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날개
인도, 히마찰프라데시주(Himachal Pradesh), 다람살라(Daramshala)
"How long would I have to stay here?"(나 여기서 언제 나가?)
사실 이 하나의 질문에 대한 확실한 답변만 얻게 된다면 더 이상의 질문은 없다.
"Maybe about 14 or 28 days. It depends on your health."(아마도 14일이나 28일. 네 건강상태에 달렸어.)
이곳 서브제일(Sub Jail)에서 지위가 가장 낮은 교도관인 그의 이름은 Rohit(로히드)이다. 갈색 유니폼 오른쪽 가슴에 달린 이름표에 그렇게 쓰여 있다. 남청색 베레모를 쓰고 콧수염을 기른 그에게서 강한 애프터셰이브의 향이 전해졌다. 오랜만에 맡은 알코올향에 취한 듯 머리가 아팠기에 철장문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기로 했다. 내가 입고 있는 카키색 카고 반바지에는 총 7개의 주머니가 있다. 그중 왼쪽, 두 개의 큰 단추가 달린 뚜껑으로 덮여있는 아랫 주머니에서 구깃구깃 구겨진 마스크를 꺼내어 썼다. 그러자 로히드 역시 깜빡 잊고 있었다는 듯 그의 가슴에 달린 황토색 마스크를 꺼내어 썼다. 물론 로히드는 나와는 다른 목적으로 자신의 입을 가렸을 것이다.
"No I mean. If you know how many more days I'd have to stay here in this prison?"(아니 내 말은 이 감옥 말이야 나 여기서 얼마나 더 살아야 돼?) 그는 내가 독방 격리 기간에 관해 질문한 것으로 착각한 듯했기에 나는 그렇게 다시 질문해야만 했다. "Huh? that I don't know."(허? 몰라.) 솔직하게 그가 말했다. "Then is there any officer who'd know about it? perhaps?"(그럼 다른 사람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어?) "Sorry but I still can not say for sure."(미안 여전히 모르겠다.) "Please arrange a talk if you find anyone who knows about it. Would you?"(혹시 아는 사람 찾으면 얘기 좀 할 수 있게 해 줘. 알았지?) 빠르게 실망한 난 그렇게 부탁했다. "I will try."(해보긴 할게) 하지만 그는 그렇게 불확실한 대답만 할 뿐이다.
"By the way, how do you say 'hello' in Korean?"(근데 한국어로는 헬로를 어떻게 말해?) 그에게 흥미를 잃은 내가 침묵하자 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Eh? hello? right, see. You may say 'An-nyung'."(아, 헬로? 응 들어봐. '안녕'이라고 해봐.) 열정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설명했다. "What?"(뭐라고?) 한 번에 못 알아들은 것이 미안했는지 예의 바른 그 젊은 교도관은 살짝 비켜 쓴 베레모 아래 자신의 귀에 손바닥을 펴 보이며 되물었다. "An.nyung." 다시 안. 녕.이라고 또박또박, 두 번 다시 같은 질문을 하지 말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알려주는 내 눈빛이 그 이상 열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A-nong? A-aa-nong? An-nong! Is that right?"(아-농? 아-아-농? 안농! 맞아?) 눈을 반짝이며 교도관 로히드는 그렇게 최선을 다해 '안녕'을 발음하기 위해 시도해 본다. 하지만 철장문 밖에 있는 그와는 달리 그 안쪽에 갇힌 채 고통을 체험 중인 나는 그 시간이 전혀 즐겁지 않다. "Yes, yes, not bad. 'An-nyung', just like that, not bad at all." "An-nyung! an-nyung."(응, 그래. 잘한다. '안녕' 그렇지. 잘하네.) 오른손을 들어 그에게 흔들어 보이며 다시 '안녕'이라고 알려줬다. 유용한 정보도 없고 즐겁지도 않은 그 대화를 서둘러 끝내려면 그 녀석의 바보 같은 ‘아, 아 아~농'을 알아들은 척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었다.
"By the way, have you ever met any other foreigner who ever served in jail accused of the same case as mine?"(그런데 너 혹시 나랑 같은 케이스로 여기 들어왔던 외국인 만난 적 있어?) 그런 영리한 질문을 찾아낸 것에 스스로 대견해하며 난 눈을 반짝였다. 제발 한 명의 사례라도 알고 있기를... "A visa problem? Eh... no, I don't think so, "(비자문제로? 응? 없어.) 또 한 번의 '노'이다. 난 이제 로히드한테 완전히 흥미를 잃은 것 같다. "So you have no idea what's going on with me at all?"(그럼 넌 내 일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네?) 아무것도 모르는 그 녀석이 짜증 났다. 마치 내가 아직 이곳에 있는 이유가 그 자식 때문이기라도 한 듯 짜증이 났다. "No, I know nothing. ‘No toilet~, No problem~ Yuhoo~’ and how do you say 'I want to marry you’ in Korean?”(몰라 난. ‘화장실이 없어도~ 문제가 없지~ 유후~’ 그리고 말이야 ‘나 너랑 결혼할래’ 이건 한국말로 어떻게 해?” 왠지 기분 좋아 보이는 그가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나에게 말했고, 나는 이제 정말 혼자 있고 싶다. "Leave me alone now. I'm feeling sick. And bring me some drinking water, icy cold if possible."(나 이제 좀 혼자 있을게. 좀 지치네. 그리고 마실물 좀 줘 가능하면 차가운 걸로.)
3일 전, 경찰서 유치장에서의 이틀 밤을 보낸 다음 날 판사와의 접견 직후.
"Officer? What's said in there? How long are they going to put me in custody?"(경찰관님? 거기에 뭐라고 쓰여있나요? 저 얼마나 오랫동안 구금될 예정인가요?) 그날 프리양카와 함께 현재의 교도소로 나를 이송했던 그녀의 부하직원 중 한 명에게 물었었다. 마침 그의 손에는 프리양카가 건네준 판사의 명령서인 듯한 서류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헤나로 물들인 그의 머리는 기름으로 번들거렸고 머리와 같은 오렌지색의 오랫동안 다듬지 않은 수염 사이로 튀어나온 입술은 아랫입술뿐이다. 길게 삐져나온 코털, 축 늘어진 볼, 두껍고 짧은 목, 허리띠의 커다란 버클마저 완전히 덮은 배. "사뜨! Seven!" 이곳 서브제일로 출발대기 중 경찰서 뒤편에서 몰래 태운 짧은 칠럼에 여전히 덜 깬 노란 눈으로 손에 든 그 A4용지를 너무 빨리 훑은 그가 뱉은 말을 단번에 믿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 그 순간부터 'Seven'은 어쨌든 나에게는 그냥 간과할 수 없는 힌트가 되었다. 근무 중 틈만 나면 어딘가에서 하시시를 피우고 오는 그 늙은 경찰의 판사명령문 해석의 결과인 ‘7’ 이 내가 가진 유일한 정보였기 때문이다. 다람살라 경찰서의 유치장에 갇혀있어야 했던 이틀의 시간조차 이미 끔찍할 정도로 길었기에 앞으로 겪어야 할 또 다른 7일 동안의 구속은 마치 영원할 것만 같았다. 난 그들이 나의 사건에 관해 판단, 결정하고 그에 적용하는 모든 과정과 절차가 불공평하다고 믿고 그런 믿음은 항상 날 화나게 한다.
"How long?" 프리양카에게 정확히 같은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그녀로부터 직접 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난 나의 노트북과 이메일의 비밀번호를 가로챈 그녀가 여전히 불편하고 못 미더웠기에 한참 동안 어떤 질문이나 부탁을 쉽게 할 만한 입장도 기분도 아니었던 것이다. 난 삐져있었다. 그 한심한 이유로 교도소로의 이송이 완료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질문할 기회를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나를 교도소에 내려둔 채 인사도 없이 돌아갔고 그녀를 태우고 떠나는 지프를 보지 못한 난 끝내 질문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다. 병신 같다. 그 멍청함에 진저리 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똑같이 시간은 흐를 것이고 결국 나의 '일곱 번째 날'은 올 것이다.
‘아마도..’
‘설마..?’
그 불확실성이 지금 내가 느끼는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이다. 불확실하다는 건 어딘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느새 습관처럼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고 있다.
답답하다.
프리양카의 부하경찰이 알려 준 '7일'이란 정보가 왜 굳이 의심할 필요가 없는 '진짜'인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운 좋게 나 자신을 스스로 설득할만한 논리라도 찾게 된다면 이곳에서 견뎌내야 할 나머지 날들은 지금보다는 덜 불안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찾은 논리는 머릿속의 의심을 잠재우는 '정신병 치료제'처럼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체포된 이유는 단순하다. 인도 정부가 정한 규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빨간 신호에 정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규칙을 어겼다고 해서 운전자를 감옥에 가두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단순히 규칙을 위반했을 뿐인 불법체류자가 감옥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비록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예외가 있는 억수로 운 나쁜 시기일지라도 '단순 규칙 위반자'가 장시간 감옥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건 정의가 아니다. 하지만 그 진실성을 심사해 줄 제3자가 이 독방 안에는 없으므로 이는 나만의 주관적이고 제한된 억지 논리처럼 들릴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제3자의 입장이 되어보았다. 그리고 그의 ‘단순 규칙 위반자' 논리를 ‘매우’ 객관적으로 다시 검증해 봤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되었다가, 제3자가 되었다가. 내가 되었다가, 다시 제3자가 되었다가…
마치 영원히 아무도 방문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저 철장문 앞으로 누군가가 예고도 없이 나타나서 나의 이름을 부른다. 낯설지만 희망찬 그 목소리를 듣고 기쁘게 놀란 나는 순간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제 드디어 이곳에서 나갈 시간이군'. 정확히 7일 전, 냄새 지독한 소독약에 흠뻑 젖은 몸으로 지났던 그 문을 다시 한번 허리 숙여, 하지만 그날과는 반대 방향으로, 통과하면 나를 이곳으로 이송해 왔던 것과 같은 지프로 안내될 것이며 앞 좌석에서 앉아 나를 기다리던,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던, 유난히 두꺼운 메이크업의 프리양카는 애써 무거운 상체를 꼿꼿이 세우며 나를 향해 물을 것이다. "Choi! How are you? Are you good?"(최! 어때? 잘 지냈어?) 난 그런 그녀가 가소로울 것이고 그녀에 대한 반응조차도 귀찮을 것이다. 난 아직도 그녀가 밉다.
이윽고 내 방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여전히 책상 위 재떨이에 아무렇게나 놓인 반쯤 남은 조인트에 불을 붙일 것이다. 고소한 하시시의 연기를 가득히 폐 속에 가둔 채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틀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 연기를 입술 사이로 흘려내고는 아직은 자기의 가장 친한 친구가 돌아온 줄도 모르고 여전히 동네 어딘가에서 뛰어놀고 있을 바둑이를 불러본다. “휘익! 휙!” 너무나도 그리운 녀석.
하지만 그들이 만약에 한국행 비행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바로 델리로 출발해야 한다고 재촉이라도 한다면 아쉽지만 난 당연히 그렇게 해야만 할 것이다. 지금부터 8일 후인 5월 20일 뉴델리에 예정된 아시아나 항공의 코비드나인틴(Covid-19) 특별 전세기는 이 모든 역경을 뒤로하고 결국 12년 만에 무사히 인도를 떠나는 나를 많이 환영할 것이다. "많이 힘드셨죠? 고생하셨습니다." 처음 보는 그 스튜어디스는 안타까움과 안도감이 적절히 섞인 애매하고 아름다운 표정을 지으며 굳이 직접 나를 자리까지 안내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아니에요. 사실 별것 아니었습니다. 비록 7일 내내 끔찍한 독방에서 지냈어야 했지만요. 그 방의 수도꼭지에는 꼭지가 없어요. 그리고 그것이 질질 흘리는 물은 다름 아닌 빨간색이랍니다. 하하하하 하하하하." 그렇게 약간은 특별한 사람인 듯 말하면서 난 그녀에게 위스키 더블샷을 부탁할 것이다. 응, 항상 마시던 걸로. "고객님만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한 VAT69입니다."
한 평 반 남짓의 좁고 더러운 독방이 절대로 구속할 수 없는 것은 내 상상의 자유이다. 철장 사이를 빠져나가 일단 날기 시작한 그것은 우주 끝까지 간다. 우연히도 프리양카의 유니폼과 같은 색의 승무원 복장을 한 스튜어디스, 두 여성의 또 다른 공통점인 풍만한 하체를 닮은 VAT69의 호리병이 가벼워질 즈음이면 난 그토록 그리던 조국의 하늘 위를 날고 있을 것이다.
7-4=3
3일 남았다.