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홍대 옆 언덕 위
인도, 히마찰프라데시주(Himachal Pradesh), 다람살라(Daramshala)
홍대 앞 주차장 골목이다. 이미 푸르스름한 새벽녘의 그곳은 색깔뿐 아니라 오직 그 시간대에만 풍기는 거리의 냄새까지 여전히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과 차들로 붐비던, 클럽에 입장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그 한산한 거리를 뛰어다니는 나를 발견한다. 여느 주말과 다른 모습이 있다면 그날은 나 혼자라는 것이다. 주말이면 항상 함께하던 친구들이 보이질 않는다. 다시 보니 거리 전체에 완전히 나 혼자밖에 없는 듯하다.
그곳에 주차된 차들이 무질서하게 보이는 건 그들이 주차를 아무렇게나 해서가 아니고 넓지 않은 주차장의 구조 때문이다. 원래부터 부족했을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숨어있는 1센티마저 찾아야 했을 것이다. 난 홍대 앞의 그런, 약간은 정리가 덜 된 모습을 좋아한다. 들쭉날쭉 주차되어 있는 차들 사이로 경사진 비탈길을 힘차게 뛰어오른다. 그런 나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밤새 독한 술을 여러 잔 마셨지만 취하지는 않았다. 매 주말이면 예외 없이 가장 독한 술을 마시곤 하지만 클럽에서 빠져나올 때까지 계속 취해있던 적은 없다. 어둡고 사악한 공기로 가득했던 지하 클럽의 문을 나서고 지상의 신선한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몸과 정신이 즉시 해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곧 비탈길의 꼭대기에 이르렀고 그곳에는 파란색 네온 불빛을 내뿜는 건물 한 채가 우뚝 서 있다. 홍대 옆 언덕 위 낯선 교회, 눈이 아플 정도로 찬란한 파란색 네온 불빛은 교회 정면에 박혀있는 대형 십자가의 것이었다. 그 위협적인 십자가를 시선 뒤로 보낼 정도로 절벽 가장자리에 바짝 다가서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은 교회 건물 뒤 절벽 아래로 보이는 풍경이다. 낮은 건물들로 빼곡하게 들어찬 조용하고 평화로운 그 마을 역시 내가 알고 있던 동네의 모습이 아니다. 어쨌든 그 마을 뒤로 펼쳐진 지평선 위로는 뜨겁게 이글거리는 노란색 태양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 뜨거운 열기 덕분에 조금만 더 그곳에 머무르기라도 한다면 곧 증발해 버릴 것 같았지만 난 그 태양으로부터 눈을 떼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난 그렇게 증발해 버리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렇게 증발해 버리는 것만이 지금 느끼는 이 평화를 내 안에 영원히 가둘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 같았다. 파란색 네온 불빛을 내뿜는 위협적인 대형 십자가, 등 뒤 그것의 자비로운 시선을 잊지 않고 있었다.
영원히 적막하기만 할 것 같았던 그 순간 어디에선가 멀지 않은 곳으로부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시끄럽게 떠드는 목소리가 들렸고 덕분에 난 잠에서 깬다. 대마초를 끊은 그날 이후로 매일 밤 꿈을 꾼다.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인 악몽과 같은 현실 속 나에게 주어진 한 평 반의 독방 안에서 다시 한번 눈을 떴고 오늘이 이곳에서의 다섯 번째 아침임을 자동으로 알게 된다. 체포된 이후 단 한 번도 머리를 감을 기회가 없었다. 거울도 없고 내 모습을 투영할 유리도 없기에 그런 나의 몰골을 확인할 수도 없다. 그러한 사실이 이곳에서 갖는 매우 심각한 불편함은 아니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이 그리 불편하다고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지금도 깨끗한 물과 1루피짜리 1회용 샴푸를 간절히 원한다. 하지만 꼭지가 없는 수도꼭지에서 간신히 새어 나올 뿐이었던 빨간 물조차 말라버린 현재 상황으로 봤을 때 나의 그런 바람은 당분간 이루어지지 않을 확률이 높다. 프리양카를 보좌하는 그 경찰의 정보가 틀리지 않았다면 나에게 남은 이곳에서의 시간은 이제 이틀뿐이다. 이렇게 머리도 감지 못하고 거울을 볼 수 없더라도, 이틀 정도라면, 버틸 수 있다.
오늘의 2번째 짜이가 도착했다. 이곳에서의 5번째 날도 이미 오후 1시 30분이 지나고 있는 것이다. 기상과 동시에, 그리고 오후 한 시 반, 하루 두 번 짜이가 가득한 양동이를 든 수감자와 그 업무를 감독하는 교도관이 나의 방을 방문한다. 덕분에 잠시 뿐이지만 갖게 되는 사람과의 만남 역시 어느새 그들이 나눠주는 짜이만큼이나 반갑다. 짜이를 배분하는 봉사활동을 하는 장기수들은 항상 여유로워 보인다. 그들과의 대화를 특별히 기대하거나 의도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먼저 내게 농담도 하고 물어보지도 않은 바깥 뉴스도 전달하는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은 나에게까지 전염이 된다.
"Kim Jong Un is dead."(김정은이 죽었다.)
작은 키와 왜소한 몸에 비해 커다란 머리.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깊고 오래된 상처들, 그의 곱슬머리로 채워져 있어야 할 그 공간들이 텅 비어 있기에 마치 몹쓸 병이라도 앓고 있는 듯한 모습의 Arjun(아준)은 나에게 그렇게 털어놓았다. "Really? How?"(정말? 어쩌다가?) South Korea와 North Korea의 관계가 South India(남인도)와 North India(북인도)의 그것과 별 다르지 않다고 믿는 아준은 김정은과 '같은 Korean’인 나에게 그런 중요한 뉴스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에 스스로 뿌듯한 듯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철장문 앞에 내려놓은 스테인리스 물컵에 짜이를 다 담아내기도 전에 재빨리 뉴스를 던져야만 했던 그는 분명히 그 뉴스를 우연히 듣게 된 순간 며칠 전 이 독방에 새로 구금된 한국인인 나를 생각해 내었을 것이었다. 그런 무기징역 살인범 아준을 단번에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Coronavirus killed him, they say."(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돼서 죽었데. 뉴스에서 봤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는 갖고 있던 또 다른 소중한 정보를 나와 당장 공유하기로 했다. "Damn what a news. Thank you Arjun, please keep me updated."(우아- 정말 대단한 뉴스인걸? 아준 고맙다. 잊지 말고 계속 업데이트 좀 부탁할게.)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 한 걸 간신히 참고 최대한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동시에 그가 믿고 있는 그러한 사실을 믿을 수 있는 그의 순수함이 부러웠다. "No problem, I will watch another news tonight. By the way, I like his sister. Kim Yeo Jung, she’s freaking hot. I can ‘bungabunga‘ full power! 24 hours!"(물론이지! 오늘 밤에 뉴스 또 볼 거거든. 그런데 말이야 나 김정은 동생 김여정, 사실 좋아한다. 그녀 정말 너무 섹시해. 나 말이지, 상대가 그녀라면 ‘붕가붕가‘ 풀파워! 24 아워!) 몇 개 남아있지 않은 얼룩진 이빨들을 드러낸 채 환하게 웃으면서 그는 방안의 나에게는 보이지 않는 오른쪽 방으로 이동하였고 그들이 지나가며 바닥에 흘린 짜이 위로는 어느새 몸뚱이가 파란 똥파리들이 새까맣게 꼬이고 있었다.
그렇게 오늘도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이곳을 벗어날 시간이 다가올수록 나는 더욱 초조해진다. 앞으로 이틀만 지나면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누군가에 의해 이미 수일 전부터 결정되어 있던 사실이라고 믿기에는 짜이 양동이 외에는 아무도 나를 방문하지 않고 있는 지금의 이 현실은 그저 암울하기만 하다. 내가 가진 공포와 의심이 저 앞에 놓인 쇠창살 사이도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큰 것이었나? 그것들은 왜 나와 함께 이 작은 방 안에 갇혀있기로 한 것인가?
이틀 후 그날이 오면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기상과 동시에 짜이 양동이가 도착할 것이고 난 잘 훈련된 짐승처럼 눈을 뜰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그랬던 것처럼 그날이 이곳에서의 일곱 번째 아침임을 자동으로 알게 될 것이다. 밤새 비어버린 속을 달래기 위해 습관처럼 일단 짜이를 들이켜겠지만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지난밤 꿈의 기억을 좇기에 너무 늦지 않았음을 아는 나는 또다시 모포를 머리 위로 뒤집어쓸 것이다. 그리고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두 번째 그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이곳에서 마지막일 지도 모르는 일곱 번째 아침 식사 일 것이다. 노란 달과 밥 그리고 차파티 또는 검은 달과 밥 그리고 차파티. 금방 찾아올 배고픔이 두려워서 또 한 번 억지로 그것들을 먹어치우기로 스스로 다짐할 거고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면 그 외 달리 할 것이 있을 리 없는 난 천천히 꼼꼼하게 입안 구석구석, 최대한 오랜 시간 양치질을 할 것이고 무엇인가 할 일이 있음에 감사하며 단 한 번도 그리고 내 전에 이 방을 거쳐 간 그 누구도 청소한 적이 없는 것이 분명한 반쯤 박살 난 좌변기에 다리가 저려올 때까지 앉아있을 것이다. 그 위에 앉아있는 동안은 그 누구도 밖에서 나를 쳐다볼 수가 없고 나 역시 앞에 보이는 맨 벽밖에는 바라볼 것이 없다. 그렇게 앉아있는 동안 빨갛게 녹이 선, 한때는 겨자 기름통이었던 오래된 양철통 속에 받아진 빨간 물로 조심스럽게 오른손을 적시고 엉덩이 사이를 닦는다. 용변 매 1회 최대 5리터 이하로 제한된 물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손 위에 흘려보내고 다시 한번 엉덩이 사이에 손을 넣는다. 그렇게 양철통 속의 물을 다 쓸 때까지 반복한다. 최초 한두 번은 손 위에 똥이 묻어나겠지만 횟수가 반복될수록 그 양은 줄어들 것이고 결국은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될 것이다. 그들은 똥을 닦는 손은 반드시 왼손이어야 하고 오른손은 밥을 먹는 손이라고 가르치지만 난 비밀스럽게 그 모든 것을 오른손으로만 한다. 그들의 말대로 하기 위해 노력해 본 적이 없지 않지만 왼손으로는 도저히 적당한 각을 잡을 수가 없다. 오른손잡이는 왼손으로 똥을 닦을 수가 없다.
그렇게 애써 최대한 지연하기 위해 노력한 모든 오전 일과도 결국 어쩔 수 없이 끝이 나 버리면 또다시 오후 1시 30분이 될 것이고 어김없이 짜이 양동이가 도착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7일째인 이틀 후 시간이 되었는데도 나를 방문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면? 오후에 도착한 짜이도 다 마셔버렸는데 나를 방문하는 이가 여전히 아무도 없다면? 분명히 7일이 다 채워져가고 있는데 모든 것이 그저 똑같기만 하다면? 난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심과 핏속에 진하게 번져버린 두려움을 극복한 채 기약 없이 이어서 진행되는 미지의 시간을 잘 살아낼 수 있을까? 그 모든 것에 대한 답을 얻게 될 그날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난 이미 그 이후의 날들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했다. 자꾸만 지금 내가 가진 이 희망은 더 이상 유효한 희망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려 한다. 다 끝난 줄로만 알았던 오늘 하루였는데 아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