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프리양카
인도, 히마찰 프라데시주(Himachal Pradesh), 다람살라(Daramshala)
"Damn mad bitch! you are not fucking serious."(미친년아 존나 장난지치마!) 만약에 그녀가 권총을 찬 형사가 아니었다면 난 주저 없이 그렇게 말하며 이를 갈았을 것이다. "We are going to deport you in a few days. You would better be ready for it."(너 금방 추방되니까 준비해.) 날 체포할 당시 프리양카는 분명히 말했고 난 그런 그녀의 경고가 오히려 반가웠었다. 비록 체포로 인해 이곳에서 내가 가진 모든 걸 잃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이곳에 도달함과 동시에 난 이미 인도를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불과 하룻밤 사이 그녀는 나에게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다람살라 경찰서 유치장에서 이틀 밤을 지내게 되면 그다음 날 오전에 법원에 가서 담당 판사를 대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같은 날 'Rest house'(쉼터)로 이동하여 나와 비슷한 사정의 다른 외국인들과 약 일주일 정도 함께 생활하며 한국대사관과 인도 이민국 사이의 행정 업무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면 비로소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될 것이고 예정대로 강제 출국할 것이다. 그들에게 체포되었지만, 중범죄자가 아닌 나에게 프리양카는 마치 친절한 동사무소 직원과도 같은 태도였고 그녀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유치장에서의 첫 밤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먼지 냄새 진한 모포였지만 다행히도 진드기는 없었고 곧 집에 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침착할 수 있었기에 큰 걱정이나 의심 없이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은 5월답게 화창했고 하룻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는 사실 덕분인지 편안한 기분마저 들 정도였다. '인도 경찰서 유치장도 일종의 경험일 수 있지'라고 여유 부렸다. 아침이 되자 철장문이 열렸고 강한 햇살을 받으며 프리양카의 개인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나의 작은 가방이 보관 중이었고 그 안에는 세면도구 및 서너 벌의 옷가지와 수건 등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치약과 칫솔을 꺼내고 있는 나를 본 그녀가 불렀다. "Choi, please come. I need to talk to you."(최, 일로 와봐 할 말이 있어.) 화창한 날씨에 비해 그녀의 목소리는 무거웠지만, 형사라는 그녀의 신분 덕분에 나한테만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다. "What's up?"(뭐죠?) 그리고 곧 이어서 약간은 어색하게 덧붙였다. "... madam ji?"(여사님?) 아슬아슬 높게 쌓인 서류들과 플라스틱 바인더들 서너 개의 핸드폰들 그리고 이리저리 꼬여있는 충전기 선들 덕분에 어지러운 그녀의 좁은 책상이었지만 그 사이에 섞여 있는 두 개의 초록색 대한민국 여권은 내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한 개는 이미 2년 전인 2018년에 유효기간이 끝난 10년 복수여권이며 다른 한 개는 불과 두 달 전에 델리에 직접 가서 새로 발급받아 온 1년 단기 여권이다. 그 책상 앞 의자에 앉자 그녀가 비로소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뒷머리가 검은색 그물망으로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 "There is possibility that your deportation could take longer than we thought it would until yesterday."(강제출국 말이야 우리가 어제까지 예상했던 것보다 좀 미루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는 여전히 친절한 동사무소 직원이 내가 요청한 새 주민등록증의 발급이 어쩌면 하루 정도 미루어질 수도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Ah yeh? for about how longer?"(그래요? 얼마 나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고 그녀는 어느새 나에게서 시선을 돌린 채 책상 위 서류들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 대수롭지 않은 듯 짧게 대답한다. "About six to seven months."(한 예닐곱 달.) 내가 잘못 알아 들었거나 그녀가 잘못 말한 게 분명했다. 6일에서 7일? 6주에서 7주? 아냐 6주에서 7주는 말이 안 되지 강제추방이 그렇게 오래 걸릴 수는 없겠지. 그렇게 생각이 들었고 그녀에게 다시 물을 수밖에 없었다. "You meant it six to seven days? didn't you?"(6일에서 7일이라 말하려고 그런 거죠?) 그녀가 얼마나 진지한지 알기 위해서는 그녀의 눈을 쳐다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다시 시선을 들어 올려 나를 쳐다보기를 기다렸지만 그런 일은 수 초간 일어나지 않았다. "Six to seven months, perhaps."(6개월에서 7개월 정도 아마도.) 나에게는 쓰레기로밖에 보이지 않는 책상 위 서류들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녀가 그렇게 반복해 말했다. "No you don't say that. It's not funny and it's simply not likely."(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이건 뭐 웃기지도 않고, 그럴 리가 없잖아요!) 순간 너무 많은 생각이 내 머릿속에 밀려들어 오면서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그런 내 목소리가 그녀에게까지 들렸는지는 모르겠다.
프리양카는 통통하다. 일반적인 취향을 가진 자들에게는 그렇다. 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그녀는 조금 많이 튀어나온 입술과 약간의 여드름이 있지만 분명히 키스하고 싶은 얼굴이다. 갈색 유니폼이 아주 작아 보이는 걸 보면 그녀가 그 유니폼을 보급받은 시점을 기준으로 체중이 많이 불어난 듯했다. 뱃살은 유니폼을 잡아먹은 채 안으로 접혀있었고 실제로는 풍만한 가슴은 유니폼 속에서 억지로 축소되고 눌러진 듯하다. 허벅지와 엉덩이를 잡아주고 있는 그녀의 바지는 자칫하면 터질 수도 있을 듯 위태로워 보였고 뒤에서 보면 그녀의 커다란 팬티의 라인이 선명하다. 시선은 여전히 엉덩이 밑으로 감겨 두 허벅지 사이로 사라지는 그 팬티라인을 좇는 중이지만 잊지 않고 다시 묻는다. "Are you kidding me? officer madam ji?"(지금 장난치는 거 맞죠? 형사님?) 그녀의 양어깨 위에는 별이 두 개씩 달려 있고 그녀의 허리에는 제법 무거워 보이는 못생긴 검은색 권총이 매달려 있다. "What?"(뭐라고?) 그녀의 변한 말투에 움찔했고 동시에 그녀는 나와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니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Are you sure about that? I mean do you have any base to the knowledge?"(확실한 내용이 맞아요? 내 말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시는 거죠?) 다람살라 경찰서 내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듯한 나이 지긋해 보이는 경찰의 어깨에도 양어깨 위 세 개씩의 별이 붙어있을 뿐이다. 이곳에서는 별 두 개가 낮은 위치가 아니다.
"Covid-19 and the lockdown obviously. The pandemic will not go away just an overnight and the lockdown will slow down every damn things."(당연히 코로나하고 록다운 아니겠어? 팬데믹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질 수 없잖아. 록다운은 이 세상 모든 일을 더디게 할 것이고.)
책상 위 서류들로부터 시선을 떼고 고개를 들어 나를 쏘아보는 그녀의 눈빛이 권위적이고 위협적이다. 나는 범법자이고 그녀는 나의 사건을 담당하는 형사인 것이다. 그런 내가 그녀의 바쁜 아침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새삼스러워지자 그때까지 남아있던 모든 잠이 확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고 마치 이제껏 살아온 세상의 색깔마저 달라지는 것 같았다. "How fucking possibly it be so? What’s your right to do so?"(어떻게 그런 좆같은 일이 있을 수 있지? 당신들이 그렇게 할 권리가 뭔데?)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전히 그렇게 믿으려 했지만, 순간 내 가슴속에 간사하게 스며든 것은 어쩌면 내 생각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심이었던 것 같다. 이때 사실 난 엄청 무서웠다. "Don't panic but take it as it is for now. And you may leave, back to the cell."(너무 놀라지 말고 일단 받아들여. 그리고 너 이제 가야겠다. 감방으로 돌아가 이제.)
난 그저 불법체류자일 뿐이다. 11년의 불법체류는 그 기간이 너무 길었기에 내가 생각한 것 이상 심각하게 다루어질 수 있는 죄일까? 10년 이상 인도 정부의 허가도 없이, 세금도 내지 않고 가게를 운영해서 수익을 만든 사실 때문에 나를 더 괘씸하게 생각하고 쉽게 보내줄 수가 없는 걸까? 11년 전에 방문한 파키스탄 기록이 그들의 의심을 사게 된 걸까? 하필 그해 있었던 뭄바이 타지마할 호텔 총격 테러와 이슬라마바드의 매리엇 호텔 폭탄테러 때문에 나를 조사할 필요가 생긴 걸까? 아니면 내가 항상 대마초를 피워온 사실을 알게 된 걸까? 나에게 대마초를 팔던 딜러가 나에 대해 말했을까? 그리고 그것도 아니라면 이미 수년 전 나와의 하룻밤 이후 많이 걱정하고 후회한 듯했던 정통 보수 유대인의 딸 로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Choi? I said leave now!"(최 뭐 해? 빨리 나가!) 여전히 그녀의 책상 앞에 멍하니 서있던 나에게 그녀가 다시 한번 낮고 권위적인 목소리로 그렇게 명령했다. 'Yes. That's exactly what I want. Just kick me out of all this. You big assed fucking cunt!'(그래 그게 정확히 내가 원하는 거다! 날 그냥 이 모든 것에서 차버리면 되잖아! 이 엉덩이만 큰 창녀야!) 그렇게 마음속으로만 울부짖으며 그녀의 사무실에서 뛰쳐나왔을 때 경찰서 앞마당을 환하게 비추던 아침 햇살은 나를 현기증 나게 했다.
그녀를 포함한 그 모든 것들이 그저 실수일 뿐이라는 것을 그 자리에서 증명하지 못한 것에 너무 화가 나서 꼭 토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