 나간 창녀처럼 ’낄낄낄낄’ 웃으며 손뼉을 ‘탁’ 쳤다. ‘낄낄낄’ 검은색 터번의 두 사내 중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한 명은 우리의 대화를 이해하지 못한 게 명확했음에도 어쨌든 그들의 보스가 웃어서 웃었고 손뼉도 ‘탁’ 쳤다. 짜이를 가져다준 하얀 스컬캡의 미소년이 가지고 들어온 두 번째 쟁반 위에는 크리스털 재떨이와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검은색 칠럼 파이프 그리고 하시시로 가득한 뚜껑이 달린 나무상자가 있었다. 부드러운 인도의 하시시와는 달리 돌처럼 단단한 아프가니스탄 하시시는 라이터를 이용해 뜨겁게 달군 후 가루를 내어서 담배와 섞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아로마는 이미 나를 취하게 할 정도로 진하고 향기로웠다. 완벽하게 닦여서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칠럼 파이프에 담뱃가루와 섞인 하시시를 단단하게 채워 넣는다. 칠럼의 아랫부분은 차갑고 깨끗한 물로 미리 적신 헝겊 조각으로 단단하게 감싸 타버린 하시시나 담배의 재가 연기를 흡입할 때 함께 입속으로 섞여 들어가는 것을 방지한다. 흰색 드레스를 입은 천사와 같은 그 소년은 자신을 Tariq(타릭)이라고 했고 이 모든 과정을 손수 보여주는 그의 손놀림은 아무런 낭비도 찾아볼 수 없이 완벽하게 효율적이다.

“Allah, Boom!”(신이시여, 붐!)


단 한 모금으로 그 방의 모든 남자가 금세 친한 친구가 되었다. “In this country, if you hear ‘Allah, boom’ at the wrong place, my friend? you must run as fast like fire caught on your ass because it usually means someone is about to detonate a bomb, especially a suicide style bomb, you know? Speaking of which, we can show you some of our sophisticatedly handcrafted bombs too if you are somehow interested?”(친구여, 만약에 이 나라의 잘못된 장소에서 누군가 ‘알라(Allah), 붐!’을 외치는 것을 직접 듣게 된다면 자네는 마치 똥꼬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즉시 도망가야 할 걸세, 왜냐하면 그 외침은 보통 누군가가 곧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경고일 테니까 말일세, 특히 자살폭탄 스타일, 들어는 봤겠지? 마침 말이 나왔으니, 어때? 혹시 관심 있으면 우리가 정교하게 제작한 수제폭탄도 좀 있는데 구경 좀 하시겠나?) 느릿느릿 말릭 할아버지의 설명이 끝나자 선글라스를 쓰지 않은 한 명이 나의 의견을 묻는 듯 그의 날카로운 턱을 치켜들며 동시에 나의 시선을 찾았다. “Thank you but no sir. I will stick to this Afghanistan style spiritual bomb only. This shit is just amazing. I can almost understand why people shout out the name of their god whenever another bomb like this is going to boom.”(감사합니다만 사양하겠습니다. 전 그냥 이 아프가니스탄산 ‘영혼을 위한 폭탄’으로 만족할게요. 이 물건, 정말 끝내 주네요. 저는 이와 비슷한 폭탄들이 터질 때마다 왜 그들이 신의 이름을 외치는지 이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들이 직접 제조했다는 수제 폭탄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나에게 실망해서? 아니면 나의 아프가니스탄 하시시에 대한 빠른 이해에 동의해서? 검은색 터번의 두 사내는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좌로, 우로 고개를 저었다. “Know what? please pack up five hundreds tolas of those bombs. That comes to 5 kilograms plus, right?”(그래서 말인데요. 이 (영혼)폭탄들 500톨라(Tola; 단위 약 10g) 포장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총 5kg 그리고 덤, 맞죠?) 그렇게 말하며 구찌 지갑 속 현금의 절반을 그에게 건넸다.


“What’s next?”(다음은 뭔가요?) 나의 요청에 말릭이 카펫 바닥 위에 올려놓은 것은 현금 뭉치들이었다. “US dollars, Indian rupees and Pakistani rupees, ”(미국달러, 인도루피, 파키스탄루피, ) 말릭의 설명이 있기 전까지는 내가 보고 있는 현금 뭉치들이 위조지폐라는 것을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미국 달러는 액면가 대비 3분의 1, 인도 루피는 5분의 1, 그리고 파키스탄 루피는 10분의 1 가격으로 실제 현금과 교환하는 조건이다. 현금 주고 현금을 사는데 10배를 더 준다는 그의 말은 그 어떤 유능한 펀드매니저의 소위 ‘세력들의 고급정보’ 보다 100배 더 믿음직하게 들렸다. 하시시를 사고 남은 나머지 돈으로 실제 현금가 대비 가장 싼 파키스탄 루피를 샀다. 세계 최고 품질의 하시시 5킬로그램을 사고도 여전히 원래 가지고 있던 현금의 5배를 가진 난 분명히 부자가 된 듯했다. 붉은색의 5,000, 파란색의 1,000루피. 현금 뭉치가 너무 두꺼워서 지갑에 다 넣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파키스탄을 벗어날 때는 남은 파키스탄 루피를 인도 루피로 환전하면 될 것이었다. 어쩌면 그 대신 말릭 할아버지와 같은 금목걸이와 금팔찌 등에 투자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마침 인도의 자이푸르는 전 세계에서 금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곳인 걸 알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하시시로 가득 찬 내 머리는 쉴 새 없이 이와 같은 아이디어를 생산해내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해 낸 기발한 아이디어가 너무 많아서 머리가 터질 것 같다. 'Boom!'


“InshAllah.”(신의 뜻대로) 처음부터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엄숙한 표정으로만 일관하던 금색 렌즈 에비에이터의 사내가 먼저 작별인사를 했다. “인샬라.”


그들의 집을 나오자 먼지와 흙으로만 지어진 듯한 그 마을은 일몰의 뜨거운 오렌지빛으로 불타고 있었고 모스크의 탑 꼭대기에 있는 하늘색 대형 확성기에서는 반주가 없는 찬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뒤로 보이는 먼 하늘에는 V자 모습으로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들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며 ‘인샬라’ 혼자 중얼거렸다.
‘오직 신이 허락한다면…’


자신의 두 부하들을 밖으로 먼저 내보낸 말릭이 조심스레 건넨 작은 종이봉투가 주머니 속에 안전하게 있는지 재차 확인했다. “Rasor sharp precision is the key to this task. Do never come late or too early. Be on time no matter what!”(면도날만큼 날카로운 정밀함이 이 작업의 핵심이다.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그 시간이어야만 해.) 자이언의, 단 하나의 경고였다. “Yes, noted. Would you relax now?”(알았어. 접수완료. 됐지?)

당시에는 어렵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탄 이 버스는 이렇듯 벌써 한 시간째 꿈쩍도 하지 않고 이곳에만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