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몬순

제1장 방

by 만달

2020년 5월 9일

인도, 히마찰 프라데시주(Himachal Pradesh), 다람살라(Daramshala)



한 평 반 정도 되는 공간이다.


그 전체면적 중 약 15 퍼 센트는 세월에 굳어 단단해진 똥얼룩으로 뒤덮인 재래식 좌변기와 꼭지가 날카롭게 깨진 수도꼭지가 차지한다. 두꺼운 쇠창살로 만든 묵직한 철장문 밖으로 보이는 것은 약 2미터 앞에서 이 공간을 바라보는, 현재는 창고로 쓰이는 듯한, 그 원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다섯 개의 욕실들과 그 앞에 설치되어 있는 다섯 개의, 역시 반쯤 박살 난 세면대들이다. 나를 이곳까지 후송해 온 경찰관들은 이곳에 오게 되면 TV도 있고 각종 보드게임도 있으며 음식도 이곳에 오기 전 이틀밤 지낸 경찰서 유치장의 그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힌디와 히마찰 프라데시주의 사투리 그리고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열정적으로 설명해 주기도 했었다.


그들의 지프(Jeep)에서 내려 이 낯선 건물에 들어오기 전, 가지고 있던 작은 가방과 그 안의 몇 안 되는 소지품들을 소독해야만 했다. 가방, 옷 두어 벌, 속옷, 파란색 스포츠 타월 한 장, 영어로 번역된 무명 일본작가의 소설, 운동화, 1,520루피 그리고 빨간 지갑 속 여섯 개의 유효기간이 다되어 가는 듀렉스 콘돔들,, 건물 앞 맨바닥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자 유일하게 인도경찰의 갈색 유니폼이 아닌 일반인 복장을 한 남자가 등에 매고 있던 커다란 분무기의 뻑뻑한 레버를 위아래로 굳이 힘들여 움직였다. ‘삐걱삐걱’ 락스 냄새가 역겨운 끈적한 액체를 그렇게 아무렇게나 뿌려댄다. 그리고 그가 시키는 대로 눈을 감고 입을 꽉 다물자 같은 냄새의 액체가 온몸을 타고 질질 흘러내린다.


‘삐걱삐걱’ 소리 사이 누군가 낄낄 거리며 중얼거린다.


'베헨초드'(Sisterfucker)


그사이 이곳까지 나를 후송해 온 형사 프리양카 그리고 그녀의 부하 경찰들이 돌아갔나 보다. 건물 크기에 비례해 너무 작아 보이는 페인트칠이 되어있지 않은 나무 팻말에는 'SUB JAIL'이라고 쓰여 있었고 바로 옆 성인의 허리 정도 높이의 낮고 작은 철문이 이윽고 열렸을 때 처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는데 이미 그녀와 그들의 지프가 보이지 않았다. 작은 강이 되어 천천히 흐르기 시작한 소독약 위로 둥둥 떠버린 은색 포장의 콘돔들을 보며 너무나 좋아하던 그녀


‘Extended Pleasure? 꺄?’(즐거움의 연장? 뭐니?)
꺄르르르


내가 이곳에서 정확히 며칠을 머물게 될 것인지 물어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버린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아니더라도 이곳에 있는 그녀와 같은 색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다른 누군가가 내가 궁금해하는 것을 말해주리라. 난 애써 당황하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이곳에서 24시간이 지나버린 지금까지 그런 기회는 허락되지 않았다. 지난 24시간 동안 내 얘기를 들어주려는 자는 없었다. 이곳은 한 평 반 남짓한 작은 독방이다.


어제, 아마도 이 시간 즈음, 허리를 90도로 숙여야만 하는 난쟁이 철문을 지나 결국 이곳까지 안내되는 동안, 마치 온 세상이 빛나듯 선명하게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악몽이 시작됐다.

이 한 평 반 남짓한 크기의 방들을 여럿 모아둔 네모난 벽돌집, 그 한쪽 귀퉁이에 어지럽게 날아다니던 수백 마리의 날벌레들과 그것들이 꼭 너만 들으라며 나에게 들려준 소리들.


위이 이이 이이이 잉
윙 이이잉
우잉


‘철컹’

등 뒤에서, 믿음직스럽게 묵직한 이 방의 철장문이 닫혔다.

프리양카로부터 나를 인계받은 이곳 서브제일(Sub Jail)의 교도관들은 무뚝뚝하고 불친절하다. 다람살라 경찰서에서의 경찰들은 이들보다는 친근했고 이틀 밤의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서너 명의 간수들과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지저분한 대화를 나누며 웃고 떠들기도 했는데 그들과 비슷한 복장을 한 이곳의 교도관들은 나를 마치 벌레 바라보는 듯하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위협적인 벌레. 어제 이방에 떠밀려 들어오기 전에 봤었던 그 수백 마리의 날벌레들은 다름 아닌 말벌들이었다. 그중 몇 마리가 내가 갇혀 있는 이 좁은 방안에도 들어온다. 그것들이 파리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주의 깊게 관찰해 본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이 방안에서만 이틀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단 한 번도 이 무거운 철장문이 열린 적이 없었고 그 누구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아는 이가 없는 듯하다. 나의 손가락들을 제외하면 난 이 문 앞을 절대 나갈 수가 없다. 불쾌하고 답답한 그리고 자칫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하게 되면 미쳐서 정신병자가 될 것만 같은, 하지만 현실이다.

현실.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덕분에 이곳 교도소에 처음 이송되어 온 수감자는 최초 최소 14일 동안 홀로 격리된 채 이 방에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나를 체포한 프리양카도 그리고 그곳의 다른 경찰들도 교도소의 이러한 새로운 규칙까지 알려줄 경황이 없었나 보다. 어쩌면 그들도 몰랐을 수도 있다. 인도에 코로나가 들어온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았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너그럽게 이해하기로 했다.


총 14일의 격리기간 중 이틀이 지난 오늘을 기점으로 앞으로 12일 이후에는 여러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생활하는 이곳보다는 훨씬 넓은 Barraks(막사)로 이동하게 될 것이다. 아마 그곳에 프리양카가 말하던 TV와 보드게임 등이 있을 것이다. TV 그리고 보드게임은 전혀 내 관심사 또는 취미가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시설들이 제공되는 장소라는 것은 그곳이 그리 살벌하고 엄격한 곳만은 아닐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안심이 된다.

"It's kind of a rest house. You will have to stay there a few days only. And a deportation. So don't panic. You will be just fine."

(그냥 외국인들을 위한 쉼터 같은 곳이야. 며칠만 지내면 곧 강제출국이니까 걱정 말아.)


그런 그녀의 같은 말을 이미 십 수 차례 반복해서 들어야 했다. "Where am I going?"(나 지금 어디 가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정확히 같은 질문을 십 수 차례 반복해서 했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이방 벽에는 2019년 5월과 6월 날짜의 노랗게 색이 바랜 힌디 신문 여섯 장이 너덜너덜, 아슬아슬하게 붙어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소설책은 이미 반 이상이나 읽어버렸다. 난 두껍지 않은 책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빨리 읽어버릴까 아주 조심하고 있지만 뒤에 남은 페이지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나를 지속적으로 불안하게 한다.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남아있는 페이지들의 두께를 확인한다. 너무나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이 좁은 방은 나를 지속적으로 불안하게 한다.


단 하나밖에 없는 수도꼭지에 꼭지가 없다. 물을 틀면 벽을 타고 졸졸 흘러 수년간 청소된 적이 없는 듯한 변기 옆에 놓인 잔뜩 녹이 선 깡통에 담아진다. 'Nature Fresh Kachi Ghani / Mustard Oil / 5 Liter' 네모난 깡통에 적혀있다. 그 안을 채운 물의 색은 피처럼 빨갛다. 체포된 이후 이미 나흘이 지나고 있는 지금까지 목욕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나가는 교도관을 세우고 물었다. "Where can I take a shower? It's been a while. You know." (샤워는 어디서 할 수 있는 거예요? 안 한 지 한참 된 거 알죠?) 동시에 오른손 엄지를 세우고 뒤집은 채 머리 위에 올린다. 그리고 두어 번 살짝살짝 위아래로 흔들었다. "As you wish."(네가 알아서 해) 마스크를 쓴 채로 턱을 들어 올려 그가 다소 거만하게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겨자 오일 깡통과 꼭지가 실종된 수도꼭지 그리고 변기가 놓인 한쪽 귀퉁이다. 그 귀퉁이가 교도소 수감자인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시설임을 암시하려는 듯하다. ‘as you wish’ 또는 ‘as you like’는 비록 영어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거의 모든 인도 사람들이 구사할 줄 아는 기본적인 영어문장 중 하나이며 종종 ‘알아서 해. 난 당신 문제에 관심이 없어’라고 해석한다. '그럼 양치질은?' 이 질문은 머릿속에만 남겨둔 채 하지 않기로 했다. 거만한 교도관의 그 의심 가득한 눈빛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이미 해가 저물어서 어둡다. 그들이 스테인리스 식판과 함께 제공한 스테인리스 물컵은 짜이나 물 등 음료를 마실 때만 사용하라고 한 의도가 아니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 발견에 대견해하며 5 리터의 빨간 물로 10분 넘게 목욕을 할 수 있었고 피비린내 나는 그 빨간 물로 양치질을 했다. 그리고 그 느낌이 예상처럼 끔찍하지만은 않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잠을 자기 위해서는 마스크로 입 대신 눈을 가려야 한다. 무거운 철장문 위에 달려있는 LED 전등의 밝은 불빛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이 방의 전등은 24시간 꺼지지 않는다. 내가 이곳에서 이미 두 번째 밤을 보내고 있는 이유는 인도 정부가 나를 강제 추방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protocol(절차)’이기 때문이라고 프리양카는 말했었다. 어쩌면 14일간의 격리가 채워지기도 전에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엄마하고 아버지한테는 절대 알리지 마 며칠이면 추방될 거라니까. 괜히 걱정하신다. 알겠어?"


다람살라 경찰서, 그들에게 휴대폰을 압수당하기 1분 전, 한국에 있는 동생한테 그렇게 마지막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에게 주어진 총 여섯 장의 모포 중 두장을 겹쳐 얼굴까지 덮었다. 까칠하고 무겁고 진공청소기 더스트백 냄새가 나지만 이제 두어 시간만 뒤척이다 보면 어느새 잠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