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몬순

제4장 로띠와 라씨

by 만달

2020년 5월 11일

인도, 히마찰 프라데시주(Himachal Pradesh), 다람살라(Daramshala)



아침과 저녁 하루 두 번 식사가 제공된다. 저녁 식사는 야채 카레와 원하는 수만큼의 차파티가 그리고 아침은 달과 차파티 그리고 밥이 함께 제공된다. 숟가락은 없다. 카레 또는 노랗거나 검은색의 달이 가득한 커다란 양동이와 국자를 들고 각 독방 철장문 앞을 지나다니며 "로띠?"(밥?)라고 외치는 그들은 항상 한 명 이상의 교도관과 짝을 이뤄 독방에 격리 중인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식사를 제공한다. 배식담당을 하는 그들은 이미 재판이 끝나고 형이 정해진 장기 수감자들, 즉 법원에서 유죄와 형을 확정받은 범죄자들이며 이곳에서 무엇인가 할 일이 주어진다는 것은 특혜로 받아들여진다. 무엇보다도 ‘방’에서 나와 하늘 아래에서 있을 수 있다는 특권 하나만으로도 그 외 나머지 혜택들을 다 합친 것보다 대단할 것이다. 그렇게 주어진 매일의 업무는 그들의 형량을 채우는 데 시간을 조금이나마 덜 지루하게 보내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냥 생각이다. 잡생각.


그들을 감시하고 지휘하는 교도관들은 무거운 키 뭉치를 찰랑거리며 굳게 닫혀 있던 철장문 앞에 설 것이고 나는 쟁반 크기만 한 스테인리스 접시를 맨바닥에 다소곳이 내려놓는다. "끼뜨나?"(몇개?) 젊은 교도관이 몇 장의 차파티를 원하는지 나에게 묻는다. "아뜨"(8) 그러면 난 여덟 장의, 여전히 약간의 온기가 남아있는 차파티 뭉치를 손에 쥔다. 그새 탈리라고 불리는 그 접시에 달이 가득 채워지면 손만 뻗어 다시 문 안으로 가지고 들어올 것이며 철장문의 자물쇠는 다시 한번 ‘철컹’ 단단히 고정된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배식 도중 바닥에 흘린 달이 흥건하다. 기름기가 하나도 없는 싱거운 달은 똥파리들조차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난 먹기로 했다. 12년 만에 처음으로 뵙게 될 부모님께 야윈 모습을 보이게 되면 그들 마음이 더 아플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마치 엄청난 고생이라도 한 듯한 모습을 보여드리기는 싫다.


3일째가 되는 오늘은 그런 내 의지에도 아침 식사를 모두 먹어 치울 수가 없었다. 검은빛의 렌틸죽은 그 색깔도 모양도 맛도 모두 최악이다. 커다란 접시에 가득 담긴 돌 섞인 밥을 흠뻑 적시고 있는 그것을 맨손으로 들어 올려 꾸역꾸역 입속으로 집어넣고 목 뒤로 넘겨보지만 아무리 반복해도 접시 위의 그 기분 나쁘게 끈적이는 것은 줄어들기를 거부한다.


기분이 별로다. 몸에 기운이 없다. 내가 이곳에서 벌써 3일씩이나 맨바닥 위에서 잠을 자야 하고 아침을 반복해서 맞이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식어서 딱딱하게 굳어가는 차파티를 한 장 한 장 찢어 탈리 접시 위에 내려놓고는 천천히 그것들이 검은 죽에 젖어 가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봤다. 그렇게 다리가 저려오는 것이 느껴질 즈음 일어섰다. 그리고 성큼 두 걸음 옮겨서 그 모두를 변기 속에 부어 넣었다. 군데군데 깨진 좌변기에 단단히 엉겨 붙은 오래된 똥 얼룩과 탈리접시 위 내용물의 색깔이 똑같다. 순식간에, 뱃속으로 밀려 들어가지 못한 채 여전히 가슴 어디 즈음 걸려있던 그것이 꿈틀 하더니 입 안으로 퉁겨져 올라왔다. 입에 손 한번 안 대고 그 모두를 쏟아버렸다. 동시에 나오는 눈물은 구토 덕분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생리 작용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물기로 흐릿해진 눈으로 변기 속 깊은 곳을 바라본다. 너무나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먼 곳을 바라본다. 약 한 평 반 크기의 방에서 가장 먼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구멍이다.


한남동의 인도대사관에서 받아 온 여행비자의 유효기간이 2주가 채 남지 않은 2008년 9월의 어느 날. 새로운 비자발급을 위해서는 일단 인도를 떠나야만 했다.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는 북으로는 네팔, 서쪽으로는 파키스탄 그리고 남쪽 바다를 건너면 스리랑카가 있다. 이미 빠듯한 여행경비를 감안하면 비행기티켓이 필요한 스리랑카는 후보에서 일찌감치 예외를 시켜야 했다. 아무런 목적지도 없이 어느새 빠하르간지에서 벗어나 올드델리의 거리를 걷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온통 같은 생각뿐이었다.

네팔? 파키스탄?

파키스탄? 네팔?


빠하르간지는 처음이 아니지만 여전히 이유는 알 수 없다. 이 거리에는 특별히 나 같은 여행객을 이끄는 숨은 마력이라도 있는 듯 내 의지가 아님에도 이 메인로드를 벗어나기만 하면, 걸음은 늘 자연스럽게 찬드니초크 방향으로 향한다. 부처보다 더 오래된 이 거리를 둘러싼 모든 방향은 한결같이 먼지와 매연이 둘러싸고 있어 멀리 내다보는 것은, 보이는 것은 먼지뿐이다. 길거리에 가득한 오토릭샤들의 뚜렷한 이유도 없이 그냥 불어대는 듯한 경적, 저 멀리 엄마를 찾는 어린 송아지의 울음소리 그리고 마침 옆을 지나치는, 수많은 인파에 짜증이 난 늙은 소의 누렇고 걸쭉한 콧물과 함께 튀어나오는 푸념, 털이 빠지는 피부병에 걸려 벌겋게 드러난 맨살의 못생긴 들개들이 다 쉰 목소리로 마치 지구종말이라도 맞이하는 듯, 그 처절하고 고독한 울부짖음. 한쪽팔이 잘려나간 원숭이에게 또다시 바나나를 빼앗겨 버린 야채가게 늙은 주인의 거친 욕지거리 등은 나에게 겨우 남아있던 최소한의 방향감각마저 완전히 마비시키고 만다. 길을 잃었다.


“Yo, man~ what’s up?”(친구, 웬일이야?)

소리가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Me? I’m also staying in the Shiva Cottage. I bet you saw me too.”(나? 나도 시바 게스트하우스에 지내. 너도 분명히 날 봤을 걸.) 어제저녁 게스트하우스 옥상에서 식사 대신 주문한 누텔라 팬케이크가 식는 동안 조인트를 말고 있을 때 봤던 그 얼굴을 기억했다. 그가 혼자가 아니었기에 우연히 서로의 눈이 마주쳤을 때 가볍게 눈인사만을 나누었을 뿐이다.


“Where are you going?”(어디 가고 있었어?)

“Ah~ actually,, nowhere. I’m probably lost.”(아무 데도 안가. 사실은 방금 전에 길을 잃은 것 같다.)

“Good then come with me? I will show you the best lassi in Delhi, not too far from here, too.”(잘됐네 그럼 나 따라와. 내가 델리에서 라씨 제일 잘하는데 보여줄게. 별로 안 멀어.)


[AMRITSARI LASSI WALA](암릿사 라씨 전문가)

입구가 완전히 개방된 가게 앞에 이십여 미터 이상 늘어서 있던 대기줄은 신기하게도 금세 줄어들었고 어느새 내 손에는 주문한 라씨가 들려 있다. 자이온도 나도 골프공만 한 대마잎 반죽을 곱게 갈아 넣은 스페셜라씨를 조용히 비워냈다. “So good.”(너무 좋아.) “I'm thinking another one, already.”(난 이미 한잔 더 마실까 생각 중이야.) 우리 둘 다 그렇게 두어 차례 씩 진심을 연발했을 뿐이다.


라씨의 초록색 찌꺼기만 남은 토기잔을 가게 앞 대형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퍽', 잔이 박살 나는 소리와 함께 두 눈 사이가 세로로 찢어지며 열린 제3의 눈으로 본 델리의 거리에는 다양한 모습을 한 신들의 수많은 눈들이 나의 움직임을 좇으며 잔뜩 힘주어 노려보고 있었다. 또한 그동안 모두 비슷한 모습으로만 보였던 델리 거리의 너무나도 화려하고 다양한 모습에 새삼 감탄한다. ‘아!’ 그들이 왜 그렇게 때 묻은 더러운 흰 천만 걸치고도 환하게 웃는지, 왜 그렇게 빨갛게 얼룩진 이빨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커다랗게 웃을 수 있는지, 왜 원숭이를 닮은 신을 두려워하는지, 왜 커다란 코끼리의 머리를 가진 배불뚝이 신을 신이라고 부르는지, 왜 수십 개의 잘린 머리로 만든 목걸이를 차고 긴 혀를 길게 내밀고 있는 여자 동상에 머리를 조아리는지, 왜 호랑이에 올라탄 여덟 개의 팔이 달린 춤추는 여신에게 입맞춤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달력 그림 속의 그 신들, 거리 곳곳에 지은 작은 공간에 앉아있는 돌로 만들어진 신들 그리고 길바닥 위 가난한 상인이 펼쳐 놓은 빨간 보자기 위에 늘어서 있는 엄지손가락만 한 그 신들 모두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자이온과 내가 어디를 가던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마 가운데에 새로 뜨여진 눈은 그것이 어디를 향해도 곧 신들을 발견하고 만다.


“Where are you going?”(어디가?) 자이온이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을 했지만

난 “Yeh~ man I’m looking for it, too.”(야, 나도 알고 싶어.) 아까와는 다른 의미임을 알 수 있었다.

“Go to Pakistan.”(파키스탄으로 가.)

“Why?”(왜?) 동시에 그의 입가에 번진 미소는 희미하지만 왠지 믿음이 간다.

“For money.”(돈.)

"You sure about the money?"(돈, 그거 확실한 거지?)


몸속을 순환하는 피는 금방이라도 분해될 듯 가벼웠고 속도는 느렸다. 그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어색해서 가끔 몸을 바르르 떨었다. 자꾸만 눈을 감고 싶어서 결국 눈을 감은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알고 몰래 깜짝 놀라서 이미 뜨고 있던 눈으로 또다시 눈을 떴다. 그런 스스로가 어이가 없어서 혼자서 웃는다. 그러자 자기도 방금 내가 왜 웃었는지 이해했다는 듯 자이온도 같이 웃는다. 굳이 소리 내어 큰 하품을 하는 녀석의 모습이 어이가 없다.


'번쩍'

그의 눈빛은 그가 그날 단 한 번도 벗은 적 없는 선글라스의 두꺼운 렌즈를 뚫고 나의 모든 신경을 흔들어 깨웠다. "OK, "(좋아, ) 웃음을 멈추고 “I’m going to Pakistan.”(나 파키스탄으로 간다.) 난 파키스탄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스페셜라씨가 보여준 여러 사인들 역시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다.

“Good for you. Really.”(좋아. 진짜로.) 자이온은 웃지 않고 있었다.

그가 건넨 조인트는 이미 짧아져 있었지만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아주 깊게 들이마셨다.

“I need money."(나 돈 필요해.)

후~


탕! 탕! 탕!

문밖에서 누군가가 쇳덩이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지 시끄럽다. 덕분에 잠에서 깨었더니 바둑이가 기다리고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착한 개의 자세로 앉아서 커다랗고 푹신푹신한 꼬리를 좌우로 흔들고 있다. 엉덩이는 여전히 바닥에 붙인 채 나에게 안아 달라며 낑낑댄다. 부드러운 양볼을 잡고 녀석의 코앞에 얼굴을 바싹 가져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를 기대했는데 냄새가 없다.
"뭐 하고 있었어? 울었어? 응? 누가 이렇게 우리 예쁜 바둑이 괴롭혔어?" 녀석의 목에 못 보던 목줄이 채워져 있는데 목줄이 너무 큰 건지 아니면 녀석이 그새 그만큼이나 야윈 것인지 두 번이나 감겼는데도 여전히 헐겁다. 곧 녀석이 야위었다는 판단이 서자 죄책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날 바라보는 녀석의 새까만 눈동자가 한없이 슬프고 고독하다. "미안해." 마침 꼭 안으려는 순간 잠에서 깬다. 난 여전히 한 평 반 남짓한 이 독방 안이고 두꺼운 철장문 역시 굳게 닫힌 채이다. 일정한 리듬에 맞춰 멀리서 들려오는 쇳덩이 소리 이외 다른 소리는 없다.


탕!

탕!

탕!

‘휘이익~! 휙!’ 있는 힘껏 불었다.

매일, 매일 불어대던 휘파람

그리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바둑이는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