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몬순

제2장 본능

by 만달

2020년 5월 6일

인도, 히마찰 프라데시주(Himachal Pradesh), 다람살라(Daramshala)



인도 전역에 중앙정부 통제하의 Lockdown(록다운)이 시작된 지 총 한 달 하고도 이주가 지나고 있다. 지난 3월 인도 총리 나렌드라 모디가 최초로 록다운을 공표하였을 때는 그 기간을 약 3주 정도로 예상했었고, 4월 중순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산속도와 범위가 확대되면서 그 적용기간이 일차 연장된다. 그렇게 국민들이 예상했던 록다운의 기간은 지난 4월 말까지였다. 하지만 결국 4월의 마지막 날인 4월 30일이 되자 총리는 TV와 라디오 등에 출연하여 5월 말까지의 2차 연장을 재차 공식 발표하게 된다. 그 사이에 코로나바이러스 또는 우한 바이러스 등 통일되지 않은 서너 개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던 2019 Novel Coronavirus는 WHO(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Covid-19(코비드-나인틴)이라는 오랫동안 혀에 착 붙지 못했던 어색한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2019년에 새롭게 발견된 코로나 바이러스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는데 인간에게 위협적인 병균의 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코비드, 일단 듣고 부르기에 과하게 친근한 소리를 가지며 그 뒤에 붙은 숫자 19는 일종의 시리즈의 임시 버전 같은 느낌을 주어 2020년인 올해 그리고 그 이듬해 등 다가올 미래에도 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소멸되는 대신 그 변종들이 해를 거듭하여 업그레이드되어 오랫동안 또는 영원히 우리 인류를 괴롭힐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계 보건기구가 만들어 낸 공식 명칭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이는 나뿐만이 아닌 듯하다. 'Chinese Virus(중국 바이러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굳이 그렇게 부르는 것을 즐기는 듯 하니 말이다. 아무튼 덕분에 록다운이라는 평생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정부지침이 내가 살고 있는 이곳 히말라야의 깊은 산골마을까지도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6주의 시간 동안 나의 밤과 낮은 완전히 뒤바뀌고 생채 리듬은 무질서하게 망가지게 된다. 비교적 ping(핑)이 낮은 밤 시간에 비디오 게임을 하고 YouTube를 시청하고 새로운 mp3를 다운로드한다. 그리고 그러기를 매일 반복하게 되었다. 록다운 적용 후 수일이 지나고 마침내 정부가 허가한 Relaxation(록다운 해제시간)은 오전 8시부터 11시까지이며 그 시간 동안 식료품이나 의약품을 구입하기 위한 이동이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그 전날 역시 밤새워 게임을 했다. 록다운 기간 중 불어난 재산은 게임머니이며 개선된 것은 어느새 티어 9까지 업그레이드된 탱크들로 가득한 차고이다. 그리고 자랑할 만한 업적이란 50 퍼 센트에 달하는 나쁘지 않은 승률이다. 새로운 배틀이 시작될 때마다 'Let's bring this show on the road!'(한번 놀아보자!)라고 외치는 커맨더는 밤새 나와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상대가 된다. 날이 밝아오면 그 소식을 빛보다 빨리 알리는 것은 다양하고 아름다운 소리들을 가진 새들이고 그들의 지저귐을 알아채면 내 방문 앞에서 잠자고 있던 바둑이는 이미 이른 새벽산책을 나갔을 것이다. 아직 식료품점이 열리는 아침 8시가 되려면 최소 두어 시간 기다려야 하니 밤새 지쳤지만 딱히 다른 할 일도 없기 때문에 또다시 배틀 버튼을 누른다. 게임이 플레이어들을 모으는 시간 동안 밤새 굳어버린 몸을 풀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나 푸시업을 한다. 탱크를 운용하는 것도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탱크를 밤새 운용해야 한다면 체력이 더욱 절실해진다. '세븐, 식스,,,, 포, 쓰리,, 원 Let's bring this show on the road!' 그렇게 또 다른 긴 밤을 마무리했고 어느새 산책을 마친 바둑이가 돌아와서 방문을 긁어대면 코끝이 흙투성이가 되어버린 녀석에게 인사를 한다. “왔나?” 날계란 두 개, 버터 두 숟가락을 넣고 잘 버무린 뜨거운 밥은 녀석의 아침식사이다. 매일 같은 것을 줘도 녀석은 절대 불평하는 일이 없다. 환장하지 않은 날이 없다.


밤새 다운로드한 첫 번째 mp3가 볼륨을 95 퍼 센트에 고정시킨 우퍼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면 그제야 입고 있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욕실에 들어선다. 노트북의 시계를 확인하니 8시 30분이 지나가고 있다. 라면, 달걀, 땅콩크림, 쌀, 식빵, 버터, 네스카페, 우유, 무, 당근, 고추, 식초가 필요했다. 마스크를 쓰고 선글라스를 쓰고 걸어서 약 10분 거리의 식료품점으로 그날의 유일한 외출을 한다. 냉장고 속의 차가운 우유를 바둑이의 이미 한번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에 담아주고 작고 검소한 방앞 정원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나선다. 순식간에 우유를 싹 핥아먹고 신이 난 바둑이가 뒤따라 오는 듯하더니 어느새 나를 가로질러 앞장선다. 녀석의 좌우로 다소 과도하게 흔들거리는 뻔뻔한 엉덩이는 내가 어떤 기분이던지 상관없이 나를 실소하게 한다. 매일 보는 그 모습은 절대로 질리지 않는다. "아~ 넌 왜 그러냐? 어딜 따라와? 가게 개하고 또 싸우면 넌 이제 진정한 자유다." 하지만 녀석은 당연히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이미 저 멀리 앞장섰기에 어느새 누군가의 뒤를 쫓는 것은 녀석이 아니고 나다.


"Good morning!"(굿모닝!)이라고 이미 가득한 손님들로 분주한 식료품점의 점원들과 인사를 하면 "Morning! morning!"(모닝! 모닝!) 그들 역시 반갑게 소리친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오늘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릴렉세이션(Relaxation)마저 없었기 때문에 다시 제한적으로나마 영업을 할 수 있게 된 가게 주인 및 점원들과 매일매일 생활필수품 및 식료품들을 구입할 수 있게 된 동네 사람들과의 만남은 일반적인 경우였을 때보다 더 많이 반갑게 느껴질 것이다.


가게 앞에 진열된 야채들부터 바구니에 담기 시작했다. 무, 당근, 고추,, 그리고 어느새 계절이 돌아왔는지 노란 망고들과 초록 망고들을 발견한다. "Those green mangos, how do you sell?"(여기 초록망고 얼마예요?) 일반적으로 초록 망고가 노란 망고보다 훨씬 달고 맛있다. "They are 150 per kilogram and a 100 for yellow ones, "(초록색 1킬로에 150루피, 노란색은 100루피, ) 초록 망고 그리고 바나나는 쇼핑 목록에 없었지만 바구니에 담는다. 망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고 바나나는 일 년 내내 필요한 과일이다. 바나나만큼 허기를 순식간에 채워주는 음식은 많지 않다. "Eggs by a full tray, peanut butter in a big bottle, 2 small bottled vinegars, Waiwai 10 packs, "(달걀 한 판, 땅콩버터 큰 것, 식초 작은 것 두 개, 와이와이 두 봉지, )


오전 9시도 채 안되었을 이른 아침에,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동네 식료품점에서, 슬리퍼를 신고 밤새 입고 있던 트랙 팬츠와 지난밤 게임을 하며 줄기차게 피워댔던 대마초의 향이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을 낡고 색 바랜 후디, 팬데믹의 인류, 나. 코비드 나인틴 덕분에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착용했으니 밤새 뚫어져라 쳐다본 컴퓨터 스크린으로 퀭해진 눈과 며칠간 면도하지 않은 제 멋대로 자라 버린 수염을 가릴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느새 정부의 엄격한 지침인 '사회적 거리 두기'를 완전히 무시하고 내 옆에 바짝 다가와 있는 그녀를 만난 건 록다운의 어느 릴렉세이션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기적일 것이다. Sunsilk black(선실크 블랙; 동남아 샴푸 브랜드)의 부드러움에 아무렇지도 않게 자기 멋대로 틀어 올린 거친 헤어스타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자극적이고 청량한 샴푸의 향은 제어가 불가능한 약점을 지닌 나의 콧속을 침투해 순식간에 나의 모든 신체와 감각들은 이 세상에는 나와 그녀밖에 없다고 속였다. 단 하나의 이어진 선으로 그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곡선, 키스사정범위 내에서 겁도 없이 도발하는, 만지면 손끝에 고운 금가루가 묻어날 듯한 목, 그 양옆으로 어깨를 흘러 가슴모양대로 왜곡되지만 어김없이 이어지는 곡선, 한쪽 어깨 위에 象(코끼리) 한 글자만 프린트된 새하얀 티셔츠, 억지로 티셔츠 아래서 짓눌린 두 개의 유두 흔적도 가리지 못할 만큼 가벼운 검정 카디건. 오버사이즈 카고 반바지 그리고 그 아래로 보이는 하얀 종아리, 검정 플립플랍 그리고 그 안의 발, 그리고 또 하나의 부드럽고 통통한 발. 그런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우리는 곧 이 팬데믹의 마지막 남은 인류인 듯했다. 둘만의 세상에서 나만 벌거벗겨진 듯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 순간은 잠시였을 뿐 난 그저 나 다워지기로 결심하고 그녀와 친구가 되기로 했다. 인도 북부 히말라야 줄기의 작은 산 동네에서 코비드 나인틴으로 인하여 하루 중 오전 세 시간으로 제한된 사교활동 가능 시간대에 그토록 멋진 여자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정말 뜻밖의 행운이었다. 그대로 그 기회를 놓아 버리면 오랫동안 후회할 것이었다. 인류의 존속마저 위협하는 위기상황 속에 우연히 한 공간에 선 남자와 여자, 그녀와 같은 새 친구와 함께라면 그 어려움을 견뎌내는 것이 훨씬 수월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즐겁고 소중한 경험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녀를 마주하기 전까지 난 내가 그토록 외로운 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난 이미 그녀를 내 방에 초대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내가 가진 최고 티어의 탱크를 자랑하고 있다.


"Don't you have another bag?"(다른 가방은 없어요?) "No I don't. But never mind I might be able to manage with this bag I have."(없어요. 근데 괜찮을 거예요. 제가 한번 이 가방에 잘 넣어볼게요.) 그녀의 쇼핑백은 그녀가 원하는 모든 물건들을 한 번에 담기에 너무 작아 보인다. 그녀가 고른 주키니(Zucchini)가 길고 두꺼워서 더 그렇다. "We are so sorry. carry bags are not available in the market these days due to the lockdown."(너무 미안해요. 록다운 때문에 쇼핑백 같은 것은 시장에서 구할 수가 없네요.) 식료품점 사장 아저씨도 어떻게 해서든 그녀가 고른 모든 물건들을 그녀가 건넨 작은 가방에 채워보려 하지만 쉽지 않은 듯 보인다. "Why don't you take mine?"(내 거 써요.) 그녀에게 내가 가지고 있던 쇼핑백을 불쑥 내민 건 미리 계산되지 않은 게이머의 본능이었다. "Take this bag and you may drop the contents and return it to me. Assuming your place is nearby, right?"(이 가방 가져가서 쓰고 돌려줘요. 이 근처에 사는 거 아녜요?) 이 마을은 정말 많이 작다. "Are you sure? It will be so much handy for me though. And yes you are right. My place is just around the corner."(정말요? 정말 좋은 생각인데요? 그리고 맞아요. 내방은 바로 근처예요.) 마스크 속 그녀의 감춰진 얼굴이 궁금하다. 마스크가 그토록 섹시한 액세서리가 될 수도 있다는 건 그렇게 그날 아침 처음 깨닫게 되었다. "Awesome, then go on and I will be waiting for your return. But please take it easy and slow. I have no reason to hurry. So neither does anyone in this challenging time I guess?"(잘됐네요, 그럼 갔다 와요. 여기서 기다릴게요. 서두를 필요 없이 천천히 해요. 저 시간 많아요. 이런 팬데믹에 바쁜 사람 별로 없겠죠?) 소리 내어 웃는 그녀, 마스크가 불편했는지 아님 나의 이기적인 기도를 알아들은 건지 한쪽 귀에 걸린 고리를 풀고 감추어져 있던 나머지 얼굴을 나에게 노출시킨다. "You are not wrong. I am not in hurry either."(맞아요. 저도 안 바빠요.) 그리고 열린 마스크 대신 그녀의 입술을 가린 건 그녀의 작고 뽀얗고 부드럽고 반지 없는 왼손이다.


일단 마스크 속에 감춰져 있던 그녀의 나머지 얼굴 반쪽을 확인하게 된 난 재빨리 원래의 계획을 수정했다. "By the way, they look a bit too heavy for you to carry alone. Zucchini that one only weighs as much as a man’s average forearm. So I mean offering you a hand as well along with the bag. What would you say?"(그런데, 혼자 들고 가기에 너무 무거울 것 같은데요? 주키니 하나만 해도 남자팔뚝만 하잖아요. 내가 같이 가드릴게요. 어때요?) 립스틱의 도움 없이도 그토록 선명하고 건강한 붉은색의 입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난 많이 기뻤다. 그런 입술을 마스크로 가려야 하는 사회란 정말 정상이 아니다. 140원짜리 하늘색 의료용 일회용 마스크는 정말 형편없다. 그러한 생각은 그녀의 입술이 다시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이 머릿속을 아주 빠르게 스쳐 지났다. "It just sound so sweet to me. How kind of you."(너무너무 고마워요.) 티벳 불교와 티벳어를 공부하기 위해 얼마 전 내가 사는 그 작은 마을로 유학을 왔다는 그녀를 처음 만난 그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많이 웃을 수 있었다.


"What do you eat these days when all the restaurants and hotels are shut? Would you like to come to my kitchen tomorrow? I love to share some of my dishes if you don't mind Taiwanese cuisine."(요즘에 뭐 먹어? 식당들이 다 문을 닫았잖아. 너 내일 우리 집에 올래? 대만음식 괜찮으면 같이 먹자.) 카오숑에서 온 그녀의 이름은 Ping,, 핑은 사과를 뜻한다고 했다. "What a name! I love it Ping. I really do. And It's even lovelier when it lays lower."(핑? 이름 예쁘다! 핑은 낮게 누울 때 더 사랑스러워.) 의도치 않게 재발견한 그녀의 얇은 검정 카디건 속 속옷을 하지 않은 풍만한 가슴에 순간 부끄러워진 나는 그렇게 헛소리했고, 핑은 나의 농담을 알아듣지 못한 듯했지만 어쨌든 예의 바르게 그리고 유쾌하게 소리 내어 웃었다. 그녀가 웃을 때는 향기가 난다.


곧 도착한 그녀의 원룸에 나로서는 이름조차 알 수 없던 야채 등, 두 개의 쇼핑백에 가득했던 그녀의 것들을 내려주고 다음 날 저녁 다시 만나기로 한 우리는 연락처를 교환했다.
이 갈며 으르렁거리는 커다란 개 앞에서 배 깔고 낮게 엎드린 바둑이를 무사히 구출해 방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침대 위에 쓰러졌고 약에 취한 듯 잠에 들었다.


'쿵! 쿵! 쿵! 쿵!'
잠에서 깼을 때 본 시간은 오후 6시, 오전에 핑을 만났었다는 기억은 마치 오래전부터 방금 전까지의 꿈인 것만 같았고 여전히 졸린 눈 부비며 시계를 다시 확인했을 때 본 날짜는 잠들기 전과 분명히 같은 날이었음을 가리켰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오전의 그것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하고 있었다.

'쿵! 쿵! 쿵! 쿵!'
요란한 천둥소리에 자신의 노크 소리가 묻혀버리기라도 할까 봐 문밖의 방문자는 있는 힘껏 하나밖에 없는 방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 이방으로 이사 온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그의 무례함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문을 열었다. 두꺼운 코트로 몸을 감싼 채 나를 기다리고 있던 집주인아저씨, 뒤로 보이는 작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정원은 세찬 비바람 덕분에 검게 젖어있었고 그것이 물고 온 갖가지 쓰레기와 널브러진 플라스틱 의자들과 쓰러져서 제자리를 빙글빙글 구르는 화분들 뿐이었다. 살짝 열린 문 사이로 밀려들어 온 공기는 5월의 그것이라고 하기에는 차갑고 축축하고 음침했다. 그 비바람 속에 서 있던 주인아저씨의 표정이 근심에 가득한 채 어두웠던 건 비단 거친 날씨 때문만은 아니었나 보다.


"Show me your passport."(당장 여권 좀 줘봐.)

여전히 문 앞에 서서 그의 두꺼운 코트 위로 튕기는 세찬 비조차 아랑곳하지 않은 채 주인아저씨가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