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Nothing
인도, 히마찰 프라데시주(Himachal Pradesh), 다람살라(Daramshala)
"Choi? What’s on your mind now?"(최? 지금 무슨 생각해?) 프리양카의, 처음 들어보는 달콤한 목소리에 불편하다. 난 그냥 어색하게 곧게 서서 아무것도 없는 어두운 유치장의 한쪽 벽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녀가 묻기 전까지는 내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덕분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잠시 생각해 봐야 했다. "About Corona virus."(코로나 바이러스.) 그냥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을 말하자 그녀가 소리 내 웃는다. "Don't be too worried. Everything will be just fine."(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유치장 철장문 앞에 서서 나에게 갑작스러운 친절함을 보이는 그녀는 역시 참기 힘들 정도로 불편하다. 모든 자유가 박탈된 채 우리 속에 갇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녀에게 이렇게 관찰당하는 것뿐이다.
“By the way, what's the passwords for your laptop?"(그런데 네 노트북 패스워드가 뭐야?) 그녀는 경찰이고 난 범법자다. 프리양카와 나의 그러한 일방적인 관계가 맺어진 것은 불과 이틀도 지나지 않았지만 난 어느새 그 관계에 길들여진 듯하다. 특히 철장문의 열쇠를 쥐고 있는 그녀가 문 앞에 서 있는 상황에서는 그 관계가 더욱 분명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주었다. "And for the Email? I mean your Gmail passwords?"(그리고 이메일 패스워드? 너의 그 G메일 말이야.) 누군가로부터 그러한 예민한 정보를 대놓고 직접 요구받는다는 것은 마치 12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7시에 강남역 1번 출구에서 만난 뉴욕에서 온 히스패닉 강도에게 신고 있던 25,000원짜리 중국산 나이키조던을 강제로 벗김을 당하는 것과 비슷한 경험일 것이다. 뒤늦은 상황 파악이 되자, 난 잠시 멈칫했고 프리양카는 잠시 흔들리는 내 동공을 알아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쥐고 있는 것은 내가 갇혀있는 철장문의 열쇠 이상일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을 주었다.
"Good. Have a rest now."(좋아. 이제 좀 쉬어.) 어차피 난, 그들에게 체포된 이후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냥 쉬기만 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이 대단한 배려라도 되는 듯, 또는 그렇게 명령하는 것이 자기만이 가진 위대한 특권이라도 되는 듯 계속 쉬라고 하는 그녀가 역겨웠다. 그녀가 뒤돌아 내 시야에서 사라져 가는 약 2초의 시간. 수많은 계산과 공식이 머릿속에 불거지더니 곧 서로 엉망으로 뒤엉켰다. 내 눈은 그러한 머릿속을 투시라도 하는 듯 새까매졌고 분노로 채워진 심장의 열기는 순식간에 얼굴의 두꺼운 피부까지 녹아내리게 할 만큼 뜨거웠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소리라도 튀어나올 듯 그토록 어리석은 나 자신에게 너무 미안했고 곧 이어서 무겁고 축축한 억울함이 핏속에 마치 수채물감처럼 번졌다.
순식간에 몰려온 그러한 감정들은 다행히도 영원하지 않았다. 애초에 감고 있던 것이 아니었지만 눈을 떴다. 어둡게만 보였던 유치장에 어느새 석양의 태양빛이 경찰서 마당으로 향한 커다란 쇠창살 창문 사이로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로부터 이미 빼앗긴 나의 것을 더 늦기 전에 반드시 돌려받아야만 한다는 믿음이 생겼다. 일단 내 이메일의 비밀번호를 알게 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비단 이메일의 접근뿐이 아니다. 함께 압수당한 나의 핸드폰과 SIM을 이용한다면 결국 그녀는 나의 모든 사생활을 엿볼 수 있게 될 것이었다. 아주 발칙한 여자라고, 아주 나쁜 년이라고 결심했다. 동시에 내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과연 그녀가 찾으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에 관한 질문이었다. 그 순간부터 유치장 안의 좁은 공간을 끊임없이 왕복해서 걷는 습관을 갖게 된 것 같다.
인생 처음으로 나와 같은 범법자가 체포된 상황에서 주장할 수 있는 기본권리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고민한다고 애초부터 가지고 있지 않던 지식이 새롭게 생성될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방법은 분명히 비겁했다. 나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에 접근하려는 그녀의 수법은 분명히 옳지 않음을 확신했고 그런 그녀는 절대로 나의 편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년은 불법이다.
"Do you mind non-veg for dinner?"(고기 먹어?) 해가 거의 다 저물었을 즈음, 그녀 대신 나에게 식사에 관해 물어본 것은 그녀의 부하 경찰이었다. "No I don't mind."(먹어.) 그리고 철장문이 열렸다. 의자가 없는 식당에서 나에게 제공된 식사는 치킨카레와 서너 장의 차파티였다. 걸쭉한 폐휘발유 위에 둥둥 떠있는 붉은색 기름띠를 닮은 검붉은 그레이비 속에 젖어있었던, 그 부위를 알 수 없는 역시 까맣고 얼룩덜룩한 고기 조각들의 모습은 유치장 안에서 했던 범법자의 기본권리에 대한 생각을 계속 이어가게 만들었다. 배고프지 않았다. 내 앞에 놓인 더러운 치킨 조각들 대신 나의 뱃속을 채워주는 분노 덕분이다. 아무도 감시하지 않았고 난 프리양카가 있는 사무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었다. 이미 어둑어둑해진 다람살라 경찰서는 한가롭고 조용했다. 싱그러운 여름의 저녁 공기가 코끝을 간지럽힌다. 평화로운 그곳의 그 누구도 혼자 잔뜩 화나서 씩씩거리는 한국인 불법체류자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Hello."(이봐요.)
그녀의 사무실에 들어선 나를 알아본 프리양카는 혼자였다. "Oh It's you. What's going on? Have you already finished dinner?"(아, 너야? 무슨 일이야? 저녁은 벌써 먹었어?) 그녀는 의연했다. 그녀의 책상 위는 여전히 수많은 서류와 잡동사니들로 가득하다. "No, I have completely lost my appetite. The dish was a disgrace. By the way, not that it matters but only out of curiosity, what are you intending to take from my personal stuff?"(아니, 밥맛이 완전히 떨어졌거든. 음식이 거지 같았어. 그런데, 뭐 큰 문제는 아니지만 그냥 궁금해서 그러는데 내 개인정보로 뭘 알아내려고 그러는 거야?) 마음속의 동요를 숨기고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려 했지만 양 어깨 위 별 두 개 씩을 달게 한 그녀의 노련함은 내 목소리 대신 내 마음속의 소음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You OK? because you are umm.. a little but stammering. What's going on?"(너 괜찮아? 왜냐면 너 좀 음.. 더듬고 있잖아. 무슨 일이야?) 나의 질문에 대한 답변 대신 묻지도 않은 나의 상태에 관해 언급하는 믿지 못할 여자다. 내가 시작했지만 어느새 그녀가 상황을 통제하고 조정하려 한다. "I'm OK."(멀쩡해.) 일단 그녀의 질문에 짧게 반응한 뒤 재빨리 나의 원래 위치를 찾기 위해 계속 이어갔지만 내 목소리는 이미 달라져 있었다. "I just got a question shortly after you left with my sensitive information. Are you about to go through my laptop and Email? Can you please tell me what's your interest?"(네가 내 민감한 정보를 가지고 돌아간 직후 의문이 들었어. 너 내 노트북 하고 이메일 훔쳐볼 거야?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말해주면 안 돼?) 그렇게 어떠한 임팩트도 없는, 힘 빠진 질문밖에 하지 못하는 내가 또다시 한심하고 안타깝다. "Oh dear, nothing much but it's all only for some formalities and..."(이런, 정말 별거 아냐 그냥 몇 가지 형식적인 것들 그리고…) 애초부터 그녀의 변명을 원한 게 아니었다. 그들이 나를 다시 유치장에 집어넣기 전에 난 내가 원하는 것을 도로 가져가야 했다. 시간이 없다. 마음이 급했던 나는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I want my passwords back. You have lured me out to snatch them and I am sure it's not even legal."(난 내 패스워드들을 도로 가져가야겠어. 넌 나를 꼬여서 비겁한 방법으로 그것들을 탈취했어. 확신하는데 그거 불법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어지러운 책상 위를 훑었다. 그중 나의 비밀번호들을 적어간 쪽지를 찾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어쩌면 그런 나의 모습이 보기에 무서웠을 수도 있다. "Don't be ridiculous. You must know that you are under arrest. And I realise it only now that you shouldn't be in my office at this time or any fucking time without my permission. Get back to the cell right away or I will have to make you."(바보 같은 짓 그만해. 넌 지금 네가 구속상태라는 것을 잘 알 거야. 마침 생각났는데 너 지금 이 시간에 아니 씨발 그 어떤 시간에도 내 허락 없이는 여기 들어올 수 없어. 당장 돌아가! 아니면 내가 직접 돌려보내는 수밖에.) 그녀가 자리에서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키며 위협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오히려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 책상 위 서류들을 아무렇게나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즈음에서의 나는 분명히 정신병자 같았을 것이다. "I just want my passwords back. Where the fuck are they?"(난 그냥 내걸 돌려받길 원해. 씨발 그것들 어딨어!) 나의 돌발행동이 그녀를 화나게 했는지 아니면 그녀를 위협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녀는 곧바로 책상 옆에 달린 초인종 비슷한 것을 눌렀고 곧 서너 명의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벤~초드!(sisterfucker)" "마깔로라!(motherfucker)" 그들의 뻔한 욕과 함께 그들 모두 동시에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 과정에서 입고 있던 스웨터가 찢어졌고 그 사실은 날 더욱 화나게 했다. "You cunt. I will destroy you if you put me in any further trouble!"(이 창녀야! 날 더 이상 힘들게 하면 너 나한테 죽는다.)
그렇게 울부짖었지만 난 어느새 유치장 안으로 밀려 들어와 있었고 철장문 역시 이미 단단히 닫혔다. 신고 있던 신발 두 짝 모두 유치장 밖에서 나뒹굴었고 유치장에 감금되기 전 압수당했기 때문에 허리띠 없이 입고 있던 카고 반바지는 엉덩이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었다. 육중한 철장문 또는 유치장의 맨 벽 또는 맨바닥 그 어느 것을 후려치더라도 부서질 만한 것은 내 맨주먹과 발가락뿐이었다. "Stop now! Otherwise we will go in and chain you the whole fucking time. A crazy madachaud."(이제 그만해! 아님 우리가 들어가서 널 밤새 묶어둘 테니까. 미친 마다초드.)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경찰 간수들이 말했다. "Fuck you all. I just want a lawyer."(너네 다 엿이나 쳐 먹어. 난 지금 변호사가 필요하다고!) 소설, 드라마 또는 영화? 그 속에 등장하는 뻔뻔한 범죄자들은 항상 그렇게 주장했던 것을 기억했다. 비록 그런 범죄자 중 상당수는 실제 간사한 악당 역이었던 것 같지만 난 상관 않고 그들과 같은 주장을 했다.
"I need an advocate right here!"(변호사 좀 당장 불러줘요!)
감옥이란 그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욕망이나 절실한 어떤 필요가 발생했을 때 내가 가진 그 어떤 의지나 힘으로도 당장 그러지 못함에 대해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되는 곳이고 그와 동시에 따르는 것은 그 실망감에 정확하게 비례하는 고통일 뿐이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억지로 열려고 하면 그 속에 갇힌 나의 물리적 절대적 무력함을 비로소 확인받게 될 뿐이고 동시에 현실적 공포를 직면할 수밖에 없게 된다. 두꺼운 창살로만 만들어진 철장문과 커다란 창문 그리고 높은 천장으로 이루어진 유치장 안은 나 혼자 마시기에 충분한 공기가 있었지만 웬일인지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What did you do when you were in Pakistan?"(근데 파키스탄에서는 뭐 한 거야?) 다음 날 판사를 대면하러 가는 지프 안에서 앞 좌석에 앉아 있던 프리양카가 물었고 'Would you dare to bring up the same shitty attitude from the last night?'(용기 있으면 어젯밤에 보여줬던 그 좆같은 태도 다시 한번 보여봐?) 그렇게 소리 없이 경고라도 하는 듯, 룸미러를 통해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은 도전적이다. 한편, 나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앉은 두 명의 경찰과 함께 앉아 있던 뒷좌석 창문 밖으로 보이는 5월의 아침, 록다운이 적용된 다람살라 시내의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Nothing" 여전히 룸미러 속에서 나를 기다리던 그녀의 커다란 두 눈을 향하여 말했다.
Nothing, 아무도 없는 그 거리는 어느새 더 늙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