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Oasis(오아시스)
인도, 라자스탄주(Rajasthan), 푸시카(Pushkar)
내 머릿속은 온통 불길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프리양카는 나에게 얻어낸 비밀번호를 이용해서 결국 내 이메일 계정을 열 수 있었을까? 그렇다면 그녀는 무엇을 찾아냈을까?
어느덧 비수기가 시작되었고 이미 모든 여행객이 떠나버려 텅 빈 라자스탄의 성지 푸시카. 난 그날도 머리털이 녹아내릴 만큼 뜨거운 태양 아래의 자이푸르 호숫가에 홀로 앉아있었다. 심심해진 동네 아이들이 이따금씩 수상하게 어슬렁 거리다가 사라지곤 하는 것과 아무 소리도 없이 땅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다니는 도마뱀들을 제외한다면 그 어떤 다른 생명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다.
리시케시에서 함께 푸시카로 이동해 한 달 여 함께 지냈던 케일, 타일러와 킴 모두 이곳을 떠났다. 하지만 난 여전히 수개월째 정확히 같은 자리에서 고집스럽게 나의 노점 더티론드리를 지키고 있었다.
‘We wish you the best luck. Keep in touch so we won't miss anything about you and Dirty Laundry even when we gotta stay places where they are worlds apart. It's a shame that we won't be able to witness what would be going on with the project firsthanded. But we leave our hearts here along with a few stuff that we hope you can find them usable.
With lots of love Kale, Tylor and Kim.’(행운을 빈다! 너랑 더티론드리 소식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비록 서로 멀더라도 연락하고 지내자. 더티론드리가 어떻게 진화하는지 직접 볼 수 없다는 건 안타깝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여기에 남기고 몇 가지 물건을 너한테 맡길게. 쓸모 있었으면 좋겠다. - 케일, 타일러, 킴)
이때부터인가 난, 정든 사람들이 모두 떠난 공간에서 항상 혼자가 된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발급받은 두 번째 인도 관광비자의 유효기간은 이미 2달 전에 만료되었고 그 이후 난 불법체류자라는 불편한 정체성에 서서히 익숙해져 가고 있었던 참이다. 하지만 굳이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 없이 이미 수개월째 머물고 있던 푸시카에서의 항상 같은 그 자리를 지키기만 할 뿐이라면 그런 상황이 특별히 문제 될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믿고 있었던 난 새로운 성수기가 돌아올 때까지 그냥 그곳 푸시카의 자이푸르 호숫가에서 무작정 버티기로 한 것이다. 또 하루 무탈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큰 축복이라고 믿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심심한 하늘, 천천히 그 아래 놓인 모든 것을 녹이고 있었던-하지만 나만 스스로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던-한 치의 자비 없이 활활 끓던 태양, 6월의 푸시카는 오늘이 어제 같았고 내일은 틀림없이 오늘 같을 것이라 미리 알 수 있었다. 그 여름, 그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의 마을에서는 정말 완벽할 정도로 그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나와 더티론드리가 함께 앉아 있는 그곳에서는 저 멀리 꼭대기에 성전이 우뚝 솟은 아름다운 사비트리 산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일이 그런 나에게는 더 이상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그 대신 그날 그 사비트리성전 너머로 보인 거리를 가늠할 수 없을 만치 먼 하늘 끝에 나타난 작고 까만 점이 무료함과 열기에 지칠 대로 지쳐있던 나에게는 훨씬 새롭고 흥미로운 일이었다.
'얼마 만에 보는 구름인가?' 그것이 다름 아닌 그저 한 점의 작은 구름일 뿐이었음을 인지했을 때 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알 수 없는 생각에 빠졌을 것이다. 아니 당시 언제나 그랬듯이 눈뜬 채 꿈을 꾸려는 찰나였을 것이다. 항상 바라봐야 했던 늙고 키 큰 나무들의 메마른 가지들이 스스로 소리 내는 듯, 흔들리는 듯했다. 계절과 어울리지 않게 낯설었던 그 풍경은 무엇이든 새로운 소리와 모습에 갈증을 느끼고 있던 나에게 한동안 습관적으로 꾸고는 했던 그날의 백일몽을 방해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주변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나무를 살짝살짝 흔들었다고 느꼈던 그 바람은 어느새 작지만 그냥 놓치기는 불가능할 정도의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모래 먼지를 흩뿌리고 있었다. 눈 속으로 파고들려는 모래를 피하며 올려다본 하늘은 불과 수초 전까지는 작은 점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던 새까만 구름으로 이미 절반 이상 덮인 채였고 그 불길한 구름은 내 머리 위를 지나쳐 이동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늘 전체를 상대로 확장하고 있는 것임을 곧 알 수 있었다. 그날 푸시카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루하기만 했던 여름 하늘은 재빠르게 두껍고 무거운 어둠으로 덮이고 있었다. 절대 그럴 리가 없는데 추웠고 바람은 나의 지붕 없는 가게를 당장 날려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거칠게 도발했다. 가느다란 빨랫줄에 아슬아슬하게 널려 전시되어 있던 옷들이 하나둘씩 떨어지는 듯하더니 어느새 솟아올라 저 멀리 힘차게 펄럭대며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비행접시처럼 날아가는 쇳덩이로 만들어진 것은 입간판이다. 거기에는 이곳에서 최소 수십 미터 떨어진 시장 한가운데 익숙한 책방의 이름이 쓰여있었다. 어쩌면 수백 년 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기에 멀리서 방문한 이방인에게마저 어느새 익숙한 모습이었던 정든 고목들은 별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땅속의 흙을 고통스럽게 쓸어 올리며 넘어졌고, 오랜 세월 비밀스럽게 땅속 깊숙이 숨겨놓았던 붉은 뿌리들을 흉측하게 드러내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질서도, 규칙도 없이 어두운 호수, 위태로운 지붕 그리고 내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전봇대에서 떨어져 나간 무거운 전깃줄은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내장을 들어낸 그것은 지직지직 소리와 함께 불꽃을 튕기며 지랄했다. 세상은 내 기억 속 그 어떤 밤보다 더 어둡게 변해있었다. 정신을 완전히 잃지는 않았던 나는 생존본능에 부성본능을 합친 슈퍼파워로 더티론드리를 지키기로 했다. 머리만 보호할 수 있다면 죽지는 않을 것 같았다. 여전히 빨랫줄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의류상품들 사이에 머리를 밀어 넣어 숨겼고, 활짝 편 두 팔은 그 모든 옷을 한꺼번에 단단하게 끌어안아 버텼다. 그 어둠 속에서 내게 보이는 것은 없었다. 이때, 눈앞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인간은 비로소 가장 무모해진다.
추위가 바람을 만나서 또는 바람이 추위를 만나서 아니면 그 둘하고는 애초부터 아무런 상관도 없었을지도 모르는, 얼음처럼 차가운 비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자 매섭던 바람이 잦아들었다. 아니면 먼저 매서운 바람이 잦아들고 비가 뒤이어 찾아온 것이 맞는 순서인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 둘은 동시에 함께하지 않았고 그 사실은 나에겐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안도감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막폭풍의 일부일 뿐이었다. 너무나도 차가운 비라고 생각했던 그 비는 곧 얼음이 되었다. 별이 보이지 않는, 우주처럼 어두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수백수천억 개의 새하얀 얼음덩어리들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고 전형적인 인도사막의 양철지붕들은 고막이 터질 듯한 비명을 질러댔다. 덕분에 내가 지르는 비명은 나조차도 들을 수 없을 만큼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옷들 사이에 파묻은 나의 머리는 남몰래 힘껏 소리 지를 수 있었다. 온몸을 두드리는 주먹만 한 얼음덩어리들에 두들겨 맞고 느껴야 했던 고통, 또는 혹시라도 오늘이 내가 마지막으로 숨 쉬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것도 아니면 자비롭지 않은 이 세상에 남은 건 철저히 나 혼자뿐이라는 외로움. 이유야 어쨌든 난 실컷 울부짖을 수 있었고 그렇게 했다.
"You alright? hey! Korean man, Choi? You must wake up now! It's all over, "(이보게 괜찮은가? 한국인친구, 최? 이제 일어나시게 다 지나갔다네.) 그리고 난 그의 말대로 깨어났다. 물에 젖어 온몸에 단단히 굳어 덮여있던 모래 먼지들이 덩어리가 되어 투두둑 떨어진다. "You look alright. Eyes, ears, a nose, arms, legs... All are in places as far as I can see from here. Oh but you gotta check the balls for yourself though, hahaha."(멀쩡한가 보군, 눈, 귀, 코, 두 팔, 두 다리... 내 보기엔 모두 제자리에 붙어있다네. 하지만 그 두 다리 사이는 자네가 직접 한번 확인해 보시게, 하하하)
푸시카에서 가장 오래되고 화려한 자신의 호텔 앞에 더티론드리를 위한 작은 코너를 직접 허락해 준 선셋 호텔 사장 바블랄 할아버지는 폭풍이 오고 갔다는 걸 그새 잊기라도 한 듯 연신 즐겁다. 우리 앞에 보이는 호숫가에는 호텔에서 날아들었을 의자와 테이블들로 어지럽다. 자주색 유니폼을 입은 서너 명의 낯익은 호텔 직원들이 그것들을 분주히 정리하며 호텔로 나르고 있었다. 바블랄 할아버지는 폭풍이 억울해할 만큼 얼룩 하나 없는 새하얀 쿨타정장 차림이다. 여전히 흥분한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Why don't you clean up the mess tomorrow but Instead you will go to a wedding party with me right now. You must be hungry. Aren't you?"(저 난장판은 내일 치우게나 그 대신 자네는 나와 함께 결혼식 좀 가세. 배고프지 않나?) 그의 말을 듣자 내가 얼마나 지치고 배고팠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Yes, honestly I am very very hungry and could eat a horse. But a wedding? seriously, sir?"(배고파요. 말도 잡아먹을 수 있겠는걸요? 근데 결혼식이요? 진심이세요?) 좌우로 시선을 돌리며 사방을 둘러봤지만 폭풍과 함께 찾아온 칠흑 같은 어둠은 여전했고 촛불로 밝혀진 호텔 내부를 제외하면 그 어느 곳에서도 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폭풍이 가져다 놓은 이른 암흑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별들 한가운데로 은하수가 흐른다. 그것들은 언제든지 우리들 머리 위로 쏟아질 수도 있을 듯 힘차게 반짝거리고 있었다. 덕분에 어느새 밤이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Sure sir. Allow me a minute for change. I need a shirt."(좋아요! 셔츠로 좀 갈아입고 올게요.)
쓰러진 전봇대와 나무들, 수많은 쓰레기와 부러지고 부서진 나무조각들,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쌓인 진흙더미들과 그 사이사이를 흐르는 흙탕물로 뒤덮인 도로 위를 비추는 불빛은 하얀 쿨타정장의 바블랄 할아버지와 역시 흰색 셔츠를 입은 나를 태운 오래된 오토바이의 덜덜덜 흔들리는 헤드라잇뿐이었다. 그렇게 약 2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그곳은 이미 수많은 차들과 오토바이들로 둘러싸인 어느 저택의 정문 앞이다. 모두가 빛을 잃은 그곳에서 유일하게 반짝이고 있던 그곳은 마치 이 세상의 모든 빛을 혼자 독차지한 듯했고 우리와 함께 그곳에 도착한 이들은 그 아름다운 빛에 유인되어 날아든 화려하지만 해롭지 않은 날벌레들과 같았다. 아무 곳에나 오토바이를 세운 바블랄 할아버지를 뒤따라 수천 송이의 꽃으로 장식된 저택의 정문으로 들어섰다. 그 속의 하객들은 마치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듯 먹고 마시고 떠들고 춤추고 웃고 있었다. 곧 푸시카 최고 부자를 알아본 그들은 어느새 바블랄 할아버지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서로서로 그의 발과 다리를 만지며 경의를 표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난 혼자가 되어 화려한 천으로 장식된 기다란 테이블 위에 준비된 뷔페 음식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 역시 조금 전에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느새 잊은 듯했다.
들고 있던 대형 접시는 믹스 베지, 샤히빠닐, 빠닐버터마살라, 탄두리 치킨, 버터난, 치킨비리야니, 베지플라오, 커드 그리고 과일 샐러드로 채워졌고 난 비어있는 테이블을 찾아 그 모든 음식을 한 번에 공격하기 시작했다. 호텔 안에 아무렇게나 쌓아둔 젖은 더티론드리의 상품들을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일단은 먹어야 했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급하게 찾아 입어야 했던 흰색 셔츠의 단추가 목까지 채워져 있음을 알고 단추 두 개를 풀었다. "나마스떼" 혼자 앉아있었다고 생각했던 원형 테이블 건너편에 어느새 누군가 함께 앉아있었고 그녀는 분명히 인도사람은 아니다. 그 시기, 그 시각, 그곳에서 나 말고 다른 외국인(?)을 본 것에 적지 않게 놀랐다. "Namaste, How do you do?(나마스떼)" 입속에 가득한 음식을 재빨리 삼키고 물 대신 킹피셔 스트롱 맥주 한잔을 털어 넣으며 먼저 인사를 건넨 그녀에게 예의를 갖췄다. "한국인 아니세요?" 가장자리가 금색으로 마무리된 화려한 빨간 사리를 입고 두 눈썹 사이 역시 금빛으로 반짝이는 빈디를 붙인 그녀가 그렇게 먼저 우리말을 건넸지만 나 역시 거의 동시에 그녀가 나와 같은 한국인임을 느낄 수 있던 차였다. "네 맞아요. 반갑습니다. 정말 반가워요." 그날 그렇게 만난 그녀와 나는 당시 라자스탄 내 거의 유일한 한국인 여행객이었을 것이다. 잠시 그 시간 그곳에서의 서로의 존재에 대해 의아해해야 했지만 곧 서로가 반가웠던 그녀와 나는 재빨리 가까워질 수 있었고 그런 우리의 관계는 더 이상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그 이튿날의 푸시카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다시 50도를 웃도는 열기로 과열되었고 바블랄 할아버지가 허락한 농업용 물파이프에서 쏟아지는 맑고 차가운 지하수로 전날 오염된 의류 상품들을 무사히 세탁할 수 있었다.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영원히 걸릴 일이었어." 연주의 얇고 가벼운 파자마 바지는 무릎 위까지 걷어 올려져 있었지만 물로 흠뻑 젖은 그녀의 바지 속으로 비치는 허벅지는 푸시카의 뜨거운 사막 열기에도 여전히 건강한 우윳빛이다. 얼굴 전체를 가리는 커다란 챙모자 아래로 가끔 엿볼 수 있던 그녀의 입술 역시 섭씨 50도 열기에 지지 않고 여전히 촉촉하게 반짝였다. 그녀에게 키스했다. 허리를 감쌌다. 곧 속이 비치는 그녀의 바지 뒤로 손을 넣었다. 입술, 눈, 귀, 목, 어깨, 가슴, 그리고 그녀의 다리 사이… 오아시스는 그곳에 있었다. 내가 발견한 오아시스는 내가 주인이었고 나는 그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강풍, 소나기, 얼음을 동반한 한파가 순서대로 왔다가 물러가고, 그리고 운이 좋다면 그다음으로 오아시스가 나타날 것이다. 사막의 폭풍이 오고 가는 과정이다.
초등학교 교사인 연주는 인도를 무척 사랑했다. 그중에서도 뜨거운 라자스탄을 가장 사랑했고 그런 그녀는 일 년 중 최소한 두 번 매 방학 때마다 놓치지 않고 인도를 방문했다. "거대한 영토의 인도는 그 규모에 비례해서 해결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어서 오빠의 비자 문제 정도는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걸?" 그녀는 유쾌하게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했다. "그렇겠지? 그런 인도 정부의 눈에 거슬리게 될 즈음이면 내가 하는 일이 이미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가 되겠지? 그렇다면 내 비자 문제는 그때 가서 고민해 봐도 늦지 않을 거야. 안 그래?" 그토록 긍정적이고 유쾌한 그녀였지만 날 이곳에 남겨둔 채 학교로 돌아가야 했던 연주는 나에게 부족한 것들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것들을 채워주기 위해 노력했다. "돈 좀 부쳤어 찾아서 좋아하는 피자 좀 사 먹어 그리고 잊지 말고 이메일도 확인해."
어떤 이유로든 새로운 장소로 이동을 해야 하고 그렇게 이동한 새로운 장소에서 찾은 낯선 게스트하우스 또는 호텔에 체크인을 해야 할 때 Form C(인도, 외국인 체류 시 요구되는 서류)에 제출할 수 있는 유효한 비자가 없다는 것은 불법체류자가 겪어야 할 가장 큰 도전이고 불편함이고 스트레스이다. 연주가 직접 위조하여 이메일로 전송해 줬던 그러한 비자들은 특히 이동을 준비해야 했던 나에게 커다란 안도가 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운이 좋아서 굳이 그렇게 위조된 비자들을 결국 사용할 필요가 없다 할지라도 그러한 백업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같이 범법을 하려는 자에게 큰 위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의 그러한 도움은 이후에도 한동안 지속되었고 그녀와 나 우리 모두 그에 대한 죄책감은 없었다. 우리의 그런 행위는 '전문 위조'라고 하기에는 그 동기가 너무나 단순했고 범죄행위라고 생각할 만큼의 '악'한 의도가 배제되었다고 스스로 믿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이메일을 열람하고 그녀와 내가 주고받은 이메일과 첨부파일에 접근할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꿈속의 꿈에서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기에 우리는 과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꿈속의 꿈에서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프리양카는 형사이고, 형사의 역할을 해야만 하는 그녀는 11년간 인도 정부의 허가 없이 불법으로 체류한 나에게 있을지도 모르는 추가 범죄 사실을 찾아내려 한다.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 것이 그렇다면 그녀는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완벽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단순 불법체류자와 공문서를 위조한 불법체류자가 같은 벌을 받지 않을 것임은, 안타깝지만 나조차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프리양카가 압수한 나의 랩탑과 인터넷 그리고 단 5분의 시간만 나에게 허락된다면 이렇듯 잠 못 이루는 밤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감옥이란 곳은 우리가 평소에 가장 당연시하고 누리던 모든 권리와 혜택을 차단하는 공간이고 그로 야기되는 고통은 위대하다. 인간이 신체를 구속당하게 되면 그러한 불리함으로 인해 노출될 수도 있는 자신의 부끄러운 비밀이나 떳떳하지 못한 과거의 행실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되고 그것을 숨기거나 지키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와 현실을 직시하게 될 것이며 그러한 모든 이해는 곧 참기 힘든 고통이다. 온몸이 떨리고 숨이 막힌다. 이는 나처럼 감옥을 직접 경험하는 자만이 깨닫게 되는 사실인지 아님 감옥이란 것을 디자인한 그 누군가가 애초부터 겨냥한 효과인지는 알 길이 없다. 모든 것을 박탈당한 채 오직 생각의 자유만이 허락된 이 한 평 반 공간 속의 나는 무섭고 아파서 그래서 또, 이렇듯 잠 못 이룬다.
오늘 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